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 본당 외관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 세습금지 결의가 나온 바로 그 장소가, 10년 뒤 세습의 상징이 됐다.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9월 24일

한국의 대형 교회 상당수는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세워졌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낯선 도시에서 기댈 곳이 필요했다. 천막이나 상가 2층에서 시작한 개척교회는 그들에게 공동체였고 쉼터였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개척 목사들은 수십 년에 걸쳐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일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맨손으로 교회를 세웠다는 기억은 "내가 세운 교회"라는 소유 의식으로 바뀌었다. 교회가 커질수록 건물과 토지, 헌금, 인사권과 영향력도 커졌다. 은퇴를 앞둔 목사에게 교회는 잠시 맡은 직분이 아니라 평생 키운 사업체가 됐다. 사업체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 아들이고, 사위다. 이것이 한국 교회 세습의 본질이다.

성경은 세습을 말하지 않는다

교회는 목사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고 기록한다. 값을 치른 이가 주인이다. 목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다.

베드로전서 5장 2-3절은 목회자에게 세 가지를 요구한다.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할 것,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 것, 맡은 자들 위에 주인 행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될 것. 교회를 자식에게 넘기는 행위는 세 가지를 모두 어긴다. 맡은 것을 소유물로 여기고, 그 소유를 혈통 안에 묶어두려 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지도자들도 후계를 혈통으로 정하지 않았다. 모세에게는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민수기 27장에서 모세는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구했고, 이스라엘을 이끈 사람은 아들이 아닌 여호수아였다.

반대로 성경이 기록한 세습의 결과는 참담하다. 사무엘상 8장에서 사무엘은 늙자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이익을 좇았고, 뇌물을 받았고, 판결을 굽게 했다. 백성은 사무엘의 아들들을 거부하고 왕을 요구했다. 선지자가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준 결과 공동체는 신앙적 지도력 자체를 버렸다. 그보다 앞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제사장직을 물려받아 백성의 제물을 가로챘다(사무엘상 2장). 성경 속 세습은 늘 부패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며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요한복음 2장 16절). 또 제자들에게 너희는 다 형제라고 했다(마태복음 23장 8절). 교회 안에 대물림되는 왕조는 없다. 신약은 모든 신자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른다(베드로전서 2장 9절). 종교개혁이 내세운 만인사제주의도 여기서 나왔다. 목사직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소명에 따른 하나의 직분이다.

세습을 옹호하는 쪽은 구약의 제사장직이 아론의 혈통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신약은 그리스도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됐고 레위 계통의 혈통 제사장직은 그로써 끝났다고 선언한다(히브리서 7장). 폐지된 제도를 끌어와 세습을 정당화하는 것은 복음을 거꾸로 읽는 일이다.

명성교회, 10년의 법정 공방이 남긴 것

한국 교회는 이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2012년 한국 교회 최초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은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세습 금지를 결의했고, 2014년 교회 헌법 제28조 6항을 신설했다.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배우자,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해당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공교롭게도 세습 금지를 결의한 제98회 총회가 열린 장소는 명성교회였다.

그 명성교회가 한국 교회 세습의 상징이 됐다. 과정은 이렇다.

세습금지법이 통과되자 2014년 3월, 명성교회에서 20분 거리인 하남에 새노래명성교회가 개척됐다. 담임은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였다. 예배당은 명성교회 소유였다. 아들을 형식상 '외부 교회 목사'로 만든 것이다. 2015년 말 김삼환 목사가 은퇴했지만 명성교회는 후임을 세우지 않았다. 2017년 3월 명성교회는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 그리고 김하나 목사 청빙을 결의했다. 직접 세습을 금지한 법을 피해 아들을 밖으로 내보냈다가 교회를 합쳐 다시 들이는 구조였다.

노회는 청빙안을 반려했다. 교단 헌법위원회도 세습금지법이 유효하다고 해석했다. 그러자 명성교회 측은 청빙안을 반려한 노회 헌의위원장의 노회장 승계를 막았다. 노회는 파행했고, 반대파가 퇴장한 자리에서 청빙안이 통과됐다. 2017년 11월 위임식이 열렸다. 예식 중 "위임식은 무효"라고 외친 신학생은 교회 관계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갔다.

이후는 뒤집기의 연속이었다.

  • 2018년 8월, 총회 재판국은 8대 7로 청빙이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근거는 김삼환 목사가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 이미 2년 전 '은퇴한' 목사이므로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2018년 9월, 제103회 총회는 이 판결을 받지 않기로 했다. 명성교회에 유리한 헌법 해석도 부결됐고, 재판국원은 전원 교체됐다.
  • 2019년 8월, 재심에서 총회 재판국은 청빙 결의가 헌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하나 목사는 위임목사 자격을 잃었다.
  • 2019년 9월, 제104회 총회는 한 달 만에 '수습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1월 1일 이후 김하나 목사를 다시 청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수습안 7항은 이 결정이 "법을 잠재하고" 내린 것이므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 2021년 1월 1일 0시, 송구영신예배에서 김하나 목사가 강단에 복귀했다.
  • 2022년 1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김하나 목사에게 위임목사 및 당회장 지위가 없다고 판결했다.
  • 2022년 8월, 명성교회는 공동의회를 열어 청빙을 재확인했다. 찬성률은 98.8%였다.
  • 2022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뒤집고 김하나 목사의 지위를 인정했다.
  • 2023년 2월,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2013년 세습금지 결의부터 2023년 대법원 판결까지 약 10년이다. 명성교회는 법정 공방 끝에 세습을 완성했다.

주목할 대목은 사회 법원이 세습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원은 교단 내부 문제에 사법 판단을 자제했을 뿐이다. 교단 재판국은 무효라고 했다. 그 판결을 뒤집은 것은 법리가 아니라 교단 총회의 정치적 결의였다. 교단은 스스로 만든 법을 스스로 "무시"했다.

명성교회 사태는 법의 문제이기 전에 신앙의 문제다. 교회가 사유화될 수 있다는 선례를 한국 교회 전체에 남겼다. 교단 최대 교회가 법을 우회하고, 교단은 그것을 추인하고, 국가 법원은 개입하지 않는다. 이 구조가 한 번 증명되면 다음 세습을 막을 수단은 없다. 실제로 명성교회 사태 이후 예장통합 안에서는 세습금지법 자체를 삭제하자는 청원이 이어졌다. 2024년 총회에서 삭제 청원은 부결됐다. 그러나 법을 없애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교회를 물려주려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아이러니도 남았다. 김삼환 목사는 2001년 유럽 선교사 대회 설교에서 세습을 한국 교회의 문제 중 하나로 꼽았다. 2018년 명성교회 주일 설교 강단에서는 한 협동목사가 이 교회는 자손 대대로 이어질 교회라고 선포했다. 17년 사이에 세습은 비판의 대상에서 설교의 내용이 됐다.

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방식은 명성교회만의 것이 아니다. 비슷한 규모 교회의 목사끼리 서로의 아들을 맞바꿔 청빙하는 교차 세습, 다른 목사를 잠시 거쳐 가게 한 뒤 아들을 앉히는 징검다리 세습, 아들이 세운 교회와 합치는 합병 세습이 있다. 이름만 다르다. 교회를 가족의 자산으로 여긴다는 본질은 같다.

나의 가족이 다녔던 교회

명성교회는 나의 가족이 다녔던 교회다. 명일동 상가에서 20여 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가 되기까지, 그 성장에는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평범한 교인들의 새벽기도와 헌금과 봉사가 들어 있다. 그 교회가 세습의 상징이 되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신학생이 끌려 나가고, 재판 결과가 뒤집히고, 강단에서 반대하는 이들을 향한 비난이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안타깝다. 교회를 키운 것은 목사 일가가 아니라 교인들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 자리는 목사 일가에게 넘어갔다.

더 이상 나는 고덕동에 살지 않은지 오래였고, 이 사건은 띄엄띄엄 뉴스로 전했다. 대형 교회의 뉴스는 기사화되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시는 명성교회를 다니지 않을 것이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교회이기를 멈춘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즈니스가 된 교회, 성경에 없는 헌금 체계

세습은 더 큰 병의 증상이다. 일부 교회가 목사의 비즈니스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근본 문제다.

헌금 구조를 보면 분명해진다. 십일조는 구약에 근거가 있고 예수도 언급했다. 그러나 신약이 말하는 헌금의 원리는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겨 내는 것이다(고린도후서 9장 7절). 오늘날 일부 한국 교회의 현실은 다르다. 주정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절기헌금이 있고, 장로·권사 임직 때 관행처럼 요구되는 임직 헌금이 있다. 목표액을 정해두고 교인에게 금액을 약정하게 하는 작정 헌금도 있다. 헌금 액수가 신앙의 척도가 되고, 많이 내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 설교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세분화되고 강요되는 헌금 체계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모인 돈이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투명하게 쓰인다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재정 결정권이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 교회에서 헌금은 목사가 통제하는 자산이 된다. 자산이 클수록 남에게 넘기기 아깝다. 비즈니스가 된 교회는 가업이 되고, 가업은 자식에게 물려준다. 한국의 일부 교회는 성경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

교회 목사의 사모가 헌금을 관리하는 곳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

교인들은 떠나고 있다

대가는 숫자로 드러난다. 한국 교회 주요 교단의 교인 수는 10년 넘게 줄고 있다.

예장통합의 교인 수는 2016년 273만 900명에서 2025년 214만 910명으로 줄었다. 10년 사이 58만 9990명, 21.6%가 빠졌다. 2025년 한 해에만 5만여 명이 줄어 감소 폭이 전년의 약 3배가 됐다. 예장합동은 2025년 말 기준 211만 6250명으로 1년 사이 12만 6594명(5.6%)이 줄었다. 13년 사이 빠져나간 인원은 87만여 명(29.3%)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2007년 33만 7570명에서 2025년 18만 1982명으로 약 46% 줄었다. 감리교도 2012년 158만여 명에서 2022년 120만여 명으로 약 38만 명이 줄었다.

역설적이게도 교인이 줄어드는 동안 목사와 장로는 늘었다. 예장합동의 2025년 목사 수는 1.7%, 장로 수는 3.1% 증가했다. 미래 목회 자원인 강도사와 전도사는 각각 7.5%, 6.2% 줄었다. 교인은 떠나는데 직분자는 늘어나는 구조다. 교계 안에서조차 이를 기형적 성장 구조라 부른다.

다음 세대의 이탈은 더 심각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30대의 종교인 비율은 2004년 49%에서 2014년 41%, 2022년 24%로 절반 이하가 됐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개신교인의 44%는 60세 이상이다. 30대 이하 신자 비율은 21%로, 전체 인구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30%)의 3분의 2에 그친다.

전체 인구 대비 개신교인 비율만 보면 위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리서치 추산으로 개신교인은 2019년 이후 전체 인구의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갤럽 기준으로는 2022년 15%에서 2025년 18%로 소폭 회복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안정이 아니다. 신규 유입이 이탈을 겨우 상쇄하고 있다는 뜻이고, 교회가 사회 평균보다 빠르게 늙고 있다는 뜻이다. 고령 교인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 감소는 가팔라진다. 교단 스스로 집계한 교인 수가 이미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은 이른바 '가나안 성도'(거꾸로 읽으면 '안나가')도 늘었다. 그 수는 200만 명 이상, 교회 출석 성도의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조사에서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로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24.3%였다. 안수집사 이상 직분을 가졌던 사람들은 46.7%가 목회자에 대한 불만 때문에 떠났다고 답했다. 교회 안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또 다른 조사에서 가나안 성도의 53.6%는 다니던 교회의 목회자가 권위주의적이었다고 답했다.

교단도 원인을 알고 있다. 예장통합 통계위원회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교세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예상되는 반론에 대하여

세습을 옹호하는 쪽의 논리도 있다.

첫째, 교인들이 공동의회에서 압도적으로 찬성했으니 민주적 절차를 거친 청빙이라는 것이다. 명성교회의 2022년 공동의회 찬성률은 98.8%였다.

둘째, 담임목사가 바뀌면 대형 교회는 분열하기 쉬우니 목회 철학을 공유하는 자녀가 이어받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셋째,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목회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명성교회 측은 실제로 세습금지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김하나 목사 부임 이후 교세가 늘었다는 점도 내세웠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공동의회 찬성률은 담임목사가 수십 년간 인사와 재정을 장악해온 교회에서 반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줄 뿐이다. 반대한 교인들은 분쟁 대상이 되거나 교회를 떠났다. 떠난 사람은 투표하지 않는다. 안정성 논리는 교회를 목사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는 조직으로 전제한다. 그 전제가 이미 교회의 사유화다. 교회의 안정은 혈통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과 투명한 제도에서 나와야 한다. 기본권 논리는 교단 헌법이 모든 교회가 아닌 해당 교회 한 곳의 담임직만 제한한다는 점을 외면한다. 목사의 자녀는 다른 모든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다. 제한되는 것은 오직 아버지가 일군 교회, 곧 물려받을 자산이 있는 자리뿐이다. 그 자리에 대한 집착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교회를 교회에 돌려주라

세습은 한 교회의 내부 문제가 아니다. 대형 교회가 부자 세습을 강행하고 교단이 수습이라는 이름으로 추인할 때마다 세상은 교회를 가업으로 본다. 그 신뢰의 상실은 세습과 무관한 수많은 작은 교회와 성실한 목회자들이 함께 짊어진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교회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담임목사에게 집중된 재정과 인사 권한을 공동체로 되돌려야 한다. 헌금의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한다. 교차 세습, 징검다리 세습, 합병 세습 등 세습금지법을 우회하는 모든 변칙을 명문으로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목사들 스스로 교회가 내가 세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은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60~70년대 한국 교회를 키운 것은 목사 한 사람의 수완이 아니다. 가난한 시절 헌금 봉투에 마음을 담았던 평범한 교인들이다. 그 교회를 아들과 사위에게 물려주는 것은 그들의 헌신을 사유화하는 일이다.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