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밥 국 찬, 한식의 탄생》 책 표지

홍대선, 《밥 국 찬, 한식의 탄생》. 한식은 설계된 자랑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다.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9월 25일

"밥 먹었니?"

오랜만에 걸려 온 어머니의 전화는 늘 이 한마디로 시작했다. 잘 지내냐는 말도, 요즘 어떠냐는 말도 없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픈 데는 없는지, 일은 할 만한지, 혼자 끼니를 거르고 있지는 않은지. 한국인은 안부를 밥그릇에 담아 건넨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릇의 무게를 설명 없이 알아듣는다.

서양 친구에게 이 인사를 영어로 옮겨 본 적이 있다. "Did you eat?" 친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나랑 같이 먹자는 거야?" 초대도 아니고 질문도 아닌 이 말을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 표정을 보며 알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타인의 낯선 눈을 거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홍대선 작가의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바로 그 낯섦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한식은 설계된 적이 없다

《한국인의 탄생》으로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를 물었던 작가는 이번에는 밥상 앞에 앉는다. 질문은 단순하다. 왜 한국인은 밥을 먹었냐고 묻는가. 왜 반찬은 이토록 많은가? 왜 나물은 채소와 다른가? 왜 김치를 먹는가? 작가는 이 모든 물음을 하나로 묶는다.

한식은 왜 이 모양인가?

답을 찾는 여정은 식탁에서 멈추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사에서 시작해 한반도의 지질, 농경의 기원, 발효의 과학을 지나 밥상 위의 미시적 권력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그런데 그 긴 여정의 출발점에서 작가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한식은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가 설계한 완성품이 아니라고. 누군가 머리를 맞대고 "이런 음식 문화를 만들자"고 결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코끼리의 조상이 코를 늘리겠다고 결심해서 코가 길어진 것이 아니듯, 한식도 그렇게 생겨났다. 살아남기 위한 작은 선택과 실패, 우연과 모방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모습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안도를 느꼈다. 한식을 '민족의 자랑'이라는 박제된 유리관에서 꺼내 살아 숨 쉬는 생존의 기록으로 되돌려 놓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식을 '걸멋과 속멋'으로 나눈다. 걸멋은 밥과 국과 찬, 그릇과 상차림처럼 눈에 보이는 골격이다. 속멋은 간과 감칠맛과 온도처럼 그 골격 안에서 오래 길들여진 감각이다. 뼈대와 숨결. 이 두 개의 렌즈를 손에 쥐고 나면 익숙하던 밥상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척박한 땅이 차린 밥상

한반도는 결코 너그러운 땅이 아니었다. 화강암과 편마암이 뒤덮은 산성 토양, 맑아서 오히려 양분을 바다로 쓸어 가 버리는 물, 지나치게 뚜렷한 사계절과 길고 건조한 겨울. 따뜻한 땅을 좋아하는 벼에게 이곳은 결코 이상적인 고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쌀에 목숨을 걸었다. 한정된 땅에서 가장 많은 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물이 쌀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모순을 차갑게 요약한다.

"쌀 생산은 '자살'이 아니라 '자해'다."

몸의 진액을 다 짜내도 부유해지기는커녕 간신히 살아남을 뿐인 농사.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한국인은 산과 들과 바다를 뒤졌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밥상에 올렸다. 작가의 말처럼,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한 한반도는 일종의 '지정학적 형무소'였다.

그 형무소에서 태어난 것이 나물이다. 외국에서라면 독초로 취급될 풀들을 한국인은 끓는 소금물에 데쳐 독을 빼고, 양념과 기름에 무쳐 기어이 밥상의 식구로 들였다. 고사리, 두릅, 머위, 도라지, 더덕. 나물 한 접시에는 굶주림을 이겨 낸 끈질긴 손길이 스며 있다. 그 손길을 생각하면 명절 상에 오르는 삼색나물이 조금 달리 보인다.

밥은 왕, 국은 신하, 찬은 백성

이 책의 백미는 밥과 국과 찬이라는 삼각형을 해부하는 대목이다.

한국어에서 '밥'은 세 가지를 동시에 뜻한다. 쌀밥, 잡곡이 섞인 밥, 그리고 식사 그 자체. 영어의 meal이나 독일어의 Mahl이 '정해진 때'에서 온 말인 것과 달리, 우리는 곡식의 이름으로 끼니 전체를 부른다. 그래서 한국인의 언어에는 밥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밥그릇을 지키고, 밥값을 하고, 밥줄이 끊길까 걱정하고, 찬밥 신세를 서러워한다. 싫은 사람은 밥맛이 없고, 밥이 곧 보약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국물의 민족'이라 부르는 한국인은 대체 밥의 민족인가?, 국물의 민족인가? 작가의 대답이 절묘하다.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국물의 민족이 된다. 국은 독립을 꿈꾸지 않는다. 밥이 잘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왼쪽에 밥, 오른쪽에 국을 놓는 좌반우갱(左飯右羹)을 작가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체제'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24년에 나온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이 체제를 이렇게 기록했다.

"국은 밥 다음이요, 반찬에 으뜸이라. 국이 없으면 얼굴에 눈 없는 것 같은 고로…"

얼굴에 눈이 없는 것 같다니. 백 년 전 누군가의 이 절박한 비유 앞에서 나는 웃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국 없이 밥을 먹을 때의 그 허전함을 이보다 정확하게 설명한 문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반찬 없이 간장계란밥만 먹는 한국인은 있어도, 밥 없이 반찬만 먹는 한국인은 없다. 찬은 밥 곁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찬이 된다. 밥은 왕이고, 국은 충직한 신하이며, 찬은 그 왕국을 채우는 수많은 백성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 한민족의 차이

우리가 누구인지는 종종 우리가 아닌 것을 통해 선명해진다. 작가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일본을 거울로 세운다.

중국의 탕(湯)은 밥 옆을 지키지 않는다. 둥근 테이블 한가운데 놓여 각자 덜어 먹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요리다. 일본에서는 국그릇이 밥그릇보다 작다. 밥을 다 비우는 데 필요한 만큼의 수분과 감칠맛을 건네면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한국은 정반대다. 국그릇이 밥그릇만큼, 혹은 그보다 크다. 한국의 국은 군주인 밥을 온몸으로 섬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이다. 서양의 파인다이닝, 일본의 오마카세, 중국의 코스 요리는 모두 시간이 흐르며 요리가 하나씩 도착하는 '시간단계형 식사다. 한식은 모든 것을 한 번에 펼쳐 놓는 공간전개형'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서 무엇을 먼저 먹을지, 어떻게 섞을지는 오롯이 먹는 사람의 몫이다.

"한식은 구속과 자유를 오가지 않는다. 철저한 구속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이 문장을 읽고 한참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밥과 국과 찬이라는 틀은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그리는 궤적은 끝없이 자유롭다. 쌈은 그 자유의 결정체다. 상추 한 장 위에 밥과 고기와 장을 올려 한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밥상 전체를 손바닥 위에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쌈을 '밥상의 축약판'이라 부른 것은 그래서 정확하다.

한식은 왜 늦게 세계로 나아갔나?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물음은 이것이었다. 한식은 왜 이렇게 늦게 세계의 식탁에 도착했을까?

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답이 서서히 떠오른다. 먼저, 한식은 번역하기 어렵다. 밥과 국과 찬이라는 구조 자체가 하나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밥은 그냥 쌀이고, 국은 수프이며, 찬은 사이드 디시다. 그러나 그 셋이 서로를 붙들고 있는 관계의 그물은 낱말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한 상을 함께 받아 본 사람만이 그 문법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다음으로, 한식은 세련과 야만이 한 상에 공존한다. 잎맥이 그대로 드러난 생이파리에 밥을 싸 먹는 모습에 서양인은 당황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오랜 시간 공들여 발효시킨 장이 놓여 있다. 가장 날것과 가장 정교한 것이 한 접시 거리에 앉아 있는 밥상. 처음 보는 이에게 그것은 쉽게 해독되지 않는 풍경이다.

그리고 한식은 지나치게 다양하다. 김치가 몇 가지냐는 외국인 친구의 물음에 "백 가지는 확실히 넘는다"고 답했다가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는 작가의 일화에 웃음이 터졌다. 배추로도, 무로도, 생선과 고기로도 담그는 음식. 기준점을 찾을 수 없는 다양성은 낯선 이에게 문을 열어 주기보다 길을 잃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한식은 계급을 지웠다. 임금의 12첩 반상도, 서민의 3첩 반상도 결국 밥과 국과 찬의 조합이다. 차린 가짓수는 달라도 구조는 같다. 많은 문화권에서 귀족과 서민의 식탁은 재료뿐 아니라 구성 자체가 달랐고, 그 차이가 곧 '고급 요리'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수출되었다. 한식에는 그런 뚜렷한 위계의 사다리가 없었다. 그 평등함이 역설적으로 한식을 세계에 소개할 '대표 선수'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세계가 한식을 늦게 알아본 것은 한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한식이 너무 한국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세계가 그 문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나는 더없이 반갑다.

딱 떨어지는 맛, 어머니의 손끝

책의 마지막 장은 뜻밖에도 한 사람을 향한다. 작가의 어머니다. 개성 출신 외할머니에게서 요리를 물려받은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음식을 흉내 내며 살아온 아들.

개성 음식은 소박해 보이지만 속에 깐깐한 자존심을 숨기고 있다. 간도, 익힘도, 양념도 목표 지점에서 한 걸음도 넘치면 안 된다. 작가는 그것을 딱 떨어지는 맛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백한다. 자신은 딱 떨어지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어머니 생전에 마음을 편케 해 드리지 못했고, 돌아가신 뒤에도 곧은 길을 벗어나 헤매며 살았다고. 그래서 한식을 만들 때만큼은 딱 떨어지게 하려고 애쓴다고.

이 대목에서 책은 문화사를 넘어 한 편의 사모곡이 된다. 어머니는 떠났고 개성은 지구 반대편보다 먼 곳이 되었지만, 아들의 손끝에서 그 맛은 여전히 살아 있다. 작가의 말대로 문화란 각인이다. 그리고 각인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길은 새겨진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새겨졌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머니는 모자란 아들을 사랑해 주었으니, 아들의 모자란 책도 받아 주리라 믿는다."

헌사를 읽으며 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밥 먹었니. 그 짧은 물음 안에 담겨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밥 먹었니?

"한국인은 지나치게 유능한 잡식동물이다."

작가의 이 문장은 유쾌하면서도 아프다. 우리는 독초를 데쳐 먹었고, 콩을 썩혀 장을 만들었고, 배추를 절여 겨울을 버텼고, 뼈를 고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려냈다. 그 유능함은 자랑이기 이전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한식은 아름답게 설계된 작품이 아니라, 척박한 땅 위에 찍힌 생존의 발자국이다.

그래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당신과 내가 같은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사이라는 확인이고, 이 험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남자는 조용한 연대의 선언이다. "밥 먹었니?"라는 물음이 따뜻한 것도 그래서다. 당신이 무사하냐고 묻는 그 말은 사실, 나도 여기 무사히 있다는 대답이기도 하니까.

밥과 국과 찬이라는 단단한 감옥.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 감옥의 문턱에서 서로에게 건넨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밥 한 끼 먹자는 말로 하나가 되었다.

홍대선, 《밥 국 찬, 한식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