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길도 예송리. 파도가 빠질 때마다 검고 둥근 돌들이 서로를 울린다.
김호광 / 2026년 10월 12일
1. 해남에서 온 편지
1976년 늦겨울, 광주로 가는 완행버스는 서연을 태우고 빈 논과 마른 밭 사이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해남 읍내를 떠나온 지 네 시간째였다. 창밖으로 스러지는 겨울 볕이 무릎 위 보따리를 비췄다. 보따리 안에는 갈아입을 속옷 두 벌과 어머니가 밤새 다려준 교복, 헌책방에서 산 상업부기 교과서, 그리고 아버지가 쓴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교과서에는 앞서 이 책을 쓴 누군가의 연필 밑줄이 남아 있었다. 서연은 지우개로 그것을 지우다가 그만두었다. 지우개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남이 공들여 그은 줄을 함부로 지우는 일이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 기욱은 서연이 여덟 살 되던 해 월남에서 돌아왔다. 청룡부대였다.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은 신작로까지 나와 태극기를 흔들었고, 돌아올 때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온 아버지는 떠나기 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밤이면 식은땀을 흘리며 이불을 걷어찼고, 낮이면 툇마루에 바둑판을 내다 놓고 상대도 없이 흑과 백을 번갈아 놓았다가 주워 담았다. 손등에는 정체 모를 반점이 번졌고, 숟가락을 쥔 손이 자주 떨렸다. 읍내 의원은 신경쇠약이라 했고, 목포 큰 병원은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고, 마지막에는 그냥 쉬어야 한다고만 했다. 쉬는 동안 논이 한 마지기씩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공부 잘하는 서연을 광주로 보내자고 한 것은 아버지였다. 월남에서 한 내무반을 썼던 광복이라는 사람이 광주에서 상업학교 선생을 하는데, 그 집에 몸을 의탁하고 여상을 다니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반대했다. 계집애를 남의 집에 보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서연은 장지문 틈으로 아버지가 편지를 쓰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편지지 앞에서 몇 번이나 펜을 멈추었다. 몇 줄을 쓰고, 찢고, 다시 쓰고, 다시 찢었다. 방바닥에 구겨진 종이가 하얗게 쌓였다. 새벽녘에야 아버지는 봉투에 무언가를 넣고 침을 발라 붙였다. 서연은 그 봉투 안에 무슨 말이 들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다만 버스에 오르기 전, 아버지가 서연의 손에 봉투를 쥐여주며 했던 말은 오래 기억했다.
"광복이 그 사람한테 가믄, 아부지 안부만 전해라. 다른 말은 허지 말고."
버스가 영산강 다리를 건널 때, 서연은 봉투를 품속 깊이 넣었다. 강물은 겨울 하늘처럼 회색이었다.
창밖을 보며 서연은 아주 어릴 적 일을 떠올렸다. 저수지 둑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던 아침이었다. 장터 끝 외딴집에 둘이서 살던 과수댁과 처녀가 있었는데, 그 처녀가 저수지에서 건져 올려졌다. 사람들은 쉬쉬하며 수군거렸다. 망측하다고, 천벌이라고. 과수댁은 그날로 마을을 떠났고 외딴집은 그해 겨울 누군가 불을 놓아 타버렸다. 어머니는 둑 위에서 어린 서연의 손을 꽉 쥐고 말했다.
"봐라. 사람이 사람 도리를 안 허믄 저리 되는 것이여."
무엇이 사람 도리인지 어머니는 말해주지 않았다. 서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오래 품고 살았다.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2. 감나무 집
광복의 집은 무등산 자락이 흘러내리다 멈춘 산수동 골목 끝에 있었다. 녹슨 철대문 위로 감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와 있었다. 겨울이라 잎은 다 지고,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 서너 개가 얼어 검붉게 매달려 있었다.
대문을 밀자 삐걱 소리가 났다. 마당은 작았지만 손길이 닿아 있었다. 한쪽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키 순서대로 늘어선 장독대가 있었고, 뚜껑마다 소금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수돗가에는 빨간 고무대야가 엎어져 있었고,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는 교복 블라우스 두 벌과 남자 내의가 겨울바람에 뻣뻣하게 얼어 흔들렸다. 처마 밑에는 시래기 엮음이 매달렸고, 마루 끝 화분에는 겨울을 나는 제라늄이 붉은 꽃 한 송이를 버티고 있었다. 안방에서는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이미자의 노래가 지직거리며 새어 나왔다.
그리고 감나무 아래, 평상 위에 바둑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비어 있었다.
광복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로 보였는데, 실은 아버지와 동갑이라고 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 흰 것이 섞였고, 얼굴은 바람에 오래 깎인 바위 같았다. 서연이 고개를 숙이고 봉투를 내밀자, 광복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말없이 받아 들었다. 봉투를 뜯는 손끝이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편지를 읽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그는 편지를 처음 접혀 있던 그대로 다시 접었다. 모서리를 손톱으로 꾹꾹 눌러 날을 세웠다. 그리고 담배를 마루 위 유리 재떨이에 비벼 끄고, 곧바로 다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두툼한 유리 재떨이에는 꽁초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감나무 아래 빈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아부지는 잘 계시냐."
"아프셔라우. 많이."
"어디가."
"모르겄어라. 군대서 얻어온 병이라고들 허는디, 병원서도 모른답디다."
광복은 더 묻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그의 얼굴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흩어졌다.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여자가 나왔다. 광복의 아내 정순이었다. 몸집이 작고 눈매가 빨랐다. 그녀는 서연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웃었다. 웃음은 따뜻했지만, 눈은 웃기 전에 먼저 무언가를 셈하는 것 같았다. 서연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셈은 계산이 아니라, 오래 겁먹어 본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을.
"오메, 먼 길 왔구마잉. 배고프제? 들어가자."
거실 벽에는 큼직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야자수 아래 철모를 쓴 젊은 군인들이 어깨를 겯고 웃고 있는 흑백사진이었다. 열댓 명의 청년들 가운데 어디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액자 유리와 틀 사이, 오른쪽 아래 구석에 손톱만 한 증명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군복 차림의 청년이 정면을 보고 있었다. 짧은 머리, 곧은 콧날, 무언가 웃음을 참는 듯한 입매. 볼에 작은 보조개가 패어 있었다.
서연은 그것이 아버지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아보았다. 그녀가 아는 아버지에게는 그런 얼굴이 없었다.
광복이 어느새 뒤에 와 서 있었다. 그는 액자를 보지 않고 서연의 얼굴을 보았다.
"니 아부지맹키로 볼에 보조개가 있네잉."
그것이 그날 광복이 서연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다시 마루로 나가 감나무 아래 바둑판 앞에 앉았다. 해가 질 때까지 돌을 놓지 않았다.
"유림아! 니 동무 왔다!"
정순의 목소리에 건넌방 문이 벌컥 열렸다. 단발머리 소녀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광복의 외동딸, 서연과 동갑인 유림이었다. 유림은 서연의 보따리를 덥석 받아 들더니 서연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광주에 와서 처음 본, 셈이 없는 웃음이었다.
"니가 서연이구나. 방 좁아도 괜찮제? 나 잠버릇 나쁜디, 차믄 그냥 같이 차부러."
서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림의 방은 장판이 군데군데 그을린 작은 방이었다. 창가에 앉은뱅이책상이 있었고, 벽에는 상장 몇 장과 오려 붙인 여배우 사진이 있었다. 유림은 책상 서랍 하나를 비워 서연에게 내주었다. 서랍 안에서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그날 밤 서연은 낯선 천장을 오래 보았다. 옆에서 유림이 금세 잠이 들어 고른 숨을 쉬었다. 마당 쪽에서 딸깍, 딸깍,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렸다. 늦은 밤까지 그 소리는 이어졌다. 상대가 없는 대국이었다.
3. 유신합시다
1976년의 학교는 병영이었다.
교문 위에는 '총화 유신'이라는 붉은 글씨가 걸려 있었고, 운동장 국기 게양대 아래에는 '멸공 방첩'이라고 새긴 돌이 박혀 있었다. 아침 조회 때마다 교장은 단상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야 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손바닥을 맞았다. 서연은 그 문장을 수백 번 외웠지만, 끝내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사명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떨리는 숟가락과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다는 것만은 막연히 느꼈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치면 고개를 꺾고 외쳤다. "유신합시다!" 그것이 인사였다. 그 말을 작게 하면 불려가 다시 했고, 웃으면서 하면 뺨을 맞았다. 교문에는 학도호국단 완장을 찬 선도부가 서서 치마 길이를 쟀다. 무릎 아래 몇 센티미터, 자를 대고. 머리카락이 귀밑 삼 센티미터를 넘으면 그 자리에서 가위가 들어왔다. 서연은 어느 아침 교문 앞에서 머리를 잘린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모으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손수건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긴급조치 9호가 내려진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던 때였다. 교실 뒷벽에는 '불온 유인물 신고는 애국입니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매달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고, 1등을 하는 글은 늘 비슷했다. 북괴의 만행, 간첩의 수법, 이웃을 잘 살피는 어린이. 어느 날 3학년 언니 하나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오빠가 잡혀갔다는 말이 돌았다가, 그 말을 한 아이도 교무실에 불려갔다. 그 뒤로 아무도 그 언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빈 책상은 일주일 뒤 치워졌다. 아무도 그 자리를 보지 않았다.
교련 시간에는 예비역 상사 출신 교사가 박달나무 지휘봉을 들고 운동장을 돌았다. 여학생들은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붕대 감는 법을 배웠다. 삼각건으로 팔을 매고, 부목을 대고, 들것을 들었다. 전쟁이 나면 너희가 간호병이 되는 것이라고 교사는 말했다. 북괴가 내일이라도 쳐내려올 수 있다고. 그러니 붕대는 단단하고 정확하게 감아야 한다고.
봄이 끝나갈 무렵, 서연은 붕대를 너무 느슨하게 감았다는 이유로 손등을 맞았다. 지휘봉이 내려칠 때 손등의 살갗이 터졌다. 피가 붕대 위로 번졌다. 교사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것이 나라 지키는 훈련이다. 아프다고 우는 년은 전쟁 나믄 제일 먼저 죽어."
서연은 울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툇마루에서 상대 없이 바둑돌을 놓던 손, 떨리던 숟가락. 나라를 지키러 갔다가 돌아온 손. 그날 서연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교련이 끝나자 유림이 서연을 수돗가로 끌고 갔다. 찬물에 손을 씻기고,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이 없자 망설임 없이 자기 블라우스 소맷부리로 피를 꾹꾹 눌러 닦았다. 흰 소매에 붉은 얼룩이 번졌다.
"야, 니 옷 버린다."
"빨믄 되제. 그 새끼, 지 딸한테도 저러까잉."
유림은 그날 배운 대로 서연의 손에 붕대를 감았다. 이번에는 단단하고 정확했다. 다 감고 나서 유림이 매듭 위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봐라, 나는 전쟁 나도 안 죽겄다."
서연이 웃었다. 광주에 온 지 석 달 만에 처음 웃은 웃음이었다. 유림의 블라우스 소매에 남은 얼룩은 몇 번을 빨아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옅은 갈색 꽃잎처럼 거기 남았다.
광복은 그 학교에서 부기를 가르쳤다. 그는 교실에서도 말이 적었다. 칠판에 차변과 대변을 나란히 쓰고, 양쪽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쪽에 뭣이 들어가믄, 다른 쪽에서 뭣이 나가야 장부가 맞는다. 공짜로 들어오는 것은 없어. 세상 장부도 그래."
학생들은 그 말을 시험 문제로만 받아 적었다. 서연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그는 지휘봉을 들지 않았다. 학생을 때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생이었다. 조회 시간에 교장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할 때, 교사들은 단상 옆에 일렬로 서서 따라 읊었다. 서연은 맨 끝에 선 광복의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을 다문 채, 무등산 쪽을 보며.
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의 침묵이 매보다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연은 그 침묵이 무서움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그 집에서 일 년을 살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견딤이었다.
4. 우리의 교육지표
1978년 여름, 그 견딤이 끝났다.
6월 말, 전남대학교 교수 열한 명이 성명서를 냈다. '우리의 교육지표.' 국민교육헌장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학교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무엇이 되는지를 묻는 글이었다. 교수들은 그날로 연행되었고, 학생들이 교정에서 들고일어났다. 광주는 한동안 술렁였다. 그 술렁임은 금세 눌렸다. 눌린 것은 사라지지 않고 아래로 스며들었다. 등사판으로 밀어낸 성명서 사본이 몇 장, 몇 십 장, 시내 곳곳으로 흘러갔다.
그중 한 장이 서연의 학교 2학년 교실 사물함에서 나왔다.
전남대에 다니는 오빠를 둔 아이였다. 오빠가 집에 두고 간 것을 아이가 학교에 가져왔고, 그것을 몇 명이 돌려 읽었다. 누군가 신고했다. 다음 날 아침, 교무실에 장학사와 양복 입은 남자 둘이 와 있었다. 경찰서 정보과 형사라고 했다. 아이는 교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형사가 물었다. 누가 줬느냐고. 누구한테 돌렸느냐고. 아이는 대답하지 못하고 떨기만 했다.
그때 광복이 교무실 자기 책상 서랍을 열었다. 출석부 갈피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같은 성명서였다. 그는 그것을 형사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내 것이오. 아그가 내 책상서 집어 간 것이오."
교무실이 조용해졌다. 장학사가 광복을 보았다. 형사가 광복을 보았다. 무릎 꿇은 아이가 광복을 보았다. 광복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창밖의 무등산을 보았다.
그는 그날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째 새벽, 서연은 대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호지 문틈으로 내다보니 광복이 마당에 서 있었다. 셔츠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 있었고, 손목에 검붉은 줄이 나 있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바둑판을 보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돌을 하나도 놓지 않았다.
일주일 뒤 그는 사직서를 냈다. 낸 것이 아니라 쓰게 된 것이었다. 의원면직. 서류에는 그렇게 적혔지만, 학교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불명예라고 불렀다. 교무실 그의 책상은 다음 날 치워졌다. 빈 책상을 치우는 데에는 언제나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 뒤로 감나무 집의 소리가 바뀌었다.
라디오가 꺼졌다. 정순은 밤마다 안방에 재봉틀을 놓고 남의 삯바느질을 했다. 드르륵, 드르륵. 그 소리가 자정을 넘겼다. 유림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대문 앞에서 정순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골목 끝 구멍가게 주인은 정순에게 외상을 주지 않았다. 빨갱이 집이라는 말이 어디선가 흘러나와 골목을 떠돌았다. 광복은 하루 종일 감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담배가 떨어지면 그냥 앉아 있었다.
어느 밤, 서연은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갔다가 마루 끝에 정순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막걸리 주전자가 옆에 있었다. 정순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서연을 보고 손짓했다. 서연이 옆에 앉자, 정순은 오래 말이 없다가 거실 벽의 액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 사진 봐라. 니 아부지 사진은 저그 구석에 끼워져 있는디, 내 사진은 이 집 어디에도 없다잉."
정순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나는 열아홉에 이 집 왔다. 우리 엄마가 그라드라. 여자는 견디는 것이라고. 남자가 말을 안 허믄 안 허는 대로, 밥상을 따로 차리라믄 따로 차리고. 견디믄 다 지나간다고." 정순은 막걸리 사발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근디 안 지나가야. 이십 년이 지나도 안 지나가."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순은 서연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재봉틀 바늘에 찔린 자국투성이였다.
"니는 견디지 마라. 아니다, 니는 견뎌라. 견뎌야 산다." 정순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겄다. 나도 인자 모르겄다."
그 밤 이후 서연은 정순을 다르게 보았다. 셈하던 눈은 겁먹은 눈이었다. 그 눈은 이십 년 동안 무엇인가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온 사람의 눈이었다. 무엇을 아는지는, 서연도 그때는 몰랐다.
그해 가을, 해남에서 아버지가 올라왔다.
어머니가 편지로 알린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혼자, 지팡이를 짚고,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서울에 무슨 일로 갔느냐고 서연이 묻자 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월남에서 소대장을 하던 사람이 서울에서 높은 사람이 되어 있다고만 했다. 보안사라는 데서 일한다고. 서연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아버지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날 밤, 감나무 집에서 서연은 처음으로 그 바둑판에 상대가 앉는 것을 보았다.
유림은 먼저 잠들었다. 서연은 창가에 앉아 창호지 구멍으로 마당을 내다보았다. 달이 밝았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광복. 둘은 말이 없었다. 딸깍. 아버지가 흑을 놓았다. 딸깍. 광복이 백을 놓았다. 돌 놓는 소리만 오래 이어졌다. 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오래, 몸을 접고. 광복이 일어나 자기 점퍼를 벗어 아버지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다시 앉았다.
판이 끝났을 때 아버지가 웃었다. 서연이 몇 해 만에 보는 아버지의 웃음이었다. 보조개가 패었다.
"또 졌네."
광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을 주워 담지도 않았다. 둘은 다 놓인 판을 사이에 두고, 달이 감나무 가지 뒤로 넘어갈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해남으로 내려갔다. 버스 정류장까지 서연이 배웅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아버지는 서연의 손을 잡았다. 손이 뜨거웠다. 열이 있었다.
"광복이 아재 말 잘 들어라. 그 사람은 거짓말을 못 헌다. 그래서 이라고 사는 것이여."
그해 겨울, 해남 집의 마지막 논 세 마지기가 팔렸다. 어머니는 편지에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쓰지 않았다.
1979년 3월, 광복은 학교로 돌아갔다. 복직이었다. 교육청의 공문 한 장이 왔고, 그와 함께 서울 소인이 찍힌 흰 봉투 하나가 왔다. 광복은 그 봉투를 읽고 나서 아궁이에 넣었다. 복직하는 날 아침, 그는 교육청에 가서 무언가에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각서였다. 무엇을 약속하는 각서였는지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저녁, 그는 담배를 한 갑 다 피웠다. 재떨이가 넘쳐 마룻바닥에 꽁초가 굴렀다.
그 봄부터 광복은 조회 시간에 국민교육헌장을 따라 읽었다.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5. 봉숭아 물
유림은 그런 학교에서, 그런 집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았다.
선생들 앞에서는 공손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웃음의 가운데에 있었다. 빨갱이 집 딸이라는 수군거림이 따라붙은 뒤에도 웃었다. 교무실에 불려가도 웃으며 나왔고, 웃으며 나와서는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오래 있었다. 서연은 그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림은 광복을 닮지 않았다. 광복이 말을 삼키는 사람이라면 유림은 말을 쏟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서연은 가끔, 유림이 웃다가 문득 먼 데를 볼 때 그 옆얼굴에서 광복을 보았다. 무언가를 끝까지 말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반이 되었고, 같은 책상을 썼고, 같은 방에서 잤다. 유림은 서연의 해남 말씨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 따라 했다. "오메, 그랬어라우. 참말로 그랬당께라우." 유림이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해남 할머니 흉내를 내면 서연은 이불 속에서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유림에게는 나쁜 버릇도 있었다. 남의 물건을 슬쩍 제 것으로 만드는 버릇이었다. 서연의 연필, 머리핀, 손수건 같은 것들이 어느새 유림의 필통과 서랍으로 옮겨가 있었다. 돌려달라고 하면 유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모른 척했다. 유림이 거짓말을 할 때면 늘 아랫입술을 깨문다는 것을 서연은 금방 알았다. 고집도 셌다. 한번 토라지면 사흘을 말하지 않았다. 서연은 그런 유림이 귀찮았다. 귀찮으면서도, 사흘째 저녁이면 먼저 유림의 이불 끝을 잡아당기는 쪽은 늘 서연이었다.
학교에는 둘만의 습관이 생겼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유림이 청소 당번이든 아니든 서연은 교실 맨 뒤 창가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걸레를 빨러 간 유림이 돌아올 때까지 운동장의 수은등이 하나씩 꺼지는 것을 세었다. 넷을 세면 유림이 왔다. 둘은 불 꺼진 복도를 지나, 수위 아저씨에게 "유신합시다" 하고 장난스럽게 인사하고 교문을 나섰다. 수위 아저씨는 대꾸 대신 손전등을 흔들었다.
여름이면 정순은 장독대 옆에 봉숭아를 심었다. 칠월 말, 꽃이 붉게 오르면 정순은 백반과 함께 꽃잎을 찧어 두 아이의 손톱에 올려주고 피마자 잎으로 싸서 실로 묶었다. 그날 밤은 손을 이불 밖에 내놓고 자야 했다.
"첫눈 올 때까지 물이 남아 있으믄 소원이 이뤄진다잉."
정순이 말했다. 유림이 물었다. "엄마는 무슨 소원 빌었는디?"
정순은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마당 너머 감나무 아래에서 광복이 바둑판 앞에 앉아 있었다. 정순의 눈길이 아주 잠깐 그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그 집은 쓸쓸하면서도 활기가 있었다. 광복이 학교에서 쫓겨났던 그 겨울에도, 정순의 부엌에서는 무언가 끓었다. 라디오 대신 재봉틀 소리가 났고, 노랫소리 대신 유림이 소리 내어 읽는 교과서 소리가 났다. 장독대 뚜껑을 여닫는 소리, 빨래 방망이 소리, 수돗물 받는 소리. 그 모든 소리 아래로, 아주 낮게 바둑돌 놓는 소리가 깔려 있었다. 그 집의 쓸쓸함은 거기서 왔다. 밥상은 늘 둘로 차려졌다. 하나는 안방에, 하나는 마루에.
1979년 2월, 서연과 유림은 졸업했다. 서연은 상업부기 일급 자격증과 전 학년 우등상을 들고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특채로 붙었다. 해남에서 처음 나오는 은행원이라고, 어머니가 편지에 썼다. 유림은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국어 선생이 될 거라고 했다. 아부지처럼 쫓겨나도 좋으니, 애들한테 거짓말은 안 가르치는 선생이 될 거라고.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서연은 짐을 쌌다. 교복 블라우스 한 벌이 보이지 않았다. 빨랫줄에도, 서랍에도, 장롱에도 없었다. 서연은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유림이 책상 앞에서 하품을 하며 말했다.
"교복은 인자 입을 일도 없잖애."
그랬다. 서연은 더 찾지 않았다.
6. 서울, 1979
서울은 크고, 빠르고, 시끄러웠다. 은행 기숙사는 명동 뒷골목의 낡은 여관 건물을 개조한 것이었다. 여섯 명이 한 방을 썼다. 서연은 창구에서 하루 수백 번 지폐를 세었다. 손가락 끝에 고무 골무를 끼고, 천 원짜리 백 장을 부채처럼 펼쳐 셌다. 숫자는 정직했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렸다. 차변과 대변. 한쪽에 들어가면 한쪽에서 나갔다. 서연은 그 정직함이 좋았다.
밤이면 편지를 썼다. 일주일에 두 통, 많으면 세 통. 은행 이야기, 서울 사람들의 말씨 이야기, 기숙사 언니들이 몰래 끓여 먹는 라면 이야기. 유림의 답장은 서연의 편지보다 길었다. 사범대 강의실의 풍경, 학내에서 몰래 돌아다니는 등사판 유인물, 도서관 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무등산이 보인다는 것. 광복이 학교로 돌아간 이야기도 있었다. '아부지는 돌아갔는디, 아부지 목소리는 안 돌아왔다.' 기숙사 언니가 머리를 땋아줬다고 쓴 편지에는 이런 답이 왔다. '그 언니 손 크냐. 담부터는 니가 혼자 땋아라.' 서연은 그 줄을 읽고 혼자 웃었다. 편지 끝에는 늘 같은 말이 붙어 있었다.
'감나무에 감 열리믄 니 몫 남겨둘게.'
전화도 했다. 기숙사에는 전화가 없어서, 서연은 은행 건물 일층 구내식당 옆 빨간 공중전화를 썼다. 십 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쥐고 줄을 섰다. 장거리 전화는 동전이 빨리 떨어졌다. 땡그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서연은 말을 서둘렀다.
"해남 말 아직 안 잊어부렀제?"
"오메, 잊을라 해도 안 잊혀라우. 여그 사람들이 나 말할 때마다 웃어라우."
"웃으라 해. 니 말이 젤 예뻐."
동전이 떨어졌다. 뚜, 뚜, 뚜. 서연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뒤에 선 사람이 헛기침을 할 때까지.
그 봄, 서연은 자주 감나무 집 마당을 떠올렸다. 장독대의 소금기, 빨랫줄의 흰 블라우스, 봉숭아 꽃잎 찧는 냄새, 재봉틀 소리. 그리고 수돗가에서 자기 소매로 서연의 피를 닦던 유림의 손. 서울의 밤은 밝아서 별이 보이지 않았다. 서연은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리움의 이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는 몰랐다.
7. 비 오는 밤
1979년 8월, 서연은 처음 받은 여름휴가로 광주에 내려갔다. 열아홉 살이었다.
정순은 서연을 보자마자 "오메, 서울 물 묵더니 얼굴이 훤해졌네잉" 하며 등을 쓸었다. 광복은 여전히 마루에서 담배를 피웠고, 서연이 인사하자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일 년 사이 그의 머리는 눈에 띄게 하얘져 있었다. 유림은 대문 앞까지 맨발로 뛰어나왔다. 반년 사이 유림은 머리를 길렀고, 볕에 조금 그을려 있었다. 유림은 서연을 껴안고 한참을 놓지 않았다. 정순이 부엌 문턱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사흘째 되던 밤, 둘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서연은 서울에서 첫 월급을 받아 산 흰 치마를 입고 있었다. 유림이 그 치마를 보고 서울 아가씨 다 됐다고 놀렸다. 걷다 보니 발길이 모교 쪽으로 향했다. 방학이라 학교는 불이 꺼져 있었고, 교문 옆 쪽문만 빠끔히 열려 있었다. 유림이 서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 보자. 우리 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였다. 하늘이 검은 먹지처럼 내려앉더니 번개가 무등산 능선을 하얗게 갈랐다. 곧이어 폭우가 쏟아졌다. 빗줄기가 운동장 흙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사방에서 터졌다. 우산은 없었다. 둘은 비명 반 웃음 반으로 본관 현관까지 뛰었다. 현관 옆 창문 하나가 고장 나 잠기지 않는다는 것을, 삼 년 동안 청소 당번을 했던 유림은 알고 있었다.
교실은 그대로였다. 칠판 위의 태극기, 액자 속의 국민교육헌장, 교탁, 줄 맞춘 책걸상. 서연이 늘 앉아 유림을 기다리던 맨 뒤 창가 자리도 그대로였다. 둘은 불을 켜지 않았다. 흠뻑 젖은 채 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세상을 지웠다. 수은등도, 교문의 구호도, 학교 담장 너머의 도시도 모두 빗속에 잠겼다. 교실은 바깥의 모든 것과 끊어진 작은 섬 같았다.
여름인데도 젖은 옷이 살에 붙자 몸이 떨렸다. 유림이 무릎을 세우고 팔로 감싸 안았다.
"춥다."
서연은 유림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유림이 서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번개가 칠 때마다 유림의 얼굴이 하얗게 떠올랐다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다. 유림이 서연을 보았다. 서연도 유림을 보았다. 그 눈에는 아버지의 병도, 유신도, 교련도, 저수지 둑 위의 수군거림도, 교무실 바닥에 무릎 꿇은 아이도 없었다. 오직 유림만 있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서연은 나중에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입술이 닿았을 때 유림이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 빗소리가 한순간 멎은 것처럼 들렸다는 것, 그리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자기 심장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는 것만은 오래 기억했다.
입술을 떼고 나서 둘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림이 먼저 웃었다. 울음 같은 웃음이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도 둘은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밤 교실에서의 일을 서연은 평생 순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젖은 옷의 차가움과 그 아래 살갗의 뜨거움이 한꺼번에 왔다. 유림의 손이 떨렸고, 서연의 손도 떨렸다. 번개가 칠 때마다 교실이 하얗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았고, 그 짧은 빛 속에서 서로의 얼굴은 매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맨 뒤 창가 자리의 낡은 책상이 삐걱거렸다. 그 소리를 빗소리가 덮었다. 서연은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픈 것과 아름다운 것이 한 몸에 한꺼번에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 때, 유림이 서연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웃었다. 울음 같은 웃음이었다.
"우리 미친 것이제."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림의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날 밤,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 그것은 이름이 없는 비밀이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부서질 것 같아서, 둘 다 끝내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교문을 나설 때, 수은등 아래에서 유림이 걸음을 멈췄다. 서연의 흰 치마 한쪽에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젖은 천을 타고 번져 나간, 꽃잎 하나만 한 얼룩이었다. 서연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유림도 말하지 않았다. 유림은 자기 카디건을 벗어 서연의 허리에 둘러 묶었다. 얼룩이 가려지도록, 소매 두 짝을 앞으로 돌려 매듭을 지었다. 교련 시간에 배운 매듭이었다. 그 손이 끝까지 떨리고 있었다.
칠판 위 액자 속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어둠에 묻혀 있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그 밤, 그 교실에서, 그 문장은 아무것도 명령하지 못했다.
8. 창문 밖의 사람
그날 밤 광복은 학교 숙직이었다. 복직한 교사에게 숙직은 자주 돌아왔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는 손전등을 들고 본관을 돌았다. 창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빗물이 새는 데는 없는지. 2층 복도 끝, 3학년 교실 앞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창문 너머로 번개 빛이 들이쳤다. 맨 뒤 창가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껐다.
오랫동안 그는 복도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성냥을 그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흔들어 껐다. 빗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짜빈동의 빗소리도 저랬다. 참호 속에서, 판초 우의 하나를 둘이서 뒤집어쓰고 밤을 새우던 날의 빗소리. 날이 밝으면 누가 살아 있을지 모르던 밤. 광복은 담배를 다시 갑에 넣었다. 그리고 소리 나지 않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날 밤 숙직실에서 그는 바둑판을 꺼냈다. 흑을 놓고, 백을 놓고, 다시 흑을 놓았다. 판이 다 차도록 놓았다. 그러고는 한 알 한 알 주워 담았다. 다시 놓았다. 다시 주워 담았다. 재떨이에 꽁초가 쌓여갔다. 새벽에 빗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판 위에는 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새벽, 서연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수돗가로 나갔다. 빨간 고무대야에 찬물을 받아 흰 치마를 담갔다. 빨랫비누로 얼룩을 문질렀다. 붉은 물이 대야 안으로 가늘게 풀려 나갔다. 다 빠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부엌문 여는 소리가 났다. 정순이었다. 정순은 서연의 손과 대야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부뚜막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쥐고 나왔다. 서연 옆에 쪼그려 앉아, 쥐고 온 것을 얼룩 위에 뿌렸다. 굵은 소금 한 줌이었다. 정순은 자기 손을 서연의 손 위에 얹어 함께 문질렀다.
"핏물은 찬물에 소금으로 빼야 써. 뜨건 물에 빨믄 영 안 빠진다잉."
정순은 그 말만 했다. 무엇의 피냐고 묻지 않았다. 서연은 정순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정순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알기로 하는 것과 모르기로 하는 것 사이에서, 정순은 늘 소금 한 줌만큼의 자리에 서 있었다.
얼룩은 옅어졌지만 끝내 다 지워지지 않았다. 유림의 블라우스 소맷부리처럼, 옅은 갈색 꽃잎 하나로 남았다. 서연은 그 치마를 서울로 가져가 다시는 입지 않았다. 버리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광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림에게도, 서연에게도, 정순에게도. 밥상 앞에서 그는 서연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서울 올라갈 날짜는 잡었냐."
서연은 숟가락을 든 채 굳었다. 광복은 서연을 보지 않았다. 국그릇에 시선을 둔 채 밥을 떠 넣었다. 유림이 밥상 밑에서 서연의 발등을 가만히 눌렀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날 오후 둘만 남았을 때 유림이 말했다.
"아부지는 원래 말이 없어. 학교 그만뒀다 돌아온 뒤로는 더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러나 서연은 신경이 쓰였다. 광복의 침묵은 꾸짖음보다 무거웠다. 그것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침묵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침묵에는 노여움이 없었다. 그 침묵은 오히려, 서연이 교무실 바닥의 아이를 보던 그의 눈에서 보았던 것과 닮아 있었다. 서연은 그것이 더 무서웠다.
9. 보이지 않는 손
그해 여름이 끝나고, 편지는 달라졌다.
글자는 같았지만 행간이 달라졌다. '보고 싶다'는 말은 여전히 없었다. 대신 유림은 이렇게 썼다. '오늘 비 왔다. 교실 생각 났다.' 서연은 그 한 줄을 몇 번이고 읽었다. 기숙사 이층 침대 위에서 편지를 가슴에 대고 누우면, 천장 위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순은 서연에게 보내는 소포에 유림의 편지를 동봉해 주던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자기가 쓴 짧은 쪽지를 넣었다. '유림이는 요새 학교 일로 바쁘다. 사범대 선배 정훈이라는 학생이 집에 자주 온다.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사람인디, 착실하다.' 서연은 그 쪽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정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진실 가운데 어떤 것을 골라 보낼지를 정했을 뿐이었다. 쪽지의 글씨는 재봉틀 앞에서 쓴 듯 삐뚤었다. 서연은 그 삐뚤어진 글씨에서 막걸리 주전자 옆의 밤을 떠올렸다. '니는 견디지 마라. 아니다, 니는 견뎌라.' 정순은 딸에게 자기가 받은 것을 그대로 물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것밖에 물려줄 것이 없는 사람처럼.
유림은 전화로 웃었다. "엄마가 자꾸 정훈 선배를 저녁에 부르는 거여. 밥상에 고기반찬 올려놓고. 우리 집에 고기반찬 오른 거, 니 있을 때 말고는 첨 봤다."
"그 사람 좋냐."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했다.
"착해. 그 선배는…… 알아."
"뭣을."
"그냥. 아는 것 같어. 근디 아무 말도 안 해. 우리 아부지맹키로."
동전이 떨어졌다. 서연은 수화기를 든 채 서 있었다. 모르는 남자 하나가 광주의 어느 밥상 앞에서, 무언가를 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것이 고마운 일인지 무서운 일인지 서연은 알 수 없었다.
그 가을, 은행 구내식당에서 서연은 행원들이 신문 한 귀퉁이를 돌려 읽는 것을 보았다. 변두리 공장 기숙사에서 단짝으로 지내던 여공 둘이 함께 약을 먹었다는 짧은 기사였다. 기사는 그 둘을 '이상 성벽'이라고 불렀다. 남자 대리 하나가 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그런 것들은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돼. 나라 망신이야." 몇이 웃었다. 서연은 웃지 않았다. 숟가락을 내려놓지도 않았다. 그저 밥을 다 먹었다. 다 먹는 것이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날 밤 서연은 알았다. 이 나라에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이미 있었다. 이상 성벽, 풍기문란, 변태, 나라 망신. 국가와 신문과 구내식당이 허락한 이름은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둘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이었다.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모두, 둘을 부수는 이름이었으므로.
해남에서도 편지가 왔다. 어머니의 편지는 늘 같은 내용으로 끝났다. 아버지 병세, 그리고 너도 이제 스물이니 혼처를 알아봐야 한다는 말. 서울 은행 다니는 처녀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는 집이 읍내에 둘이나 있다는 말. '여자는 때를 놓치믄 안 된다.' 어머니의 글씨는 반듯했다. 그 반듯함이 저수지 둑 위에서 서연의 손을 쥐던 힘과 같은 것이었다.
10. 섬
1979년 추석은 시월 초였다. 서연은 연휴에 휴가를 붙여 엿새를 얻었다. 유림과 함께 해남에 들렀다가 섬에 가기로 했다. 정순은 처음에 반대했다. 다 큰 처녀 둘이 어딜 가느냐고. 광복이 마루에서 담배를 비벼 끄며 한마디 했다.
"보내."
정순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정순은 서연의 이부자리를 유림의 방이 아니라 안방 윗목에 깔았다. "유림이 방은 좁아서 둘이 자믄 답답하제잉." 정순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서연은 윗목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벽 하나 너머에 유림이 있었다. 그 벽이 서울만큼 멀었다. 새벽녘, 서연은 정순이 잠들지 않고 돌아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순의 어깨가 아주 가끔 떨렸다.
해남 집은 더 낡아 있었다. 논이 없는 집은 마당이 넓어 보였다. 아버지는 툇마루에서 볕을 쬐고 있었다. 일 년 사이 몸이 반으로 줄어 있었다. 유림이 큰절을 올리자 아버지는 오래 유림의 얼굴을 보았다.
"광복이 딸이구나. 지 아부지 눈을 닮었네."
아버지는 유림에게 광복의 안부를 물었다. 학교에는 잘 다니느냐고. 유림이 그렇다고 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참 먼 데를 보았다.
"그라믄 됐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서연을 부엌으로 불러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사진관 배경 앞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 서울 건설회사 대리라고 했다. 읍내 방앗간 집 조카라고 했다.
"추석 지나고 서울서 한번 만나봐라. 사람이 진중허단다."
서연은 사진을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부엌 문틈으로 유림이 마루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말했고, 유림이 웃었다. 아버지도 웃었다.
밤이 깊어 다들 잠들었을 때, 아버지가 서연을 툇마루로 불렀다. 달이 밝았다. 아버지는 오래 말이 없다가, 바둑판의 빈 줄을 손가락으로 쓸며 말했다.
"고칠 수 없는 것은 견뎌야 허는 것이여."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연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오래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멎자 아버지가 아주 작게, 서연이 들으라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디 견디는 것도, 한평생이믄 너무 길다."
이튿날 둘은 땅끝에서 배를 탔다. 보길도까지는 뱃길로 한 시간이 넘었다. 갑판 난간에 기대 선 유림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섬이 가까워지자 유림이 서연의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잡은 손이었다.
섬에서 보낸 사흘을 서연은 평생 꺼내 보았다. 꺼낼 때마다 조금씩 닳았고, 닳을수록 더 선명해졌다.
예송리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검고 둥근 몽돌이 깔려 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갈 때마다 몽돌들이 서로 몸을 부딪으며 자르르, 자르르 소리를 냈다. 유림은 그 소리가 돌들이 우는 소리 같다고 했다. 서연은 웃는 소리 같다고 했다. 둘은 해가 질 때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
윤선도가 지었다는 세연정 연못가에도 갔다. 유림이 '세연'과 '서연'이 한 글자 차이라고, 이 섬이 니 이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장난을 쳤다. 연못에는 가을 볕이 고여 있었다. 정자 마루에 나란히 누워 둘은 처마 끝에 걸린 하늘을 보았다. 유림이 말했다. 윤선도는 벼슬에서 쫓겨나 이 섬에 들어왔다고. 쫓겨난 사람이 지은 정자가 이렇게 예쁘다고. 아부지도 쫓겨났을 때 이런 섬 하나 있었으믄 좋았겄다고.
세연정을 나서는 길에는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 잎은 짙고 반들거렸지만 꽃은 하나도 없었다. 동백은 겨울에 핀다고, 정자를 지키던 노인이 말했다. 눈 속에서 핀다고. 그리고 질 때는 꽃잎이 한 장씩 흩어지지 않고 송이째 툭 떨어진다고.
유림은 동백나무 아래 바위에 앉더니 주머니에서 흰 손수건 한 장과 립스틱을 꺼냈다. 사범대 들어가고 처음 산 것이라고 했다.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발랐다고. 유림은 손수건을 무릎 위에 펴고, 립스틱으로 꽃잎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다섯 장. 둥글고 두툼한 꽃잎이었다. 가운데에는 볼펜으로 노란 꽃술 대신 짧은 선들을 그었다.
"꽃이 없응께, 미리 그려두는 것이여. 겨울에 다시 와서 진짜 동백 옆에 펴 보자잉."
손수건 위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립스틱의 기름이 흰 천의 올 사이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유림은 다 그리고 나서 립스틱 끝으로 남은 색을 손가락에 묻혀, 서연의 아랫입술에 가만히 문질렀다. 서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백 숲 사이로 바닷바람이 지나갔다. 반들거리는 잎들이 일제히 뒤집히며 빛났다.
민박집은 바닷가 언덕 위의 작은 슬레이트 지붕 집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귀가 어두웠고, 저녁이면 일찍 불을 껐다. 방에서는 파도 소리와 몽돌 소리가 밤새 들렸다. 그 사흘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낮에는 차마 부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창호지 너머로 달빛이 들었다. 서연은 그 밤들을 세세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세세히 기억하면 그것이 끝났다는 사실도 함께 세세해질 것 같아서였다. 다만 유림의 손끝에 아직 봉숭아 물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은 잊지 않았다. 첫눈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첫날 밤 동백 손수건은 머리맡에 펼쳐져 있었다. 새벽에 서연이 눈을 떴을 때, 손수건은 이부자리 한쪽에 구겨져 있었다. 립스틱으로 그린 꽃잎들이 선 밖으로 번져 있었다. 흰 천 위에서, 꽃 한 송이가 하룻밤 사이 한껏 피었다가 무너진 것 같았다.
유림이 그것을 집어 창호지 빛에 비춰 보더니 웃었다.
"봐라. 동백은 이라고 통째로 지는 것이여. 한 장씩 시들시들 안 떨어지고."
유림은 손수건을 네 번 접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내가 갖고 있을게. 겨울에 여그 다시 와서, 진짜 동백 옆에 펴 보자."
그 겨울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 날 새벽, 몽돌 해변에 앉아 유림이 말했다.
"여그서 살믄 안 되까. 작은 배 하나 사고, 김 양식 쪼까 허고. 나는 분교 선생 허고, 니는 수협서 돈 세고."
유림의 목소리는 농담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서연은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파도가 빠져나가며 몽돌이 울었다.
"안 돼."
"왜."
"사람들이 가만 안 둬."
서연은 저수지 둑 이야기를 했다. 외딴집 과수댁과 처녀, 건져 올려진 하얀 얼굴, 불타버린 집. 어머니가 꽉 쥐었던 손.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말하는 동안 서연은 유림을 보지 못했다. 바다만 보았다.
"그라믄 평생 그 둑 위에 서 있을래?"
유림이 일어섰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았다.
"니 엄마가 쥔 손, 그거 니는 아직도 안 놓고 있잖애. 나는 그 손 안 무서워. 근디 니가 그 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 것은 무섭다."
유림은 바닷가를 따라 혼자 걸어갔다. 서연은 따라가지 않았다. 파도가 빠질 때마다 몽돌이 울었다. 한참 뒤 돌아온 유림의 눈가가 붉었다. 유림은 서연 옆에 다시 앉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지 않았다.
유림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몽돌 둘을 주웠다. 검고 둥글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하나를 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하나는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라믄, 이것만 갖고 있어. 이 돌이 여그서 몇 백 년을 굴러서 요렇게 둥글어졌단다. 우리도 그라믄 되제. 모난 데 없이. 아무도 모르게."
서연은 그 돌을 오래 쥐고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돌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11. 터미널
광주로 돌아온 날, 정순은 두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정훈이 와 있었다. 안경을 쓴 순한 얼굴의 청년이었다. 군대에서 그을린 목덜미가 아직 하얘지지 않았다. 그는 서연에게 정중하게 인사했고, 서연의 해남 말씨를 듣고 웃지 않았다. 유림의 밥그릇에 생선 살을 발라 올려주다가, 유림이 서연 쪽을 보는 것을 보고 젓가락을 잠깐 멈추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연의 밥그릇에도 생선 살을 올려주었다.
광복은 그날 저녁 마루가 아니라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이튿날 오후, 서연은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대인동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정순이 따라나섰다. 장바구니를 들고, 터미널 앞 시장에 볼일이 있다고 했다. 유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셋은 나란히 버스를 탔고, 나란히 터미널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았다. 정순이 가운데였다.
대합실은 추석을 쇠고 올라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보따리마다 참기름병과 햅쌀 자루가 삐져나와 있었다. 확성기에서 서울행 버스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가 지직거렸다. 정순은 쉬지 않고 말했다. 서울 가서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은행 일 힘들믄 편지하라고, 어머니가 보여준 그 사람 꼭 만나보라고, 여자 나이 스물이믄 한창이라고. 정순의 말은 빨랐다. 말이 끊기면 무언가 다른 것이 그 자리에 들어찰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유림은 정순 너머에서 앞만 보고 있었다.
출발 십 분 전, 정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바구니를 들고 서연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서연의 손을 한 번 꼭 쥐었다가 놓았다.
"시장 댕겨올게잉. 버스 떠나기 전에 올라믄 올 것이고."
정순의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서연은 그때 알았다. 정순은 시장에 볼일이 없었다. 정순은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다. 십 분. 그것이 정순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둘만 남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너무 많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서연은 그때 처음 알았다.
버스 승강장으로 나가자 하늘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무등산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오후인데도 저녁처럼 어두웠다. 바람에 비 냄새가 섞여 있었다. 흙먼지 냄새, 젖기 직전의 아스팔트 냄새.
"비 오겄다."
유림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서연도 하늘을 보았다.
버스 옆에 서서, 둘은 서연의 가방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사람들이 둘을 스쳐 지나갔다. 서연은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유림의 손이 가방 손잡이 위로 올라왔다. 손잡이를 같이 쥐는 척, 유림의 손가락이 서연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가방이 두 손을 가리고 있었다.
손을 잡은 채 둘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유림은 버스 차창을 보았고, 서연은 바닥의 깨진 보도블록을 보았다. 유림의 손은 따뜻했다. 엄지가 서연의 손등 위 오래된 흉터를 가만히 쓸었다. 교련 시간에 터졌던 자리였다.
"올라가."
유림이 말했다. 그러나 손을 놓지 않았다.
"응."
서연이 대답했다. 그러나 손을 놓지 않았다.
차장이 버스 문 앞에서 소리쳤다. "서울 가실 분 타세요!"
유림의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새끼손가락, 약손가락, 가운뎃손가락. 마지막으로 검지 끝이 서연의 검지 끝에 잠깐 걸렸다가, 떨어졌다. 그것은 놓는다기보다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썰물이 몽돌 사이를 빠져나가듯이.
그 순간, 서연의 손등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차가웠다. 방금까지 유림의 엄지가 쓸던 바로 그 자리였다.
서연은 버스에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 비스듬히 그어지기 시작했다. 유림은 승강장에 서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펴지 않았다. 빗방울이 유림의 어깨에, 이마에, 머리카락에 떨어졌다. 유림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장 쪽에서 정순이 빈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정순이 유림의 우산을 빼앗아 펼쳐 씌웠다. 정순이 버스 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림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정순의 우산 아래에서, 유림은 서연을 보았다.
버스가 움직였다. 서연은 고개를 돌려 뒤창 너머를 보았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우산 하나 아래 두 여자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더는 보이지 않았다.
서연은 손등을 보았다. 빗방울은 벌써 말라 있었다. 그런데도 그 자리가 오래 차가웠다.
그것이 서연이 유림을 본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모든 마지막은 그것이 마지막인 줄 모를 때 온다.
12. 1979년 10월 26일
삼 주 뒤, 대통령이 죽었다.
10월 27일 아침, 기숙사 언니 하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라디오를 켰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각하께서 어젯밤 서거하셨다고. 궁정동이라는 낯선 지명이 나왔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은행 창구는 그날 문을 열었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지점장은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행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오래 나오지 않았고, 누군가는 점심시간에 이상하게 밝은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거리에는 검은 리본이 걸렸다. 분향소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텔레비전은 며칠 동안 흑백의 장례 행렬만 비추었다. 서연은 기숙사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것을 보았다. 슬프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생기는 텅 빈 자리가, 공기 속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찰지 아무도 몰랐다.
유림의 편지가 왔다. 글씨가 빨랐다.
'서연아. 학교가 들썩인다. 다들 이제 끝났다고, 봄이 온다고 한다. 교육지표 때 잘린 교수님들도 돌아오신단다. 나는 잘 모르겠다. 아부지는 뉴스 보고 아무 말도 안 하시더니 밤새 바둑판 앞에 앉아 계셨다. 새벽에 나가 보니 아부지가 그 각서 쓴 날 받은 서류를 아궁이에 넣고 계시더라. 엄마는 계엄이라 통금 빨라졌다고 정훈 선배를 일찍 보냈다. 감 다 익었다. 니 몫 남겨놨다.'
그해 겨울은 이상했다. 사람들은 '서울의 봄'이라고 했다. 금지되었던 노래가 다방에서 흘러나왔고, 대학가에는 대자보가 붙었고, 신문의 검은 먹칠 자리가 조금씩 줄었다. 그러나 12월 12일 밤, 서울 하늘에 총소리가 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튿날 신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무언가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며칠 뒤 신문에 낯익은 단어 하나가 작게 실렸다. 보안사령관. 서연은 그 단어 앞에서 오래 멈추었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던 그 이름이었다. 봄이라고들 했지만, 서연이 느끼는 공기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어머니의 성화에 서연은 그 사진 속 남자를 만났다. 종로의 한 다방이었다. 건설회사 대리 박정수. 그는 진중했다. 말이 적었고, 커피를 소리 내지 않고 마셨다. 서연이 긴장한 끝에 무심코 "오메" 하고 말했을 때,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잠깐 생각하더니 따라 해 보았다. "오메." 어색했다. 서연이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서연은 설명하지 못했다. 뜻이 없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뜻이 없는 말이 제일 어려운 법이라고.
그는 시국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강남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이야기, 회사가 중동에 진출하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도 내년에 사우디에 갈지 모른다고. 거기서 이 년만 고생하면 집을 살 수 있다고. 그의 꿈은 작고 정확했다. 집, 아이, 일요일의 외식. 서연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밖을 보았다. 종로에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손톱을 보았다. 봉숭아 물은 손톱 끝에 초승달만큼 남아 있었다. 첫눈이 왔는데도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서연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척하고 있었다.
세 번 만났고, 네 번째 만남에서 그가 청혼했다. 서연은 사흘을 생각했다. 사흘 동안 유림에게 편지를 쓰려다 쓰지 못했다. 나흘째 되던 날, 서연은 승낙했다. 저수지 둑 위에서 어머니가 쥐었던 손의 감촉이 그날따라 선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 고칠 수 없는 것은 견뎌야 한다. 서연은 그 문장의 앞부분만 들었다. 뒷부분은 듣지 않기로 했다.
유림에게는 전화로 알렸다. 빨간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을 넣고, 번호를 돌리고, 신호가 가는 동안 서연은 몇 번이나 수화기를 내려놓을 뻔했다. 유림이 받았다.
"나, 결혼해."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동전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또 하나. 서연은 유림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아주 길게, 아주 조용히.
"잘했다."
유림이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맑았다.
"잘했어. 니는 잘 살아야 돼."
동전이 떨어졌다. 뚜, 뚜, 뚜. 서연은 다시 동전을 넣지 않았다.
일주일 뒤 엽서 한 장이 왔다. 그림도 없는 관제엽서였다. 보낸 사람 이름은 없었다. 펜 끝이 종이를 뚫은 자리가 있을 만큼 꾹꾹 눌러 쓴 한 줄이었다.
'니는 견디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다.'
서연은 그 엽서를 기숙사 화장실에서 찢었다. 반쯤 찢다가 멈췄다. 찢긴 엽서를 다시 맞추어 테이프로 붙였다. 유림이 처음으로 서연에게 화를 낸 글이었다. 그 한 줄은 유림이 보낸 어떤 편지보다 아팠고, 어떤 편지보다 유림 같았다. 서연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답이 없었다. 유림의 말이 맞았으므로.
결혼식은 1980년 3월, 서울의 한 예식장에서 작게 치렀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 올라오지 못했다. 어머니 혼자 한복을 입고 신부 측 혼주석에 앉았다. 유림은 오지 않았다. 광복도, 정순도 오지 않았다. 대신 축의금 봉투 하나와 편지 한 통이 왔다.
'축하한다. 잘 살아라. 나는 니가 행복하믄 그걸로 됐다. 몽돌 잃어버리지 마라. 내 것은 내 주머니에 있다.'
편지지 한구석이 물에 젖었다 마른 것처럼 우글쭈글했다. 잉크가 번져 있었다. 비였는지, 다른 것이었는지 서연은 알 수 없었다. 서연은 그 편지를 신혼집 장롱 맨 아래 서랍, 몽돌 옆에 넣었다. 그리고 오래, 그 서랍을 열지 않았다.
13. 1980년 5월
봄이 오자 유림의 편지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신혼집 주소로 오는 편지를 남편은 묻지 않았다. 고향 친구라고만 하면 됐다. 그는 한 번, 편지 봉투의 광주 소인을 보고 말했다. "광주는 요새 시끄럽다던데. 친구분 괜찮으시대?" 서연은 괜찮다고 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다정함인지 무관심인지, 서연은 끝내 구분하지 못했다.
편지 속 광주는 들끓고 있었다. 사범대 강의실이 비고, 학생들이 도청 앞 분수대로 모인다고 했다. 5월 중순에는 횃불을 들고 시내를 걸었다고 했다. 수만 개의 횃불이 금남로를 흘러가는 것이 꼭 강물 같았다고. 그 강물 속에 자기도 있었다고. 정훈 선배가 옆에 있었다고. 마지막 편지는 5월 16일 소인이 찍혀 있었다.
'서연아, 나는 무섭지 않다. 이상하제. 교련 시간에는 그렇게 무섭더니. 니 손등 터졌던 날 생각 나냐. 그 새끼가 그랬잖아, 우는 년이 전쟁 나믄 제일 먼저 죽는다고. 나는 안 울 거다. 근디 니 생각 하믄 울 것 같다. 그러니까 니 생각은 밤에만 할게. 아부지가 어젯밤 처음으로 나한테 바둑을 가르쳐 주셨다. 지는 법부터 가르쳐 주시더라. 감나무에 새순 났다.'
5월 18일은 일요일이었다. 이튿날 은행 창구에서 서연은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광주에서 소요가 일어났다고 했다. 불순분자와 폭도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서연은 지폐를 세던 손을 멈췄다. 천 원짜리가 부채처럼 펼쳐진 채 손가락 사이에서 떨렸다. 폭도. 서연은 그 단어를 입속으로 굴려 보았다. 정순의 장독대, 유림의 봉숭아 손톱, 광복의 빈 바둑판. 그 어디에도 폭도는 없었다.
그날 점심시간, 서연은 빨간 공중전화로 광주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튿날은 신호도 가지 않았다. 교환원이 말했다. 광주 쪽 회선이 모두 불통이라고. 신문에는 광주라는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기사는 짧고, 이상하게 반듯했다. 은행 동료들은 소문을 수군거렸다. 공수부대가 들어갔다더라, 사람이 많이 죽었다더라. 그러다 지점장이 지나가면 입을 다물었다.
5월 23일 밤, 신혼집 전화가 울렸다. 남편이 받았다가 서연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표정이 이상했다.
"광주 사람이래."
서연은 수화기를 받았다. 지직거리는 잡음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이 차 있었다.
"서연 씨지요. 저, 정훈입니다. 유림이 선배."
"……예."
"산 넘어서 담양까지 걸어 나왔어요. 광주 안에서는 전화가 안 돼요. 길도 다 막혔고." 그는 숨을 골랐다. "유림이가 다쳤어요."
서연은 벽을 짚었다.
"21일, 도청 앞에서요. 한 시쯤 애국가가 나오더니 총을 쐈어요. 사람들이 막 쓰러지는데 유림이가 길 가운데로 뛰어나갔어요. 다친 사람 붕대 감아준다고. 그러다가……" 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기독병원에 있어요. 머리를 다쳐서 깨어나질 않아요. 병원 앞에 피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저도 줬어요. 아버님도 주셨어요. 근데 깨어나질 않아요."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요, 서연 씨." 정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유림이가 한 번씩, 아주 잠깐 눈을 떠요. 그럴 때마다 찾아요. 서연이 왔냐고. 서연이 왔냐고만 해요. 다른 말은 안 해요. 저는…… 저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오실 수 있으면, 오세요."
전화가 끊겼다.
서연은 그날 밤 짐을 쌌다. 남편이 문 앞을 막았다. 지금 광주에 어떻게 가느냐고. 길이 다 막혔다고. 거기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서연은 그의 팔을 밀었다. 그는 비켜주지 않았다. 서연이 그를 보았다. 그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참 서연을 보다가, 문에서 몸을 비켰다.
"……조심해. 길 막혀 있으면 돌아와."
새벽 첫차로 서연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호남선 열차는 광주까지 가지 않았다. 고속버스도 광주 방면은 운행하지 않았다. 서연은 장성까지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들 광주에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창밖으로 오월의 논이 지나갔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 물이 차 있었다. 물에 하늘이 비쳤다. 맑은 날이었다. 이상할 만큼 맑았다.
장성 읍내에서 광주로 들어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국도 위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철모를 쓴 군인들이 착검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길가에는 광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들을 찾는 노인, 딸을 찾는 어머니, 남편을 찾는 젊은 여자. 그들이 군인들에게 사정했다. 군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앳된 얼굴들이었다. 서연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도 있었다. 그들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이었다.
서연은 바리케이드 앞으로 나갔다.
"병원에 사람이 있어라우. 다쳐서 깨어나질 않는다요. 저를 찾는다요. 들여보내 주씨요. 제발."
군인 하나가 총구를 들어 올렸다. 서연의 가슴께에서 멈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총구가 아주 조금 떨렸다. 서연은 그 떨림을 보았다. 그 떨림이 무서움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 서연의 팔을 잡아끌었다. 머리에 수건을 쓴 할머니였다.
"아가, 안 된다.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여. 아니, 사람이라서 더 무서운 것이여."
그날 밤 서연은 장성 읍내 여관에 방을 잡았다. 창가에 앉아 광주 쪽 하늘을 보았다. 광주 쪽 하늘은 밤에도 이상하게 붉었다. 불이 난 것인지, 노을이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연은 주머니에서 몽돌을 꺼냈다. 결혼한 뒤로 처음 서랍에서 꺼내 온 것이었다. 손바닥에 쥐었다. 차가웠다.
서연은 생각했다. 평생을 이렇게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을 수는 없다고. 저수지 둑 위에서도, 대인동 터미널에서도, 종로 다방에서도, 서연은 늘 선 자리에서 견디기만 했다. 견디는 것은 아버지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 뒤에 하나를 더 붙였었다. 견디는 것도, 한평생이믄 너무 길다.
이튿날 밤, 서연은 여관 주인에게 숙박비를 미리 치렀다.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교련 시간에 배운 매듭이었다. 자정이 지나 서연은 여관을 나섰다. 국도를 피해 논둑길로 들어섰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물 댄 논에서 개구리가 울었다. 서연은 그 소리가 멎는 쪽을 피해 걸었다. 개구리가 울음을 멈춘 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황룡강 둑을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발이 논물에 빠져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서연은 찾지 않았다. 맨발로 걸었다. 저 끝 어딘가에 광주가 있었다. 그 광주 어딘가, 병원 침대 위에서 유림이 눈을 떴다가 감고, 떴다가 감으며 묻고 있을 것이었다. 서연이 왔냐.
새벽녘, 광주의 불빛이 멀리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논둑 끝에서 갑자기 손전등 불빛이 서연의 얼굴을 덮쳤다.
"정지! 손 들어!"
서연은 손을 들지 못했다. 몸이 굳었다. 군홧발 소리가 다가왔다. 누군가 서연의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서연은 논둑 아래로 굴렀다. 얼굴이 진흙 속에 처박혔다. 입안에 흙이 가득 찼다. 누군가 서연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켰다. 손전등이 서연의 얼굴을 비췄다.
"뭐야, 계집애잖아."
"폭도 연락책일 수도 있다. 묶어."
그들은 서연의 손목을 등 뒤로 꺾어 군화 끈으로 묶었다. 그 매듭이 교련 시간에 서연이 배운 것과 같은 매듭이라는 것을, 서연은 손목이 저려 오는 동안 알았다.
서연이 끌려간 곳은 논 가운데 있는 농협 창고였다. 창고 안에는 이미 여남은 명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모두 손이 묶여 있었다. 경운기를 몰다 붙잡힌 농부, 교복 바지를 입은 남학생, 아들을 찾으러 산을 넘다 붙잡힌 여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창고 지붕 틈으로 새벽빛이 가늘게 들어왔다. 그 빛 속으로 먼지가 떠다녔다.
해가 뜨자 장교 하나가 들어와 한 사람씩 불러냈다. 서연의 차례가 왔다. 장교는 서연의 가방을 뒤집어 책상 위에 쏟았다. 손수건, 지갑, 은행 신분증, 그리고 유림의 마지막 편지. 장교는 신분증을 들어 서연의 얼굴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편지를 펼쳤다. 소리 내어 읽었다.
"횃불을 들고 시내를 걸었다…… 도청 앞 분수대……" 그는 편지를 흔들었다. "이년 봐라. 서울 은행원이 폭도 편지를 들고 광주로 숨어 들어와?"
"친구라우. 다쳐서 병원에 있어라우."
"친구? 빨갱이 친구도 친구냐."
장교의 손바닥이 서연의 뺨을 쳤다. 고개가 돌아갔다.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그 이명 너머로, 아주 먼 데서 지휘봉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프다고 우는 년은 전쟁 나믄 제일 먼저 죽어. 서연은 울지 않았다.
장교는 서연의 이름과 은행 이름과 지점과 주소를 공책에 적었다. 꾹꾹 눌러서. 그리고 책상 위에 굴러 나온 검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뭐야."
"돌이라우."
"돌을 왜 들고 다녀. 투석용이냐?"
장교는 웃으며 그것을 창고 구석으로 던졌다. 돌이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서연은 묶인 손으로 일어섰다. 병사 하나가 막으려 했다. 서연은 그 병사의 팔 아래로 몸을 숙여, 무릎으로 기어 창고 구석까지 갔다. 먼지 속에서 돌을 찾았다. 묶인 손으로는 집을 수 없었다. 서연은 엎드려 입으로 돌을 물었다. 흙과 먼지와 쇠 냄새가 났다. 창고 안의 사람들이 모두 서연을 보았다. 장교도, 병사들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장교가 한참 서연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미친년. 내버려 둬."
그날이 5월 25일이었다. 서연이 논둑 진흙 속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바로 그 새벽에, 광주기독병원의 한 침대에서 유림이 마지막 숨을 쉬었다는 것을, 서연은 열흘 뒤에야 알게 된다.
서연은 그 창고에서 이틀을 보냈다. 5월 27일 새벽, 광주 쪽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오래 들렸다. 창고 안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도청이여. 도청에 들어갔는갑다. 그 말을 한 농부는 묶인 손을 무릎 사이에 넣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서연은 장성경찰서로 넘겨졌다. 계엄포고령 위반. 형사는 서연 앞에 종이 한 장과 인주를 내밀었다. 다시는 불순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서연은 그 종이를 오래 보았다. 광복이 복직하던 날 도장을 찍었다는 그 종이가, 이런 모양이었을 것이다. 서연은 오른손 엄지에 인주를 묻혔다. 붉었다. 종이 위에 눌렀다. 지문이 선명하게 찍혔다. 서연의 몸에서 나온 무늬가, 국가의 종이 위에 남았다.
남편이 경찰서로 왔다. 양복 바지 무릎에 흙이 묻어 있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밤새 버스와 트럭을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그는 형사 앞에서 신원보증서에 도장을 찍었다. 형사가 그에게 말했다. 부인 관리 잘하시라고. 직장에도 통보가 갈 거라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경찰서를 나서며 그는 서연의 맨발을 보았다. 아무 말 없이 자기 구두를 벗어 서연 앞에 놓았다. 그리고 양말 바람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밤 버스 안에서 서연은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왼손에는 몽돌을 쥐고 있었다. 남편은 옆자리에서 라디오가 달린 작은 녹음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뉴스가 나왔다. 광주의 폭도들이, 불순분자들이, 고정간첩의 선동으로. 남편이 피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빨갱이들이 선동하니까 애꿎은 사람들까지……"
그는 말을 멈췄다. 서연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서연의 부은 뺨을 보았다. 손목에 남은 군화 끈 자국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라디오를 껐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신문이 말하는 대로 세상을 읽는, 그 시절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서연은 그것이 더 무서웠다. 세상은 나쁜 사람들보다 평범한 사람들로 더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 서연은 출근했다. 지점장이 서연을 사무실로 불렀다. 사무실 소파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회색 점퍼 차림이었다. 그는 자기가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서연에게 광주에 누구를 만나러 갔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어떤 활동을 했느냐고. 은행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 있느냐고. 서연은 친구가 다쳤다고만 했다. 남자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날 오후 서연은 창구에서 빠졌다. 지하 문서고로 자리가 옮겨졌다. 지점장은 서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말했다. 당분간이라고. 그 당분간은 삼 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며칠 뒤 어느 밤, 신혼집 전화가 다시 울렸다. 서연이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렸다. 서연이 다시 말하려 할 때, 숨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숨소리였다. 남자의 숨소리였다.
"아저씨."
서연이 말했다. 숨소리가 멎었다.
"……서연아."
광복이었다. 서연은 광복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삼 년을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광복은 한 번도 서연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유림이가."
그다음 말이 오지 않았다. 대신 흐느낌이 왔다. 낮고, 짐승처럼 웅크린 소리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문 사람의 울음이었다. 교무실에서 성명서를 꺼내던 손, 경찰서에서 돌아온 새벽의 손목, 각서에 도장을 찍던 손. 그 모든 것을 견딘 사람이 더는 견디지 못하는 소리였다. 그 울음이 수화기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 서연은 수화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서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보였다. 네온사인이 켜져 있었다. 자동차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걸었다.
광복은 끝내 그 문장을 마치지 못했다.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나머지는 정순이 보낸, 글자가 삐뚤빼뚤한 편지 한 장으로 알았다.
유림은 5월 25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눈을 뜬 것은 그 전날 밤이었다고 했다. 정순이 침대 옆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고 했다. 유림이 입술을 달싹였다고. 정순은 귀를 대고 들었다고.
'서연이 왔냐고 묻드라. 내가 왔다고 했다. 왔다, 니 옆에 있다, 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드니 그 애가 웃드라. 서연아, 내가 평생 거짓말을 많이 했는디, 그것이 내가 한 거짓말 중에 젤 잘한 거짓말이다.'
유림의 오른손에는 검고 둥근 돌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고 했다. 간호사가 몇 번이나 빼내려 했는데 손을 펴지 않았다고. 숨을 거둔 뒤에야 손이 풀렸다고. 그리고 왼손 손목에는, 누군가에게 감아주던 붕대 한 토막이 매듭째 감겨 있었다고 했다. 단단하고 정확한 매듭이었다고.
유림은 스물한 살이었다.
계엄이 풀리지 않은 광주에서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유림은 5월 29일, 다른 이들과 함께 망월동 시립묘지 흙 아래 묻혔다. 관을 실은 것은 시청 청소차였다고 했다. 서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서연은 서울의 신혼집 부엌에서 그 편지를 읽었다. 다 읽고 나서 편지를 처음 접혀 있던 그대로 다시 접었다. 모서리를 손톱으로 꾹꾹 눌러 날을 세웠다. 그러고는 오래 앉아 있었다.
유림이 숨을 거둔 시각, 자기는 논둑에 엎드려 있었다. 거리로 치면 이십 리. 이십 리를 남겨두고 서연은 끝내 닿지 못했다. 서연은 몽돌을 쥔 왼손을 펴 보았다. 손바닥에 돌 모양으로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이틀 동안 한 번도 손을 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유림처럼.
창밖은 맑았다. 유월의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높고, 푸르고, 맑았다.
14. 장부(帳簿), 1980~1983
지하 문서고는 습했다. 형광등 하나가 늘 깜빡거렸다. 서연은 그곳에서 지난 십 년 치 전표를 정리했다. 날짜순으로, 계좌번호순으로. 차변과 대변. 한 장 한 장 맞추어 철끈으로 묶었다.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올라가면 서연이 앉는 탁자 주위로 빈자리가 생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저 알았다. 저 여자 옆에 앉으면 안 된다는 것을. 빨간 줄이 그어진 사람 옆에서는 자기 이름에도 줄이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석 달에 한 번씩 회색 점퍼의 남자가 지점에 왔다. 지점장실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나갔다. 그가 다녀간 날이면 지점장은 서연을 불러 근황을 물었다. 요즘 누구를 만나느냐고, 주말에는 어디에 가느냐고. 서연은 집에 있었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인사고과에서 서연의 이름 옆에는 늘 같은 등급이 매겨졌다. 동기들이 대리가 되고, 결혼 축하를 받고, 승진 축하를 받는 동안 서연은 지하에서 전표를 묶었다. 그래도 서연은 그만두지 않았다. 숫자는 정직했다. 사람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장부는 끝에 가서 맞거나 틀렸다. 서연은 그 마지막 정직함에 매달렸다.
그러나 어떤 장부는 끝내 맞지 않았다. 서연은 밤마다 그것을 셈해 보았다. 차변에는 유림의 스물한 해와, 광복의 교단과, 아버지의 마지막 논과, 정순의 재봉틀 바늘에 찔린 손바닥과, 창고 바닥의 농부가 흔들던 몸이 있었다. 대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문은 그 일을 '사태'라고 불렀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폭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망월동의 무덤들 가운데 몇은 이름조차 없었다. 행방불명. 그것도 이름이라면 이름이었다.
1982년 봄, 서연은 이혼했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서연은 성격 차이라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진실 가운데 어떤 것을 골라 말할지를 정했을 뿐이었다. 정순에게서 배운 방법이었다. 남편은 사우디에서 돌아온 지 석 달 만이었다. 그 사이 회사에서 그는 처가가 '그쪽'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승진 명단에서 두 번 빠졌다고. 그는 그것을 원망하듯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말하듯 말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도장을 찍기 전날 밤, 그는 식탁에 앉아 오래 담배를 피우다가 말했다.
"당신 마음이 여기 없다는 거, 장성 그 경찰서에서 알았어. 당신이 맨발로 서 있는데, 그 돌을 쥔 손만은 안 펴더라." 그는 재를 털었다. "누군지는 안 물을게. 나도 물으면 안 되는 거 정도는 알아."
그는 서연의 장롱 맨 아래 서랍에 대해서도 끝내 묻지 않았다. 서연은 그가 그 서랍을 열어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몽돌이 놓인 방향이 바뀌어 있던 날 알았다. 그는 열어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시 닫았다. 서연은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다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없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아침, 그는 현관에서 구두를 신다가 돌아보았다.
"오메."
서툴렀다. 처음 만난 다방에서처럼. 서연은 웃지 못했다. 그도 웃지 않았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이혼한 여자 행원이 되자 지하 문서고는 조금 더 조용해졌다. 그해 가을 서연은 구로공단 근처의 작은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좌천이라고들 했다. 서연은 다시 창구에 앉았다. 손님 대부분은 공단의 여공들이었다. 열일고여덟 살 아이들이 월급날이면 꼬깃꼬깃한 지폐를 들고 와 적금을 부었다. 시골에 보낼 돈, 동생 등록금, 언젠가 시집갈 돈. 서연은 그 지폐를 한 장 한 장 펴서 셌다. 땀에 절어 눅눅한 지폐들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손가락 끝이 실밥에 베여 있었다. 서연은 그 손을 볼 때마다 정순의 손바닥을 떠올렸다.
1983년 2월 16일 새벽, 해남에서 전보가 왔다.
'부 사망. 급래.'
아버지는 전날 새벽, 송지면 바닷가 갯바위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김 양식장에 나가던 어부가 보았다고 했다. 썰물 때였다. 아버지는 물이 빠진 바위틈에 모로 누워 있었다. 바위 위에 흰 고무신 한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른 한 짝은 끝내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 새벽에 왜 바다에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지팡이 없이는 마당도 건너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몸으로 십 리가 넘는 바닷길을 어떻게 걸어갔는지도 몰랐다. 지서 순경은 실족이라고 했다. 노인네가 정신이 흐려서 바닷가에 나갔다가 미끄러진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다르게 수군거렸다.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가는 실족이 어디 있느냐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라고. 월남 갔다 와서 그 양반 정신이 성치 않았다고. 어머니는 그 수군거림 앞에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실족이여. 실족이라고 해라. 누가 물어도 실족이여."
서연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저수지 둑 위에서 어린 서연의 손을 쥐던 그 손이었다. 이번에는 서연이 쥐었다. 어머니의 손은 작고 차가웠다.
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바둑돌 하나가 나왔다. 검은 돌이었다. 바닷물에 젖어 반짝였다. 순경이 그것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그것을 오래 보다가 서연에게 주었다.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날은 2월 15일이었다. 서연은 그 날짜가 무슨 날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서연은 읍내 우체국으로 가서 광주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오래 갔다.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끊으려는 순간 수화기가 들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아저씨. 서연이어라우."
숨소리가 멎었다.
"아부지가 돌아가셨어라우. 어제 새벽에. 바닷가에서."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서연은 전화가 끊어진 줄 알았다. 그때 아주 낮게, 무언가가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 바둑돌을 판 위에 놓는 소리 같기도 했고, 수화기를 쥔 손이 무언가에 부딪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알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전화가 끊겼다.
장례는 사흘장이었다. 마당에 차일이 쳐졌고, 대문에 근조 등이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국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마루 한쪽에서 화투를 쳤다. 아이들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곡소리가 났다가 멎었다가 다시 났다. 서연은 삼베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켰다. 아들이 없는 집이라 상주 자리에는 육촌 오빠가 섰다. 서연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문상객에게 절을 했다. 절을 할 때마다 대문 쪽을 보았다.
광복은 오지 않았다.
첫날도, 둘째 날도. 월남에서 함께 돌아왔다는 다른 전우 둘이 와서 영정 앞에서 군대식으로 경례를 하고 갔다. 그들은 광복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서연도 묻지 않았다.
발인 날 아침, 꽃상여가 마당을 나섰다. 흰 종이꽃이 상여 지붕을 덮었고, 만장이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요령잡이 노인이 앞에서 방울을 흔들며 소리를 메겼다. 상여꾼들이 받았다. 어허 넘차 어허 넘.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일세. 상여는 신작로를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서연은 상여 뒤를 따르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광주에서 오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신작로 끝에 있었다. 아침 버스가 지나갔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선산은 바다가 보이는 낮은 언덕이었다. 하관을 할 때, 서연은 주머니에서 검은 바둑돌을 꺼냈다. 관 위에 흙이 덮이기 전, 아버지의 가슴께쯤 되는 자리에 그것을 놓았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니, 어머니가 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흙이 덮였다. 봉분이 올라갔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와 상여꽃 종이를 언덕 아래로 날려 보냈다. 하얀 종이꽃들이 겨울 보리밭 위로 흩어졌다. 눈 같았다.
이튿날 새벽, 서연은 혼자 산소에 올라갔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었다. 봉분 앞 상석 위에 담배꽁초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 밤새 거기 앉아 있다 간 듯, 서리 내린 잔디 위에 한 자리만 납작하게 눌려 녹아 있었다. 꽁초 옆에는 흰 바둑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흰 돌이었다. 검은 돌을 쥐고 간 사람에게, 누군가 백으로 답한 것이었다.
서연은 그 돌을 집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리 위로 발자국 하나가 비탈 아래 신작로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서연은 그 발자국을 따라 내려가지 않았다. 해가 뜨면서 서리가 녹았다. 발자국도 함께 녹아 사라졌다.
15. 이름 없는 것들, 1984~1995
이듬해 2월 15일, 서연은 해남에 내려갔다. 기일이었다. 제사를 마치고 모두 잠든 밤, 서연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산소에 올라갔다. 봉분 옆 소나무 아래 앉아 기다렸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별이 많았다. 서연은 몽돌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자정이 지났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새벽 세 시쯤,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동이 트고 있었다. 상석 위에 담배꽁초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서연은 손을 뻗어 꽁초 하나를 만져 보았다. 아직 따뜻했다. 그 옆에 흰 돌 하나. 서리 위로 발자국이 비탈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서연은 일어나 뛰었다. 비탈을 내려가, 보리밭을 가로질러, 신작로까지. 신작로 끝 정류장에서 첫 버스가 막 떠나고 있었다. 뒤창 너머로 누군가의 하얀 머리가 보였다. 아니, 보인 것 같았다. 버스는 아침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서연은 그 뒤로 다시는 산소에서 밤을 새우지 않았다. 그것이 광복이 원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와서, 세 대를 피우고, 흰 돌 하나를 놓고, 첫차로 떠나는 것. 해마다 2월 16일 새벽이면 상석 위에 꽁초 세 개와 흰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흰 돌은 이듬해 가 보면 없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거두어 어딘가에 모아 두는지도 몰랐다. 서연은 묻지 않았다.
1985년 오월부터 서연은 해마다 망월동에 갔다. 묘역 입구를 막아선 전경들 사이로, 논둑으로, 산 쪽으로 돌아서. 유림의 나무 비목에는 해마다 새 붕대 한 토막이 매어져 있었다. 누가 매는지는 몇 해 뒤에야 알았다. 망월동까지는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산수동 비탈은 오를 수 없었다. 감나무 집 대문 앞에 서면, 광복의 얼굴이 유림을 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유림을 서연에게 잃은 사람의 얼굴일까 봐.
서울에서 서연은 구로의 한 성당 지하 교리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올라온 유가족과 부상자들, 신부와 수녀 몇이 한 달에 한 번 모였다. 외국 기자가 찍었다는 흐릿한 사진들이 돌았다. 서연은 사진을 보지 못했다. 대신 상자 안에 뒤죽박죽 담긴 행방불명자 쪽지들을 집으로 가져가, 밤마다 이름순으로, 날짜순으로, 장소순으로 정리했다. 은행에서 전표를 묶던 방식 그대로였다. 국가가 폭도라고 부른 사람에게 어머니가 부르던 이름을 한 줄씩 다시 적어 주는 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지를 들고 다니면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고, 몇은 주위를 둘러본 뒤 빠르게 이름을 적었다. 두려움 속에서 쓴 글씨는 모두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은행은 언제나 알았다. 회색 점퍼의 남자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왔고, 지점장이 바뀔 때마다 새 지점장은 첫 주에 서연을 불러 조용히 지내라고 했다. 서연의 책상 서랍은 몇 번인가 누군가 뒤진 흔적이 있었다. 서연은 서랍에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몽돌은 늘 주머니에 있었다.
1986년 5월, 망월동에서 서연은 정순을 보았다.
유림의 무덤 앞에 작은 여자가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있었다. 등이 굽어 있었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있었다. 서연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다가갈 수가 없었다. 돌아설 수도 없었다. 그때 정순이 고개를 들었다. 칠 년 만이었다. 정순은 오래 서연을 보았다. 그 눈은 이제 아무것도 셈하지 않았다.
정순이 일어섰다. 무릎을 짚고, 천천히. 그리고 서연에게 걸어와 서연의 손을 잡았다. 대인동 터미널에서, 자리를 비켜주기 전에 한 번 꼭 쥐었다 놓던 그 손이었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왔냐."
"……왔어라우."
정순은 서연의 손을 잡은 채 유림의 무덤을 보았다. 바람이 비목의 붕대를 흔들었다.
"니는 견뎠냐."
"견뎠어라우."
정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서연의 손등을 쓸었다. 엄지가 오래된 흉터 위에서 멈췄다.
"잘혔다. 근디 인자 그만 견뎌도 된다잉. 나는 평생 견디라고 배웠는디, 견뎌서 남은 것이 저 흙더미 하나여." 정순은 웃었다. 웃음 끝이 떨리지 않았다. "그 애 아부지는 바둑판 앞에 있다. 거그 말고 어디 있겄냐. 집에 한번 와라. 그 양반 니 이름은 못 불러도, 니 오는 것은 기다린다."
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순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풀 뽑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쪼그려 앉았다. 서연도 그 옆에 앉았다. 둘은 해가 질 때까지 말없이 풀을 뽑았다. 뽑을 풀이 다 떨어져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6월, 서울의 거리가 최루탄 연기로 뿌옇던 그달 말, 정순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망월동에 다녀온 날 저녁, 재봉틀 앞에 앉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고 했다. 바늘에 실을 꿴 채였다고. 그날 밤 서연은 셋방 문간에 막걸리 두 사발을 따라 놓았다. 하나를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정순이 그 밤 마루 끝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연은 두 사발을 끝내 비우지 않았다.
1988년 오월, 서연은 비목에 붕대를 매는 남자를 만났다. 한쪽 다리를 절었다. 정훈이었다. 유림을 업으려다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했다. 지금은 광주의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고, 교과서가 그날을 아직 '사태'라고 쓰는 페이지를 펴면 아이들에게 다리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해 겨울 청문회가 열렸고,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그날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 무렵 서연은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어린 딸의 손을 잡은 박정수를 스쳐 지났다. 그는 입 모양으로만 "오메" 하고 웃었다. 서연도 처음으로 그 말에 웃었다.
1993년 봄, 신문에 작은 기사가 났다. 월남전 참전 군인들 가운데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기사에는 증상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피부의 반점, 손 떨림, 신경계 이상, 원인을 알 수 없는 쇠약. 서연은 그 기사를 오래 읽었다. 툇마루의 아버지, 손등의 반점, 떨리던 숟가락. 신경쇠약이라 했다가, 원인을 모르겠다 했다가, 쉬어야 한다고만 하던 병.
아버지의 병은 아버지가 죽고 십 년이 지나서야 이름을 얻었다.
서연은 어머니를 대신해 서류를 준비했다. 참전 사실을 확인해 줄 전우의 보증이 필요했다. 서연은 오래 망설이다 광주의 그 주소로 편지를 썼다. 사정을 적고, 서류 한 장을 동봉했다. 답장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열흘 뒤 답장이 왔다. 봉투 안에는 서류가 들어 있었다. 보증인 란에 광복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서류 뒷면에, 볼펜으로 쓴 세 줄이 있었다.
'내가 봤다. 기욱이는 그 숲에 있었다. 나도 같이 있었다.'
그것이 서연이 광복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서연은 그 종이를 몽돌과 함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가을이었다. 은행 앞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바람에 쏟아졌다.
1994년 봄 어느 오후, 창구 앞에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섰다. 대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였다. 아이가 창구 유리에 이마를 대고 서연을 보다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당겼다.
"엄마, 이 언니 볼에 구멍 있다."
보조개였다. 서연이 웃을 때만 패는. 아이의 엄마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연은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지폐 세기를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그 보조개를 말해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리는 데, 서연은 아주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니 아부지맹키로. 그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낸 사람이 지금 그 감나무 집에 혼자 있다는 것. 정순도 유림도 없는 집에서, 바둑판 맞은편 빈자리를 보며.
그해 겨울, 서연은 사직서를 썼다. 쓰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스스로 쓴 것이었다. 지점장은 안도하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서연의 이름 옆에 그어진 빨간 줄은 서연이 나가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서연은 그 줄이 부끄럽지 않았다.
1995년 가을이 다 갈 무렵, 셋방 텔레비전에서 전직 대통령 하나가 검찰청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나왔다. 서연은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그날 밤 짐을 쌌다. 몽돌 하나와, 세 줄이 적힌 종이 한 장과, 갈아입을 옷 두 벌. 열여섯 살 늦겨울, 해남에서 광주로 오던 날의 보따리와 거의 같은 무게였다.
창밖에 바람이 불었다. 겨울을 앞둔 마른 바람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16. 감나무 집, 1995
1995년 늦가을, 서연은 광주역에 내렸다. 서른다섯이었다.
이번에는 망월동 가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산수동으로 갔다. 골목은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전부 달라져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들이 붉은 벽돌 이층집으로 바뀌었고, 구멍가게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그러나 골목 끝, 그 집만은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라기보다 시간이 그 집만 비켜 가며 갉아먹은 것 같았다.
철대문은 붉은 녹이 피어 손을 대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감나무는 여전히 담을 넘어와 있었다. 가지마다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무도 따지 않은 감이었다. 익을 대로 익어 터진 감들이 바닥에 떨어져 검게 짓물러 있었다. 까치들이 그것을 쪼다가 서연의 발소리에 날아올랐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장독대는 반쯤 무너져 있었다. 키 순서대로 늘어서 있던 독들 가운데 몇은 금이 가 쓰러져 있었고, 깨진 뚜껑 안에 빗물이 고여 썩어 있었다. 정순이 소금을 뿌려 닦던 그 뚜껑들이었다. 수돗가의 빨간 고무대야는 햇볕에 바래 분홍빛이 되어 쪼개져 있었다. 빨랫줄은 녹슬어 한쪽이 끊어진 채 땅에 늘어져 있었다. 그 위에 걸려 겨울바람에 뻣뻣하게 흔들리던 흰 블라우스들을 서연은 기억했다.
장독대 옆, 봉숭아를 심던 자리에는 마른 명아주 줄기만 서걱거렸다. 마루 끝 화분은 흙이 갈라져 있었다. 제라늄이 있던 자리였다. 처마 밑에 매달린 시래기 엮음은 몇 해 전 것인지 모를 만큼 바스러져 있었다. 안방 창문 너머로 재봉틀이 보였다. 덮개 위에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바늘에는 실이 꿰인 채였다. 정순이 마지막으로 꿰어둔 실이었다. 팔 년 동안 아무도 그 실을 빼지 않았다.
라디오 소리는 없었다. 재봉틀 소리도, 부엌에서 끓는 소리도, 빨래 방망이 소리도, 노랫소리도 없었다. 그 집을 채우던 모든 소리가 빠져나간 자리에, 침묵이 물처럼 고여 있었다.
감나무 아래 평상은 한쪽 다리가 부러져 기울어 있었다. 그 위에 바둑판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바둑판 위에는 감나무 낙엽과 먼지가 쌓여 있었다. 돌은 하나도 없었다.
마루로 올라서는 문은 열려 있었다. 서연은 신을 벗고 들어섰다. 마룻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거실 벽시계는 멈춰 있었다. 태엽을 감는 사람이 없는 집이었다.
벽에는 그 액자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야자수 아래 어깨를 겯고 웃는 청년들. 사진은 누렇게 바래 있었다. 오른쪽 아래 구석의 증명사진도 그대로였다. 볼에 보조개가 팬 청년. 그 옆에 액자가 하나 더 걸려 있었다. 검은 리본이 비스듬히 둘린, 단발머리 소녀의 사진. 졸업 사진이었다. 소녀는 웃고 있었다. 셈이 없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장식장 위에 작은 액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서연이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한복을 입은 앳된 여자가 사진관 배경 앞에 서 있었다. 정순이었다. 열아홉 살쯤 되어 보였다. 이 집에 오던 해였을 것이다. 사진 속 정순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무언가를 셈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앞을 보고 있었다. 무엇이 올지 모르는 채로, 아직 아무것도 견뎌 본 적 없는 얼굴로. 액자는 새것이었다. 누군가 정순이 죽은 뒤에야 장롱 깊은 곳에서 그 사진을 찾아내, 이 집에 처음으로 정순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서연은 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오래 서 있으면 거기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정순의 사진 옆에 바둑통 하나와 공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바둑통은 검은 돌 통이었다. 흰 돌 통은 보이지 않았다. 공책은 오래된 군용 수첩처럼 표지가 닳아 있었다. 펼쳐진 채였다. 손으로 그린 바둑판 격자 위에 흑과 백의 수순이 숫자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기보였다. 서연은 지나가다 그 페이지 아래쪽의 글씨에 눈이 멈췄다. 볼펜 잉크가 바래 갈색이 된 글씨였다.
'67년 2월 15일. 짜빈동 전투 후 연달아 5판 진 날. 친애(親愛)하는 기욱이와.'
서연은 그 문장을 한 번 읽었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광복의 글씨였다.
그리고 서연은 그 날짜 앞에서 숨을 멈췄다.
2월 15일.
송지면 갯바위 아래, 가지런히 벗어놓은 고무신 한 짝. 해마다 그다음 날 새벽 상석 위에 놓이던 담배 세 대와 흰 돌 하나.
실족이었을까. 어머니는 실족이라고 했다. 서연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그 새벽, 지팡이도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서연은 공책을 덮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가 덮을 것이 아니었다.
서연은 그 앞을 지났다.
그래서 서연은 보지 못했다. 거실 안쪽, 해가 들지 않는 구석의 낡은 소파에 광복이 앉아 있는 것을. 그는 고목처럼 앉아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몸은 소파 안으로 꺼져 들어갈 듯 말라 있었다.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피우지 않은 장초가, 필터 끝까지 다 타들어 가 있었다. 불씨가 그의 손가락 살에 닿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느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재가 길게 휘어진 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서연이 유림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뒤에서 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왔냐."
서연은 돌아보았다. 그제야 소파의 광복이 보였다. 담배 재가 툭, 그의 무릎에 떨어졌다. 광복은 그것을 털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 작고 단단한 것들이 부딪는 소리가 났다. 딸깍, 딸깍. 그는 그 사이에서 열쇠 하나를 골라 꺼냈다. 붉은 실이 매어진 작은 열쇠였다. 그는 그것을 서연에게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손가락 끝에 데인 자국이 몇 개나 겹쳐 있었다. 오래된 것도 있었고, 방금 생긴 것도 있었다.
"그 애 방이다. 그대로 둬불었다."
서연은 열쇠를 받았다. 광복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서연을 보지 않았다.
17. 두 벌의 블라우스
열쇠는 오래 쓰지 않아 뻑뻑했다. 몇 번을 돌리자 딸깍, 하고 열렸다.
방은 그대로였다. 장판의 그을린 자리, 창가의 앉은뱅이책상, 벽의 상장과 오려 붙인 여배우 사진. 사진은 빛이 바래 여배우의 얼굴이 거의 지워져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창틀에 죽은 파리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공기는 멈춰 있었다. 십오 년 동안 아무도 숨 쉬지 않은 공기였다.
책상 위에는 사범대 국어 교재와 원고지 뭉치가 있었다. 원고지 첫 장에 제목 하나가 쓰여 있다 지워져 있었다. 지운 자국 아래로 몇 글자가 비쳤다. '그 시절'. 그다음은 읽을 수 없었다. 첫 장 아래쪽, 원고지 칸 밖의 여백에 연필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지우지 않은 한 줄이었다.
'비 오는 날의 교실. 서연이는 이걸 읽으면 안 된다.'
원고지 다음 장은 비어 있었다. 그다음 장도. 유림은 제목과 그 한 줄만 남기고, 끝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원고지 뭉치 옆에 검고 둥근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돌 아래에는 네 번 접힌 손수건 한 장이 깔려 있었다.
서연은 그것을 집지 않았다. 다만 오래 보았다. 병원 침대에서 끝내 펴지지 않던 손이 쥐고 있던 돌. 누군가, 아마 정순이, 아마 광복이, 그것을 여기에 가져다 놓았다. 십오 년 동안 그 돌은 여기서 혼자였다.
서연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연에게 내주었던 그 서랍이었다. 박하사탕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편지 다발이 들어 있었다. 서연이 서울에서 보낸 편지들이었다. 한 통도 빠짐없이, 날짜 순서대로, 노란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고무줄은 삭아서 서연이 손을 대자 툭 끊어졌다.
방 한쪽 벽에 붙은 작은 벽장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서연은 그 문을 열었다. 유림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사범대 시절 입던 체크무늬 원피스, 쥐색 카디건, 겨울 코트. 옷걸이를 하나씩 밀어내던 서연의 손이 맨 안쪽에서 멈췄다.
흰 교복 블라우스가 한 벌 걸려 있었다. 누렇게 바래 상아색이 되어 있었다. 서연은 그것을 꺼냈다. 소맷부리에 옅은 갈색 얼룩이 있었다. 꽃잎 같은 얼룩이었다. 몇 번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던 얼룩. 수돗가에서, 터진 손등의 피를 꾹꾹 눌러 닦던 소매.
블라우스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서연은 그것을 펼쳤다.
유림의 블라우스 안에, 또 한 벌의 블라우스가 들어 있었다.
치수가 조금 작은, 같은 학교의 같은 교복 블라우스였다. 깃 안쪽에 어머니가 붉은 실로 수놓아준 이름이 있었다. '서연.' 해남을 떠나오기 전날 밤, 어머니가 호롱불 아래에서 한 땀 한 땀 떠준 이름이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밤 어디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중얼거렸던 그 블라우스였다. 교복은 인자 입을 일도 없잖애, 하품하며 말하던 그 밤. 서연은 유림의 버릇을 떠올렸다. 연필, 머리핀, 손수건. 돌려달라면 아랫입술을 깨물던.
유림은 그것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기 블라우스 안에 넣었다. 두 팔이 두 팔 안에 들어가도록, 소매가 소매 안에 겹치도록, 한 벌처럼 포개어 맨 안쪽에 걸어두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서연에게도 말하지 않고.
유림은 그렇게 서연을 안고 있었다. 서연이 서울에서 지폐를 세는 동안. 서연이 종로 다방에서 첫눈을 보는 동안. 서연이 예식장 혼주석의 빈자리를 보는 동안. 유림이 금남로 한가운데 앉아 누군가의 상처에 붕대를 감는 동안. 서연이 논둑 진흙 속에 얼굴을 묻고 있는 동안. 그리고 그 뒤로 십오 년 동안, 이 어둡고 닫힌 벽장 안에서.
서연은 두 벌의 블라우스를 가슴에 안았다.
그때 무언가 바스락거렸다. 서연의 블라우스 가슴 주머니 안에 작게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원고지를 찢어 여러 번 접은 쪽지였다. 접힌 바깥 면에 연필로 서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연은 쪽지를 펼쳤다.
오래 읽었다. 몇 줄 되지 않는 쪽지였는데, 오래 읽었다. 창밖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다 읽고 나서 서연은 쪽지를 처음 접혀 있던 그대로 다시 접었다. 모서리를 손톱으로 꾹꾹 눌러 날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블라우스의 가슴 주머니, 유림이 넣어두었던 그 자리에 다시 넣었다.
그 쪽지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서연은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무너지듯 유림의 침대에 앉았다. 블라우스에 얼굴을 묻었다.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냄새였을까. 아니, 냄새는 이미 오래전에 날아갔을 것이다. 그것은 냄새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비 오는 교실의 시간, 몽돌이 우는 바닷가의 시간, 가방 손잡이 아래에서 손가락이 하나씩 풀려나가던 시간. 창고 바닥에서 입으로 돌을 물던 시간. 서연이 왔냐고 묻던, 서연이 끝내 듣지 못한 목소리의 시간. 십오 년 동안 이 방에 갇혀 숨 쉬지 못한 시간이 블라우스의 올 사이사이에서 천천히 풀려나와 서연의 얼굴을 덮었다.
서연은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다만 어깨가, 아주 천천히 무너졌다.
"왔어."
서연이 블라우스에 대고 말했다. 십오 년 늦은 대답이었다. 정순의 거짓말을, 이제야 참말로 만드는 대답이었다.
"나 왔어, 유림아. 이십 리를 못 가서, 십오 년이 걸렸어."
창밖에서 무언가 창틀을 두드렸다. 서연은 고개를 들었다. 빗방울이었다. 하나, 둘. 유리창에 비스듬히 그어지기 시작했다. 무등산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오후인데도 저녁처럼 어두웠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 빗소리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남 할머니 흉내를 내며 고개를 비스듬히 하던 목소리. 그러다 제 말투로 돌아와, 웃음을 참으며 하던 말.
"아따, 니는 참 예쁘다잉."
18.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서연은 블라우스를 개었다. 포개진 그대로, 유림의 블라우스가 서연의 블라우스를 안은 그대로, 조심스럽게 접었다. 책상 위에 있던 누런 서류 봉투를 비우고 그 안에 넣었다. 편지 다발도 함께 넣었다. 원고지는 넣지 않았다. 읽으면 안 된다는 한 줄과 빈칸들은, 유림이 남긴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검고 둥근 돌 하나를 꺼냈다. 십오 년 동안 장롱 맨 아래 서랍에서, 장성의 창고 바닥에서, 셋방 머리맡에서, 성당 지하의 장부 옆에서 서연과 함께 굴러다닌 몽돌이었다. 창고 바닥에서 입으로 물었던 자리에 아주 작은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연은 유림의 돌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 깔린 손수건을 꺼냈다. 네 번 접힌 것을 펼쳤다.
동백이었다. 흰 천은 누렇게 바래 있었고, 붉던 꽃잎은 마른 장미처럼 갈색이 도는 분홍으로 빛이 죽어 있었다. 선 밖으로 번진 자리도 그대로였다. 십육 년 전 보길도의 새벽, 하룻밤 사이 피었다가 무너진 꽃. 송이째 떨어지는 꽃. 유림은 끝내 진짜 동백 옆에 그것을 펴 보지 못했다. 겨울은 오지 않았고, 꽃은 오월에 졌다.
서연은 손수건을 다시 접지 않았다. 펼친 채로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유림의 돌을 책상 위에 돌려놓고, 자기 돌을 그 옆에 놓았다. 두 돌이 나란히 닿았다. 예송리 바닷가에서 수백 년을 서로 부딪으며 둥글어진 돌들이었다. 십육 년 만에 다시 만난 돌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딸깍. 바둑돌 놓는 소리 같았다.
봉투를 품에 안고, 손수건을 한 손에 쥐고, 서연은 방을 나왔다. 열쇠는 문에 꽂아둔 채였다.
거실의 광복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의 담배는 이제 완전히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서연은 그 앞에 섰다. 광복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봉투로 갔다가, 서연의 얼굴로 왔다. 그는 봉투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 벽장 문을 십오 년 전 처음 연 것도, 그리고 다시 닫은 것도 그였을지 몰랐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가 평생 해 온 방식대로.
서연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세 줄이 적힌 종이였다. 그것을 광복의 무릎 위에 놓았다. 광복은 종이를 보았다. 자기 글씨였다.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아저씨, 저 갈라요."
광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그러나 서연은 알 수 있었다. 그 마른 눈 속에 십오 년 전의 비가,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 어느 열대의 숲에 내리던 비가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는 것을.
광복은 아주 오래 서연을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벽의 액자를 보았다. 구석에 끼워진 작은 증명사진. 볼에 보조개가 팬 청년.
"그 보조개."
광복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잊어불지 말아라."
서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큰절이었다. 아버지의 빈소에서 대문만 바라보느라 끝내 온전히 하지 못한 절이었다. 정순에게도 유림에게도 하지 못한 절이었다. 광복은 그 절을 받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손이 무릎 위의 종이를 아주 천천히 덮었다. 서연은 일어나 마루를 내려섰다.
마당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연은 우산을 펴지 않았다. 감나무 잎을 지나 떨어지는 빗방울이 머리에, 어깨에, 봉투를 안은 손등에 떨어졌다. 차가웠다. 열여섯 해 전 대인동 터미널에서 떨어지던 그 빗방울처럼. 오래된 흉터 위로 빗물이 흘렀다.
서연은 대문을 나섰다. 골목을 걸었다. 산수동 비탈을 내려가, 충장로를 지나, 금남로로 나섰다. 빗속의 금남로는 넓고 조용했다. 차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서둘러 걸었다. 도청은 그대로 서 있었다. 분수대는 물을 뿜지 않았다. 서연은 길 한가운데쯤에서 잠깐 멈춰 섰다. 누군가 여기 앉아 붕대를 감았을 것이다. 단단하고 정확하게.
서연은 다시 걸었다. 멈추지 않았다. 유림은 서연이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망월동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금남로 끝에 있었다. 서연은 그쪽으로 걸었다. 봉투 안의 블라우스 두 벌을, 비목의 붕대 옆에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로 가져갈 것이었다. 서연의 셋방 장롱, 맨 아래 서랍으로. 이번에는 날마다 열어 볼 서랍으로.
봉투가 빗물에 조금씩 젖어 들었다. 서연은 그것을 코트 안으로 더 깊이 넣고 두 팔로 감쌌다. 손에 쥔 손수건도 젖어 들었다. 서연은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펴 보았다. 빗물이 바랜 꽃잎 위에 스며들자, 마른 동백이 아주 조금, 다시 붉어지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 것이다. 서연은 착각인 줄 알면서 오래 보았다.
서연은 손수건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오래전 립스틱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빗물 냄새와, 오래 닫혀 있던 방의 냄새만 났다. 그래도 서연은 손수건을 입술에서 떼지 않았다. 그 위로 고개를 숙였다. 아주 작게,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게 말했다. 십육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부서질 것 같아서,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한 말.
"절대 널 잊지 않을 거야."
빗줄기가 굵어졌다. 서연의 뒷모습이 금남로의 빗속으로 천천히 지워졌다.
산수동 골목 끝, 녹슨 대문 앞에 광복이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담배도 없이. 그는 서연이 내려간 비탈 아래를 오래 보았다. 서연의 모습은 이미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뒤였다. 그래도 그는 오래 그쪽을 보았다. 스무 해 전 해남에서 온 소녀가 보따리를 안고 올라왔던 바로 그 비탈이었다. 아버지의 편지를 품에 넣고, 볼에 보조개를 감춘 채.
이윽고 그는 몸을 돌려 마당으로 들어갔다. 비에 젖은 잡초를 헤치고 감나무 아래로 갔다. 기울어진 평상 위, 낙엽과 빗물이 고인 바둑판 앞에 앉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바둑판 위의 낙엽을 천천히 쓸어냈다. 흠뻑 젖은 나뭇결이 드러났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돌 두 개가 손끝에 닿았다. 그는 먼저 검은 돌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바둑판 한가운데, 천원에 놓았다.
그리고 맞은편,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를 보았다.
오래 그렇게 있었다. 빗방울이 바둑판 위에 떨어졌다. 하나, 둘, 셋. 검은 돌 위에도 떨어졌다. 이윽고 광복은 주머니에 남은 흰 돌 하나를 꺼냈다. 흰 돌 통에서 해마다 하나씩 덜어 바닷가 언덕의 상석 위에 두고 오던, 그 통의 마지막 돌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평상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아무도 앉지 않던 자리에 앉았다. 정순이 평생 앉지 못한 자리였고, 기욱이 한 번 앉았다 떠난 자리였고, 유림이 지는 법부터 배우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검은 돌 바로 옆에 흰 돌을 놓았다.
딸깍.
이십 년 동안 그 바둑판 위에서 상대의 수를 대신 두던 손이, 처음으로 상대의 자리에 앉아 한 수를 받았다. 그는 다음 수를 놓지 않았다. 판을 거두지도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돌을 주워 담지 않았다.
검은 돌과 흰 돌이 나란히 빗물에 젖어 갔다. 감나무에서 익은 감 하나가 툭, 떨어졌다. 광복은 그것을 주워 바둑판 귀퉁이에 올려놓았다. 니 몫이다, 하고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누구에게인지는, 그도 말하지 않았다.
빗소리 속에서 안방 재봉틀의 바늘에 꿰인 실이,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아주 조금 흔들렸다.
바둑판 위의 두 돌은 그날 밤 내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비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소녀들은 아름다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