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나흘
프란체스카 존슨의 삶은 예순일곱 해였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 미군 장교를 만났고, 아이오와 매디슨 카운티의 농장으로 건너와 두 아이를 키웠다. 남편의 밥을 짓고, 아이들의 옷을 빨고, 여름이면 현관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셨다. 성실하고 조용한, 아무 문제 없는 삶이었다.
그리고 그 예순일곱 해 중 나흘이 있었다.
1965년 8월, 가족들이 일리노이 주 박람회에 간 사이 로즈먼 다리를 찾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가 길을 물으러 찾아왔다. 나흘 뒤 가족이 돌아왔고, 그녀는 그대로 그 집에 남았다. 그녀가 죽은 뒤, 자식들은 어머니의 유품 상자에서 편지 다발과 카메라 렌즈와 목걸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화장해서 로즈먼 다리에서 재를 뿌려달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읽는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경제학은 이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경제학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다.
2. 37%의 수학 — 비서 문제
최적 멈춤 이론(Optimal Stopping Theory) 은 "언제 탐색을 그만두고 결정할 것인가"를 다루는 확률론의 한 분야다. 가장 유명한 예시가 비서 문제(The Secretary Problem) 다.
조건은 이렇다. N명의 지원자를 한 명씩 면접한다. 면접 직후 곧바로 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번 거절한 지원자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목표는 오직 하나, N명 중 진짜 1등을 뽑는 것이다.
수학적 해답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탐색 단계(약 37%) — 전체 지원자의 약 37%, 정확히는 자연상수의 역수 1/e ≈ 0.3679에 해당하는 인원까지는 누구도 뽑지 않는다. 이 구간은 순전히 기준선을 세우기 위한 표본 관찰용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도 보내준다.
결정 단계(37% 이후) — 이 지점을 넘어서면, 앞서 관찰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첫 번째 사람이 나타나는 즉시 멈추고 선택한다. 더 좋은 사람이 뒤에 있을지 계산하지 않는다. 즉시 멈춘다.
이 전략을 따르면 진짜 1등을 뽑을 확률이 약 37%로 극대화된다. N이 커져도 이 확률은 1/e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100명 중에서든 1만 명 중에서든, 규칙을 지키면 세 번에 한 번은 최고를 손에 넣는다. 이를 보고 나서 뛰어들기(look-then-leap) 규칙이라 부른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우아한 결론이 세 개의 가혹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되돌아갈 수 없고, 시간은 한 방향이며, 2등은 꼴찌와 똑같이 실패라는 점이다.
3. 멈춤의 경제학 — 계속가치와 정지가치
실무에서 최적 멈춤은 37%라는 숫자로 풀리지 않는다. 핵심은 매 순간 두 개의 값을 비교하는 것이다.
- 정지가치(stopping value) — 지금 멈췄을 때 확정되는 이익
- 계속가치(continuation value) — 기다렸을 때 미래에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
멈춰야 할 때는 정지가치가 계속가치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이 단순한 부등식이 금융과 경제 전반을 관통한다.
부동산 매각과 주식 매도. 집을 언제 팔 것인가는 매수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이 가격을 받아들일 것인가, 더 나은 제안을 기다릴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다. 여기서는 37%가 아니라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 이라는 임계값이 답이 된다. 탐색 비용(대출 이자, 보유세, 시간)이 클수록 임계값은 낮아지고, 시장 변동성이 클수록 기다림의 가치는 커진다.
미국형 옵션(American Option). 만기 전 언제든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의 가치 평가는 최적 멈춤 문제의 교과서적 사례다. 내재가치가 계속 보유했을 때의 기대가치를 넘어서는 경계면(free boundary)을 찾는 것이 전부이며, 그 해를 Snell 포락선이라 부른다. 배당이 없는 미국형 콜옵션을 만기 전에 행사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남아 있는 시간가치, 즉 계속가치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구직과 임금 협상. 맥콜(McCall)의 탐색 모형은 구직자가 유보임금(reservation wage) 을 정하고 그 이상의 제안이 오면 즉시 수락하는 것이 최적임을 보인다. 실업급여가 후해질수록 유보임금이 올라가고 탐색 기간이 길어진다는, 정책적으로 뼈아픈 함의도 여기서 나온다.
실물옵션(Real Options)과 비가역성. 딕싯과 핀다이크가 정리한 실물옵션 이론의 핵심은 이것이다. 투자가 비가역적이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기다림 자체가 가치를 가진다. 지금 뛰어들면 그 '기다릴 수 있는 권리'를 소각하는 것이고, 그 소각 비용만큼 기대수익이 더 높아야 정당화된다. 그래서 기업은 종종 NPV가 양수인데도 투자를 미룬다.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옵션을 죽이기 아까워서다.
그리고 이 마지막 항목이, 우리를 다시 아이오와의 빗속 신호등 앞으로 데려간다.
4. 이미 멈춘 사람 — 프란체스카의 첫 번째 최적 멈춤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잔인한 역설이 시작된다.
프란체스카는 이미 최적 멈춤을 한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탈리아, 스무 살 남짓의 여자에게 주어진 선택지의 집합은 좁았다. 그 안에서 리처드 존슨은 충분히 좋은 선택이었다. 성실하고, 폭력적이지 않고, 가족을 먹여 살렸다. 당대의 기준으로 그녀의 결혼은 교과서적인 최적 멈춤이었다. 탐색을 멈추고 정착했고, 그 결정은 두 아이와 농장과 안정으로 보상받았다.
문제는 최적 멈춤 이론이 멈춘 다음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은 "언제 멈출 것인가"에 답한다. 그러나 멈춘 뒤 40년 동안 그 선택 안에서 무엇이 자라고 무엇이 말라 죽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침묵의 영역이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아내의 내면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프란체스카는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 뒤에서 정지해버린 삶을 살았다. 그녀가 멈춘 것은 탐색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최적화의 진짜 위험은 잘못된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옳은 답을 내놓되, 그 답이 무엇을 최대화한 결과인지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다.
5. 신호등 — 소멸하는 옵션
그리고 운명같은 나흘이 왔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In a universe of ambiguity, this kind of certainty comes only once, and never again, no matter how many lifetimes you live."
최적 멈춤의 언어로 옮기면 이 문장은 낭만이 아니라 정보다. 그는 지금 정지가치를 선언하고 있다. 이 확실성은 반복 추출되지 않는 표본이며, 잔여 탐색에서 이보다 나은 관측이 나올 확률은 0이다. 나흘의 관측만으로 그녀는 이미 결정 단계에 들어섰고, 37% 구간은 15년 전에 끝나 있었으며, 눈앞의 지원자는 지금까지의 모든 관측을 압도한다.
규칙은 명확했다. 즉시 멈춰라.
그리고 클라이맥스. 폭우가 쏟아지는 사거리. 앞차에는 로버트, 뒷차에는 프란체스카와 남편. 로버트의 트럭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둔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목걸이를 꺼내 백미러에 건다. 프란체스카는 차 문 손잡이를 쥔다. 쥐었다가, 힘을 준다. 관절이 하얘지도록.
신호가 바뀐다.
이 장면이 잔혹한 이유는 선택의 창이 물리적으로 닫히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물옵션 이론은 기다림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단, 옵션이 살아 있을 때만이다. 만기가 있는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만기를 통과시키면, 그 옵션은 가치가 0이 된다. 손해가 아니라 소멸이다. 좌회전 깜빡이가 켜져 있던 그 몇 초가 만기였다.
그녀는 문을 열지 않았다. 트럭이 좌회전하고, 그녀의 차는 직진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끝났다.
6. 목적함수를 다시 읽는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프란체스카가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경제학을 잘못 쓰는 것이다.
최적 멈춤의 답은 언제나 무엇을 최대화하느냐에 종속된다. 만약 그녀의 목적함수가 '나 자신의 생애 효용'이었다면 그녀는 명백히 최적해를 이탈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적함수에는 처음부터 다른 항이 들어 있었다. 두 아이가 감당해야 할 마을의 시선,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배신, 자신이 떠난 뒤 그 집에 남을 침묵.
그녀는 최적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제약 조건 아래에서 최적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약 조건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아이오와의 농촌 공동체가 여자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다.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왜 그 제약 조건을 그녀 혼자 짊어졌는가이다.
7. 후회의 비대칭
인간은 멈춤의 실패를 균등하게 후회하지 않는다.
신경과학 연구들은 사람이 최적 시점보다 늦게 멈췄을 때 더 강한 후회를 경험한다는 것을 보고한다. 최적 시점보다 늦게 멈춘 피드백을 받았을 때 피드백 관련 부정성(FRN) 이 더 부정적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더 큰 후회 신호로 해석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피드백에 반응해 다음 시행에서는 더 일찍 멈추려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더 늦게 멈추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조정이 반드시 더 나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후회로부터 배우지만, 그 학습이 합리적이지는 않다.
한편 심리학에는 이와 짝을 이루는 오래된 발견이 있다. 길로비치와 메드벡의 연구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가 크지만, 시간 축을 길게 잡으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압도적으로 커진다. 행동의 후회는 시간이 깎아내고, 부작위의 후회는 시간이 키운다. 왜냐하면 저지른 일의 결과는 유한하고 확정되어 있지만, 하지 않은 일은 평생 무한한 가능성의 형태로 남아 계속 자라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가 짊어진 것이 정확히 그 무한이었다. 그녀는 매년 로버트의 생일에 촛불을 켰다. 그가 죽은 뒤 유품이 배달되어 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40년 동안 계산해온 계속가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소멸한 옵션의 가치를 평생에 걸쳐 재평가하는 일, 그것이 그녀의 남은 인생이었다.
8. 63%의 사람들
배우자 탐색에 37% 법칙을 적용하는 대중적 해설들은 대개 여기서 멈춘다. "20명을 만날 수 있다면 7-8명까지는 기준을 세우는 데 쓰고, 그 뒤에 기준을 넘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정하라."
그러나 이 문장의 뒷면을 읽어야 한다. 규칙을 완벽히 지켜도 최고를 만날 확률은 37%다. 다시 말해 63%는 실패한다. 수학이 보장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이 조건에서 그보다 잘할 방법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게다가 현실은 비서 문제보다 훨씬 관대하면서 동시에 훨씬 가혹하다. 관대한 쪽은 이것이다. 실제 삶에서 2등은 꼴찌가 아니다. 비서 문제는 1등만 인정하는 승자독식 목적함수를 가정하지만, 우리는 대개 '기대 만족도'를 최대화하며 살고, 그 목적함수에서 최적 임계값은 달라진다. 가혹한 쪽은 이것이다. 우리는 N을 모른다. 몇 명이 남았는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채로 멈추거나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63% 쪽에 선다. 그리고 63%의 진짜 문제는 확률이 아니다. 문제는 그 63%가 평생에 걸쳐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과그때 잡았더라면 사이를 왕복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사는 대체로 최적 멈춤에 실패해서 생기는 문제의 연속이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의 연속이다.
9. 멈춘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
최적 멈춤 이론은 냉정하다. 그것은 감정을 변수에서 제거하고 확률만을 계산한다. 그것이 이 이론의 힘이고 동시에 한계다.
프란체스카가 빗속에서 차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이론에 대한 반역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계산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효용을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사람들의 효용을 샀고, 그 거래가 공정했는지는 아무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최적 멈춤 이론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언제 멈출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질문은 멈춘 뒤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멈춤이 도대체 무엇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는가?이다. 수학은 답을 준다. 그러나 그 답을 40년 동안 살아내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로버트의 편지는, 시간의 광대한 척도에서 보면 나흘과 4억 광년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덧붙인다. 아무리 철학을 끌어와도 매일 매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은 막을 수 없다고. 이론과 삶 사이의 거리가 정확히 그 두 문장 사이에 있다.
신호는 파란불로 바뀌었고, 트럭은 좌회전했다. 그리고 프란체스카의 삶은 그 사거리에서 멈췄다. 그 멈춤은 37%라는 숫자보다 깊은 곳에 있었고, 어떤 목적함수로도 끝내 적히지 않았다.
최적 멈춤 이론은 우리에게 언제 멈출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멈추지 못한 것을 용서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건 여전히 인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