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도착하기 전에 게임은 끝난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은 제도로서는 옳다. 그러나 시간표가 틀렸다. 조정 신청부터 결정, 그리고 실제 정정보도까지 걸리는 수개월 동안 오보는 '뉴스'라는 권위를 달고 포털에 박제된다. 정정보도문을 찾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하면 왜곡된 기사가 먼저 뜨고, 그 기사가 곧 그 사람의 디지털 신원이 된다. 절차적 정의가 완성되는 시점에, 당사자의 평판은 이미 회복 불능이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사이버 레커는 애초에 언론중재위원회의 관할 밖에 있다. 언론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패턴은 정형화되어 있다. 일부 기자가 검증 없는 기사를 하나 던지면, 레커들은 "메이저 언론도 보도한 사건"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이를 증폭·재생산한다. 백링크와 조회수가 쌓이는 동안 피해자는 언론 규제와 플랫폼 규제 사이의 사각지대에 갇힌다.
구제역 사건이 증명한 것 - 형사처벌은 예외적으로만 작동한다
이 생태계에서 형사 사법이 작동한 드문 사례가 유튜버 구제역(이준희) 사건이다. 그는 유튜버 쯔양을 상대로 사생활 폭로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한 공갈 혐의로 2025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항소심도 같은 형을 유지했고, 2026년 3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새로 도입된 재판소원까지 청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를 각하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주작감별사, 카라큘라 등에게도 유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낸 것은 수사기관이 아니었다. 가로세로연구소가 2024년 7월 구제역의 휴대전화에서 확보된 1만 7천여 건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레커 생태계의 내부 고발자가 또 다른 논쟁적 유튜브 채널이었다는 사실은 이 시장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폭로가 폭로를 잡고, 조회수가 조회수를 심판하는 구조. 제도가 비어 있는 자리를 시장의 포식자들이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 사건은 예외였다. 녹취라는 결정적 물증, 피해자의 공개 대응, 사회적 공분이 삼박자로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대부분의 피해자에게 이런 행운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는 카드는 하나다 - 민사 손해배상
언론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언론중재위 결정문이 아니라 손해배상 소장이다. 특히 기자 개인과 회사를 공동피고로 묶은 거액의 민사 소송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수단은 없다.
구조를 보면 이유가 명확하다. 상당수 기자에게 'OO일보 기자'라는 직함은 취재 수단인 동시에 영업 자산이다. 소장에 '피고'로 이름이 박히는 순간 그 자산의 가치는 급락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소송 리스크를 안은 기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정리 대상이 된다. 법무법인 명의의 내용증명 한 통에 기사가 내려가고 정정이 이뤄지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은, 언론사가 진실보다 분쟁 비용에 민감한 비즈니스 조직이기 때문이다. 판결이 나기도 전에 '적당한 합의'로 문제를 닫으려는 유인이 구조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이것은 냉소가 아니라 실무 지침이다. 정정보도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를 병행하되, 무게중심은 후자에 두라. 그것이 오염된 기사를 검색 결과에서 걷어내는 가장 빠른 경로다.
그러나 같은 무기를 악당도 쓴다 - 씨그널엔터테인먼트의 교훈
여기서 이 칼럼의 불편한 후반부가 시작된다. 손해배상이라는 무기는 피해자만 쥐는 것이 아니다.
씨그널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사건을 보자. 이 회사는 2015년 중국 투자회사의 인수 공시로 주가를 급등시켰으나 해당 공시는 허위였고, 2018년 상장폐지됐다. 검찰은 2019년 7월 전 대표 김모 씨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일당이 허위 공시로 챙긴 부당이득은 171억 원 규모로 지목됐다. 김 씨는 보석으로 풀려난 뒤 2020년 7월 23일 선고 공판 직전 도주했고, 지금까지 사법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청 앞 1인 시위뿐이었다. 그는 전과 4범이고 싸이월드 멸망에 관여된 인물이다.
그런데 포털에서 이 인물의 이름을 검색해 보라. 도주한 주가조작 사건 피고인에 대한 보도치고는 검색 결과가 이상하리만치 거의 없다. 기자들이 갑자기 윤리의식을 발휘해 자발적으로 기사를 정리했을까? 그보다는 명예훼손 소송 리스크 앞에서 언론사들이 스스로 방어적으로 움츠러들었다고 보는 것이 이 업계의 생리에 부합한다. "실명 보도를 계속하면 수억 원대 손해배상을 각오하라"는 신호 앞에서, 판결도 나기 전에 실명을 지우고 기사를 내리는 것이 언론사의 합리적 선택이 되는 구조. 손해배상이라는 무기가 억울한 피해자의 방패가 아니라 도피 중인 피고인의 세탁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맺는 말. 돈의 언어로 싸우되, 구조를 직시하라
나는 이 메커니즘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안다. 절차와 원칙을 따지며 기다리는 사이, 법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는 쪽은 언제나 자원이 많은 쪽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중적이다.
첫째, 오보의 피해자라면 주저 없이 민사 손해배상으로 대응하라. 그것이 현재 한국 언론 환경에서 유일하게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교정 장치다.
둘째, 그러나 이 장치가 작동하는 이유가 언론의 양심이 아니라 언론의 공포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공포로 움직이는 시스템은 정의로운 피해자와 도주 중인 피고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기레기와 레커의 오염된 먹이사슬을 끊는 지름길이 손해배상이라면, 그 지름길의 통행료를 누가 내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언론이 소송 리스크가 아니라 사실 검증으로 기사를 관리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 이 무기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선량한 이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이 칼럼에서 언급된 형사사건 내용은 법원 판결 및 언론 보도에 근거한다. 씨그널엔터테인먼트 사건 관련 서술은 검찰 기소 내용과 공개 보도를 기준으로 하며, 도주 중인 피고인에 대한 유죄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