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막식. 경기장 한가운데 세운 성(城) 세트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막식. 경기장 한가운데 세운 성(城) 세트 뒤로, 도쿄·오사카·나고야가 연이어 실패한 이유가 겹쳐 보인다.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9월 26일

들어가며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신칸센 개통과 정밀 기술을 세계에 선보이며 패전국 일본의 재건과 부활을 알린 상징적인 대회였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는 당시 일본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6,400만 명이 몰렸고, 일본은 첨단 미래 기술을 앞세워 세계 2위의 경제·기술 대국으로 올라섰음을 선포했다.

일본의 운영 능력은 고성장기에만 빛난 것이 아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대회 초기 일본식 숙소가 외국인 투숙을 거부하는 문제가 생기자 지자체가 직접 나서 시설과 제도를 정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약 100만 명의 해외 방문객을 예측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어 안내 체계를 비롯한 다국어 안내 시스템을 갖췄다. 2019년 럭비 월드컵에서는 24만 명이 넘는 해외 방문객 중 80%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90%가 일본을 다시 찾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대형 국제 행사는 연이어 파행을 겪고 있다. '매뉴얼의 나라' 일본은 왜 국제 무대에서 연거푸 실패하는가?

이 글은 그 원인을 세 가지 직접 원인 - 목적의 변질, 낡은 성장 공식, 거버넌스 붕괴—으로 정리하고, 같은 일본이 불과 7년 전 럭비 월드컵에서는 왜 성공했는지를 대조한다. 그리고 전후 성공 신화와 집단 기억이 이 실패를 '반복'하게 만드는 배경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고자 한다.

이 질문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와 지금 진행 중인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보면, 한국 역시 비슷한 길 위에 서 있다. 경로는 다르지만 도착지는 닮았다.

1. 본래 목적의 변질 - '대회 성공'이 아닌 '부수적 이익' 추구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대회 자체의 성공이나 관람객·선수를 위한 서비스보다 정치적 선전과 인프라 예산 확보라는 부수적 이익을 앞세웠다. 이것이 최근 일본 국제 행사 실패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도쿄 올림픽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했음을 보여주겠다는 '부흥 올림픽'이라는 정치적 수사, 그리고 경기 부양과 정권 지지율이라는 계산 속에서 추진되었다. 대회는 개막 전부터 불명예가 이어졌다. 조직위원회 회장이 여성 비하 발언으로 사임했고, 공동통신 여론조사에서는 중지나 연기를 요구하는 응답이 6할을 넘었다.

일본에서 오래 활동한 미국 방송인 데이브 스펙터는 운영 측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의미로 "자책골로 실패했다"고 평가했고, 정치권의 개입을 두고 "도쿄 올림픽이 아니라 나가타초 올림픽"이라고 꼬집었다. 선수들에게 체격에 맞지 않는 골판지 침대를 제공한 일, 후쿠시마산 식자재 공급을 둘러싼 논란 등은 대회의 본래 목적이 선수와 관객이 아니었음을 드러낸 장면들이다.

오사카 엑스포의 실질적 목적은 쓰레기 매립지였던 인공섬 '유메시마'의 부채를 정리하고, 복합 리조트(IR) 인프라를 깔기 위한 중앙정부 보조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현장에서는 일본어 위주의 안내와 제각각 흩어진 앱 운영이 외국인 방문객에게 큰 불편을 안겼다. 더 심각한 것은 제조 역량이 없는 스타트업 EV 모터즈 재팬(EVMJ)에 약 75억 엔 규모의 전기버스를 발주한 사안이다. EVMJ는 '국산 EV 버스'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산 차량을 들여와 납품했고, 불량이 잇따른 끝에 2026년 4월 민사재생법 적용을 신청했다. 부채 총액은 57억 엔에 달했고, 엑스포용으로 사들인 190대의 버스는 이후 노선버스 전환마저 포기되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주오 신칸센' 개통에 맞춰 국비로 지역 인프라를 정비하려는 구상 속에서 유치되었다. 그러나 정작 대회에서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선수촌 건설 자체가 취소되었다. 약 300억 엔으로 잡았던 선수촌 건축비가 두 배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조직위는 선수와 임원 약 1만 7천 명을 기존 호텔, 나고야항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선, 목조 컨테이너 숙소에 분산 수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컨테이너 숙소는 키 2m가 넘는 선수가 다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비좁았고, 배관 누수로 바닥이 물에 잠기거나 폭우 때 긴급 대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숙소가 여러 곳으로 흩어지면서 수속이 지연되고 남녀 선수가 같은 방에 배정되는 사고가 났으며, 태국 세팍타크로 대표팀은 숙소 기록 누락으로 24시간을 로비 바닥에서 대기해야 했다. 수영·승마 등 일부 종목은 규격 미달로 경기장을 타 지역으로 옮겼다. 인프라를 위해 대회를 끌어왔는데, 정작 대회에 필요한 인프라는 포기한 셈이다. 본말이 전도된 모습 그 자체다.

2. 낡은 성공 방정식 고수와 예산 폭증 — 현실과의 괴리

두 번째 원인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 시절의 '토목 공사 = 경제 부흥'이라는 고성장기 방정식에 대한 집착이다. 저성장·고령화·고물가라는 현실을 외면한 기획은 예산 폭증으로 돌아왔다.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는 1980년대 말 이후 일본의 올림픽·엑스포 구상이 거듭 좌절되면서도 왜 반복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엑스포,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성공 패턴'을 2020년대에도 그대로 재현하려는 집착이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행사 당초 예산 최종 규모 비고
도쿄 올림픽 약 130억 달러 추계에 따라 최대 350억 달러 1년 연기, 무관중 개최로 입장 수입 대부분 증발
오사카 엑스포 약 1,250억 엔 약 2,350억 엔 건설비 약 2배 증가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약 850억~1,000억 엔 약 3,700억 엔 약 3.7배 증가, 지역 재정 부담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아시안게임의 총비용이 당초 예상의 3배를 넘는 3,700억 엔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성장기의 공식은 비용이 들어도 그 이상의 성장으로 되돌려받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같은 공식을 쓰면, 남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할 청구서뿐이다.

3. 거버넌스 붕괴, 부정부패, 그리고 책임 회피

세 번째 원인은 과거 일본의 최대 강점이었던 철저한 매뉴얼과 관리 시스템의 붕괴다. 그 빈자리를 비리와 책임 회피가 채웠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광고대행사 덴쓰(電通)를 중심으로 한 입찰 담합과 뇌물 사건이 터졌다. 법원은 하쿠호도(博報堂)에 담합으로 자유 경쟁을 방해했다며 2억 엔의 벌금을 부과했고, 관련 임원들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담합이 걸린 테스트 이벤트 및 본대회 운영 계약 규모는 약 437억 엔에 달했다. 성화대 설계 과정의 혼선 같은 운영 실책도 이어졌다.

오사카 엑스포에서는 시공사 간부의 배임 체포, 무면허 업체의 시공, 하도급 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영세업체 도산 위기가 연달아 드러났지만 주최 측은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앞서 언급한 EV 버스 사태는 일본의 '제조 신화'가 스타트업 마케팅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거버넌스 붕괴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9월 18일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남자 하키 경기에서는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연주되었고, 현장 담당자가 음원을 잘못 고른 것이 원인이었다. 이튿날 한국과 홍콩의 여자 핸드볼 경기에서는 양국 국가가 모두 연주되지 않았다. 시상식에서 국적이 '중화민국'으로 잘못 표기되는 일, 버스 미배차로 훈련이 취소되는 일, 공항에서 최장 6시간 발이 묶이는 일이 잇따랐다.

선수촌 기념행사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분장한 인물이 등장해 대한체육회가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 언론조차 대규모 국제대회를 운영할 능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비판했고, 조직위는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주목할 점은 이 공백이 도쿄 올림픽 비리의 후폭풍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수십 년간 대형 이벤트의 기획·조정·현장 운영을 사실상 덴쓰 같은 대형 광고대행사에 위탁해 왔다. 노하우는 국가나 지자체가 아니라 민간 대행사 안에 쌓였다. 담합·뇌물 사건 이후 이들이 국제대회 운영에서 빠지자, 아이치·나고야 대회는 국제 행사 경험이 부족한 인력으로 채워졌다.

조직위 관계자조차 "미경험자가 많아 실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해외 이벤트 기업에 핵심 운영을 맡겼지만 일본 현장 특유의 세밀한 조정과는 맞물리지 않았다. 자치단체에는 대형 이벤트를 운영할 경험이 없고, 외부 업체에는 현장 감각이 없는 상태. 비리를 도려낸 자리에 남은 것은 책임과 노하우의 공동화(空洞化)였다.

매뉴얼은 그것을 쓰고, 고치고, 현장에서 실행할 사람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 그 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직에서 매뉴얼은 종이일 뿐이다.

4. 같은 일본, 다른 결과 - 2019 럭비 월드컵은 왜 성공했나?

여기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2019년 럭비 월드컵을 치른 나라도, 2021년 도쿄 올림픽을 치른 나라도 같은 일본이다. 같은 관료제, 같은 국민, 같은 전후 기억을 가진 나라가 불과 2년 간격으로 정반대의 결과를 냈다면, 성패를 가른 것은 국민성이나 역사가 아니라 행사를 둘러싼 구조와 인센티브다.

럭비 월드컵의 조건을 보면 이 글의 진단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첫째, 목적이 하나였다. 럭비 월드컵은 아시아 첫 개최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신칸센이나 복합 리조트 같은 대형 인프라 예산을 끌어오기 위한 명분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대회의 성공, 즉 경기와 관람 경험 그 자체가 목표였다.

둘째,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했다. 전국 12개 경기장은 대부분 기존 경기장이었다. 새로 지은 가마이시 우노스마이 메모리얼 스타디움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의 부흥을 상징했지만, 가설 관람석을 활용한 소규모 경기장이었다. '부흥'을 앞세우면서도 대규모 토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쿄 올림픽의 '부흥 올림픽'과 대비된다.

셋째, 규모가 현실적이었다. 20개국, 44일, 12개 도시. 종목 하나에 집중한 대회는 수십 개 종목을 동시에 굴려야 하는 올림픽·아시안게임보다 조정 부담이 훨씬 작았다.

넷째, 운영의 표준이 분명했다. 국제연맹(월드럭비)의 운영 기준과 종목 단체의 전문성이 중심에 있었고, 정치권이 대회 설계를 흔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역시 FIFA라는 강력한 운영 표준 아래에서 치러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일본이 성공한 대회에는 공통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명확한 기준'과 '단일한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은 한국보다 더 후하고 잘 해야한다는 경쟁심이 있었다.

결국 일본이 잘하는 것은 목적과 기준이 명확히 주어졌을 때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일이다. 반대로 목적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 하며, 정치가 설계에 개입하는 순간 매뉴얼의 나라는 가장 약해진다. 최근의 실패는 일본의 능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일본의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조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5. 전후 성공 신화와 집단 기억 - 원인이 아니라 '반복'의 배경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런 불리한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는가? 여기서 전후 성공 신화와 집단 기억이 등장한다. 다만 정확히 해둘 점이 있다. 집단 기억은 나가노와 럭비 월드컵 때도 존재했다. 집단 기억은 상수(常數)이고, 결과를 가른 변수는 앞서 본 거버넌스와 인센티브 구조다. 집단 기억은 '왜 지금 실패하는가'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 '왜 실패하는 설계를 반복해서 선택하는가'를 설명하는 배경이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은 통상산업성(通産省) 관료들을 주역으로 한 '발전국가의 성공 스토리'로 신화화되었다. 학계에서는 패전국을 선진국 수준의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에 불탄 관료들의 이야기가, '잃어버린 20년'이 남긴 국민적 우울을 달래는 수단이 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과거의 영광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현실의 상실감과 겹치며, 국민적 희생을 정당화하는 고리로 작동해 왔다.

이 집단 기억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텔레비전이 반복 재생하는 1964년의 영광은 잊히지 않는다. 도쿄 타워, 고속도로, 신칸센으로 상징되는 '쇼와(昭和)'는 미화되었고, 같은 시대의 공해와 사회 갈등은 선택적으로 망각되었다.

집단 기억이 실패를 낳는 경로는 구체적이다. 첫째, 유치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1964년처럼 다시 한번"이라는 서사는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질문을 잠재운다. 둘째, 목적의 변질을 은폐한다. 인프라 예산 확보라는 실제 목적은 '국가적 부흥'이라는 서사 뒤에 숨는다. 셋째, 실패 이후의 학습을 막는다. 과거의 성공을 기준으로 삼는 사회는 현재의 실패를 '운이 나빴다', '코로나 때문이었다'로 설명하고, 구조를 고치지 않는다. 도쿄 올림픽 이후 오사카, 나고야가 같은 패턴을 되풀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신화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이미 30%에 육박하고, 생산연령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청년들이 국가 프로젝트에 자부심을 갖고 뛰어들었다. 지금은 그 청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저성장과 고물가 속에서 국제 행사에 헌신할 동기도 사라졌다. 자원봉사자와 현장 인력의 고령화는 대형 행사를 떠받칠 사회적 기반이 얇아졌음을 보여준다.

1964년의 성공은 '젊고, 가난하고, 함께 성장하던 사회'가 만든 것이었다. 늙고, 부유하고, 성장이 멈춘 사회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6.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 잼버리와 여수 섬박람회, '국가 총력전'의 종언

일본의 실패를 남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구조의 집단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일을 같은 결론으로 묶기 전에, 두 나라의 정치경제적 차이부터 짚어야 한다.

6-1. 다른 구조, 다른 실패 메커니즘

일본의 국제 행사는 자민당-관료-재계로 이어지는 이른바 '철의 삼각형' 속에서 추진되고, 실제 운영은 대형 광고대행사에 위탁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일본의 실패는 위탁 구조가 무너지면서 생긴 노하우의 공동화로 나타났다.

한국은 다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대형 행사는 정권의 성과 과제가 되기 쉽고, 유치와 개최 사이에 정권이 바뀌면 책임 주체가 흐려진다. 여기에 부처별로 쪼개진 소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지자체장의 이해관계가 겹친다. 그래서 한국의 실패는 분절된 거버넌스와 조정 실패로 나타난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여성가족부, 전라북도, 조직위원회가 서로 책임을 떠넘긴 장면이 그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공통분모는 있다. 행사 자체가 아닌 다른 목적이 앞서고, 결과에 책임지는 단일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 구조적 결함을 마지막 순간에 덮어주는 고유한 수단이 있다. 바로 '국가 총력전'이다.

6-2. 한국의 성공 신화 - '국가 총력전'

한국 현대사에서 국제 행사는 언제나 국가적 총력전이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정부, 재벌, 국민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 '개발도상국 한국'을 세계에 알린 무대였다. 2002년 월드컵은 거리 응원이라는 전 국민적 경험으로 기억되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은 행사였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도 정부 주도의 대대적 동원 속에 목표 관람객을 채웠다.

이 모델의 핵심은 간단하다. 목표가 정해지면 공무원, 기업, 학교, 시민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해낸다. 준비가 부족해도, 기획이 허술해도, 마지막 순간의 동원력으로 메운다. 이것이 한국판 '성공 방정식'이었다.

6-3.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 총력전으로 '수습'한 실패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는 이 방정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첫째, 목적의 변질이다. 잼버리는 새만금 개발의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새만금 국제공항은 2019년 잼버리 개최를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고, 행사를 계기로 한 SOC 예산 확보가 지역 정치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정작 참가자들이 머물 야영지는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간척지였고, 그늘 하나 없는 벌판이었다. 일본 오사카 엑스포가 매립지 '유메시마'의 부채 정리와 개발 명분을 위해 추진된 구조와 닮았다.

둘째, 분절된 거버넌스다. 개영식 당일에만 1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위생과 식사 문제가 이어지자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참가국 대표단이 조기 퇴영했다. 여성가족부, 전라북도, 조직위원회로 나뉜 구조 속에서 누구도 전체를 책임지지 않았다. 이후 감사원 감사에서도 준비 과정 전반의 부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노하우가 사라진 일본의 경우와 달리, 권한과 책임이 여러 기관에 흩어져 아무도 조정하지 않은 실패였다.

셋째,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장면은 마지막 수습 방식이었다. 태풍 카눈이 북상하자 정부는 3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전국 각지로 분산 이동시켰다. 대기업 연수원, 대학 기숙사, 종교 시설이 숙소로 동원되었고, 수많은 공무원이 투입되었으며, 폐영식을 겸한 K팝 콘서트는 급히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 치러졌다. 국가의 동원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참가자들은 무사히 귀국했고, 일부에서는 '그래도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총력전은 실패를 수습할 수는 있지만, 성공을 설계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의 동원이 기획 단계의 부실을 덮어버리고, 책임 소재를 흐리고, 같은 실패가 반복될 조건을 남긴다.

6-4.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 같은 실패의 반복

그 우려는 3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9월 5일 개막해 11월 4일까지 열리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는 30개국 참여와 관람객 300만 명을 목표로 총사업비 703억 원을 투입했지만, 개막 전부터 준비 부족 논란에 휩싸였다. 개막 후에는 콘텐츠 부실, 행사장 식당의 '바가지' 논란, 흥행 부진이 연일 도마에 올랐다.

상징적인 장면들이 있다. 전통 노동요인 거문도 뱃노래를 재현한다며 1톤 트럭에 천을 두르고 돛을 달아 배처럼 꾸민 이른바 '트럭배' 공연 영상이 퍼졌고, 1만 4,900원짜리 간장게장 백반이 구독자 60만 명대 음식 유튜버의 리뷰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개막 이후 7억 원의 추경까지 편성되었다. 정치권에서는 "잼버리 실패를 똑같이 반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여수시장은 SNS에서 사실 왜곡과 악의적 모욕에는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수시는 지역 택시업체들에 '택시 운수종사자의 유언비어 유포 금지 등 교육(안내)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박람회 준비 미흡에 관한 유언비어를 택시기사들이 퍼뜨리고 있으며, 그 원인이 수입 감소에 대한 불만일 것이라는 추측이 담겨 있었다.

택시업계의 반발 속에 결국 시장이 공식 사과했다. 박람회 운영에 공무원이 동원된다는 보도,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 현장학습이 진행된다는 보도, 지역 기업들의 후원과 이벤트로 관람객을 끌어올리는 모습도 이어졌다.

공무원을 동원하고, 학생을 동원하고, 지역 기업을 동원하고, 비판하는 목소리의 입을 막는다. 이것은 1980년대식 개발 독재 시대 총력전의 문법 그대로다. 그러나 2026년의 관람객은 동원되지 않는다. 유튜버 한 명의 15분짜리 리뷰가 수백억 원짜리 홍보보다 강력하고, 트럭배 영상 하나가 박람회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6-5. 왜 총력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

국가 총력전 모델은 네 가지 조건 위에서 작동했다.

  1. 젊은 인구와 값싼 헌신: 동원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이 넘쳤고, 그들은 낮은 보상으로도 '국가적 대사'에 헌신했다.
  2. 공유된 국가 목표: '선진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대다수 국민이 공유했기에 동원은 곧 참여로 받아들여졌다.
  3. 위계적 명령 체계: 중앙정부의 지시가 지자체, 기업, 학교까지 일사불란하게 내려갔다.
  4. 통제 가능한 여론: 소수의 방송과 신문이 행사의 이미지를 결정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무너졌다. 한국은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지방은 소멸을 걱정한다. 행사를 떠받칠 젊은 인력은 지방에 없고, 청년 세대는 보상 없는 헌신을 '열정페이'라고 부른다. '국위 선양'은 더 이상 모두의 목표가 아니며, 지자체의 국제 행사는 대개 중앙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기획된다. 여론은 SNS와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형성되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총력전을 반복하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하나는 잼버리처럼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사후 수습에 성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수 섬박람회처럼 동원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느 쪽도 성공이 아니다.

인구 구조의 곡선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훨씬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 일본이 1964년의 기억에 기대듯, 한국은 1988년과 2002년의 기억에 기댄다. 실패의 경로는 다르지만—일본은 노하우의 공동화로, 한국은 분절된 거버넌스와 총력전의 한계로—나고야의 컨테이너 선수촌과 새만금의 뙤약볕 야영지, 여수의 트럭배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행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열리는가?

7. 앞으로의 국제 행사 - 동원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이 전부다

국제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한국은 2027년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를 앞두고 있고, 전북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27년 요코하마 국제원예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이 행사들이 도쿄·오사카·나고야·새만금·여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답은 하나다. 마지막 순간의 동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의 철저한 기획이다.

문제는 "전문 조직을 만들자", "목적을 명확히 하자" 같은 원론이 아니다. 한국에는 이미 국제행사 심사 제도가 있고, 관광공사·체육 단체·지자체 산하 공단 등 조직도 충분하다. 문제는 조직의 부재가 아니라 조정의 실패와 정치적 개입이다. 따라서 처방도 그 지점을 겨냥해야 한다.

7-1. 유치 단계에서 행사와 개발 사업을 분리하라

  • SOC 연계 금지 원칙: 국제 행사를 명분으로 한 공항·도로·개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인프라가 필요하면 그 자체의 타당성으로 심사받아야 한다. 새만금 공항과 잼버리를 한 묶음으로 만든 순간, 잼버리는 공항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 독립적 수요·비용 검증: 유치를 추진하는 지자체가 아닌 제3의 기관이 관람객 예측과 총비용을 검증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 300만 명 목표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유치 단계에서 따져야 한다.
  • 목적 정의서: 이 행사가 성공했는지를 무엇으로 판단할지—참가자 만족도, 재방문 의향, 운영 사고 건수 등—를 유치 단계에서 문서로 확정한다. 럭비 월드컵이 방문객 만족도로 평가받았듯, 성공의 기준이 '예산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7-2. 준비 단계에서 권한과 책임을 한곳에 모아라

  • 단일 책임 주체: 부처·광역지자체·조직위로 쪼개진 구조 대신, 예산 집행과 운영 결정 권한을 가진 단 한 명의 총괄 책임자를 둔다. 권한 없는 책임도, 책임 없는 권한도 허용하지 않는다.
  • 정권·선거 주기와의 분리: 유치부터 개최까지 5~10년이 걸리는 행사의 핵심 운영진은 정권 교체나 지자체장 선거와 무관하게 임기를 보장받아야 한다. 인사가 바뀔 때마다 노하우도 사라진다.
  • 경험의 축적: 새 조직을 만들 필요는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수 엑스포, 각종 국제대회를 치른 실무 인력의 풀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다음 행사 조직위에 우선 배치하는 체계를 만든다. 일본이 겪은 '노하우의 공동화'는 노하우를 한 민간 대행사에 몰아둔 결과였다. 한국은 매번 조직위를 해산하면서 노하우를 흩어버리고 있다. 이미 한국은 잘 된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과 인력이 충분하다. 이들을 하나의 인력 풀로 관리해야 한다. 인공지능 LLM을 이용한 WIKI와 같은 지식 체계로 관리하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

7-3. 실행 단계에서 중간 점검과 '멈출 수 있는 권한'

  • 단계별 독립 점검 게이트: 개막 1년 전, 6개월 전, 3개월 전에 외부 전문가가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결과를 공개한다. 기준에 미달하면 규모 축소나 일정 조정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점검 기구에 부여한다. 잼버리의 폭염 문제는 개막 전부터 경고되었지만, 멈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 테스트 이벤트 의무화: 숙박, 수송, 의전, 국가 연주 같은 기본 운영은 반드시 실전 규모로 사전 검증한다. 나고야의 북한 국가 연주 사고는 리허설 한 번이면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실수다.
  • 기후·재난 시나리오: 폭염, 태풍, 감염병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와 대피 계획을 기획 단계부터 설계한다. 태풍이 오고 나서야 3만 명의 숙소를 찾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임기응변이다.
  • 인구 구조를 반영한 인력 계획: 자원봉사와 동원에 기대는 대신, 필요한 인력을 정당한 보상으로 확보하는 비용을 처음부터 예산에 넣는다. 고령사회에서 '열정'은 더 이상 공짜 자원이 아니다.

7-4. 사후 단계에서 기록하고, 책임을 추적하라

  • 사후 활용 계획의 선행: 시설을 지을 때는 대회 이후 누가, 어떻게, 어떤 비용으로 운영할지 확정된 경우에만 착공한다.
  • 백서와 책임 추적: 모든 국제 행사는 종료 후 실패 사례까지 포함한 운영 백서를 공개하고, 다음 행사 기획의 필수 참고 자료로 삼는다. "그래도 잘 수습했다"로 끝나는 순간, 학습은 멈춘다.
  • 비판을 품질 관리로: SNS와 유튜브의 비판은 입막음할 유언비어가 아니라 가장 빠르고 값싼 현장 피드백이다. 택시기사에게 입단속 공문을 보낼 시간에, 트럭배 영상을 보고 공연을 고쳤어야 했다.

철저한 기획이란 결국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실패의 가능성을 모두 상상하고, 그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매뉴얼의 나라 일본이 과거에 잘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지금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것이다.

과거 국제 행사를 했던 인력이 노령화됨에 따라 이런 노하우, 암묵지를 인공지능 LLM을 이용한 위키 체계로 정리하고 부족한 행사 관리 시스템으로 활용해야 한다.

8. 종합 전망 및 결론

나가노 동계올림픽, 한일 월드컵, 럭비 월드컵에서 모범적인 운영 능력을 보여주었던 일본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땜질식 운영과 속내 중심의 이익 추구에 빠졌다. 일본의 국제 대회 실패는 개별 행사의 운영 미숙이 아니라, 목적의 변질과 거버넌스 붕괴라는 구조적 문제이며, 전후 성공 신화와 집단 기억은 그 구조를 반복해서 선택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철저한 매뉴얼의 나라 일본이 실패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회의 목적이 '국제 행사의 성공'이 아니라, 그 행사로 달성하려는 '정치적·경제적 부수 목적'에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목적이 명확하고 세심하게 기획될 때만 작동한다. 럭비 월드컵이 이를 증명했고, 도쿄·오사카·나고야가 그 반대를 증명했다. 목적이 변질되고 책임이 흐려지면 매뉴얼은 형해화되고, 거버넌스는 무너진다.

이것을 곧바로 '일본 국력의 몰락'으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의 경제대국이며, 반도체 장비와 소재, 자동차, 로봇 등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나고야의 파행이 보여주는 것은 국력 전체의 하락이라기보다 국력의 분포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기업과 현장의 역량은 여전히 강하지만, 여러 주체를 하나의 목적 아래 조정하던 국가의 능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리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그 약화된 조정 능력이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완충재—젊은 인력의 헌신—마저 빼앗아 가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경로는 다르지만, 행사 자체가 아닌 다른 목적이 앞서고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은 일본과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 결함을 '국가 총력전'이라는 담요로 덮어 왔다. 국가 총력전은 가난하고 젊은 나라가 부자 나라를 따라잡을 때 쓰던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한때 기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실패를 덮는 담요가 되었다.

새만금과 여수가 보내는 경고를 '이번에도 결국 수습했다'는 안도감으로 덮는다면, 한국은 일본이 걸어간 길을 조금 늦게, 그러나 더 빠른 속도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 행사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총력전이 아니다. 개막 전에 모든 실패를 상상하고 지워나가는 철저한 기획, 그리고 총력전 없이도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