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다리의 전태일 흉상

서울 전태일다리의 전태일 흉상. 사진 Dalgial,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10월 2일

바리캉 소리로 시작되던 아침

1987년 여름,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의 아침은 바리캉 소리로 시작되었다. 경비원은 출근하는 노동자의 목덜미를 붙잡고 뒷머리를 밀었다. 머리가 길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업복을 입은 채 집을 나서고 작업복을 입은 채 돌아오는 날들이었다. 공장 안의 말투는 명령이었고, 사람은 번호로 불렸다.

그해 여름 노동자들이 써 내려간 요구서의 첫 줄에는 임금이 적혀 있지 않았다. 첫 줄은 두발 자유화였다. 임금 인상은 여덟 번째였다.

머리카락을 내 뜻대로 기를 자유. 출근길에 내가 고른 옷을 입을 자유. 그것이 월급봉투보다 앞에 놓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들이 먼저 되찾고 싶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의 요구서

요구서는 세 갈래의 물줄기로 흘렀다.

첫째는 민주노조였다. 회사가 만든 노조를 '어용노조'라 부르며 물러가라 했고, 노동자가 스스로 뽑은 대표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는 노조를 세우자고 했다. "어용노조 물러가고 민주노조 설립하자." 그 구호가 조선소의 쇳소리를 덮었다.

둘째는 사람다운 일터였다. 두발 자유화와 복장 자율화, 산업재해를 입은 동료를 위한 목욕탕과 이발소, 작업 환경 개선, 3박 4일의 유급휴가, 출근 시간 조정, 사원주택 증설. 군대처럼 굴러가던 일터에 숨 쉴 틈을 내달라는 요구였다.

셋째는 정당한 몫이었다. 임금 25% 인상(이후 17%로 수정), 8시간 일해서 살 수 있는 생활임금, 고과차등제와 상여금 차등지급제 폐지, 가족수당과 자녀 학자금, 여성 생산직 근속수당, 대졸과 고졸 사이의 임금 격차 해소.

오늘 이 목록을 다시 읽으면 낯설 만큼 평범하다. 머리 길이를 회사가 정하지 않는 것, 휴가를 떠나는 것, 아이의 학비를 보태 받는 것. 지금 이것을 위해 파업을 한다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이, 서른아홉 해 전에는 몸을 던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광장에서 공장으로

1987년 6월, 거리의 시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함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광장에서 타오른 불은 7월과 8월과 9월을 지나며 공장 문턱을 넘었다. 울산에서 시작된 불씨는 석 달 만에 전국 수천 개의 일터로 번졌다.

아버지들이 원한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공장 담장 안에서도 나는 국민이고, 시민이고, 사람이라는 것. 투표소에서 누리는 존엄을 작업대 앞에서도 누리고 싶다는 것. 정치의 민주주의가 일터의 민주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절실한 바람이었다.

평화시장의 낮은 천장

그러나 1987년의 요구서조차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보다 고작 17년 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는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낮은 다락방이 있었다. 열서너 살 소녀들이 '시다'라는 이름으로 하루 열네 시간이 넘도록 미싱 곁에 앉아 있었다. 창문도 환풍기도 없는 방에서 실밥 먼지를 마시며 폐가 병들어 갔다. 하루 품삯은 차 한 잔 값 남짓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그 다락방에, 재단사 전태일이 있었다.

흑백의 청년, 컬러의 기억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년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홍경인이 전태일을, 문성근이 그의 삶을 기록하는 지식인 김영수를 연기했다.

영화는 두 개의 시간을 겹쳐 놓는다. 1975년, 유신의 어둠 속에서 수배를 피해 숨어 지내는 김영수가 전태일의 흔적을 좇아 평전을 써 내려가는 현재는 컬러로 흐른다. 그가 되살려내는 1960년대 전태일의 삶은 흑백으로 펼쳐진다. 김영수에게는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살아남은 자의 시간에는 색이 있고, 떠난 자의 시간에는 색이 없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흑백의 시간이 더 선명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흑백 화면 속 전태일은 가난한 집의 맏아들이다. 시다에서 미싱사로, 미싱사에서 재단사로 올라선 그는 자기보다 어린 여공들이 굶주린 채 쓰러지는 것을 본다.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서 나눠 주고, 자신은 몇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그는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이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루 8시간 노동, 휴일, 건강진단. 법전에는 다 적혀 있었다. 다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을 뿐이다.

한자투성이 법전을 홀로 넘기며 그는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동료 재단사들과 '바보회'를 만들고, 평화시장의 실태를 설문으로 조사해 노동청과 신문사에 호소했다. 돌아온 것은 해고와 외면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품에 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것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영화가 남긴 세 개의 문장

하나, 그는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 영화는 그를 동상으로 세우지 않는다. 배고픈 동생들을 걱정하고, 누군가를 남몰래 좋아하고, 어려운 법전 앞에서 막막해하는 스물두 살의 젊은이로 그린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은 더 깊이 아프다.

둘, 그가 요구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무기가 아니라 법전이었다. 국가가 스스로 써 놓은 약속을 지키라는 것. 그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위해 그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셋, 기억하는 일 또한 싸움이다. 1975년의 김영수는 쫓기는 몸으로 전태일을 기록한다. 아들의 뜻을 평생 이어간 어머니 이소선, 곁을 지킨 동료들, 그리고 그를 글로 남긴 이들이 있었기에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한 시대의 양심이 되는지, 영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유산

1970년, 전태일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지키라고 외쳤다. 1987년, 울산의 노동자들은 머리를 기를 자유와 유급휴가를 요구했다. 2026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공기처럼 누린다.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거저 주어진 줄 안다. 그러나 이 '당연함'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햇빛 없는 다락방의 소녀들, 불길 속의 청년, 바리캉 앞에서 고개를 들었던 아버지들이 긴 세월과 큰 값을 치르고 물려준 유산이다.

유산은 지키지 않으면 사라진다. 당연함은 잊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락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평화시장의 다락방은 정말 사라졌을까. 어쩌면 자리를 옮겼을 뿐인지도 모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곳곳에서 약 2,760만 명이 강제노동에 묶여 있다고 추산한다. 강제노동이 해마다 만들어내는 불법 이익은 2,360억 달러에 이른다. 2025년 ILO와 유니세프가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노동에 내몰린 아이들은 약 1억 3,800만 명이었고, 그중 5,400만 명은 몸과 마음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다. 2000년의 2억 4,600만 명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세계가 약속했던 '2025년까지 아동노동 근절'이라는 목표는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숫자는 차갑다.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고, 저녁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밀라노와 프라토의 작업장

'메이드 인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과 오랜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문장 뒤에도 낮은 천장이 있었다.

2024년 4월, 밀라노 법원은 조르조 아르마니의 생산 법인을 사법 관리 아래 두었다. 아르마니의 협력업체였던 마니파투레 롬바르데(Manifatture Lombarde)는 자체 작업장도 없이 생산을 밀라노 외곽의 중국계 작업장에 다시 맡겼고, 그곳에서는 중국과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이 안전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는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일했다. 신고된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시급 2~3유로에. 계약서에는 윤리 강령과 재하청 금지 조항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평화시장의 근로기준법처럼, 약속은 종이 위에만 있었다.

이후 디올, 로로피아나 등의 생산 법인이 같은 이유로 사법 관리를 받았고, 2025년 말 밀라노 검찰의 수사는 프라다, 지방시, 돌체앤가바나 등 13개 브랜드로 넓어졌다. 그리고 2026년 7월, 이탈리아 경찰은 불가리, 샤넬, 브루넬로 쿠치넬리, 에트로, 몽클레르 등 여러 명품 브랜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브랜드가 협력업체에, 협력업체가 하청업체에, 하청업체가 다시 이름 없는 작업장에 일을 넘기는 사슬. 그 끝에는 피렌체 인근 프라토 같은 도시의 작업장에서 일하고, 먹고, 잠드는 이주 노동자들이 있었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의 가죽 냄새 속에, 시급 3유로의 땀 냄새가 배어 있었다.

버지니아의 야간 교대조

대서양 건너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 해안의 한 가금류 가공 공장. 밤이 깊으면 피와 기름으로 범벅이 된 기계를 닦는 청소 교대조가 들어왔다.

2022년 2월, 그 교대조에서 한 소년이 기계를 청소하다 팔을 크게 다쳤다. 그는 열세 살에 성인의 이름을 빌려 고용되었고, 사고 당시 열네 살이었다. 공장의 청소 하청업체 페이엣(Fayette)은 이 공장과 아이오와주의 육가공 공장에서 최소 24명의 아이들을 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어린 아이는 열세 살이었다. 2025년 11월에는 위조 신분증으로 미성년자와 미등록 이주민을 고용한 혐의로 관련자들에 대한 연방 기소장이 공개되었다.

열네 살. 평화시장 다락방의 시다들과 같은 나이였다.

부산의 도로 위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도. 2025년 가을, 부산의 배달 노동자 단체는 청소년들이 어른 명의의 계정을 빌려 배달에 나서는 편법 고용 실태를 고발했다. 플랫폼은 미성년자의 배달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그 금지는 하청과 대행의 사슬 어딘가에서 흐려졌다. 면허도 없이 오토바이에 오른 아이들, 오토바이 값을 빚으로 떠안고 다시 도로로 나서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슬의 끝에 선 사람들

1970년 서울의 다락방과 2024년 밀라노의 작업장, 2022년 버지니아의 야간 교대조와 2025년 부산의 도로. 시간도 장소도 언어도 다르지만, 그 모양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원청은 하청에게, 하청은 다시 하청에게 책임을 넘긴다. 사슬이 길어질수록 책임은 엷어지고, 사슬의 맨 끝에는 법의 햇빛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남는다. 이주민이고, 아이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평화시장 다락방의 차 한 잔 값과 명품 공급망의 시급 3유로는 규모가 다를 뿐 같은 문법으로 쓰여 있다.

사슬은 너무 길어서, 우리는 그 끝을 보지 못한다. 가방을 들고, 닭고기를 먹고, 배달 음식을 받으면서도 그 물건을 만든 손을 떠올리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것은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것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에게 아직 전태일이 필요한 이유

밀라노의 노동자에게도, 버지니아의 소년에게도, 부산의 청소년에게도 전태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전태일이 했던 일이다.

그는 읽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던 법전을 홀로 넘기며, 이미 약속된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는 기록했다. 동료들과 함께 다락방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해고와 외면이 돌아와도, 더 크게 말할 방법을 찾았다.

2026년의 우리에게도 같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쓰고 입고 먹는 것들이 어떤 손에서 왔는지 묻는 일. 그 대답을 기록하고 함께 나누는 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일.

노동의 권리는 한 나라의 것이 아니다. 피곤한 몸을 누일 시간, 다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권리, 아이가 일터가 아닌 교실에 있을 권리. 이것은 서울에서도 밀라노에서도 버지니아에서도 똑같이 무겁다.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말은, 어디에 있든 누구든 같은 값으로 존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선언이 아니라, 사슬의 가장 먼 끝에 서 있는 한 사람에게 실제로 닿을 때에만 참이 된다.

맺으며 — 『전태일 평전』이 남긴 말

조영래 변호사는 군사정권의 서슬 아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한 채 이 책을 썼다. 1983년 처음 이 땅에서 출간되었을 때 저자는 '미상'이었고, 그의 이름이 표지에 실린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름을 숨긴 채 다른 이의 이름을 지켜낸 책. 그 책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세 가지로 모인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는 쏟아낸 생산량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의 존엄에서 나온다.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 전태일은 자기보다 약한 어린 여공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을 '전체의 일부'로 여기는 마음이 거듭 적혀 있다. 그는 혼자 구원받는 길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물었다.

잊지 말아 달라.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모르는 모든 나. 그 말은 지금 다시 읽으면 국경을 넘는다. 프라토의 작업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낯선 이도, 버지니아의 밤 공장에서 기계를 닦던 소년도, 부산의 밤길을 달리는 아이도, 전태일에게는 '나를 모르는 나'였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그 부탁을 잊지 않았다. 1987년 울산에서, 그리고 전국의 공장에서 그들은 전태일이 남긴 질문에 각자의 몸으로 답했다. 이제 그 질문은 우리 손에 건네져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당연함의 바깥, 햇빛이 들지 않는 어느 다락방에 아직 누군가 앉아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그를 '나'로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에게 아직 전태일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전태일이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아직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일담

하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7,648명의 시민이 모은 후원금으로 제작되었고, 그 이름들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모두 실렸다. 한 청년을 기억하기 위해 수천 명이 자기 이름을 내어준 영화다.

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 40년 넘게 노동 현장을 지켰다. 노동자들은 그를 '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렀다. 그는 201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셋. 『전태일 평전』은 첫 출간 이후 40년이 넘도록 읽히고 있다. 다락방은 모양을 바꾸어 남아 있고, 그래서 이 책은 아직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참고 자료

  • ILO·UNICEF, Child Labour: Global Estimates 2024, Trends and the Road Forward (2025.06)
  • ILO·Walk Free·IOM, Global Estimates of Modern Slavery: Forced Labour and Forced Marriage (2022)
  • ILO, Profits and Poverty: The Economics of Forced Labour (2024)
  • FashionUnited / AFP, "Italian court targets Armani over labour violations" (2024.04)
  • Reuters, "Italian court lifts controls placed on Armani company over labour practices" (2025)
  • Bangkok Post / Reuters, "Italian police raid luxury brands Bulgari and Chanel over exploitation of Chinese workers" (2026.07.17)
  • RetailDetail, "Police raid Chanel, Moncler, and 9 other brands over exploitation allegations" (2026.07.17)
  • WRIC / WAVY, "Federal indictment alleges contractor employed child laborers, false IDs at Eastern Shore poultry plant" (2025.11)
  • Meatingplace, "Indictment Details Sanitation Company's Alleged Hiring of Minors at Poultry Plant" (2025)
  • 뉴스1, "부산 라이더유니온, 배달플랫폼 '청소년 편법고용' 해결 촉구" (2025.09.24)
  • 우리역사넷, "전태일 — 한국사회에 노동자 인권의 불꽃을 밝히다"
  • 조영래, 『전태일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