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나란히 선 공식 사진

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이재명 대통령. 제청권과 임명권이 같은 조문을 정반대로 읽고 있다.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9월 23일

1. 사건의 전개 - 서면 제청에서 재제청 거부까지

노태악 전 대법관은 2026년 3월 3일 퇴임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그보다 앞선 1월 21일 김민기, 박순영, 손봉기, 윤성식 판사 4명을 후임 후보로 추천했다. 통상 추천 후 2주 안팎이면 제청이 이뤄지지만, 제청은 반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 후보를 둘러싼 의견 불일치가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2026년 8월 18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관례상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에 의견이 일치하는 후보를 추리고,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대면으로 최종 제청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성수 후보에 대해서만 협의가 있었고 손봉기 후보는 협의 없이 서면으로 제청됐다.

청와대는 8월 28일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사전 협의 관행이 임명권자와 제청권자 어느 한쪽의 의사만으로 최고법원이 구성되는 일을 막아 온 절차적 장치이며, 사법부가 이를 저버린 것은 사법부 독립의 근거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법원행정처가 제청 직전 추천 후보자들에게 개별 연락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을 타진한 점,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측면도 문제로 들었다.

그리고 9월 22일,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청을 공식 거부했다. 그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 한다는 헌법 제82조를 근거로, 8월 28일자 요청 문서에 재제청의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고 달리 이를 정당화할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약 30분 만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는 제청권이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으로 헌법에 위배되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당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했고, 범여권 법제사법위원들은 이를 "사법쿠데타"로 규정했다.

2. 갈등의 뿌리 - 헌법 제104조 제2항의 침묵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규정한다.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지, 거부한다면 어떤 형식과 사유를 갖춰야 하는지, 재제청 요청에 대법원장이 응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 조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거나 후보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하위 규범을 보면 추천위원회는 후보를 추천한 뒤 해산하도록 되어 있어, 제청이 거부될 경우의 후속 절차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이 빈칸을 채워 온 것이 관례였다. 제청권과 임명권을 서로 다른 헌법기관에 나눠 준 취지는 어느 한쪽이 최고법원 구성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고, 사전 협의는 그 취지를 실무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였다. 독재 시대의 사법 살인의 폐해를 기억했던 1987년 헌법은 사법의 독립과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조문이 침묵하는 곳에서 관례가 헌법의 정신을 대신 말해 온 셈이다. 이번 사태는 그 관례가 깨지자 양측이 같은 조문을 정반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벌어졌다.

3.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치킨 게임과 반복 게임의 교훈

이 대치는 전형적인 치킨 게임이다. 좁은 외길에서 마주 달리는 두 운전자 중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겁쟁이'가 된다. 치킨 게임의 순수전략 내시 균형은 "한쪽은 꺾고 다른 쪽은 직진하는" 비대칭 상태 두 가지다. 양쪽이 모두 직진하는 정면충돌은 균형이 아니라 양측 모두에게 최악인 결과다. 문제는 두 균형 가운데 어느 쪽이 실현될지를 두고 양측이 모두 "상대가 꺾어야 한다"고 믿을 때, 결과적으로 최악의 충돌로 치닫는다는 점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을 맞이했다.

양측이 직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정치적 다른 입장이 있는 대법원장의 입장에 있다. 청와대가 손 후보자를 받아들이면 "제청만 하면 대통령은 도장만 찍는다"는 선례가 남는다. 대법원장이 재제청에 응하면 "행정부가 거부하면 사법부는 후보를 바꾼다"는 선례가 남는다. 양측 모두 양보의 비용을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인선에 걸쳐 계산했기에 양보는 쉽지 않다.

여기에 죄수의 딜레마 구조도 겹친다. 양측이 협력(사전 협의 복원)하면 공석 해소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지만, 내가 협력했는데 상대가 배신하면 큰 손실을 입는다는 불신이 협력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대법관 인선은 일회성 게임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질 반복 게임이다. 반복 게임에서는 평판이 핵심 자산이 되고, 협력 관행을 먼저 깬 쪽은 이후 모든 라운드에서 신뢰 비용을 치른다. 동시에 반복 게임은 양측이 함께 수렴할 수 있는 초점(focal point), 즉 토머스 셸링이 말한 "모두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합의 지점"이 있을 때 풀린다. 이번 사태에서 그 초점은 새로 발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수십 년간 작동해 온 '사전 협의 후 대면 제청'이라는 관행 자체가 초점이다.

4. 행동 경제학 - 손실 프레임과 선택적 일관성

손실 회피.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약 두 배 이상 크게 느낀다. 청와대는 "임명권을 빼앗긴다", 대법원장은 "제청권이 무력화된다"는 손실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합의로 얻을 수 있는 것(공석 해소, 사법 신뢰 회복)보다 양보로 잃을 것(권한과 체면)을 훨씬 크게 체감한다.

프레이밍 효과와 적대적 귀인. 같은 재제청 요청이 한쪽에서는 "임명권의 정당한 행사", 다른 쪽에서는 "제청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포장된다. 재제청 거부 발표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예고 없이 나왔다는 점을 두고 시점 논란이 인 것도, 상대의 의도를 적대적으로 읽는 적대적 귀인 편향이 이미 양측에 깊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택적 일관성의 비용.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여기다. 조 대법원장은 윤석열 정부 시기 다섯 명의 대법관을 제청하면서 관례대로 대통령실과 사전 협의와 대면 제청을 거쳤다. 이번에도 김성수 후보에 대해서는 협의를 거쳤다. 그런데 손봉기 후보에 대해서만 협의 없이 서면 제청을 했고, 이제 "협의 의무는 헌법에 없다"는 논리로 재제청을 거부하고 있다.

원칙은 일관되게 적용될 때만 원칙으로 인정받는다. 정권에 따라, 혹은 같은 날 제청한 두 후보 사이에서조차 협의 여부가 달라진다면, "헌법상 협의 의무는 없다"는 주장은 원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주장의 내용보다 주장하는 사람의 일관성을 보고 신뢰를 판단한다. 선택적인 이의 제기는 그 자체로 명분을 약화시킨다. 사법 독립이라는 대의가 옳다 해도, 그 대의를 내세우는 방식이 일관되지 않으면 대의까지 함께 의심받는다.

5. 심리학으로 보는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반응적 평가절하

인지 부조화. 양측은 모두 자신이 헌법을 수호하고 상대가 헌법을 위반한다고 믿는다. 이미 공개적으로 강한 입장을 밝힌 이상, 물러서는 것은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법쿠데타',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 같은 수사가 오갈수록 입장을 바꾸는 심리적 비용은 커지고 출구는 좁아진다.

확증 편향. 여권은 조문의 "대통령이 임명한다"에, 대법원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에 방점을 찍는다. 같은 문장에서 각자 보고 싶은 부분만 읽는다.

반응적 평가절하. 같은 제안이라도 상대가 내놓으면 가치가 깎여 보인다. 청와대의 "다른 후보를 재제청하라"는 요구는 대법원에게 간섭으로 보이고, 대법원이 추천위원회 재구성을 제안하면 청와대에게는 시간 끌기로 보인다. 그래서 이 교착은 당사자끼리의 제안만으로는 풀리기 어렵고, 제3자가 설계한 틀이나 양측이 동시에 수용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6. 최적의 출구 전략

6.1 청와대의 출구

① 사유와 근거를 부서된 공식 문서로 다시 보내기. 조 대법원장의 거부 논리는 "문서에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절차적 흠결에 크게 기대고 있다. 청와대가 협의 관행의 헌법적 의미, 손 후보자 제청 과정의 문제점, 대법원 구성 다양성에 대한 판단을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 명시해 다시 요청하면, 대법원장의 거부 명분은 상당 부분 사라진다. 비용은 거의 들지 않으면서 공을 상대 코트로 넘기는 수다. 게임 이론으로 말하면 상대가 버티는 근거를 제거해 상대의 '직진' 보수를 낮추는 전략이다.

② 국회 동의 절차로 넘기기.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고 판단을 국회 동의권에 맡기는 방식이다. 가결되면 공석이 해소되고, 부결되면 대법원장은 헌법 절차에 따라 새 후보를 제청해야 한다. 헌법적으로 가장 깔끔한 경로지만, 헌정사 첫 대법관 임명동의안 부결이라는 정치적 부담과 "여당이 의석으로 사법부 인사를 좌우했다"는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국회 동의는 대통령의 레임덕을 걸어야하는 최악의 수이다.

6.2 대법원의 출구

① 기존 추천 후보군 안에서 협의를 거친 재제청. 이미 추천된 김민기, 박순영, 윤성식 후보 가운데서 청와대와 협의해 제청하면, 대법원장은 추천위를 통해 형성된 후보군을 존중했다는 명분을, 청와대는 협의 관행 복원이라는 실리를 얻는다. 청와대가 앞의 ①처럼 사유를 명시한 문서를 먼저 보낸다면, 대법원장은 "헌법적 근거가 제시되었으므로 응한다"는 체면을 지키며 물러설 수 있다.

② 추천 절차 재진행. 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후보를 다시 받는 방식이다. 다만 청와대가 이미 이 방안을 "정당하게 추천된 후보를 배제하는 것"이라며 문제 삼은 바 있고, 수개월이 더 걸린다는 점에서 협의 없이 추진하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6.3 양측이 동시에 핸들을 꺾는 방법

치킨 게임의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동시 양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순서는 이렇다. 청와대가 사유와 근거를 명시한 부서 문서로 재제청을 요청하고, 대법원장은 같은 날 기존 후보군 안에서 대면 협의 일정을 잡는다고 발표하며, 양측은 향후 인선 절차를 법률로 명문화하는 데 협력한다는 공동 입장을 낸다. 국회의장 같은 제3자가 이 순서를 중재하면 반응적 평가절하도 줄일 수 있다. 누가 먼저 꺾었는지가 흐려져야 둘 다 꺾을 수 있다.

7. 사법 공백은 국민이 치르는 대가가 되고 있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는 200일 넘게 비어 있고, 9월 이흥구 대법관 퇴임 이후 한때 공석은 두 자리였다. 김성수 대법관이 9월 21일 임명되며 한 자리는 채워졌지만, 나머지 한 자리의 공백은 계속되고 있다. 대법관 한 명이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구조에서 한 자리의 공백은 곧 재판 지연이다. 전원합의체 사건의 선고 일정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권한 다툼에서 누가 이기든, 그 사이 늦어진 재판은 되돌릴 수 없다. 그 비용은 권리 구제를 기다리는 개인과 불확실성을 떠안는 기업, 그리고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8. 행위자 분석을 통한 시나리오 전망

아래 전망은 공개 보도와 양측의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에 기반한 필자의 분석이다. 확률은 판단을 수치로 표현한 주관적 추정치이며 예언이 아니다.

8.1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동 패턴으로 본 성향

조 대법원장의 행보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첫째, 긴 침묵 뒤의 기습적 결단. 2026년 초 사법개혁 3법 통과 과정에서 "개헌 사항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한마디를 남긴 뒤 여권의 사퇴 압박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노태악 후임 제청은 반년 넘게 미루다 협의 없는 서면 제청으로 전격 처리했고, 재제청 요구 이후에도 "다음 주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뒤 3주 넘게 침묵하다 예고 없이 거부 입장문을 냈다. 출퇴근길 질문에는 거의 답하지 않는다. 말로 논쟁하기보다 상대가 방심하거나 최선의 타이밍일 때 행동으로 기정사실을 만드는 스타일이다.

둘째, 절차와 형식을 무기로 쓰는 법률가적 논법. 재제청 거부의 핵심 논거는 "부서된 문서에 사유와 근거가 없다"는 형식 요건이었다. 실체 판단(손 후보자가 적합한가)보다 절차 판단(요청이 적법한 형식을 갖췄는가)으로 싸움의 장을 옮기는 방식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형식이 갖춰지면 명분이 약해지는 구조를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셋째,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을 사법 독립의 증거로 여기는 태도. 2025년 대선 국면의 공직선거법 사건 판결 이후 청문회, 특검법, 탄핵 거론, 사퇴 요구가 이어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이를 원칙과 사법 독립 수호로, 비판자들은 '사법 정치'로 본다. 어느 쪽 해석이든, 외부 압박이 커질수록 양보 가능성이 낮아지는 성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넷째, 임기의 시계. 조 대법원장은 내년 6월 정년으로 퇴임한다. 남은 기간이 짧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버티기의 개인적 비용이 크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남길 '선례'에 더 무게를 둘 유인이 크다는 것이다.

8.2 청와대와 여권으로 본 앞으로 스탠스와 계산

첫째, 공개 문서와 즉각 반박. 청와대는 8월 28일 공식 브리핑으로 재제청을 요청했고, 9월 22일에는 30분 만에, 이어 오후에 한 번 더 반박했다. 수위는 높지만 표현은 "유감",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으며, 9월 21일 김성수 대법관 임명식에서는 조 대법원장과 차담을 나누는 등 파국은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둘째, 청와대와 당의 역할 분담. 청와대가 헌법 논리로 대응하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사퇴 촉구, 공수처 고발, 법사위 출석 요구, 탄핵 거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손보는 법원조직법 개정 추진 등 강경 카드를 맡고 있다.

셋째, 시간은 청와대 편이라는 계산. 게임 이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다. 조 대법원장이 내년 6월 퇴임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임 대법원장을 지명하고, 새 대법원장이 공석을 제청하게 된다. 청와대에게는 "기다리기"라는 외부 옵션이 있다. 공석 장기화의 책임을 대법원장에게 돌릴 수 있는 한, 서둘러 양보할 이유가 약하다.

청와대가 절차적 정당성을 담아 반론을 담은 문서를 보내고 이를 언론에 공개한 다음 시간을 두면 된다. 결국 이 문제는 개헌의 불씨가 될 것이며 대법원의 위상이 스스로 손상되는 일로 귀결 될 것이다. 그 어느 경우던지 대법원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맞서서 단기적으로 이익이었지만 중장기적으로 힘이 빠지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8.3 시나리오별 전망

시나리오 내용 추정 확률
A. 장기 교착 양측 모두 입장 유지. 공석이 조 대법원장 퇴임(2027년 6월) 무렵까지 이어지고, 차기 대법원장이 제청 약 40%
B. 형식 보완 후 절충 청와대가 부서된 문서로 사유를 명시해 재요청하고,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군(김민기·박순영·윤성식) 중에서 협의 후 제청 약 25%
C. 국회 부결 경로 청와대가 손 후보자 동의안을 국회에 보내고 국회가 부결, 대법원장이 새로 제청 약 15%
D. 추천위 재구성 대법원장이 추천위를 새로 꾸려 새 후보를 제청(법 개정과 맞물릴 가능성) 약 10%
E. 손 후보자 수용 청와대가 손 후보자 동의안을 그대로 국회에 제출하고 가결 약 10%

A가 가장 유력한 이유. 조 대법원장의 성향(압박이 커질수록 버틴다)과 청와대의 계산(시간이 우리 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양측 모두에게 "기다리는 비용"보다 "양보하는 비용"이 크게 인식되는 한, 치킨 게임은 충돌 상태로 굳어진다.

B가 두 번째인 이유. 조 대법원장이 거부의 근거를 실체가 아닌 형식에 둔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체면을 지키며 물러설 수 있는 문을 남겨 둔 것이다. 청와대가 형식을 갖춰 다시 요청하는 순간 "근거가 제시되었으니 응한다"는 출구가 열린다. 김성수 대법관 임명식 차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대화의 끈이 완전히 끊기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만 청와대가 "원래 문서로 충분했다"는 입장을 굽히는 부담이 있어, 누군가 중재해 주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C는 헌법상 가장 깔끔하지만 정치적으로 무겁다. 여당 의석으로 부결은 가능하지만, 헌정사 첫 부결의 부담과 "사법부 길들이기"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D와 E는 가능성이 낮다. D는 청와대가 이미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E는 청와대 입장에서 이번 싸움의 핵심인 '협의 관행'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 사실상 패배 인정이다.

8.4 제도와 관행이 만드는 협치의 필요성

어느 시나리오든 인선 다툼은 제도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추진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운영 방식 개편, 법원행정처 폐지론, 대법원장 권한 분산 논의가 속도를 낼 것이다. 탄핵소추는 계속 거론되겠지만, 헌법재판소 심판에 걸리는 시간과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실익보다 정치적 메시지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본다.

제도는 사람이 운영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관례와 상호 존중으로 작동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누가 깼는가의 문제 전에 본질적으로 모호한 제도와 관행은 한번 짚고 갈 필요성은 있다.

8.5 앞으로 지켜볼 신호

  • 청와대가 부서된 문서로 재요청하는가? 이것이 나오면 시나리오 B의 확률이 크게 오른다.
  • 10월 국정감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한 질의가 충돌의 증폭 무대가 될지, 물밑 조율의 계기가 될지.
  • 법원조직법 개정안 처리 속도. 추천 절차 개정이 빨라지면 대법원장은 "법 개정 후 새 절차로"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 대통령의 직접 발언 여부.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히면 양측 모두 물러설 공간이 줄어든다.
  • 법원 내부 여론. 판사 사회에서 공석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대법원장의 버티기 비용이 올라간다.

9. 맺으며, 모호한 규정은 고치고, 관례의 정신은 살려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헌법 제104조 제2항이 제청권과 임명권이 충돌할 때의 절차를 비워 두었다는 데 있다. 헌법 개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 제청 전 협의 절차의 명문화,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서면 사유 제시 의무, 재제청 요청의 횟수와 처리 기한, 기한이 지났을 때의 처리 방식을 법률로 정하면, 다음 대통령과 다음 대법원장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다만 특정 인선 갈등의 한복판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제도를 바꾸면 그 자체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개정은 여야와 사법부가 함께 설계하고, 현 사태가 아닌 다음 인선부터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법은 모든 경우를 미리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관례가 존재한다.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지켜 온 사전 협의는 법적 의무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서로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신호였고, 최고법원의 구성을 어느 한 권력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조 대법원장 자신도 윤석열 정부에서 그 관례를 지켰고, 이번에도 한 후보에 대해서는 지켰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관례가 법적 의무인지를 따지는 논쟁이 아니라, 관례가 지켜 온 협치와 존중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복 게임에서 협력은 배신보다 우월한 전략이다. 먼저 관례를 복원하는 쪽이 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부터 신뢰라는 자산을 쥐게 될 것이다.

참고 자료

재제청 거부 (2026.09.22~23)

재제청 요청 (2026.08.28)

서면 제청과 제도 개편 논의 (2026.08)

배경 (2025~2026 상반기)

초안 수록, 링크 미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