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元通行寶鈔(지원통행보초) 교판과 인쇄본 — 교초·기축통화 칼럼 썸네일

원나라의 교초(交鈔)는 은과 바꿔주겠다는 약속으로 출발했다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맞고 휴지가 되었다. 로마의 데나리우스는 은 95%로 출발했다가, 은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서서히 같은 결말에 도달했다. 달러는 1971년에 금 태환을 중단했지만, 아직 휴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 화폐 이론(MMT)은 애초에 태환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 갈래 길은 결국 한 구석으로 모인다. 국가가 화폐를 '지켜야 할 신용'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지름길'로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관점의 변화이다. 이 글은 그 구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달러만 왜 아직 제국의 멸망, 제정의 몰락에서 벗어나 무사한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1. 은과 바꿔주겠다는 약속이 만든 태환 증서, 교초의 탄생

원나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폐를 유일한 법정통화로 삼은 국가였다.

송나라의 '교자(交子)'가 무거운 철전(鐵錢)의 교환권에 불과했던 반면, 원나라의 교초는 처음부터 순수한 통화로 발행되었다. 1260년 쿠빌라이 칸은 '중통원보교초(中統元寶交鈔)'를 전국에 유통시키며 금은동의 유통을 전면 금지했다. 제국 전역에서 오직 교초만이 통용되었고, 세금도 교초로만 납부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이 광경을 보고 이 종이가 순금과 다름없이 통용된다며 감탄했다.

교초는 뽕나무 껍질 내피에 아교를 섞어 제작했고, 동판에 황제의 옥새를 찍어 위조를 막았다. 위조자는 사형, 고발자에게는 상금. 보안에는 그만큼 공을 들였다.

쿠빌라이 칸은 각 지역에서 과거 한족의 제국과 그 전 5호16국이 만든 동전이 폐기되지 않고 유통되었다. 이는 국가 권력과 재정 능력에 한계점이 있었다.

쿠빌라이 칸이 기존의 금·은·동화를 폐지하고 지폐(교초, 交鈔)만을 강제로 통용시킨 이유는 크게 실용적 필요성,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국가 권력 강화라는 세 가지 목적이 결합된 결과였다.

실용적 필요성 - 금속 화폐의 근본적 한계

  • 금속(동) 부족: 당시 중국 북부 지역은 동(구리)이 귀해 동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거래의 불편함: 원나라는 거대한 제국으로, 무거운 금속 화폐로는 대규모 원거리 상업 거래를 처리하기에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 화폐 통일의 필요성: 과거 중원에 있던 제국의 다양한 기존 화폐가 혼재된 상황을 정리하고, 제국 전역에 단일 통화 체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었다.

경제적 효율성 - 교초(지폐)의 장점

  • 제조 및 유통의 용이성: 지폐는 금속 화폐에 비해 제조가 매우 쉽고, 거액의 화폐 가치를 담을 수 있어 유통이 편리했다.
  • 광역 경제 통합: 쿠빌라이는 1260년부터 금·은 보유량을 바탕으로 한 지폐를 전 제국(발트해에서 태평양까지)의 법정 통화로 지정했다.

금은의 독점을 통해 중앙집권적 통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가가 화폐 발행과 유통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데 있었다. 유목민들은 금과 은의 보유가 얼마나 큰 경제적, 정치적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사유 금은 매집과 강제 환수: 원나라는 지폐만 유통시키기 위해 민간이 가진 모든 금·은과 동전을 몰수하고 지폐로 교환해주는 정책으로 시중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 초법적 강제력: 쿠빌라이는 모든 상인과 백성이 지폐 사용을 거부하거나 금·은 등 예전 화폐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으며, 이를 어길 시 거의 모든 처벌(사형에 이르는)을 내렸다.
  • 외국 상인 통제: 외국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이 가져온 금·은·보석은 오직 황제에게만 팔 수 있도록 하여 귀금속을 국가가 독점했다.

그러나 교초를 지탱한 진짜 기술은 종이도 옥새도 아니었다. 은 1냥 = 교초 10관이라는 태환 약속이었다. 언제든 은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이 종이의 유일한 담보였다.

교초는 실제로 경이로운 경제 인프라였다. 무거운 동전이나 은덩어리를 실어 나를 필요가 없어지자 상인들은 가벼운 종이 뭉치로 실크로드 너머까지 거래했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이 단일 화폐로 통합되었고, 세수 행정은 획기적으로 단순해졌다. 제국을 하나로 묶은 것은 기병만이 아니라 이 종이였다.


2. 제국을 몰락 시킨 재상, 아마드의 실험

문제는 태환 창구 앞에 은으로 교환을 요청하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교초는 은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실제로 바꾸러 오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종이가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재정을 담당한 관료들의 눈에 이상한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금고에 잠긴 은은 그대로인데, 태환되지 않은 채 세상을 돌아다니는 교초의 총액은 계속 커지고 있다. 준비금 대비 유통량의 비율은 이론적 한계를 넘어섰지만, 제국의 제정은 파탄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나라 재상 아마드 파나카티(Ahmad Fanakati, 아합마)가 이 기묘한 유동성을 활용하고자 했다. 이재(理財)에 능하다는 평을 들었던 그는, 태환 요구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발행을 늘려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교초를 계속 찍어냈다. 준비금이 뒷받침하지 않는 발행, 이른바 '무본지초(無本之鈔)'다. 그는 1282년 반대파에 반발을 사 암살당했지만, 그가 열어놓은 무담보 발행이라는 재무 논리는 폐기되지 않고 제국 재정의 기본이 되었다.

이후는 스노우볼처럼 눈덩어리가 굴러가는 것처럼 관성이 붙었다.

  • 준비금의 전용: 1294년 원 성종 대에 비축된 은 93만 6,950냥 중 본래 목적대로 쓰인 것은 19만 2,450냥뿐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다. 태환의 담보가 사실상 비어버린 것이다.
  • 전쟁 자금: 원나라는 사실상 전쟁과 피를 기반으로한 전복 국가였고, 군비를 교초 남발로 충당했다. 멸송 전쟁 중이던 1276년 교초 발행량은 100만 정(錠)을 돌파했다.

'100만 정'은 얼마나 큰 규모일까?

  • '정(錠)'의 의미: '정'은 당시 지폐와 은의 무게 및 가치를 나타내는 단위로, 1정은 은 50냥(兩)에 해당했다. 따라서 100만 정은 은으로 5천만 냥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가치였다.
  • 초기 발행량과의 비교: 쿠빌라이가 1260년 중통보초를 처음 발행했을 때의 발행량은 약 7만 3천 정 정도였다. 불과 10여 년 만에 발행량이 10배 이상으로 폭증한 셈이다.

여기서 핵심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다. 태환 청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통계적 사실을, 태환 의무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읽어낸 해석의 오류다. 이 오류는 700년 뒤에도 이름만 바꿔 반복되는 탐욕의 서사를 볼 수 있다.


3. 종이가 휴지가 되던 날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복하고 그 부를 약탈함으로써 첫 번째 위기를 넘겼다. 정복이 곧 준비금 보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제국은 멈추지 않았고, 전쟁도 멈추지 않았다.

1287년, 정부는 재정 적자 66만 정을 메우기 위해 '지원통행보초(至元通行寶鈔)'를 발행했다. 중통보초의 가치는 1/5로 폭락했다. 1350년 원 순제는 '지정보초(至正寶鈔)'를 발행했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시행하자마자 물가가 열 배로 뛰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관(貫)의 가치는 겨우 14문(文)으로 추락했고, 수도 대도(大都)에서는 500관을 들고도 쌀 한 말을 살 수 없었다. 밀가루 가격은 남송 멸망 초기 대비 6-7만 배 폭등했다.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교초를 운반하는 배와 수레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를 실은 수레가 늘어날수록 종이의 가치는 떨어졌다. 통화량 팽창의 가장 적나라한 풍경이다. 민간은 결국 교초를 모두 던져버리고 돌보지 않았다(皆棄擲不顧).

이와 비견되는 예는 석유 자원으로 미국에 대항한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이 2016년 254.95%, 2017년 438.12%, 2018년 6만5374.08%로 치솟았다. 2017년 1만원이던 치킨 한 마리가 1년 사이에 650만원된 셈이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는 금화를 더 발행하는 방법을 썼다. 금화에 싸구려 구리의 함량을 높이는 방법으로 돈에 물타기를 했다. 301년 금 1파운드 가격이 5만 데나리우스 아우레우스(Denarius aureus)였는데 얼마 뒤 21억2000만 아우레우스가 되었다고 한다. 구리를 섞은 금화의 가치가 4만2400분의 1로 추락한 셈이다. 《Guide to Investing in Gold and Silver》의 저자 마이클 맬로니는 “35달러인 금값이 150만달러로, 2000달러인 차가 8500만달러로 오른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 금융의 신뢰성을 잃어버린 로마제국은 해체 되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결과는 더 드라마틱하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고 세계를 불태웠다.


4. 고려- 발행량의 1/50, 그리고 그 수혜자

교초의 이야기에는 한반도 챕터가 있다. 황금씨족이 된 고려 왕실이다.

원나라는 고려 왕실에 막대한 교초를 하사했다. 1301년 한 해에만 1만 정, 당시 발행액의 약 1/5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산술적으로 보면 제국이 찍어낸 새 화폐의 상당 부분이 한 속국 왕실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 은사금(恩賜金)은 실제로 부를 낳았다. 고려 왕실과 그와 연결된 세력은 이 유동성 위에서 번영했다.

이 번영은 몽골 황실과 혈연으로 이어진 고려 왕족에게만 해당되었다. 충렬왕 이후 고려 국왕은 원 공주를 왕비로 맞는 부마국 체제에 들어갔고, 은사금은 그 혈연 네트워크를 따라 흘렀다. 신진 사대부도, 지방의 농민도 이 흐름의 바깥에 있었다.

그래서 고려가 얻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실 상층부의 화려한 번영, 다른 하나는 원나라의 인플레이션 그 자체다. 교초 가치가 무너질 때 손실은 그 종이를 실물 경제에서 받아들여야 했던 쪽에 남았다. 일각에서 원의 교초 붕괴를 고려 쇠퇴의 간접적 원인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폐 발행의 이익은 발행처와 가까운 순서대로 배분되고, 그 비용은 멀리 있는 순서대로 청구된다. 캉티용 효과(Cantillon Effect)라고 부르는 이 현상을, 고려는 700년 전에 몸으로 겪었다. 오늘날 QE 국면에서 자산 보유자와 임금 소득자 사이에 벌어진 격차도 구조는 동일한 캉티용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5. 1971년 8월 15일 - 달러도 태환을 멈췄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금 창구를 닫았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1온스당 35달러의 고정 비율로 무제한 금 태환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베트남전 전비와 국제수지 적자가 금 보유고를 갉아먹었고, 외국인이 보유한 달러는 이미 미국의 금 태환 능력의 3배에 달했다. 창구 앞에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창구를 닫은 것이다.

교초와 정확히 같은 구조다. 태환 약속으로 신뢰를 얻고, 발행을 늘리고, 준비 자산 대비 유통량이 임계점을 넘고, 결국 약속을 파기한다. 차이는 결말이었다. 교초는 그 시점에서 붕괴로 직행했지만, 달러는 새로운 소비처, 정주처를 찾아냈다.


6. 페트로달러 - 금 대신 석유라는 닻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일련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해 6월 키신저와 파드 왕자가 서명한 미-사우디 경제협력 합동위원회, 그리고 그해 후반에 맺어진 비공개 합의 — 미국의 군사 지원과 장비 제공, 그 대가로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미 국채에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비밀 합의는 2016년 블룸버그가 정보공개청구로 문서를 확보하면서 공개되었다.

여기서 발행 → 유출 → 환류의 순환이 완성된다.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고, 산유국이 벌어들인 달러는 미 국채로 돌아온다. 달러는 금이라는 닻을 잃은 자리에 석유라는 닻을 걸었고, 석유 시장은 금 시장보다 훨씬 컸다. 태환 중단은 위기가 아니라 확장의 계기가 되었다.

석유는 단순히 연료가 아니다. 난방, 발전뿐 아니라 곡물을 기르기 위한 합성 비료의 재료이다. 20세기 문명은 석유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경제, 산업 인프라 위에 있다.

짚고 넘어갈 팩트체크

2024년 6월, "50년짜리 페트로달러 협정이 만료되었고 사우디가 갱신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4년 6월에 설립된 합동위원회의 근거가 2024년 6월 만료된 것은 맞지만, 미 회계감사원(GAO) 문서 기준으로 그 위원회에는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한다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석유의 달러 표시는 조약이 아니라 관행과 네트워크 효과로 유지되어 온 사실상의 디팩토(de facto) 체제다.

이 정정은 사소하지 않으며 국가간 조약에 담기지 않은 숨겨진 비망록, 관행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알아야하는 대목이다. 공개된 조약, 계약으로 묶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페트로달러는 만료일에 끝나지 않는다. 대신 관행이 침식되는 속도로만 약해진다. 만료 뉴스를 기다리는 관점은 이 체제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필요성으로 밀어붙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한 공개된 조약보다 그 이면의 합의, 비망록이 그 이면의 경제적 동기, 정치적 동기를 더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7. MMT - 경제학인가?, 아직은 위험한 실험인가?

이 배경 위에서 현대 화폐 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이 등장했다. MMT는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교초를 무보증 발행한 것과 같은 컨셉이다.

MMT의 주장은 간명하다. 자국 통화로 채무를 지는 주권 국가에는 명목상의 예산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통화의 발행자이므로 자국 통화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중앙은행의 키보드 입력으로 지출을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 균형 자체는 목표가 아니며, 유일한 실질적 제약은 인플레이션이다.

논리 구조 자체는 회계적으로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 뒤에 놓인 가정들이다.

  • 인플레이션 이론이 낡았다. MMT는 물가를 주로 수요와 유휴 생산능력의 함수로 다루며, 시장의 미래 기대심리가 물가와 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사실상 무시한다. 그런데 화폐 신용의 붕괴는 언제나 기대의 붕괴로 먼저 나타난다.
  • 정치인의 절제를 전제한다. 인플레이션이 유일한 제약이라면,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일 때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며, 역사상 어떤 정부도 이 시험을 안정적으로 통과한 적이 없다. 아마드도, 원 순제도 "필요한 만큼만" 찍을 생각이었다.
  • 대외 제약과 지정학을 간과한다. 통화 주권은 국경 안에서만 완결되지 않는다. 환율, 자본 유출, 준비 통화로서의 수요는 모두 외부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MMT는 정밀한 경제 이론이라기보다 하나의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고, 무엇보다 아직 통제된 조건에서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다. 실험이 위험한 이유는 실패했을 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 신뢰는 점진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임계점까지 아무 일도 없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한꺼번에 무너진다. 원 제국의 교초가 그랬다.


8. 현실 실험 1 — 미국의 QE

MMT의 논리는 이미 부분적으로 현실에서 검증되었다. 다만 이론이 예고한 형태는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경제적 공항, 쓰나미가 독을 먹더라도 유동성을 풀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연준은 양적완화(QE)를 시작했고, 대차대조표는 약 9,000억 달러에서 4조 5,000억 달러로 팽창했다. 2020년 팬데믹 때는 '무제한' QE가 등장했다.

MMT의 예측대로,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 그러나 돈은 사라지지 않았다. 돈은 소비재가 아니라 자산으로 갔다.

  • 과잉 유동성은 자산 가격 버블의 불씨를 심었다.
  • 장기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춤으로써 고레버리지 투기를 구조적으로 보조했다.
  • 인플레이션은 CPI가 아니라 주택, 주식, 사모펀드 밸류에이션에서 먼저 나타났다.

레이 달리오의 경고는 이 지점을 정확히 겨눈다. 버블 국면에서 QE를 시작하면 결국 더 큰 버블과 인플레이션 압력만 키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1–2023년, 억눌려 있던 물가는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이전되었다. 지연은 면제가 아니었다.


9. 현실 실험 2 — 일본의 재정 확장과 마이너스 금리

일본은 더 극단적인 실험실이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재정 확장과 통화 완화를 30년간 지속했다. 2016년 일본은행은 정책 금리를 -0.1%까지 내렸다. 이론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대출과 투자를 자극해야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달랐다.

  • 금융 시스템의 수익성 훼손: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의 예대 마진을 압박했다. 수익성이 나빠진 은행은 오히려 대출에 신중해졌고, 완화 정책이 긴축 효과를 낳는 역설이 발생했다.
  • 좀비 기업의 양산: 저금리 대출로만 연명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남았다. 자본과 인력이 저생산성 부문에 고착되면서 혁신은 지체되고 생산성 성장은 정체됐다.

일본이 증명한 것은 무엇인가? 장기 초저금리는 번영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일본 경제의 활력을 빼앗고 경제의 좀비화를 했을 뿐이다. MMT가 말하는 "인플레이션이 오기 전까지는 괜찮다"는 명제의 반례가 여기 있다.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아도 경제는 망가질 수 있다.


10. 2026년 6월, 일본 1% — 30여 년 만의 나비효과

그리고 그 실험이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은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뒤 단계적으로 금리를 올렸고, 2026년 6월 16일 정책 금리를 0.75%에서 1.00%로 인상했다. 1995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숫자 자체는 크지 않다. 문제는 이 숫자가 지난 30년간 전 세계 위험자산의 조달 비용 기준선이었다는 점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엔화로 자금을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다. 금리 차가 좁혀지고 엔화가 절상되면, 이 포지션은 수익과 담보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다. 청산이 시작되면 자금은 대규모로 엔화로 환류하고, 유동성에 가장 민감한 자산부터 무너진다. 2024년 8월의 급락 국면에서 암호화폐와 고베타 기술주가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이 그 예고편이었다.

여기서 확인되는 사실은 이것이다. 한 국가의 통화정책 전환이 다른 대륙의 자산 가격 결정 논리를 뒤흔들 수 있다. 현대 통화 체계는 그만큼 고도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MMT가 상정하는 '주권 국가의 독립적 통화 정책'이라는 전제는 현실에서 이미 성립하지 않는다.


11. 로마 데나리우스 -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신뢰의 붕괴

시간을 2천 년 전으로 돌리면 같은 이야기가 금속으로 쓰여 있다.

로마의 데나리우스 은화는 초기에 순은 95–98%로 주조되었다. 제국이 팽창하고 군단 유지비와 재정 지출이 폭증하자, 황제들은 의도적으로 은 함량을 낮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90% 초반으로, 그다음에는 계속 아래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시대에 이르러 은 함량은 25% 수준까지 추락했다. 3세기 위기를 지나면서는 은도금 동전에 가까워졌다.

메커니즘은 단순하고 잔인하다. 은 함량이 낮아지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정부의 실질 지출 부담이 커지고, 정부는 재정을 메우려 함량을 더 낮춘다. 자기 강화적인 죽음의 나선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최고가격령으로 물가를 억누르려 했지만,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통제하려 한 시도는 실패했다.

주목할 점은 로마의 화폐 붕괴가 제국 붕괴의 원인이자 결과였다는 것이다. 국경 방어와 내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세수를 넘어섰기 때문에 화폐를 희석했고, 화폐가 희석되자 조세 기반과 교역망이 무너져 다시 재정이 악화됐다. 군사적 과잉 확장과 화폐 희석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의 두 얼굴이다.

제국의 패권은 무역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제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이 높아지면 금융의 신뢰성 역시 붕괴되면서 제국은 급격히 와해되는 특징을 보였다.


12. 그런데 왜 달러는 교초가 되지 않았나?

교초는 붕괴했고, 데나리우스도 붕괴했다. 달러는 1971년에 태환을 끊었고, 2008년 이후 대차대조표를 다섯 배로 늘렸으며, 2020년에는 무제한 QE까지 했다. 그런데 왜 쌀 한줌을 사기 위해 수백 관의 교초가 필요한 대도(大都)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답은 통화량이 아니라 수요의 구조에 있다.

교초에 대한 수요는 원나라 국경 안에서 끝났다. 제국이 강제해서 생긴 수요였고, 강제력이 약해지자 수요도 사라졌다. 달러에 대한 수요는 다르다. 달러이 수요는 3군데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첫째, 무역의 단위. 달러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거래에서도 표시 통화로 쓰인다. 브라질이 한국에 철광석을 팔 때도 가격은 달러로 매겨진다. 전 세계 수출 인보이스의 약 54%가 달러 표시이며, BIS 2025년 3년 주기 조사 기준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89%가 달러를 한쪽 단위로 포함하고 있다.

둘째, 머니 게임의 매개체. 시카고상품거래소(CME)를 비롯한 주요 파생상품 시장에서 금, 은, 원유, 곡물 등 벤치마크 계약은 사실상 전부 달러로 표시되고 결제된다. 원자재의 '세계 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달러로 계산된 숫자다. 어떤 통화로 자산을 보유하든, 헤지를 하려면 달러 계약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시장 인프라의 문제이며, 인프라는 조약보다 훨씬 바꾸기 어렵다.

셋째, 저축과 준비 자산. IMF COFER 기준 2026년 1분기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57.13%다. 유로는 20.03%, 엔은 5.44%, 그리고 위안은 1.99%에 불과하다.

달러 무역으로 벌어들인 미국 외, 역외의 넘치는 유동성은 미국 나스닥으로 흘러가던가 뉴욕의 초고가 아파트로 투자되어 가치가 저장된다. 뉴욕에 수천만 달러에서 수 억 달러짜리 아파트가 텅텅 비어 있는 이유는 바로 고급 주거지의 목적이 주거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자산, 가치 저장수단이기 때문이다.

경쟁 통화가 없다는 사실

탈달러 논의에서 자주 빠지는 질문은 "그럼 무엇으로?"다.

  • 유로: 단일 통화이지만 단일 재정이 아니다. 공동 안전자산(유로 국채)이 사실상 부재하고, 채권 시장이 회원국별로 분절되어 있다. 위기 때마다 재정 통합의 부재가 드러났다. 20%는 이미 유로의 천장에 가깝다.
  • 위안: 자본 통제가 존재하는 통화는 준비 통화가 될 수 없다. 준비 자산의 본질은 필요할 때 즉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인데, 위안은 그 보장을 제공하지 않는다. 거래 규모와 무관하게 2% 언저리에 머무는 이유다. 위안화 결제 확대 뉴스는 대개 무역 결제 채널의 이야기이지 준비 자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 :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매입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다만 금은 결제 수단이 아니라 보험이다. 금 가격 급등으로 총 준비자산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 보이는 착시가 생기지만, 외환보유액 기준 달러 비중은 위 수치대로 안정적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달러는 교초와 데나리우스가 결코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자국 밖에서 발생하는, 대체재 없는 수요다. 그래서 미국은 통화를 늘려도 그 희석된 유동성의 비용의 상당 부분을 세계와 나눠 진다. 이것이 특권이고, 완충재이며, 달러 패권이 여전히 견고한 이유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르크화도 실패했고 석유 자원이 넉넉했던 베네수엘라도 세뇨리지를 누리지 못했다. 오직 달러만이 강력한 세뇨리지(Seigniorage)를 누리고 있다.


13. 그러나 — 몽골 제국 말기와 지금의 미국

세뇨리지(Seigniorage), 완충재는 면책이 아니다. 그리고 교초의 붕괴에는 통화 정책이 아닌 원인이 하나 더 있었다.

원 제국은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했다. 남송 정복 이후에도 일본 원정(1274, 1281), 베트남 원정, 자바 원정을 이어갔고, 대부분 실패했다. 실패한 원정은 전리품이 없다. 전리품이 없는 원정은 순수한 비용이며, 그 비용은 전부 교초 발행으로 메워졌다. 여기에 황위 계승 분쟁과 제위 다툼이 겹치며 지배층은 재정 규율을 유지할 정치적 역량마저 잃었다. 화폐 붕괴는 재정 붕괴의 결과였고, 재정 붕괴는 정치적 통제력 상실의 결과였다.

오늘 날, 같은 역사적 실패의 프레임을 오늘의 미국에 겹쳐보인다.

  •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대외 개입: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수조 달러 규모의 재정이 소모되었고, 회수된 것은 없다. 원의 일본 원정과 회계적 성격이 같다.

  • 구조적 적자의 상시화: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GDP 대비 6% 안팎의 재정 적자가 이어진다. 금리가 정상화되면서 국채 이자 지출 자체가 국방비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이자를 갚기 위해 발행하는 국면은 원나라 말기의 재정 구조와 형태가 같다.

  • 정치적 규율의 상실: MMT의 유일한 제약이 인플레이션이라면, 인플레이션이 왔을 때 긴축할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부채 한도 협상이 반복적으로 정치 인질극이 되는 시스템에서 그 역량을 전제할 수 있는가. 원 순제 조정도 지정보초를 찍을 때는 그것이 마지막 수단이라고 믿었다.

  • 패권 비용과 패권 수익의 역전: 기축통화 지위는 저렴한 자금 조달이라는 수익을 주지만, 동시에 세계에 안전보장과 최종 유동성을 제공해야 하는 비용을 부과한다. 수익보다 비용이 커지는 순간부터, 제국은 흑자 사업이 아니며 체면을 지켜야하는 조공 무역의 성격을 가진다.

차이도 분명하다. 원나라에는 교초를 대체할 통화가 곧바로 존재했다. 은과 구리, 그리고 실물이다. 사람들은 그냥 종이를 버리고 은으로 돌아가면 됐다. 달러에는 지금 그런 대체재가 없다.

그래서 달러의 위기는 붕괴가 아니라 경제적 공황과 침식의 형태로 온다. 어느 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결제 채널이 하나씩 분화되고, 준비 자산이 조금씩 다변화되고, 관행의 구속력이 조금씩 약해지는 방식이다.


맺으며, 신용의 무게

MMT는 명목상의 예산 제약을 이론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붉은 레드 와인에 물을 타기 시작하면 점점 와인의 색은 옅어진다. 마침내 한 방울이 더 떨어지면 투명해진다. 그리고 와인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경제 법칙을 위반한 어떤 행위도 그냥 넘겨주지 않는다. 미국의 천문학적 QE, 일본의 30년 초완화, 로마의 은화 희석, 원나라의 무본지초, 이 모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유혹, 즉 진정한 부의 창출을 화폐적 환상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했다.

달러가 다른 점은 이론이 더 정교해서가 아니다. 세계가 달러를 무역의 단위로, 금융 게임의 매개체로, 저축의 수단으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남미의 독재자들은 국가 자원을 착취한 자금을 달러로 바꾸어 뉴욕과 마이애미에 호화 주택을 사고 미국의 은행에 달러를 예금한다. 아랍의 왕자들은 석유를 판 대금으로 슈퍼카를 사던가 미술품을 사지만 가장 크게 투자하는 것은 달러 표시 자산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이자 투자자인 알왈리드 왕자는 1991년 위기에 빠졌던 씨티그룹(당시 씨티코프)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했고, 오랜 기간 개인 최대 주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사모펀드, 헤지펀드를 통해 혐오스러운 독재자, 아랍의 왕족들의 넘치는 유동성을 달러 표시 자산으로 투자하고 운영하고 있다. 소문 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완충재 덕분에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 오래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면책된다는 뜻은 아니다.

교초의 비극, 데나리우스의 붕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모두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화폐의 궁극적 가치는 인쇄기 안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신뢰 속에 있다. 그리고 신뢰는 회계 장부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까지 아무 지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교초의 태환 창구 앞에 사람이 오지 않던 그 조용한 시절이, 사실은 붕괴의 시작이었다.

달러 패권의 요새는 오늘도 견고하다. 다만 그 요새의 초석은 패권 그 자체가 아니라 신뢰 있는 제도, 예측 가능한 금융을 세계에 보여주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고 중국은 대체하고 경쟁할 상황이 안된다는 기묘한 역설이 달러 패권을 지지하는 한 축이 되고 있다.

균열은 로마 제국의 끝자락처럼 미국의 정치,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미중 무역 갈등에서 중국 편에 설지, 미국 편에 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대한민국을 비롯한 서구권이 규범화되어 있기에 선택이 문제라기 보다 동맹의 가치를 어떻게 미국이 동맹을 품으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안보의 무임승차라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맞는 말이지만 제국의 작동 원리는 로마부터,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까지 다르지 않았다. 공정한 무역을 하지 않고 안보와 무역을 호혜적으로 제공하여 제국의 가치에 편입되도록 만들어야 제국은 무역을 통해 번성한다.

미국은 지금 이란과의 전쟁에서 얻은 것이 없이 체면을 잃고 있다. 칸의 제국이 불필요한 정복 전쟁과 왕위 계승 전쟁을 하기 위해 무보증 교초를 풀었던 것처럼 지금 미국은 얻은 것이 없는 전쟁에 너무나 많은 자원과 동맹의 신뢰를 잃고 있다.

징기즈칸의 후예가 과연 그리도 빨리 몰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당대 지식인들이 예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양제를 물리친 고구려의 후손이 고작 일본의 침략에 보름도 되지 않아 수도를 함락 당했다는 것을 명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 9/11 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19명의 납치범들이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든 비용은 40만-50만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2001년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직접 투입한 비용은 1조 2,830억 달러에서 3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전쟁 비용, 경제 성장 둔화, 복지 프로그램 축소 등 모든 직간접적 비용을 합산하면 미국의 총지출이 1조 6천억 달러에서 최대 11조 5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CIA 교관들에게 훈련받은 대로 너무나 저렴하게 태평성대, 팍스 아메리카나를 파괴했다.

누가 알겠는가? 지금 미국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최강의 국가이지만 그 믿음은 너무나 저렴하게 낭비하고 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 아르미안의 네 딸들


참고 및 사실 확인 메모

  • 일본은행 정책 금리는 2026년 6월 16일 0.75% → 1.00%로 인상. 1995년 이후 최고 수준.
  • IMF COFER 2026년 1분기: 달러 57.13%, 유로 20.03%, 엔 5.44%, 위안 1.99%.
  • BIS 2025년 3년 주기 조사: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89%에 달러가 포함. 수출 인보이스의 달러 비중 약 54%.
  • "1974년 페트로달러 협정이 2024년 6월 만료되어 사우디가 갱신을 거부했다"는 서사는 사실이 아니다. 1974년 6월 설립된 미-사우디 경제협력 합동위원회에는 석유의 달러 표시 조항이 없었다는 것이 미 회계감사원 문서 기준의 확인 사항이다. 별도의 1974년 비공개 합의(군사 지원 ↔ 미 국채 투자)는 2016년 블룸버그의 정보공개청구로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