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축제를 벌였다. 추수한 곡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만들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마을 사람들은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축제는 지구촌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그 축제에서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술은 개인의 기호이기 전에 공동체의 의례였다. 그 의례가 언제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숫자가 있다.

2026년 8월 23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조용한 숫자 하나가 올라왔다.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이 298만 8000㎘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국내 주류 출고량이 300만㎘ 아래로 내려간 것은 IMF 외환위기 한복판이던 1998년(292만 2000㎘) 이후 27년 만이다. 10년 전인 2015년의 380만 4000㎘와 비교하면 21.5%가 사라졌다.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맥주는 151만 9000㎘로 3년 연속 줄었고, 희석식 소주는 79만 3000㎘로 마침내 80만㎘ 선이 무너졌다. 탁주는 5년 연속 감소해 31만 8000㎘까지 내려앉았다.

1998년의 하락은 이유가 분명했다. 나라가 부도났고, 사람들은 돈이 없었다. 그때 술을 끊은 사람들은 경기가 풀리자 다시 술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하락은 성격이 다르다. 경기 탓이라기에는 너무 길고, 너무 고르고, 무엇보다 특정 세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MZ세대, 술잔을 내려놓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만 19세 포함)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64.8g이다. 전년 95.5g에서 1년 만에 30% 이상 빠졌다. 2005년 139g, 2013년 176.3g과 비교하면 2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세대 간 역전이다. 같은 조사에서 30대는 144.5g, 40대는 161.8g, 50대는 115.9g을 마신다. 20대는 60대(66.8g)보다도 술을 적게 마시는 세대가 됐다. 한국 사회에서 20대가 전 연령대 중 가장 술을 적게 마시는 집단이 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빈도도 함께 무너졌다. 19–29세 중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월 1회 이하로 마신다고 답한 비율은 2024년 기준 56.0%다. 조사가 시작된 2005년의 37.9%에서 18%포인트가 올랐고, 역대 최고치다.

지갑은 정직하게 따라간다. NH농협은행 트렌드 보고서에서 2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20.9%, 30대는 15.5% 감소했다.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서 간이주점 사업자 수는 1년 새 10.4% 줄어 100개 업종 중 감소율 1위를 기록했고, 호프주점은 9.5% 줄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대학가에 있다. CU가 주요 대학가 인근 점포의 주류 매출을 분석했더니 맥주는 5.5%, 소주는 4.1% 줄었다. 세븐일레븐과 GS25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됐다. 반면 대규모 산업단지 인근 점포의 주류 매출은 최근 3년간 매년 4–6%대로 꾸준히 늘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여전히 마신다. 다만 술을 처음 배울 나이의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 있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술을 마신다고 답한 미국 성인은 54%였다. 2023년 62%, 2024년 58%, 2025년 54%로 3년 연속 떨어진 뒤 올해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 1939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이며, 2년 연속 최저 기록이다.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이 수치가 60% 아래로 내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식은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하루 한두 잔의 음주가 건강에 나쁘다고 답한 미국 성인이 절반을 넘어섰다. 2015년 28%에서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고, 이 변화를 이끄는 것은 젊은 층이다. 갤럽의 리디아 사드는 나이 든 세대가 평생에 걸쳐 음주 관련 권고가 뒤집히는 것을 반복해서 지켜본 반면, 젊은 세대에게는 "술은 몸에 나쁘다"가 성인이 되며 처음 들은 정보였다고 설명한다.

220억 달러의 재고, 불 꺼진 증류소

산업은 이 변화를 막대한 재고로 되돌려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캄파리, 브라운포먼, 레미 쿠앵트로 등 상장 주류 5개사가 보유한 숙성 중 증류주 재고는 약 220억 달러(약 32조 원)에 달한다. 10년 만의 최고치다. 디아지오의 경우 연 매출 대비 숙성 재고 비중이 2022 회계연도 34%에서 2025년 43%로 뛰었고, 스카치와 아메리칸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숙성 재고 가치는 86억 달러에 이른다. 레미 쿠앵트로의 재고는 연 매출의 거의 두 배, 시가총액에 근접한 수준이다. 번스타인의 트레버 스털링은 이 재고 축적이 전례가 없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를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숙성 주류의 잔인함은 여기에 있다. 위스키는 지금 팔 물건을 10년 전에 통에 넣어야 한다. 팬데믹 기간 집에서 술을 마시는 수요가 폭발했을 때, 업계는 그 곡선이 계속될 것이라 보고 시설을 확장하고 위스키 통을 채웠다. 곡선은 꺾였고, 막대한 숙성고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증류소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버번의 대명사 짐 빔은 2025년 12월, 1930년대부터 가동해온 켄터키 클러몬트 증류소를 2026년 한 해 동안 통째로 멈추겠다고 발표했다. 디아지오는 미국과 스코틀랜드의 여러 시설과 맥아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브라운포먼은 1945년에 세워진 루이빌 쿠퍼리지(통 제조 공장)를 닫으며 210명을 내보냈다. 스카치위스키협회 집계로 2025년 대미 스카치 수출은 금액 기준 4%, 물량 기준 9.2% 줄었다.

한국 시장의 성적표는 더 참혹하다. 조니워커를 파는 디아지오코리아의 최근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영업이익은 94억 원으로 전년 182억 원에서 반토막 났고, 151억 원 흑자였던 당기순이익은 112억 원 순손실로 돌아섰다. 이 회사는 최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발렌타인과 로얄살루트를 파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51억 원으로 71.6% 급감했고, 당기순이익은 409억 원에서 57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매출은 120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1% 감소했다. 골든블루는 올해 상반기 3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불과 3–4년 전 "위스키 오픈런"과 "하이볼 열풍"이 신문 지면을 채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속도는 기이할 만큼 빠르다.

뿌리째 뽑히는 포도밭

와인 쪽 풍경은 더 물리적이다. 밭을 갈아엎고 있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와인 소비량은 2억 1420만 헥토리터로 전년 대비 3.3% 줄었다. 1961년(2억 1360만 헥토리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961년은 유럽 주요 산지가 봄 서리로 초토화된 해였다. 63년 만에, 이번에는 날씨가 아니라 수요 때문에 그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생산량 역시 2억 2580만 헥토리터로 1961년 이후 최저였다.

프랑스는 이 붕괴의 진앙이다. 프랑스 마약·중독감시청(OFDT) 자료 기준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1960년대 120리터에서 현재 약 40리터로 떨어졌다. 60년 동안 3분의 1 토막이 났다. FranceAgriMer에 따르면 레드와인 판매는 최근 3년 사이에만 15% 감소했다. 프랑스인이 이제 와인보다 맥주를 더 마신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올해 5월이다.

정부는 결국 포도나무를 뽑기로 했다. 2025년 11월 아니 주느바르 농업장관이 발표한 영구 발근(arrachage définitif) 계획은 1억 3000만 유로를 투입해 헥타르당 4000유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FranceAgriMer에는 약 5800건의 신청이 접수됐고, 대상 면적은 2만 8000헥타르 규모다. 신청은 지롱드, 오드, 가르, 에로 등 남서부에 집중됐으며 대부분 적포도 품종이다. 뽑아낸 자리에는 올리브나 피스타치오를 심는다. 아예 농업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르도의 한 장면은 이 상황을 압축한다. 2025년 11월 블라이 지역 경매에서 파산한 와이너리의 유기농 와인 800헥토리터가 헥토리터당 25유로에 팔렸다. 통상적인 최저가는 80유로다. 그날 밤 일부 생산자들이 다른 탱크의 밸브를 열어 11만 상자 분량의 와인을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그 가격으로 시장에 풀리느니 버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Liv-ex 보르도 500 지수는 최근 5년간 가치의 약 5분의 1을 잃었고, 2025년 보르도 생산량은 300만 헥토리터 아래로 떨어졌다.

나의 가설 — 술은 사회적 학습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데이터가 아니라 해석이다. 미리 밝혀둔다. 아래는 검증된 인과가 아니라 하나의 가설이며, 반증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려고 한다.

술을 마시는 일은 생각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행위다. 내 주량이 어디까지인지, 언제 잔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취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까지 꺼내도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술기운을 빌려 평소 못 하던 말을 꺼내는 그 미묘한 기술. 이것들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스무 살 무렵 선배와 동료 옆에서, 대체로 실수하면서,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2020년부터 약 2–3년간 그 학습장이 닫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스무 살이었던 사람들은 지금 이십대 중후반이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은 아니다.

여기서 이 가설의 범위를 정확히 좁혀야 한다. 코로나는 이 추세의 원인이 아니다. 다만 알콜 소비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39개 고소득 국가의 청소년 음주 추이를 정리한 연구에 따르면, 이 감소는 미국에서 1999년 이전에 시작됐고 북유럽이 2000년대 초, 서유럽과 오세아니아가 2000년대 중반에 뒤따랐다. ESPAD 기준으로 유럽 15–16세의 음주율은 2003년에 정점을 찍고 2019년까지 계속 내려갔다. 아이슬란드는 정점 대비 83.9%, 아일랜드 64.4%, 노르웨이 60.0%, 영국 46.2%, 미국 40.4%가 빠졌다. 코로나가 오기 20년 전부터 진행되던 일이다.

즉 선진국의 술잔은 이미 25년째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코로나는 그 기울어진 잔을 마지막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완만한 하락을 절벽으로 바꾼 것이 팬데믹의 역할이다.

한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 20대의 음주량은 2005년 139g에서 2013년 176.3g으로 오히려 늘었다. 서구가 15년째 내려가는 동안 한국은 올라가고 있었다. 한국의 하락은 2010년대 중반에야 시작됐고, 그 뒤 1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구가 25년에 걸쳐 한 일을 한국은 10년 만에 했다. 그 압축된 10년의 한가운데에 코로나가 있다. 한국에서 팬데믹의 몫이 서구보다 클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한 통념 하나를 걸러내자

흔히 숏폼과 틱톡이 술을 밀어냈다고들 한다. 그러나 33개국 ESPAD 데이터를 다층 분석한 연구는 국가 단위 인터넷·게임 시간 변화와 청소년 음주 변화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β=0.031, p=0.652). 개인 수준에서는 오히려 헤비 인터넷 유저가 술을 더 마신다. 무엇보다 이 감소는 미국에서 1999년 이전에, 북유럽에서 2000년대 초에 시작됐다. 틱톡보다 15년 이상 앞선다.

20년 간격의 청소년 코호트를 비교한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르킨다. 디지털 미디어가 파티와 대면 사교의 기능 일부를 대신하면서, 음주는 1999–2001년 청소년 사회생활의 사실상 필수 요소에서 오늘날 위험이 크고 이득이 적은 선택적 활동이 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날 활동이 끊긴 시기에 SNS와 숏폼이 얼굴을 맺대고 하는 음주라는 소셜 활동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한 것이다.

한번 중단된 학습과 전통은, 일정 연령이 지나면 새로 익히기가 대단히 어렵다. 서른이 넘어 처음 술자리 문화에 진입하는 일은 스물에 첫 경험을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난이도다. 그 사이 그들은 술 없이 관계 맺는 다른 방식을 이미 확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소비자들이 꼽은 주류 트렌드 1위는 편의점 구입(85.5%)이었고, 홈술(54.2%)과 혼술(52.2%)이 뒤를 이었다. 술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술이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것에서 '혼자 마시는 것'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이 가설을 반증하는 법

두 가지 검정이 가능하다.

첫째, 봉쇄 강도가 크게 달랐던 나라들의 20대 음주 궤적을 비교하는 것이다. 숏폼은 전 세계에 거의 동시에 보급됐으므로 국가 간 변동이 작다. 반면 스웨덴과 한국의 봉쇄 강도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만약 봉쇄가 약했던 나라에서 하락 폭이 유의하게 작다면 이 가설은 지지받는다. 차이가 없다면 팬데믹의 몫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작다.

둘째, 팬데믹 시기에 스무 살이 아니었던 이후 세대를 추적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검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도 낮은 수준에 머문다면 학습 단절 때문일 수도, 그저 25년째 진행 중인 장기 추세의 연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검정과 함께 봐야 의미가 있다.

답은 앞으로 3–4년 안에 나올 것이다. 나는 술 마시는 것 역시 문화 전승의 한 형태이며 학습과 사회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틀렸다는 데이터가 나오면, 나는 그것을 인정할 것이다.

화면이 대화를 끊는다

여기서 숏폼과 SNS의 진짜 위험한 지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술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술자리에 남아 있던 것마저 갉아먹고 있다.

한국 20대는 하루 평균 54분을 숏폼 시청에 쓴다. 10대는 75분이다. 나스미디어 조사에서 20대의 숏폼 시청 경험률은 87%, 10대는 88%에 달한다. 문제는 이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이 습관이 만들어낸 주의력의 리듬이다. 15초 단위로 자극이 갱신되는 데 익숙해진 뇌에게, 결론까지 40분이 걸리는 대화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장면이 벌어진다. 술자리에 여섯 명이 앉아 있다. 이야기가 깊어지려는 순간, 누군가 화면을 켠다. 그 사람이 돌아왔을 때 대화의 맥락은 이미 흩어져 있다.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는 대신 화제를 바꾼다. 술은 마시고 있지만 대화는 끊긴다. 세 시간 동안 함께 있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고 2차로 이어지는 깊은 대화와 소통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이건 인상이 아니라 실험으로 확인된 현상이다. Przybylski와 Weinstein은 2013년 두 차례 실험에서, 휴대폰이 시야 안에 있기만 해도 대화 상대에 대한 친밀감·신뢰·공감 인식이 낮아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를 이야기할 때 효과가 가장 뚜렷했다. Misra 등이 실제 커피숍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도 같은 방향이었다. 대화 도중 기기를 꺼내 든 집단은 연결감과 상대의 공감 인식이 유의하게 낮았다.

여기서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다. 휴대폰이 놓여만 있어도 대화가 나빠진다는 이른바 '단순 존재 효과'는 이후 재현에 실패한 연구들이 있고, 메타분석 결과도 엇갈린다. 2013년 이후 휴대폰이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이 더 이상 예의 위반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 규범 변화 때문일 수 있다. 다만 실제로 화면을 들여다보는 경우의 효과는 비교적 일관되게 관찰된다.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짧은 대화 사이의 뜸을 못 참고 폰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효과가 가장 뚜렷한 지점이 하필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라는 사실이 잔인하다. 날씨 이야기는 끊겨도 상관없다. 끊기면 안 되는 건 맥락과 사유가 필요하고 의견과 이견을 개진해야하는 긴 대화가 끊기는 것이다.

왜 프렌즈는 아직도 사랑받는가?

미국 시트콤 '프렌즈'는 2004년에 끝났다.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이 드라마는 여전히 스트리밍 최상위권을 지킨다. 영국 방송통신규제청 Ofcom 조사에서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대형 오리지널을 제치고 스트리밍 최다 시청 프로그램에 올랐고, Childwise 조사에서는 방영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5–16세 영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보통 이 현상을 90년대 향수로 설명한다. 그런데 방영 당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향수의 대상 자체가 없다. 미디어 이론가 카타리나 니마이어는 이것이 90년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월드와이드웹 이전의 우정'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짚는다. 시라큐스대의 밥 톰프슨은 더 단순하게 말한다. 실제로 같은 공간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음으로써 친구인 사람들을 보는 일이 이제는 낯설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프렌즈에는 전화기는 나오지만 휴대폰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프렌즈가 아직 사랑받는 이유는 재미있어서만이 아니다. 여섯 명이 아무 목적 없이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낭비하는 그 장면이, 이제는 판타지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드라마에서만 추억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건 술 문제가 아니다. 술은 표면적인 지표일 뿐이다. 술이 팔리지 않는다는 건 사람들이 목적 없이 여럿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시간이야말로 우정이 만들어지는 유일한 재료였다. 술은 그 시간을 붙잡아두던 매개체 중 하나였다.

술이 사라진 자리

건강을 위해 술을 줄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소버 큐리어스' 문화의 확산은 명백한 진보이고, 강요된 회식과 폭음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20대가 술을 덜 마시는 것 자체는 축하할 일이다.

문제는 술이 물러난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가다.

술은 인간 사회의 긴장을 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던 다리였다. 효율적인 다리는 아니었다. 비용도 컸고 부작용도 많았다. 하지만 그 다리를 건너면 어제까지 남이던 사람과 오늘 친구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 그 다리는 끊겼는데, 다른 다리는 놓이지 않았다. 무알코올 맥주는 술의 대체재이지 술자리의 대체재가 아니다. 화면 너머의 '좋아요'는 새벽 세 시까지 이어지던 대화의 대체재가 아니다.

사회 문제, 철학, 불평등,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술자리에서 오고 가며 격렬해지고, 감정의 충돌과 카타르시스가 거기서 일어난다. 근대의 공론장이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적 없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담론이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는 그 장소를 잃었고, 남아 있는 자리에서도 15초마다 화면이 대화를 끊는다.

포스트 코로나, 술 마시며 연결되는 세상은 끝났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우리는 더 외롭고 더 얕은 관계를 SNS라는 미지근한 물속에서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다. 센트럴 퍼크의 소파는 이제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화면으로 그 소파를 바라보는 일뿐이다.

술은 25년에 걸쳐 천천히 물러났고, 코로나가 그 등을 마지막으로 떠밀었다. 그 빈자리를 SNS와 숏폼이 흔드는 마이크로 트렌드 알고리즘이 차지했다. 술의 해악은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었고,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루는 법을 배웠다. 숏폼과 알고리즘의 해악은 아직 그 사회적 경각심 수준이고 대화하고 얼굴을 보며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린 세대가 주류가 되고 있다.

술이 있어서 훌훌 털고 대화할 친구가 있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마치 프렌즈의 한 에피소드처럼.


참고 자료

한국 통계

  •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 2025년 주류 출고량 통계 (2026.8.23 보도)
  •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 및 국민건강영양조사 (2024년 기준)
  •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
  • NH농협은행 트렌드 보고서
  •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2025 주류산업정보 실태조사」
  • 나스미디어, 숏폼 콘텐츠 시청 경험 조사
  • 오픈서베이, 「소셜미디어·숏폼 트렌드 리포트 2024」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디아지오코리아·페르노리카코리아·골든블루 공시

해외 통계·산업

  • Gallup, Consumption Habits Survey (2026.8.20 발표)
  • Financial Times, 글로벌 주류 5개사 숙성 재고 분석 (2026.1)
  • Scotch Whisky Association, 2025년 수출 통계
  • OIV, 「State of the World Vine and Wine Sector in 2024」
  • FranceAgriMer / OFDT, 프랑스 와인 소비 및 발근 계획 자료
  • Wine Spectator, Decanter, The Drinks Business, Reuters 보르도 관련 보도
  • Ofcom, Childwise 영국 시청 조사

학술 문헌

  • Vashishtha, R., Holmes, J., Pennay, A., Dietze, P. M., & Livingston, M. (2022). An examination of the role of changes in country-level leisure time internet use and computer gaming on adolescent drinking in 33 European countries. International Journal of Drug Policy, 100, 103508.
  • Vashishtha, R., Pennay, A., Dietze, P., Marzan, M. B., Room, R., & Livingston, M. (2021). Trends in adolescent drinking across 39 high-income countries: exploring the timing and magnitude of decline. 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 31(2), 424–431.
  • Vashishtha, R., Livingston, M., Pennay, A., et al. (2020). Why is adolescent drinking declining? A systematic review and narrative synthesis. Addiction Research & Theory, 28(4), 275–288.
  • Ng Fat, L., Cable, N., & Kelly, Y. (2021). Associations between social media usage and alcohol use among youths and young adults. Addiction, 116(11).
  • Ball, J., et al. (2024). Understanding youth drinking decline: Similarity and change in the function and social meaning of alcohol use in adolescent cohorts 20 years apart. Drug and Alcohol Review.
  • de Looze, M., et al. (2019). The decline in adolescent substance use across Europe and North America in the early twenty-first century: a result of the digital revolu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Health, 64, 229–240.
  • Przybylski, A. K., & Weinstein, N. (2013). Can you connect with me now? How the presence of mobile communication technology influences face-to-face conversation quality.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30(3), 237–246.
  • Linares, C., & Sellier, A.-L. (2021). How bad is the mere presence of a phone? A replication of Przybylski and Weinstein (2013) and an extension to creativity. PLoS ONE, 16(6).

본 칼럼의 '사회적 학습 단절' 논지는 확인된 인과관계가 아니라 관찰된 데이터에 대한 하나의 해석 가설이다. 통계는 상관을 보여줄 뿐 인과를 증명하지 않으며, 건강 인식 변화, 물가, 인구 구조, 양육 관행 변화 등 경쟁 가설이 존재한다. 특히 위에 인용한 체계적 문헌고찰은 청소년 음주 감소의 가장 강건한 설명 요인으로 부모의 양육 관행 변화를 지목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추가로, 위 학술 문헌의 관측 창은 대체로 2015년까지이며 숏폼 그 자체는 아직 직접 검정된 적이 없다. 스크롤 기반 알고리즘 피드는 2003년의 인터넷과 다른 물건일 수 있다. 20년치의 일관된 null 결과라는 강한 사전확률이 있을 뿐, 결정적으로 배제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