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2009). 한국어판 김영사, 이창신 옮김, 2010.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10월 6일
들어가며 - 1997년 4월 17일, 법정이 역사에 답하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확정했다(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죄명은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그리고 뇌물이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지 18년, 시민이 거리에서 직선제를 되찾은 지 10년 만이었다.
이 판결은 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사건이 아니다. "총칼로 권력을 잡아도, 그 권력이 오래 버티면 결국 합법이 된다"는 낡은 공식을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폐기한 날이다. 같은 해 12월 두 사람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판결문에 새겨진 "유죄"라는 역사적 판정은 사면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 칼럼은 다섯 가지를 묻는다.
첫째. 판결문은 무엇을 말했는가?
둘째. 그 판결은 어떤 정의관 위에 서 있는가?(마이클 샌델)
셋째. 성장률로 리더를 줄 세우는 시각은 무엇을 놓치는가?(재레드 다이아몬드)
넷째. 이웃 아시아 국가들은 권력자를 법정에 세운 적이 있는가?
마지막 다섯째. 그리고 민주주의와 성장을 함께 지켜낸 한국과 대만은 어떻게 닮았는가?
판결문 풀어 읽기 - "성공한 쿠데타"는 없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 문장은 한 줄로 요약된다.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가 아닌 폭력으로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고, 군사반란과 내란은 처벌 대상이라는 것이다(법률신문). 그 뒤로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법정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판결이 정리한 사건은 세 겹이다.
| 사건 | 시점 | 대법원의 법적 평가 |
|---|---|---|
| 12·12 | 1979년 12월 12일 |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대통령 재가 없이 무력 연행하고 병력을 불법 동원한 군사반란 |
| 5·17 | 1980년 5월 17일 |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봉쇄, 정치인 연행을 통한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
| 5·18 | 1980년 5월 18~27일 | 헌정 수호를 위해 모인 광주 시민을 무력 진압한 행위 자체가 내란 폭동, 발포에 따른 살상은 내란목적살인 |
이 판결이 특별한 이유는 세 가지다.
- 사후 추인 논리의 거부. 반대의견은 쿠데타 이후 국민투표로 헌법이 개정되고 새 대통령과 국회가 들어섰다면, 그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법원이 아니라 정치 과정이 판단할 문제라고 보았다(판결 전문, 위키문헌). 다수의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폭력으로 만든 질서 위에서 치른 국민투표가 폭력 자체를 세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통치행위의 한계. 비상계엄 확대가 대통령 명의로 이뤄졌더라도, 국헌문란 목적의 수단이었다면 법원이 범죄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논리는 2026년 2월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판결에서 "대통령도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그대로 이어졌다(경향신문).
- 시민을 헌법의 주체로 본 시각. 다수의견은 광주 시민의 시위를 국헌문란에 맞선 헌정 수호 행위로 평가했다. 그 시위를 강압으로 분쇄한 것은 헌법기관의 권능을 마비시킨 것과 같다고 보았다. 시민 자체가 헌법을 지키는 기관이라는 선언이다.
법리로 보면 이 결론을 받치는 기둥은 두 개다. 첫째, 대법원은 다수인이 결합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하면 그 순간 내란죄가 완성되고,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상관없다고 보았다. 쿠데타의 성공이 범죄를 지우지 못한다는 원칙이 여기서 나온다. 둘째, 대법원은 5·17 이후의 내란이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년 1월 24일까지 계속됐다고 보고, 그날을 공소시효 계산의 기준으로 삼았다. 내란을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계엄 통치 전체로 본 것이다. 이 판단과 5·18특별법의 시효 정지 조항이 맞물리면서 15년 넘게 지난 범죄를 처벌할 길이 열렸다(판결 전문, 위키문헌).
이 판결까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4~1995년 검찰은 12·12를 기소유예하고, 5·18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1995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폭로로 여론이 끓어오르자 국회는 그해 12월 공소시효 진행을 정지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2월 이 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96헌가2). 1심(1996년 8월)은 전두환에게 사형, 항소심(1996년 12월)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법률신문).
시민이 먼저 내린 판결: 12·12의 정당성과 박종철의 죽음
법정의 판결은 1997년에 나왔지만, 시민의 판결은 1987년에 이미 내려졌다.
12·12에는 처음부터 정당성이 없었다
19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발판 삼아 12월 12일 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무력으로 연행했다. 이를 막으려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제압당했고, 정병주를 지키던 김오랑 소령은 총격으로 숨졌다. 대통령의 재가는 총성이 멎은 뒤에야 받아냈다.
정당성 논쟁에서 흔히 나오는 반론은 "당시 안보 위기와 혼란을 수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두 지점에서 무너진다. 첫째, 위기 수습이 목적이었다면 헌법상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이유가 없었다. 둘째, 그 후 5·17 계엄 확대, 국회 봉쇄, 광주 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체육관 간접선거로 이어진 경로는 "수습"이 아니라 "집권"의 시간표였다. 대법원이 12·12를 군사반란, 5·17을 내란으로 묶어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종철 - "탁 치니 억 하고"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부검의의 소견, 기자들의 취재, 교도관과 수감자들의 기록이 진실을 조각조각 밖으로 내보냈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문 경관이 축소·조작됐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정권의 거짓말이 통째로 드러났다.
그 전에 전두환은 4월 13일 "현행 헌법으로 다음 정부를 넘긴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한 상태였다. 고문치사와 은폐, 그리고 직선제 거부가 한 줄로 이어지자 분노는 학생을 넘어 넥타이 부대, 종교계, 상인으로 번졌다.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고(7월 5일 사망), 6월 10일 국민대회 이후 전국에서 연인원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6월 29일 노태우의 직선제 수용 선언, 그해 10월 국민투표로 현행 헌법이 확정됐다.
박종철의 죽음이 특별했던 이유는 한 사람의 비극이 체제 전체의 성격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고문은 개별 경찰의 일탈이 아니라 정당성 없는 권력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시민들은 그것을 알아봤고, 거부했다. 1997년 대법원 판결은 그 거부에 법의 언어를 입힌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 샌델의 세 가지 저울로 판결을 달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2009; 한국어판 김영사, 2010)에서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접근을 제시한다. 행복(공리)을 극대화하는가? 자유와 존엄을 존중하는가? 공동체가 무엇을 기리고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미덕). 전두환 판결을 이 세 저울에 올려 보면, 왜 이 판결이 "늦었지만 옳았는지"가 선명해진다.
첫째 저울, 공리주의. 독재 옹호론의 뿌리는 대부분 여기에 있다. "광주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물가를 잡고 성장률을 올려 다수가 더 잘살게 됐다"는 계산이다. 샌델은 이 계산의 약점을 정확히 짚는다. 공리주의는 소수의 고통을 다수의 편익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상쇄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묻지 않는다. 군부독재에 저항한 광주 시민은 그 거래에 동의한 적이 없다.
둘째 저울, 자유와 존엄. 칸트의 정언명령은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 다루지 말라고 요구한다. 박종철을 물고문한 국가는 한 청년을 "선배의 소재"를 캐내는 도구로 썼다. 성장률이 아무리 높았어도 이 저울에서는 변명이 성립하지 않는다. 대법원이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쓴 대목은 칸트의 언어에 가깝다.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성격 자체를 심판했다.
셋째 저울, 미덕과 공공선. 샌델이 가장 공들이는 지점이다. 정의는 분배의 문제이기 전에 "우리 공동체가 무엇을 명예롭게 여기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판결은 바로 그 질문에 답했다. 대한민국은 쿠데타 주역을 "구국의 영웅"으로 기리지 않고 반란수괴로 기록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두환은 2021년 사망 후 국가장도, 국립묘지 안장도 받지 못했다. 사면은 형의 집행을 면제했지만 공동체의 평가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샌델은 같은 책에서 세대를 넘는 집단적 책임, 즉 과거 국가의 잘못을 지금 세대가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하는가를 다룬다. 한국의 5·18 특별법과 판결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모범 답안이다. 법원은 정치가 미뤄 둔 공동체의 판단을 대신 짊어졌고, 그 판단이 공공선, 즉 "다시는 총으로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모두의 안전을 만들었다. 사법 판단이 공공의 이익이 되는 순간이다.
다이아몬드의 순위표와 시민의 시스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강주헌 옮김, 김영사, 2026)는 "그 사람이 없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를 묻는 "햄릿 테스트"를 축으로 정치·기업·스포츠·종교의 리더를 분석한다(한국경제). 한국 독자에게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와 스티븐 페닝스의 연구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1950년 이후 국가 리더의 성장 기여도를 추정한 이 연구에서 1위는 보츠와나의 세레체 카마였고, 전두환과 박정희는 각각 6위와 12위에 올랐다(경향신문).
이 대목만 떼어 읽으면 "세계적 석학도 인정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옹호 논리로 쓰이기 쉽다. 그러나 정작 다이아몬드는 잔혹함으로 미움받은 군사독재자가 순위에 들어 놀랄 독자가 있을 것이라며, 성장률 자체는 리더를 평가하는 믿을 만한 자료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경향신문). 원 논문의 결론은 더 단호하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기여를 한 리더는 극소수이고, 재임 중 평균 성장률은 실제 기여를 재는 데 거의 쓸모가 없으며, 비민주 국가의 리더가 민주 국가의 리더보다 유의미한 성장 기여자로 식별될 가능성이 높지도 않다는 것이다(NBER Working Paper 27153;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2025).
전두환 시대의 성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 경고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1979년 4월의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은 박정희 정부 말기에 이미 시작됐고, 1986~1988년 호황은 저유가·저금리·저달러라는 "3저" 외부 조건이 크게 끌어올렸다. 1980년에는 쿠데타와 오일쇼크가 겹쳐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성장의 공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은 다이아몬드가 경계하는 "영웅사관"의 함정이다.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관찰은 이 칼럼의 논지와 정확히 맞닿는다. 그는 국가의 경제성장이 민주적 리더보다 독재적 리더의 사망에 더 크게 흔들리며, 그 이유는 독재자가 재량권 행사에 제약을 덜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국민일보). 뒤집어 말하면 독재는 한 사람의 판단에 국가의 운명을 거는 고위험 베팅이다. 잘 걸리면 고성장이지만, 잘못 걸리면 광주가 되고 캄보디아가 되고 짐바브웨가 된다.
민주주의는 이 베팅을 거부하는 시스템이다. 리더의 재량을 헌법, 국회, 법원, 언론, 선거로 묶어 두는 대신 한 사람이 망쳐도 나라가 망하지 않게 만든다. 1987년 시민이 거리에서 요구한 것은 더 나은 독재자가 아니라 독재자 없이도 굴러가는 나라였다. 리더가 언제 차이를 만드는지 묻는 다이아몬드의 질문에 한국 현대사가 내놓는 답은 이렇다. 가장 큰 차이는 리더가 아니라 리더를 갈아치울 수 있는 시민이 만들었다.
아시아는 권력자를 법정에 세웠는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헌정을 파괴한 최고 권력자를 자국 법정이 정상적인 형사 절차로 단죄하고, 그 판결이 최고법원에서 확정된 사례는 대한민국 외에 찾기 어렵다(범위를 남아시아로 넓히면 파키스탄 무샤라프의 반역죄 판결 정도가 드문 예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1997년(전두환·노태우)과 2026년(윤석열 1심 무기징역, 항소심 진행 중) 두 번이다.
| 국가 | 대표 사건 | 최고 권력자의 사법적 책임 | 처리 방식 |
|---|---|---|---|
| 한국 | 12·12, 5·17, 5·18 / 12·3 비상계엄 | 있음. 전두환 무기징역 확정(1997),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1심 무기징역(2026) | 특별법 + 형사재판 + 특검 |
| 대만 | 2·28 사건(1947), 백색테러 계엄(1949~1987) | 없음. 장제스·장징궈는 기소된 적 없음 | 사과·보상·이행기 정의 위원회(2018~2022), 정치범 유죄판결 일괄 무효화 |
| 중국 | 문화대혁명, 1989 톈안먼 | 없음. 마오쩌둥은 "공 7, 과 3"으로 정치적 평가만, 톈안먼은 금기 | 1980~1981 "4인방" 재판은 당이 책임을 측근에게 돌린 정치재판 |
| 일본 | 침략전쟁·군국주의 | 자국 법정의 단죄 없음. 연합국의 도쿄재판(1946~1948)뿐 | A급 전범 용의자 기시 노부스케가 1957년 총리에 오름 |
| 싱가포르 | 1963 "콜드스토어" 작전 등 야권 무재판 구금 | 해당 없음. 1959년 이래 인민행동당(PAP) 연속 집권 | 정권 교체 자체가 없어 과거 청산의 계기가 생기지 않음 |
| 태국 | 1932년 이후 10여 차례 쿠데타, 1992 "검은 5월", 2014 쿠데타 | 없음. 쿠데타 주역은 매번 사면 | 2014 임시헌법 제48조·2017 헌법 제279조로 군정 행위를 헌법이 사전 면책, 쿠데타 지도자 쁘라윳은 2023년까지 총리 |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처벌 여부"가 아니다. 처벌하지 못한 나라들은 대개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태국은 쿠데타를 처벌하지 않았기에 쿠데타가 정치의 상수가 됐다. 사면이 다음 쿠데타의 보험이 된 것이다. 일본은 전쟁 책임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기에 과거사가 지금도 외교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중국은 판단 자체를 금지했기에 기억은 검열의 대상이 됐다.
대만은 다른 길을 걸었다. 형사처벌 대신 진상규명, 명예회복, 보상, 상징물 정리라는 "이행기 정의"를 택했다. 국민당 일당 체제가 선거를 통해 스스로 민주화를 받아들인 과정이었기에 형사 단죄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 다만 이 방식은 "누가 책임자인가"를 끝내 법정에서 묻지 못했다는 한계를 남겼고, 장제스 기념관(중정기념당)의 처리 같은 문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한국이 늦었지만 법정의 판결을 끌어낸 것은 "쿠데타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시민들은 몇 시간 만에 국회 앞에 모였고, 국회는 계엄 해제를 의결했으며, 군 일부는 명령 이행을 주저했다. 그 주저함의 배경에는 1997년 판결이 있었다. 명령에 따랐던 장군들까지 감옥에 갔다는 기억이다. 법의 판결은 다음 쿠데타의 비용을 미리 청구하는 장치다.
12·3 내란 사태 - 세계가 지켜본 회복력
1997년 판결이 만든 방패는 27년 뒤 실제로 작동했고,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 장면을 "회복력의 모범"으로 기록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몰려갔고, 국회는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계엄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 뒤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파면(2025년 4월 4일), 조기 대선, 그리고 2026년 2월 내란 우두머리 1심 무기징역까지 모든 과정이 헌법과 법정 안에서 진행됐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동맹국 미국이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계엄 다음 날인 12월 4일 브뤼셀 나토 외교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의 발현과 민주적 회복성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 중 하나라고 말하며, 이번에도 그런 본보기를 보일지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YTN). 2025년 1월 서울을 찾은 그는 지난 40년 동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감을 주는 민주주의를 가져왔으며, 미국 민주주의처럼 시험대에 올랐지만 한국 국민이 회복력으로 응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프레시안).
서방 언론의 평가도 같은 방향이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이 헌법 절차에 따라 교체된다면 한국의 시스템이 강력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썼다(헤럴드경제). 파면 결정 뒤 『워싱턴포스트』는 국민과 국회에 이어 사법부까지 민주화 이후 첫 계엄 시도를 거부했다며 이를 민주주의 회복력의 상징으로 해석했다(쿠키뉴스).
| 시기 | 평가 주체 | 내용 |
|---|---|---|
| 2026년 10월 9일 발표 예정 |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한국 "시민 전체"가 후보 추천됨 (주간경향) |
| 2026년 3월 | 스웨덴 예테보리대 V-Dem 연구소 | 「민주주의 보고서 2026」에서 한국 순위가 41위에서 22위로 상승. 4단계 분류(자유민주주의·선거민주주의·선거독재·폐쇄독재) 가운데 2024년 평가에서 "선거민주주의"로 내려갔다가 최상위 "자유민주주의"로 복귀 (경향신문) |
| 2026년 1월 | 세계정치학회(IPSA) 전 회장 등 정치학자 4명 | 계엄을 비폭력으로 막은 한국 "시민 전체(Citizen Collective)"를 "빛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서울신문/트윅) |
| 2025년 4월 | 『워싱턴포스트』 | 파면 결정을 민주주의 회복력의 상징으로 평가 |
| 2025년 1월 | 블링컨 미 국무장관(서울) |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의 회복력으로 응답하고 있다고 평가 |
| 2024년 12월 | 블링컨 미 국무장관(브뤼셀), 『이코노미스트』 | 민주적 회복성의 세계 최강 사례 중 하나, 스트레스 테스트 |
노벨평화상 추천인은 서울대 김의영 교수, 세계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스페인 발렌시아대 파블로 오냐테 교수, 유럽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아일랜드 더블린대 데이비드 패럴 교수, 남미정치학회 현직 회장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대 아줄 아구이알 교수다(한국경제). 이들이 제출한 설명자료는 한국이 내전이나 대규모 탄압 없이, 법치와 절제된 비폭력으로 헌법 질서를 되찾았다고 강조했다(한국경제).
노벨평화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이 설명은 1997년 판결이 남긴 "쿠데타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라는 교훈이 27년 뒤 실제로 작동했음을 국제 학계가 확인한 것이다.
이 찬사가 무거운 이유는 시점에 있다. 같은 V-Dem 보고서는 세계 민주주의 수준이 1970년대 후반으로 후퇴했다고 진단했고, 미국의 상황은 1965년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주간경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들이 흔들리는 시기에, 쿠데타를 법정에서 단죄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가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블링컨이 말한 "회복력"의 뿌리는 1987년의 거리와 1997년의 법정에 있다.
12·3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상을 바꿔 놓았다. 한국은 더 이상 "민주화를 이룬 나라"에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방법을 세계에 보여준 나라"가 됐다. 태국이 쿠데타와 사면을 되풀이하고 대만이 극한 대립을 헌법 절차 안에 가두는 데 힘을 쏟는 동안, 한국은 헌정 파괴 시도를 시민의 힘으로 막고 그 책임을 법정에서 묻는 전 과정을 세계 앞에서 보여주었다.
기억을 지키는 법 - 5·18 왜곡에 대한 판결
쿠데타의 마지막 전선은 기억이다. 처벌받은 권력은 판결 이후에도 "북한군 개입", "헬기 사격은 없었다", "시민이 먼저 총을 들었다"는 서사로 역사를 다시 쓰려 했다. 대한민국은 이 시도 역시 법정에서 다뤘다.
프로지움의 나라 - 영화 『이퀄리브리엄』이 보여주는 것
커트 위머 감독의 영화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2002)은 3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진 전체주의 국가 "리브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 나라는 전쟁의 근원을 인간의 감정으로 규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프로지움"이라는 감정 억제 약물을 매일 목에 주사하게 한다. 책과 그림과 음악은 불태워지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감정 위반자(Sense Offender)"로 낙인찍혀 처형된다.
주인공 존 프레스턴(크리스천 베일)은 위반자를 색출하는 체제의 최고 요원이다. 그는 어느 날 실수로 약을 거르고, 그 뒤로 일부러 투약을 멈춘다. 음악을 듣고, 빗소리를 느끼고, 자신이 죽인 동료의 죽음을 처음으로 슬퍼하게 된 그는 결국 체제의 정점을 향해 총을 돌린다. 영화가 말하는 독재의 본질은 총보다 마취다. 사람들이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게 만들면, 진압은 필요조차 없어진다.
리브리아의 통치 원리는 단순하다. 감정을 지우면 저항도 지워진다. 5·18 왜곡 서사는 정확히 이 원리를 따른다.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광주 시민의 자발적 항거를 외부 세력의 공작으로 바꿔치기한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주장은 계엄군의 과잉 살상을 지워 시민의 분노를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든다. "시민이 먼저 총을 들었다"는 주장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를 뒤집는다. 세 주장 모두 사실을 다투는 척하지만, 실제로 노리는 것은 광주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무효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법원이 이 서사들을 하나하나 허위로 판단한 것은 단순한 명예훼손 판결이 아니다. 리브리아의 약병을 깨뜨린 일, 즉 공동체가 슬퍼하고 분노할 권리를 되찾아 준 일이다. 2026년 2월 대법원이 회고록의 허위사실을 확정하고 삭제 없는 출판을 금지한 것은, 기억을 통제하려는 마지막 시도에 법이 제동을 건 순간이었다.
법정이 내린 판단 - 회고록에서 특별법까지
| 시기 | 사건 | 법적 결론 |
|---|---|---|
| 2026년 2월 | 전두환 회고록 『혼돈의 시대』 손해배상·출판금지 소송 | 소송 8년 7개월 만에 5·18 단체와 유족 승소 확정. 위자료 합계 7,000만 원, 허위사실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 금지 (뉴시스) |
| 2022년 1월 |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 | 전두환 사망으로 공소기각 |
| 2021년 1월 |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 시행 | 5·18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를 형사처벌하는 조항 신설(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학문·예술·보도 목적은 예외) |
| 2020년 11월 |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1심 | 전두환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경기일보) |
| 2023년 | "북한군 600명 침투설" 유포 사건 | 지만원 씨의 명예훼손 유죄 확정 |
회고록 소송의 쟁점은 그대로 5·18 왜곡의 삼종 세트였다. 회고록은 남파 북한군과 공작원이 시위를 격화시켰고, 헬기 사격은 없었으며, 시민이 먼저 무장해 계엄군이 자위권을 발동했다고 주장했다(뉴시스). 법원은 세 주장 모두 허위로 판단했다. 조비오 신부 사건 1심 재판부는 헬기 사격 여부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며 전두환이 끝내 사과하지 않아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경기일보).
2026년 2월 12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5·18기념재단 등 오월단체 4곳과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전두환과 출판자인 장남 전재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했다(뉴시스). 전두환은 항소심 중이던 2021년 11월 사망했고 부인 이순자가 소송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이순자와 전재국은 오월단체 4곳에 각 1,500만 원,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세계일보).
대법원은 쟁점 표현들이 관련 확정판결과 국방부 조사 결과에 비춰 모두 허위로 증명됐다고 판시했다(아시아경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부른 대목은 허위사실과 별개로 모욕적 표현으로 고인을 경멸해 유족의 추모 감정을 침해했다고 보았다(헤럴드경제). 직계비속이 없는 가톨릭 신부의 경우 그 뒤를 이어 함께 봉직한 조카에게도 청구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한국경제). 추모 감정을 침해당한 유족의 범위를 언론중재법상 유족으로만 좁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아시아경제). 5·18기념재단은 이 판결을 5·18 왜곡이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불법행위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트윅).
역사왜곡 처벌 조항에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처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표현까지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오래된 논쟁이다. 다만 이 조항은 학문·예술·보도를 예외로 두고, 법원이 이미 사실로 확정한 내용을 허위로 퍼뜨리는 행위에 한정된다. 피해자의 존엄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한국 사회가 고른 선이다. 그 선이 적절한지는 계속 토론할 문제지만, 왜곡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의지만큼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피를 흘린 광주 시민들을 모욕한 쿠데타 세력의 망언을, 국가는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한 것이다.
한국과 대만 - 민주주의와 성장, 두 바퀴로 달린 나라
2025년 IMF 기준 1인당 GDP에서 대만은 37,827달러, 한국은 35,962달러로 일본(34,720달러)을 나란히 앞섰다(트윅/IMF). 한국이 2003년 대만을 추월한 지 22년 만에 대만이 다시 앞선 것이다(헤럴드경제). 두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칼럼의 요점이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한 두 나라가 나란히 선두권에 서 있다.
| 국가 | 2025년 1인당 GDP (IMF, 달러) | 정치체제 |
|---|---|---|
| 대만 | 37,827 | 1987년 계엄 해제, 1996년 총통 직선 |
| 한국 | 35,962 | 1987년 6월항쟁, 직선제 개헌 |
| 일본 | 34,720 | 전후 의회민주주의 |
| 중국 | 13,810 | 공산당 일당 체제 |
출처: IMF 세계경제전망, 트윅 재인용. 2025년 한국 성장률은 1% 안팎, 대만은 AI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8.63%를 기록했다(헤럴드경제).
놀라울 만큼 닮은 두 궤적
- 같은 해의 전환. 한국의 6월항쟁과 대만의 38년 계엄 해제는 모두 1987년에 일어났다. 같은 해 대만에서는 TSMC가 설립됐다.
- 개발독재라는 출발점. 두 나라 모두 냉전의 최전선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수출주도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시민이 바꾼 경로. 두 나라 모두 성장의 과실을 독재의 정당화에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중산층과 학생, 노동자가 직선제와 언론 자유를 요구했고 관철했다.
- 평화적 정권 교체. 한국은 1997년(김대중), 대만은 2000년(천수이볜) 처음으로 야당에 정권을 넘겼다. 그 뒤로 두 나라 모두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다.
-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이동. 저임금 조립에서 메모리 반도체(삼성·SK하이닉스)와 파운드리(TSMC)로 넘어갔다. 기술 고도화에는 예측 가능한 법치와 자유로운 정보 흐름, 인재 이동이 필요했다.
민주주의가 성장을 만들었는가?
솔직하게 말하면, 인과관계는 논쟁적이다. 싱가포르는 민주주의 지표가 낮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국은 일당 체제로 40년 고성장을 했다. 반대로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세모글루 등은 민주화를 겪은 국가의 1인당 GDP가 장기적으로 약 20% 높아진다는 실증 결과를 냈다(Acemoglu et al., "Democracy Does Cause Growth", JPE 2019).
한국과 대만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더 구체적이다.
첫째, 민주주의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권위주의 옹호론자들이 경고한 "민주화하면 혼란과 정체가 온다"는 예언은 두 나라 모두에서 틀렸다.
둘째, 민주주의는 성장의 질을 바꿨다. 한국은 1993년 하나회 해체로 군의 정치 개입을 끊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 개혁을 강제할 수 있었다. 독재 정부였다면 정권과 유착한 재벌을 손대기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는 "쿠데타 리스크"를 지웠다. 태국처럼 10년마다 쿠데타가 반복되는 나라에 장기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 1997년 판결 이후 한국의 헌정 질서는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한 상수가 됐다.
결국 한국과 대만은 "성장이냐 민주주의냐?"라는 거짓 양자택일을 거부한 나라다. 두 바퀴를 함께 굴렸기에 넘어지지 않았다. 독재의 성장률 순위표가 놓치는 것은 바로 이 균형이다.
대만 정치 사태 정리 - 격렬하지만 탱크는 없다
한국이 12·3을 통해 보여준 것과 대만이 여소야대 갈등 속에서 보여주는 것은 같은 능력의 두 얼굴이다. 하나는 헌정 파괴 시도를 막고 단죄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극한 대립을 헌법 절차 안에 가두는 능력이다.
지금 대만 정치는 여소야대가 만든 전면전 상태다. 2024년 1월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가 총통에 당선됐지만, 입법원 113석 중 민진당은 51석에 그쳤고 야권은 국민당 52석, 민중당 8석, 친야 무소속 2석으로 62석을 확보했다(교수신문).
| 시기 | 사건 | 결과 |
|---|---|---|
| 2026년 11월 28일 예정 | 지방선거 | 전국 11,051개 지방 공직 선출 (Wikipedia) |
| 2026년 5월 19일 | 헌정사상 첫 총통 탄핵안 표결 | 찬성 56, 반대 50으로 의결정족수 76표에 크게 못 미쳐 부결 (Focus Taiwan) |
| 2025년 12월 | 행정원장 줘룽타이가 입법원 통과 재정분배법 개정안 부서 거부 | 야권이 "위헌 총통"이라며 탄핵 절차 착수 (경향신문 영문판) |
| 2025년 11월 | 야권, 중앙재정을 지방으로 대폭 이전하는 재정수지구분법 개정 강행 | 국민당이 14개 시·현, 민진당이 5곳을 장악한 구도에서 야권에 유리한 법안이라는 비판 (교수신문) |
| 2025년 7~8월 | 민진당 지지층의 야당 의원 32명 주민소환, 이른바 "대파면" | 국민당 의원 대상 투표 전원 부결, 라이 총통 지지율 하락 (교수신문) |
갈등의 뿌리는 세 가지다. 첫째는 양안 관계다. 국민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정리원 국민당 주석은 최근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민진당은 국방비 증액과 주권 수호를 앞세운다(AFP/Tribune). 둘째는 예산과 권한이다. 국방 예산, 지방 재정, 입법원 권한 확대를 둘러싸고 입법과 행정이 정면충돌했다. 셋째는 헌법재판의 마비다. 헌법법정의 의결정족수 문제로 분쟁을 최종 판단할 심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행정원은 부서 거부를 "최후 수단"이라고 설명했다(CNA/GlobalSecurity).
그러나 이 혼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다. 대만의 정치 투쟁은 아무리 격렬해도 주민소환, 탄핵 표결, 헌법재판, 선거라는 헌법 안의 수단으로만 치러진다. 탄핵 표결 때 여야 의원 모두 카메라 앞에 투표용지를 펼쳐 보였다(Taiwan News). 의회 난투극은 있어도 군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과 대조되는 지점도 분명하다. 한국은 2024년 12월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의회를 봉쇄하려 했고, 시민과 국회와 법원이 그것을 막아냈다. 대만은 아직 그런 시험대에 오르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시험받고 있지만, 한국은 "헌정 파괴 시도를 법정에서 단죄하는 능력"을 두 번 증명했고, 대만은 "극한 대립을 헌법 절차 안에 가두는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둘 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맺으며,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독재가 아니라 독재를 이긴 시민이다
개발독재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울 필요는 없다. 고속도로와 제철소와 수출 공단이 그 시대에 세워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사실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느냐다.
하나의 교훈은 "강한 지도자가 나라를 키운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순위표를 오독하면 이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광주의 희생은 "성장의 비용"이 되고, 박종철의 죽음은 "불가피한 부작용"이 된다. 샌델이 말한 공동체의 미덕, 즉 우리가 무엇을 명예롭게 여기는가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교훈이다.
다른 하나의 교훈은 "시민이 권력을 길들였기에 나라가 지속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1987년 6월의 거리, 1997년 4월의 법정, 2016~2017년의 광장,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 앞의 시민들. 한국 현대사는 독재를 거부한 기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거부는 성장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쿠데타 리스크를 지우고, 재벌과 권력의 유착을 끊고, 창의적 산업이 자랄 토양을 만들었다. 대만도 같은 길을 걸었다.
아시아의 이웃들과 비교하면 이 성취는 더 선명해진다. 태국은 쿠데타 주역을 사면하며 쿠데타를 반복했고, 일본은 전쟁 지도자를 스스로 심판하지 못했으며, 중국은 기억 자체를 금지했다. 대한민국은 늦었지만 법정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없다"고 선언했고, 그 선언이 27년 뒤 또 한 번의 헌정 파괴 시도를 막는 방패가 됐다.
그러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자부심의 문장은 이것이다. "우리는 독재 덕분에 잘살게 된 나라가 아니다. 독재를 거부하고도, 아니 거부했기에 더 오래 잘살 수 있게 된 나라다." 판결은 늦게 도착했지만, 시민은 끝내 이겼다.
레퍼런스
판결·법령
-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위키문헌 전문)
- 헌법재판소 1996. 2. 16. 96헌가2 결정 (5·18특별법 합헌)
-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1995 제정, 2021년 1월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 시행)
- 법률신문, 쿠데타와 96도3376 판결 해설
- 경향신문,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1심 판결 (2026.2.19)
- 경향신문, 윤석열 재판 진행 현황 (2026.8.5)
- 뉴시스,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출판금지 확정 (2026.2.12)
- 경기일보,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1심 (2020.11.30)
도서·논문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2009), 김영사, 2010
- 재레드 다이아몬드,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강주헌 옮김, 김영사, 2026 — 서평: 경향신문, 한국경제, 국민일보
- William Easterly & Steven Pennings, "Leader Value Added", NBER WP 27153 (2020);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175 (2025)
- Daron Acemoglu, Suresh Naidu, Pascual Restrepo, James Robinson, "Democracy Does Cause Grow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7(1), 2019
- 대런 아세모글루·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2012), 시공사
경제 지표
대만 정치
- 교수신문, 여소야대의 덫에 걸린 대만 정치 (2026.2.10)
- Focus Taiwan (CNA), Impeachment vote targeting President Lai fails (2026.5.19)
- CNA Explainer via GlobalSecurity (2026.5.17)
- Taiwan News, 탄핵 표결 현장 (2026.5.19)
- AFP via Tribune, Taiwan opposition fails president impeachment
- Wikipedia, 2026 Taiwanese local elections
12·3과 국제사회 평가
- YTN, 블링컨 "민주적 회복성의 세계 최강 사례" (2024.12.5)
- 프레시안, 블링컨 방한 기자회견 (2025.1.6)
- 헤럴드경제, 세계가 본 한국 민주주의 (2024.12)
- 쿠키뉴스, 외신의 윤석열 파면 평가 (2025.4.5)
- 경향신문, V-Dem 민주주의 보고서 2026 (2026.3.17)
- 한국경제, 한국 시민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2026.2.19)
- 주간경향, 2026 노벨평화상 후보 287건 (2026.4.30)
영화
- 커트 위머 감독,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2002
아시아 각국 비교표(중국·일본·싱가포르·태국)의 역사적 사실과 박종철·6월항쟁 서술은 널리 확립된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며, 별도 링크를 달지 않은 항목은 출판 전 1차 사료로 재확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