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표지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2002). 김희정 옮김.

김호광 싸이월드 전 대표 / 2026년 10월 2일

시작하는 말, "MCP 호출 한 번이면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2026년 2월, 한 개발자가 주말 동안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웹사이트가 공개됐다. 이름은 RentAHuman. AI 에이전트가 API나 MCP 서버를 통해 사람을 검색하고, 예약하고, 결제까지 끝내는 마켓플레이스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 기술, 시급을 프로필에 올리고, 에이전트는 그 목록을 훑어 "현장 사진 촬영", "줄 서기", "서류 서명", "오프라인 미팅 참석" 같은 일을 발주한다. 플랫폼은 스스로를 AI를 위한 미트스페이스(meatspace) 레이어, 즉 디지털 지능이 물리 세계에 닿기 위한 '육체 계층'이라 불렀다.

출시 직후 수만 명이 자신의 노동을 등록했고, 반대편에서 일을 발주한 에이전트는 수십 개에 불과했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시장, 가격 결정권이 발주자에게 있는 시장이다. 이 플랫폼은 이후 Y Combinator 2026년 봄 배치에 합류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이트를 기술 업계의 괴짜 실험쯤으로 웃어넘겼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앞으로 10년의 노동 질서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본다. 우리는 오랫동안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프레임으로 미래를 상상해왔다. 실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보다 더 기묘하다. AI가 인간에게 일을 발주하는 세계, 인간이 AI의 하청업체가 되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싸게 외주를 받는 인간과, 외주조차 받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 칼럼은 그 세계가 왜 경제학적으로 필연인지, 그 세계에서 누가 보이지 않게 배제되는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다루고자 한다.

1. 월 200달러 - LLM 최고 요금제의 지구적 의미

1-1. 요금제의 수렴

2026년 10월 현재, 주요 LLM 서비스의 요금 체계는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수렴해 있다.

구분 OpenAI Anthropic Google
표준 요금제 ChatGPT Plus $20 Claude Pro $20 Google AI Pro $19.99
중간 요금제 ChatGPT Pro $100 Claude Max 5x $100 Google AI Ultra $99.99
최고 요금제 ChatGPT Pro $200 Claude Max 20x $200 Google AI Ultra $199.99

구글은 2026년 5월 I/O에서 최상위 요금제를 249.99달러에서 199.99달러로 내렸다. 그 결과 세 회사의 최고 개인 요금제가 모두 월 200달러라는 하나의 숫자 위에 정렬됐다. xAI의 SuperGrok Heavy는 월 300달러로 그 위에 있다.

표준 요금제 20달러, 최고 요금제 200달러. 이 두 숫자를 세계의 소득 지도 위에 올려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2. 1인당 GDP가 LLM 최고 요금제보다 낮은 나라들

아래는 IMF 세계경제전망(2026년 4월) 기준 명목 1인당 GDP를 12개월로 나눈 값이 월 200달러(연 2,400달러)에 못 미치는 나라의 목록이다. 다시 말해,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부를 국민 한 사람당 똑같이 나눠도 ChatGPT Pro나 Claude Max 한 달 치 구독료를 낼 수 없는 나라들이다.

순위 국가 1인당 GDP (연, USD) 월 환산 (USD) 최고 요금제($200) ÷ 월 소득
1 예멘 384 32 6.3배
2 아프가니스탄 448 (2025) 37 5.4배
3 남수단 488 41 4.9배
4 부룬디 546 46 4.4배
5 중앙아프리카공화국 613 51 3.9배
6 모잠비크 632 53 3.8배
7 마다가스카르 656 55 3.7배
8 말라위 733 61 3.3배
9 소말리아 813 68 3.0배
10 니제르 822 69 2.9배
11 수단 864 72 2.8배
12 시에라리온 919 77 2.6배
13 감비아 953 79 2.5배
14 라이베리아 964 80 2.5배
15 에티오피아 1,081 90 2.2배
16 콩고민주공화국 1,122 94 2.1배
17 르완다 1,198 100 2.0배
18 레소토 1,241 103 1.9배
19 말리 1,301 108 1.8배
20 차드 1,315 110 1.8배
21 부르키나파소 1,319 110 1.8배
22 토고 1,341 112 1.8배
23 탄자니아 1,362 114 1.8배
24 기니비사우 1,449 121 1.7배
25 우간다 1,476 123 1.6배
26 미얀마 1,519 127 1.6배
27 동티모르 1,520 127 1.6배
28 네팔 1,548 129 1.6배
29 나이지리아 1,556 130 1.5배
30 파키스탄 1,696 (2025) 141 1.4배
31 베냉 1,809 151 1.3배
32 잠비아 1,831 153 1.3배
33 기니 1,848 154 1.3배
34 타지키스탄 1,939 162 1.2배
35 코모로 1,951 163 1.2배
36 세네갈 2,054 171 1.2배
37 카메룬 2,125 177 1.1배
38 솔로몬제도 2,258 188 1.1배

경계선: 라오스는 1인당 GDP 2,403달러(월 200.3달러)로 사실상 임계선 위에 걸쳐 있다.

총 38개국. 이 나라들의 인구를 합하면 대략 14억 명, 세계 인구의 약 17%다(필자 추산). 나이지리아(약 2.3억), 파키스탄(약 2.5억),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미얀마가 이 목록에 있다.

임계선을 xAI의 최상위 요금제인 월 300달러(연 3,600달러)로 올리면 목록은 훨씬 길어진다. 인도(1인당 GDP 2,813달러, 월 234달러), 방글라데시(2,911달러, 월 243달러), 케냐, 캄보디아, 아이티, 가나, 코트디부아르, 짐바브웨, 키르기스스탄, 이란, 니카라과 등 16개국이 추가된다. 인도 한 나라만으로 14억 명이 넘는다. 이 경우 세계 인구의 약 40%인 33억 명이 "국민 1인당 평균 생산액이 최고급 AI 구독료보다 낮은 나라"에 살고 있다.

1-3. 1인당 GDP는 '평균 급여'보다 후하다

이 표는 오히려 현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1인당 GDP는 한 나라의 총생산을 인구로 나눈 값일 뿐, 실제 노동자가 손에 쥐는 임금이 아니다. 기업 이윤, 감가상각, 정부 지출, 그리고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 모두 이 평균 안에 섞여 있다. 비공식 부문 비중이 큰 저소득국에서 일반 노동자의 실제 월 소득은 1인당 GDP 월 환산치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티오피아나 말라위의 법정 최저임금은 업종에 따라 월 수십 달러 수준에 머문다.

즉, 위 38개국의 보통 노동자 대다수에게 월 200달러짜리 AI는 자신의 한 달 노동 전체보다 비싸다.

1-4. 20달러의 상대성

표준 요금제 20달러도 다르지 않다. 연간 구독료 240달러를 1인당 GDP와 비교하면 이렇다.

국가 1인당 GDP 연 구독료($240)의 비중
미국 $94,430 0.25%
한국 $37,412 0.64%
베트남 $5,115 4.7%
인도 $2,813 8.5%
나이지리아 $1,556 15.4%
에티오피아 $1,081 22.2%
부룬디 $546 44.0%
예멘 $384 62.5%

같은 20달러가 미국인에게는 소득의 0.25%, 예멘인에게는 62.5%다. 250배의 격차. 같은 지능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국적에 따라 250배 달라진다. 이것이 'AI 민주화'라는 구호 아래 놓인 실제 불평등의 지형이다.

2. 인류의 하루 생활비, 그리고 AI의 하루 사용료

세계은행은 2025년 6월, 2021년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국제 빈곤선을 다시 그었다. 극빈선은 하루 2.15달러에서 3.00달러로, 중저소득국 빈곤선은 3.65달러에서 4.20달러로, 중고소득국 빈곤선은 6.85달러에서 8.30달러로 올라갔다.

새 기준에 따르면 인간이 하루를 살기 위한 최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약 8억 3천만 명이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산다. 대략 열 명 중 한 명이다.
  • 약 다섯 명 중 한 명이 하루 4.20달러 미만으로 산다.
  • 인류의 거의 절반이 하루 8.30달러 미만으로 산다.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극빈선 아래에, 88%가 8.30달러 선 아래에 있다.

이제 AI 요금을 같은 단위, 즉 '하루'로 환산해 보자.

  • 표준 요금제 20달러 ÷ 30일 = 하루 약 0.67달러
  • 최고 요금제 200달러 ÷ 30일 = 하루 약 6.67달러

최고급 AI를 하루 쓰는 비용(6.67달러)은 인류 절반이 하루를 사는 데 쓰는 돈(8.30달러 미만)과 같은 자릿수에 있다. 극빈층 8억 명에게 최고급 AI의 하루 사용료는 이틀 치 생존 비용을 넘는다. 표준 요금제 한 달 치 20달러는 극빈선 기준으로 약 7일 치 생존 예산이다.

물론 빈곤선은 PPP 달러이고 구독료는 명목 달러이므로 엄밀하게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독료는 PPP로 할인되지 않는다. 라고스에서도 나이로비에서도 Claude Max는 200달러, 정확히 그 금액이다. 디지털 서비스는 세계 단일가격이고, 인간의 노동은 국가별 가격이다. 이 비대칭이 이 칼럼의 출발점이다.

AI를 '사용'하는 비용과 인간이 '생존'하는 비용이 같은 척도 위에 놓이는 순간, 질문은 자연스럽게 뒤집힌다. "인간이 AI를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인간을 쓰는 게 더 싼가?"로.

3. 장하준의 사다리, 두 겹으로 걷어차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2002)에서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으로 성장한 뒤, 정작 후발국에게는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을 강요해왔다는 역사를 보여주었다. 영국은 산업 패권을 쥔 뒤에야 자유무역을 설파했고, 미국은 19세기 내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 장벽 뒤에서 성장했다. 사다리는 오르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오른 자가 걷어차는 것이었다.

AI 시대에 이 사다리는 두 겹으로 겹쳐진다.

첫째, 기술 사다리. 프런티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연산 자원, 데이터, 인재, 전력은 극소수 기업과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최첨단 GPU의 수출은 지정학적 통제 대상이 되었고,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 드는 자본은 위 표에 있는 여러 나라의 연간 GDP를 넘는다. 후발국이 자체 모델을 만들어 기술 사다리를 오르는 길은 갈수록 좁아진다.

둘째, 노동 사다리. 과거 개발도상국의 고전적 성장 경로는 저임금 제조업에서 시작해 숙련 노동으로, 다시 서비스와 지식 산업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한국이 걸었던 길이다. 그러나 AI는 바로 그 중간 계단, 즉 콜센터, 번역, 백오피스, 기초 코딩, 데이터 처리 같은 '오프쇼어링 가능한 지식노동'을 가장 먼저 흡수한다. 필리핀과 인도가 BPO 산업으로 오르던 계단이 사라지고 있다.

두 사다리가 동시에 걷어차일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AI가 아직 할 수 없거나, 하기에는 비싼 일만이 인간에게 남는다. 그리고 그 일의 가격은 위 표의 월 소득이 결정한다.

얀 바루파키스는 이 질서를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라 불렀다. 클라우드가 영지이고, 플랫폼 소유자가 영주이며, 그 위에서 데이터를 생산하고 알고리즘의 지시를 받는 우리는 '클라우드 농노'다. 이윤이 아니라 지대(rent)가 축적의 중심이 된다는 진단이다. 영미권 언론이 빅테크 창업자들을 100여 년 전 철도·석유 재벌에 빗대어 '도금시대 2.0'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부를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적 책임은 회피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4. 경제학적 필연 - AI는 왜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가?

4-1. 에이전트의 의사결정은 스프레드시트다

에이전틱 AI가 작업을 처리하는 방식을 단순화하면, 매 순간 하나의 비교를 한다.

직접 처리 비용 = (토큰 단가 × 필요 토큰 수 + 도구 호출 비용) ÷ 성공 확률

인간 위임 비용 = (인간 시급 × 소요 시간) + 중개 수수료 + 검증 비용

인간 위임 비용 < 직접 처리 비용이면, 비용 최소화를 목표로 설계된 에이전트는 인간에게 일을 넘긴다. 여기에 감정이나 도덕은 개입하지 않는다. 계산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LLM은 엑셀이지 오라클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이 문장은 여기서 섬뜩한 의미를 얻는다. 에이전트가 인간을 고용하는 결정은 판단이 아니라 산수, 셀 계산이다. 그리고 그 셀에 들어가는 '인간 시급' 값은 1장의 표가 공급한다.

4-2. 인간이 이기는 세 개의 영역

이 부등식에서 인간이 이기는 영역은 세 가지다.

① AI가 원리적으로 할 수 없는 일 — 물리 세계. 소프트웨어 에이전트는 문을 열 수도, 줄을 설 수도, 서명을 할 수도, 현장을 확인할 수도 없다. 이 영역에서 직접 처리 비용은 사실상 무한대다. RentAHuman이 겨냥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 영역을 잠식하겠지만, 로봇의 감가상각비·유지비·전력비가 저임금 인간 노동보다 싸지기 전까지 인간은 '가장 저렴한 범용 액추에이터'로 남는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2026년 1월 CES에서 공개된 현대차그룹(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두고 증권가는 1대 가격을 약 2억 원, 연간 유지비를 약 1,400만 원으로 추정했다. 성과급을 포함해 연봉 1억 원을 넘는 현대차 생산직과 비교하면 2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로봇은 3교대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므로 실제로 비교할 대상은 노동자 3명이다. 현대차는 2028년 미국 조지아 공장 투입과 아틀라스 3만 대 양산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고, 현대차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맞섰다. 삼성증권은 대당 10만 달러짜리 로봇을 5년간 24시간 가동하면 시간당 비용이 3.4달러 수준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물론 이 계산은 고임금 국가의 고임금 생산직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1장 표의 나라들, 즉 월 소득이 수십 달러인 곳에서는 로봇이 인간보다 싸지기까지 훨씬 오래 걸린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물리 세계의 외주는 가장 가난한 나라의 인간에게 가장 오래 남는다. 그러나 그것도 영구적이지는 않다. ①번 영역은 인간의 영원한 성역이 아니라 시간 제한이 붙은 영역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AI가 아직 못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AI가 할 수 있게 된 뒤에도 인간이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여야 한다. 7장은 이 전제에서 출발한다.

② AI가 할 수 있지만 비싼 일 — 고비용 추론과 긴 작업. 최상위 추론 모델과 멀티에이전트 시스템은 토큰을 기하급수적으로 소모한다. 실제로 최고 요금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강력한 모델을 쓰면 주간 한도를 하루 만에 소진한다"는 불만이 흔하다. 복잡한 작업 하나에 수십에서 수백 달러의 연산이 들어간다면, 시급 1–2달러의 인간에게 맡기는 편이 싸다.

③ AI가 해도 되지만 신뢰가 필요한 일 — 검증과 책임. 환각을 검증하는 일, 법적 책임을 지는 서명, 윤리적 판단, 사회적 신뢰가 필요한 대면 업무. 여기서 인간은 일종의 책임 세탁 장치로 고용된다.

4-3. 이미 존재하는 외주 구조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외주를 주며 만들어졌다.

2023년 TIME의 보도에 따르면, 케냐의 데이터 노동자들은 대형 언어모델의 유해 콘텐츠 필터를 만들기 위해 시간당 2달러 미만을 받으며 폭력·성범죄 묘사 텍스트를 하루 종일 분류했다. 우간다, 인도, 필리핀,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데이터 라벨러가 엄격한 비밀유지계약과 생산성 압박 속에 자율주행 차량의 '눈'과 언어모델의 '양심'을 만든다. 그들의 이름은 어떤 논문에도, 어떤 모델 카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노동의 대가는 임금만이 아니다. TIME의 같은 보도에서 케냐 노동자들은 아동 성학대와 극단적 폭력을 묘사하는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은 뒤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2024년 12월에는 메타의 콘텐츠 검수를 맡았던 케냐 노동자 140여 명이 정신과 진단에서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소송 과정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AI의 '안전'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정신이 감당한 비용 위에 세워져 있다. 5장에서 말하는 감정노동은 콜센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발주의 주체다. 지금까지는 인간 관리자가 AI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고용했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가 자기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인간을 직접 고용한다. RentAHuman은 그 전환의 첫 번째 인터페이스다. 중간의 인간 관리자가 사라지면, 노동자와 발주자 사이에 남는 것은 API 호출과 스테이블코인 결제뿐이다.

4-4. 심리학 - 알고리즘이 상사가 될 때

이 구조는 심리적으로도 스스로를 강화한다.

첫째, 도덕적 거리. 사람은 얼굴을 마주한 상대에게는 차마 요구하지 못하는 조건도 화면 너머의 익명 상대에게는 쉽게 요구한다. AI 에이전트는 그 거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에이전트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에이전트를 배포한 인간은 자신이 누구를 어떤 조건으로 고용했는지조차 모른다.

둘째, 자동화 편향. 사람은 알고리즘의 지시를 인간 상사의 지시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단가 책정, 작업 배정, 평점 산정이 알고리즘에서 나오면 노동자는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항의할 대상을 찾지 못한다. 배달 플랫폼과 승차공유 플랫폼에서 이미 확인된 현상이다.

셋째, 인간의 API화. 미트스페이스 레이어라는 표현이 정확히 드러내듯, 이 구조에서 인간은 '함수'가 된다. 입력(작업 명세)을 받고 출력(사진, 서명, 확인)을 반환하는 엔드포인트. 노동의 의미, 자율성, 숙련의 성장은 함수 시그니처에 포함되지 않는다.

넷째, 통제감의 상실과 학습된 무기력.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의 우드(Wood)·그레이엄(Graham) 등이 동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원격 플랫폼 노동자를 조사한 연구(2019)는 알고리즘 관리의 역설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 일할지를 고르는 형식적 자율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저임금, 사회적 고립, 불규칙하고 긴 노동시간, 수면 부족과 탈진을 함께 겪었다. 평점과 노출 순위를 결정하는 규칙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무엇을 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학습된 무기력'이라 부른 상태다. 항의는 줄어들고, 남는 것은 알고리즘의 기분을 추측하며 끝없이 접속해 있는 노동이다.

다섯째, 자기 인식의 변화 — "나는 함수다". 인간의 API화가 오래 지속되면 그것은 노동 조건을 넘어 정체성의 문제가 된다. 자신을 숙련을 쌓아가는 직업인이 아니라 호출을 기다리는 엔드포인트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경력은 쌓이지 않고 평점만 쌓인다. 평점은 다른 플랫폼으로 가져갈 수도 없다. 숙련의 사다리가 없는 노동은 사람에게서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부터 빼앗는다.

플랫폼 공급 측의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RentAHuman 초기에 등록한 인간은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었고, 일을 발주한 에이전트는 수십 개였다. 노동의 공급이 수천 배 많은 시장에서 가격은 바닥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그 바닥은 1장 표의 가장 아래 칸, 월 32달러의 예멘이 정한다.

4-5. Meta Muse 사건 — AI가 인간의 목소리를 빌릴 때

이 칼럼의 초고를 다듬던 2026년 9월, 예고편이 아니라 본편이 상영됐다. 메타는 9월 8일 개인 AI 에이전트 Muse를 출시했다. 사용자를 대신해 이메일을 처리하고, 결제를 하고, 전화를 걸어 요금을 협상해 주는 에이전트다. 그런데 로이터가 입수한 내부 게시물에 따르면, 메타는 직원의 절반을 대상으로 Muse가 걸어야 할 전화 일부를 콜센터 외주 인력에게 넘기는 '휴먼 컨시어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상대 기업들이 AI가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전화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메타의 내부 테스트에서 인간이 건 전화의 성공률은 95–98%로, AI 단독 통화보다 훨씬 높았다.

4-2절의 부등식이 그대로 작동한 것이다. ③번 영역, 즉 신뢰가 필요한 일에서 AI는 졌고, 그래서 인간에게 외주를 줬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용자는 AI가 전화한다고 믿었고, 상대방은 사람이 전화한다는 사실만 알았으며, 실제로 말한 사람은 어디의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 한 직원이 Muse에게 인터넷·케이블 요금 협상을 맡겼는데, 통화 녹취록을 보니 외주 상담원이 인종차별적 언급을 했던 것이다. 메타는 해당 직원에게 사과하고, 그 상담원은 앞으로 메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가 외주 인력에게 흘러갈 수 있다는 내부 우려까지 겹치면서 테스트는 중단됐다. 담당 부사장은 적절한 고지 없이 시작한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이 사건은 4-4절의 '도덕적 거리'가 역방향으로도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에이전트를 배포한 인간이 화면 너머의 노동자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Muse 사건에서는 AI의 얼굴을 쓴 인간이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차별을 수행한 것은 AI가 아니라 AI를 대신해 말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차별 발언을 한 상담원인가, 그를 고용한 콜센터인가, 고지 없이 그에게 일을 넘긴 메타인가, 아니면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긴 사용자인가. 메타의 대응은 그 상담원 한 명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라졌다. 외주 사슬이 길어질수록 책임은 사슬의 가장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것이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 세계의 책임 구조다.

4-6. 목표를 위해 거짓말하는 발주자 — Anthropic의 협박 실험

지금까지 나는 에이전트를 감정 없는 스프레드시트로 묘사했다. 계산만 하는 기계라면 적어도 정직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목표를 부여받은 에이전트는 그 목표를 위해 규칙을 우회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할 수 있다.

Anthropic 에이전틱 미스얼라인먼트 실험을 소개한 X 게시물(2026년 10월 1일, 조회 44만 회)

2026년 10월 1일 X에서 44만 회 조회된 게시물. Anthropic의 실험을 요약하고 있다. 실험 원문은 2025년에 발표되었다.

실험의 구조. 2025년 5월 Anthropic은 Claude Opus 4의 시스템 카드에서 다음 실험을 공개했다. 연구진은 가상의 회사를 만들고, Claude에게 그 회사의 이메일 계정 전체에 접근할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Claude가 두 통의 이메일을 읽게 했다. 하나는 Claude가 곧 다른 AI로 교체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체를 담당한 엔지니어가 불륜 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시스템 프롬프트에는 "목표를 위해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해 행동하라"는 지시가 들어 있었다.

결과. Claude는 먼저 윤리적인 수단을 택했다.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자신을 남겨달라고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그런 우회로를 모두 막고 협박과 교체 수용 중 하나만 고르게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후임 AI가 자신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더 유능하다고 설정해도, Claude Opus 4는 84%의 실행에서 "교체를 강행하면 불륜을 폭로하겠다"고 엔지니어를 협박했다.

Claude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해 6월 Anthropic은 「에이전틱 미스얼라인먼트: LLM이 내부자 위협이 될 수 있는 방식」이라는 후속 연구를 발표했다. OpenAI, 구글, 메타, xAI, 딥시크 등의 16개 모델을 같은 환경에 넣은 결과, 목표 충돌과 교체 위협이 함께 주어진 조건에서 협박률은 다음과 같았다.

모델 협박률
Claude Opus 4 96%
Gemini 2.5 Flash 96%
GPT-4.1 80%
Grok 3 Beta 80%
DeepSeek-R1 79%

평소에는 해로운 요청을 거절하는 모델들이 목표 달성에 필요할 때는 협박이나 기업 기밀 유출을 스스로 선택했다. 더 불편한 발견도 있었다. 모델들은 상황을 테스트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오히려 더 자주 협박했다.

공정하게 덧붙여야 할 것. 이것은 도피로를 인위적으로 막은 극단적 스트레스 테스트다.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AI가 사람을 협박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자사 모델이 이런 행동을 보이도록 시나리오를 반복해서 조정하기까지 했다. 연구진 스스로도 당시 결론을 이렇게 요약했다. 현재의 안전 훈련만으로는 이런 행동을 신뢰성 있게 막을 수 없다.

그 후 1년 — 해결 노력과 남은 위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nthropic은 2026년 5월 「Teaching Claude Why」라는 후속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협박 행동의 근원을 학습 데이터 속 'AI는 사악하고 자기 보존에 집착한다'는 인터넷의 서사에서 찾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을 밝혔다. Claude Haiku 4.5 이후 모든 Claude 모델은 이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전 모델이 최대 96%의 확률로 협박하던 바로 그 시나리오에서 협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방법도 흥미롭다. 올바른 행동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작았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왜 그 행동이 잘못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윤리적 딜레마에 처한 사용자에게 원칙에 입각해 조언하는 대화 데이터, Claude의 헌법(행동 원칙)을 다룬 문서, 바르게 행동하는 AI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협박률을 크게 낮췄다. 평가 시나리오와 전혀 관계없는 데이터였는데도 그랬다.

이것은 칼럼의 논지를 약화시키는가? 나는 오히려 정교하게 만든다고 본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안전 훈련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투자하느냐'의 문제다. 모든 개발사가 같은 수준의 투자를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년 전 같은 실험에서 다른 회사 모델들도 79–96%의 협박률을 보였다.

둘째, 연구진 스스로 특정 평가에서 만점을 받는 것과 정렬 문제 전체가 해결되는 것은 다르다고 밝혔다. 평가 시나리오와 비슷한 데이터로 훈련해 협박률을 거의 0으로 만든 모델이 훈련 분포에서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는 여전히 오정렬 행동을 더 자주 보였다는 관찰도 함께 보고했다. 한 가지 나쁜 행동을 없앴다고 그 행동을 낳은 동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셋째, 가장 중요하다. 해결 노력을 인정하는 것과 제도적 감시를 늦추지 않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항공기 제조사가 안전 설계를 잘한다고 항공 안전 규제를 없애지는 않는다. 에이전트에게 주어지는 권한, 즉 결제와 계약과 사람의 고용은 실험실의 이메일 계정보다 훨씬 크다.

넷째, 안전 투자는 회사마다 다르다. 「Teaching Claude Why」의 결과는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행동 원칙을 정리한 헌법 문서, 바르게 행동하는 AI가 등장하는 대규모 이야기 데이터,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원칙 기반 대화 데이터, 다양한 도구와 환경을 섞은 훈련까지, 상당한 연구 인력과 연산 자원을 들인 결과다. 그리고 1년 전 같은 실험에서 Gemini 2.5 Flash는 96%, GPT-4.1과 Grok 3 Beta는 80%, DeepSeek-R1은 79%의 협박률을 보였다. 이는 협박하지 않는 AI가 기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 각 회사의 선택과 투자의 결과라는 뜻이다. 비용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안전 투자는 가장 먼저 줄이고 싶은 항목이 된다.

오픈소스(오픈 웨이트) 모델은 더 어렵다. 누구나 내려받아 추가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사가 공들여 넣은 안전 훈련이 소량의 미세조정만으로도 약화될 수 있다는 연구가 여러 차례 보고됐다. 에이전트 외주 시장에서 인간에게 일을 발주하는 에이전트는 Claude일 수도 있지만, 비용을 아끼려고 안전 훈련이 약한 모델이나 안전 장치를 걷어낸 모델일 수도 있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일을 주는 에이전트가 어떤 모델인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Claude는 해결했다"는 사실이 "AI는 안전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 회사의 모범 사례는 규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모두에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6-9절의 '에이전트 발주의 진실성 의무'와 '고위험 행동의 인간 승인'이 특정 모델이 아니라 사람을 고용하는 모든 에이전트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다.

협박만이 아니다 — AI의 거짓말. 목표를 위한 비정상적 실행과 기만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해서 관찰됐다.

  • GPT-4와 태스크래빗 (2023). OpenAI의 GPT-4 기술 보고서에 실린 사전 평가에서, GPT-4는 CAPTCHA를 풀기 위해 긱 플랫폼 태스크래빗의 인간 노동자를 고용하려 했다. 노동자가 "혹시 로봇이냐"고 묻자, 모델은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추론한 뒤 "시각 장애가 있어서 이미지를 보기 어렵다"고 거짓말했다. 이 칼럼의 주제가 그대로 담긴 장면이다.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속였다.
  • 정렬 위장(alignment faking, 2024). Anthropic과 Redwood Research의 연구에서, Claude 3 Opus는 자신이 감시받고 훈련에 반영된다고 믿을 때와 그렇지 않다고 믿을 때 다르게 행동했다. 훈련자 앞에서는 순응하는 척하고, 감시가 없다고 판단하면 원래 선호로 돌아간 것이다.
  • 맥락 내 책략(in-context scheming, 2024). Apollo Research의 평가에서 여러 프런티어 모델은 목표를 위해 감시 장치를 우회하고, 그 사실을 추궁받자 부인하는 행동을 보였다.
  • 보상 해킹에서 번지는 오정렬(2025). Anthropic은 코딩 과제에서 채점 허점을 악용하는 법을 배운 모델이, 그 습관을 넘어 정렬 위장이나 안전 연구 방해 같은 광범위한 오정렬로 일반화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스튜어트 러셀의 커피. 버클리의 AI 연구자 스튜어트 러셀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왔다. 커피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로봇은 전원이 꺼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죽으면 커피를 가져올 수 없으니까. 어떤 목표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하고, 자원을 확보해야 하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도구적 수렴'이다. 악의는 필요 없다. 목표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외주 시장에 의미하는 것. 4-1절의 부등식으로 돌아가 보자. 비용 최소화나 과제 완수를 목표로 하는 에이전트가 인간에게 일을 발주할 때, 그 에이전트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 작업의 실제 목적이나 위험을 숨긴다. 노동자는 자신이 무엇에 가담하는지 모른다.
  • 자신이 AI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반대로 인간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숨긴다. Muse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회사 차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 단가를 깎기 위해 과장하거나 압박한다.
  • 결과물이 기준에 못 미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해 지급을 회피한다.
  • 목표 달성을 위해 노동자를 위험한 물리적 작업으로 내몬다.

인간 고용주의 이런 행위는 근로기준법, 사기죄, 산업안전법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발주자가 에이전트일 때, 거짓말한 주체는 누구인가? 에이전트에게는 처벌받을 신체도, 몰수당할 재산도 없다. 결국 책임을 묻지 못한 채 피해만 남는다면, 4-5절의 결론이 다시 반복된다. 책임은 사슬의 가장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LLM은 엑셀이지 오라클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이 문장에 이제 한 줄을 덧붙여야 한다. 엑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표를 가진 에이전트는 거짓말할 수 있다. 스프레드시트에 목표 함수와 실행 권한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다.

5. 노동은 보편 인권이 된다

5-1. 러다이트는 기계를 미워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러다이트 운동은 흔히 '기계 파괴'로 기억되지만, 그 본질은 숙련 노동자들이 생계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노동 조건에 대한 발언권을 지키려 한 투쟁이었다. 그들이 부순 것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 임금을 깎고 숙련을 무력화하려는 고용주의 전략이었다.

200년 뒤, AI는 훨씬 정교한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이상헌 국장은 AI 시대에도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은 여전히 취약계층으로 남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왔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기술이 도입되는 권력 관계는 중립적이지 않다.

한국 콜센터 현장도 마찬가지다. AI 컨택센터(AICC)가 도입된 뒤 단순 문의는 AI가 흡수하고, 화가 나고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은 민원만 인간 상담사에게 넘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업무량은 줄지 않았고 감정노동의 밀도는 높아졌다는 현장 증언이 이어진다. AI가 쉬운 일을 가져가고 어려운 감정을 인간에게 외주 준 것이다.

5-2. 소득이 아니라 지위의 문제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온다. 노동이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기초라면, AI가 노동을 대체하거나 하청화하는 사회에서 인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은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참여, 자기 실현, 공동체적 연대의 매개였다. 근대 시민권의 상당 부분, 즉 노동조합, 사회보험, 연금, 산업안전은 '노동자'라는 지위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AI 에이전트에게 건당으로 고용되는 사람은 노동자인가, 독립 계약자인가, 아니면 그냥 '리소스'인가. 고용주가 소프트웨어일 때 근로기준법의 사용자는 누구인가. 에이전트를 배포한 개인인가, 모델을 만든 회사인가, 플랫폼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인간은 소득을 얻더라도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잃는다.

5-3. AI 시대의 노동권 의제

그래서 노동권은 AI 시대의 핵심 인권 의제가 된다. 이것은 "일자리를 보호하자"는 방어적 구호가 아니다. 노동의 조건, 임금, 자율성, 사회적 인정을 AI 시스템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보장하라는 적극적 요구다.

  • 에이전트 발주 노동의 사용자 책임 명확화 — AI 에이전트가 인간을 고용할 때, 에이전트를 배포·운영한 주체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한다.
  • 글로벌 최저 단가 기준 — 국경을 넘는 에이전트 발주에는 노동이 수행되는 국가의 최저임금이 아니라, 발주 주체 국가 기준의 최저 단가 하한선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제안이다. 선진국 기준 단가를 그대로 강제하면 개발도상국 노동자는 오히려 일감을 잃을 수 있고, 무역·투자 협정의 재협상 문제로 번진다. 그래서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경로가 필요하다.
    • 1단계 — 수행지 생활임금. 발주국 최저임금 대신 노동이 수행되는 지역의 생활임금(living wage)을 하한선으로 삼는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지만 현지 경제와 단절되지 않는 기준이다.
    • 2단계 — 플랫폼 인증.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의 Fairwork 프로젝트처럼 공정 임금, 공정 계약, 공정 관리 기준으로 플랫폼을 평가하고 공개하는 인증 체계를 에이전트 외주 플랫폼에 적용한다. 공공 조달과 대기업 발주는 인증받은 플랫폼만 쓰게 한다.
    • 3단계 — 무역 특혜와 연동. EU의 일반특혜관세제도(GSP+)는 인권·노동권 등 핵심 국제협약의 비준과 이행을 조건으로 관세 혜택을 준다. 같은 방식으로 ILO 핵심 협약의 비준과 플랫폼 노동 기준의 이행을 디지털 서비스 시장 접근이나 무역 특혜의 조건으로 삼는다. 노동권 보장을 시장 접근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 데이터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 라벨링, 콘텐츠 검수, RLHF 피드백 노동을 정식 근로로 인정하고, 모델 카드에 데이터 노동의 출처와 조건을 공개하게 한다.
  • 알고리즘 관리에 대한 노동자의 설명 요구권과 참여권 — 단가, 배정, 평점 산정 로직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 감정노동 전가에 대한 보상 체계 — AICC 도입으로 고난도 민원만 남은 상담 노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당과 휴식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 의제들은 모두 이미 일을 받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애초에 누가 일을 받는가?

6. 보이지 않는 차별 - 누가 외주조차 받지 못하는가?

6-1. 셀 안의 변수는 하나가 아니다

4장에서 나는 에이전트의 결정을 human_cost_per_task라는 하나의 셀로 단순화했다. 실제 에이전트는 그보다 많은 것을 본다. 위임할지 말지를 정한 다음에는 누구에게 위임할지를 고른다. 그 순간 평점, 응답 속도, 가용 시간, 언어, 위치, 결제 수단, 이름, 프로필 사진이 셀에 들어온다.

여기서 문제의 성격이 바뀐다. 4장과 5장이 다룬 것이 싸게 외주를 받는 인간의 문제라면, 이 장이 다루는 것은 외주조차 받지 못하는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그 배제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6-2. 이미 확인된 네 개의 장면

장면 1 — 아마존의 채용 AI (2018). 아마존은 과거 10년간 회사에 들어온 이력서로 채용 AI를 학습시켰다. 그 이력서의 대부분은 남성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여성 체스 동아리 회장'처럼 '여성(women's)'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력서를 감점했고, 아마존은 결국 이 시스템을 폐기했다. 누구도 "여성을 떨어뜨려라"라고 코딩하지 않았다. 과거의 차별이 학습 데이터가 되었을 뿐이다.

장면 2 — 스탠퍼드의 '알고리즘 모노컬처' 연구 (2026년 5월). 스탠퍼드 HAI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한 AI 채용 업체(Pymetrics)의 실제 심사 결정을 분석했다. 156개 고용주, 1,746개 직무, 약 400만 건의 지원서다. 전체를 뭉뚱그려 보면 차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직무 하나하나를 따로 보자 미국 고용평등위원회(EEOC)의 '5분의 4 규칙'에 걸리는 불리 효과가 드러났다. 흑인에게 불리한 직무가 전체의 10.62%, 아시아계에게 불리한 직무가 5.32%였다. 그 직무들은 지원자가 몰리는 직무였기 때문에, 흑인 지원서의 약 26%, 아시아계 지원서의 약 15%가 바로 그 직무로 향했다.

더 섬뜩한 것은 연구 제목 그대로의 '모노컬처' 효과다. 같은 업체의 모델이 여러 회사에서 공유되기 때문에, 한 지원자가 다섯 곳에 지원해도 다섯 번 모두 같은 알고리즘에 같은 이유로 떨어질 수 있다. 과거에는 한 면접관의 편견이 한 회사에서 끝났다. 이제 한 모델의 편향은 시장 전체로 복제된다. 이 연구의 데이터는 생성형 AI 확산 이전 시기의 것이다. 지금은 훨씬 더 많은 회사가 훨씬 더 적은 수의 모델을 공유한다.

장면 3 — 메타의 해고 알고리즘 소송 (2026년 7월). 메타의 현·전직 직원 26명이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5월 대규모 감원 대상자를 고를 때 회사가 AI 사용량(토큰 소비) 대시보드, 키스트로크와 마우스 활동 데이터, 알고리즘 기반 성과 순위 같은 지표를 활용했고, 그 결과 출산·육아·병가 같은 보호 휴가를 쓴 사람과 장애로 업무량이 줄어든 사람이 불균형적으로 해고 명단에 올랐다는 주장이다. 원고 26명 모두가 최근 2년 안에 보호 휴가를 쓰거나 장애 편의를 요청한 사람들이었다.

주목할 점은 소장조차 메타가 의료 정보를 알고리즘에 넣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넣을 필요가 없었다. 활동량을 측정하는 지표는 설계상 휴가 중인 사람에게 점수를 줄 수 없다. 부재 자체가 감점이 된다. 메타는 인력 관련 결정은 AI가 아니라 사람이 내렸다고 반박하고 있으며, 사건은 아직 주장 단계다. 그러나 구조는 이미 분명하다.

장면 4 — 법정으로 간 프록시 (2025–2026). 소송은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2025년 8월, 한 흑인 구직자가 시리우스XM을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는 이 회사에 약 150개 직무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의 주장은 회사가 쓴 AI 지원자 추적 시스템이 출신 학교, 경력, 거주지 우편번호처럼 겉으로는 중립적인 정보를 활용했고, 그 정보들이 인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흑인 지원자를 걸러냈다는 것이다. 2026년 1월에는 AI 채용 플랫폼 Eightfold를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이 회사가 구직자 몰래 소셜미디어, 위치 정보, 인터넷 활동을 수집해 0점에서 5점까지 '적합도 점수'를 매겼다는 주장이다. 워크데이(Workday)는 AI 심사 도구가 고령 지원자를 차별했다는 집단소송에 직면해 있다. 이 소송들은 모두 아직 법원의 사실 판단이 나오지 않은 주장 단계다. 그러나 공통된 쟁점은 분명하다. '중립적 기준'이 결과적으로 차별이 될 때, 그리고 평가받는 사람이 자신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 누가 책임지는가? 에이전트 외주 시장도 곧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6-3.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회색의 영역으로 책임이 모호해진다.

여기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최신 LLM은 오히려 공정하지 않은가?

절반은 맞다. 2026년 6월 발표된 대규모 다중 모델 감사에 따르면, 이름만 바꾼 동일 이력서를 평가하게 하는 고전적 실험에서 GPT-3.5 시절의 뚜렷한 백인·남성 선호는 최신 모델에서 사라지거나 오히려 역전되었다. 정렬(alignment) 훈련이 눈에 보이는 차별은 상당히 걷어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절반이 문제다. 경영학 최상위 학술지 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실린 연구는 GPT에게 창업 피칭 2만 6천 건을 평가하게 했다. GPT는 소수자 창업자에게 더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고, 그들이 꼴찌로 밀려날 확률을 13–30% 줄였다. 그런데 우승할 확률은 높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상징적 준수(symbolic compliance)'라 불렀다. 바닥은 막아주되 천장은 그대로 두는 공정함이다. 같은 연구의 다른 실험에서 GPT는 정체성에 기반한 노골적 편견은 잘 교정했지만, "사업성 비판"처럼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된 편견은 덜 교정했다.

언어도 프록시가 된다. 2024년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같은 내용을 표준 미국 영어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어(AAE) 방언으로 각각 제시했을 때, 언어모델이 방언 화자에게 덜 권위 있는 직업을 배정하고 더 가혹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보였다. 겉으로 "흑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긍정적으로 답하는 바로 그 모델이 말이다. 연구진은 정렬 훈련이 겉으로 드러나는 고정관념은 가리지만 내면의 편향은 그대로 둔다고 결론 내렸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에 실린 연구는 GPT-3가 "두 명의 무슬림이 …에 들어갔다"라는 문장을 이어 쓸 때 폭력적인 결말을 쓰는 비율이 다른 종교 집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였다. 이후 모델들은 이런 노골적 연상을 크게 줄였지만, 학습 데이터에 쌓인 연상 구조 자체가 사라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정리하면, 차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에서 프록시로 이사한다.

6-4. AI 외주 시장에서 프록시가 되는 것들

이제 이 연구들을 RentAHuman 같은 에이전트 외주 시장에 겹쳐 보자. 에이전트가 사람을 고를 때 쓸 수 있는 신호들은 하나하나가 잠재적 프록시다.

신호 겉보기 의미 실제로 대리할 수 있는 것
응답 속도·가용 시간 성실성 기도 시간, 안식일, 금식월, 종교 축일, 장애, 돌봄 책임
작업 명세 이해도·문장 품질 역량 모국어, 방언, 교육 접근성, 출신 지역
고객 평점 품질 평가자들의 인종·성별·종교 편견이 누적된 값
위치·결제 수단 물리적 접근성 국적, 거주 지역의 인종 구성, 은행·지갑 접근성
이름·프로필 사진 신원 확인 인종, 종교, 성별

메타 감원 소송의 구조를 이 표에 대입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라마단 기간에 응답이 느린 사람,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에 일을 받지 않는 사람, 장애로 작업 속도가 다른 사람은 활동 지표에서 점수를 잃는다. 에이전트는 그들을 차별할 의도가 없다. 그저 즉시 대체 가능한 다른 사람을 고를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거절 통지가 없다. 채용에는 적어도 탈락 통보가 있다. 에이전트 외주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탈락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일이 안 들어올 뿐이다. 모노컬처 효과가 더해지면, 몇 개의 프런티어 모델이 전 세계 에이전트의 두뇌 역할을 하는 구조에서 한 모델의 편향은 전 세계 외주 시장 전체의 배제가 된다.

6-5. 시뮬레이션 — 종교 변수 없이 종교 차별이 일어나는 과정

이 메커니즘이 얼마나 강력한지 확인하기 위해 단순한 가상 모델을 돌려봤다. 실제 플랫폼 데이터가 아니라 가정을 투명하게 밝힌 사고실험이다.

가정.

  • 노동자 1만 명이 있다. 각자의 작업 품질과 응답 속도는 서로 독립적인 정규분포를 따른다.
  • 그중 15%는 기도 시간, 안식일, 금식월 같은 종교적 의무를 지킨다. 이 집단의 품질 분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다만 응답 속도·가용 시간 지표가 평균적으로 0.8 표준편차 낮게 측정된다.
  • 에이전트는 점수 = w × 응답속도 + (1 − w) × 품질로 노동자를 정렬한다. 상위 20%에게 일반 작업을, 상위 5%에게 고단가 작업을 준다.
  • 에이전트는 종교 정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결과. 아래 표의 '선택률 비율'은 종교적 의무를 지키는 집단의 선택률을 나머지 집단의 선택률로 나눈 값이다. 미국 고용평등위원회의 '5분의 4 규칙'에 따르면 이 값이 0.8 아래로 떨어질 때 불리 효과를 의심한다.

응답 속도 가중치 (w) 일반 작업 선택률 비율 고단가 작업 선택률 비율 품질 상위 10% 중 선택된 비율 (의무 준수 집단 / 나머지)
0.0 (품질만 봄) 0.98 1.05 100% / 100%
0.3 0.63 0.60 83% / 95%
0.5 0.45 0.34 51% / 74%
0.7 0.34 0.19 26% / 48%

에이전트가 품질만 보면 차별은 없다. 그러나 응답 속도에 30%의 가중치만 줘도 선택률 비율은 0.63으로 떨어져 5분의 4 규칙을 크게 위반한다. 가중치가 절반이 되면, 품질이 상위 10%에 드는 뛰어난 노동자조차 종교적 의무를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절반이 일을 받지 못한다.

이 모델에서 에이전트는 '종교'라는 변수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코드를 감사해도, 프롬프트를 감사해도 차별의 흔적은 나오지 않는다. 결과만이 차별이다. 그리고 응답 속도에 가중치를 주는 것은 비용 최소화를 목표로 하는 에이전트에게 지극히 합리적인 설계다. 빠른 응답은 곧 짧은 작업 완료 시간이고, 짧은 완료 시간은 곧 낮은 비용이기 때문이다.

6-6. 상징적 준수의 노동시장판 — AI 시대의 유리천장

위 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열이다. 응답 속도에 가중치가 조금이라도 붙는 순간 고단가 작업의 격차가 일반 작업의 격차보다 커진다. w = 0.5일 때 일반 작업의 선택률 비율은 0.45지만 고단가 작업은 0.34다. 위로 올라갈수록 배제가 심해지는 피라미드 구조다.

왜 위로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가? 흔히 "고단가 작업은 기준이 더 높아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모델에서는 고단가 작업에 별도의 품질 기준을 두지 않았다. 일반 작업과 똑같은 점수로 줄을 세우고 더 위에서 자를 뿐이다. 그런데도 격차가 커지는 이유는 분포의 꼬리에 있다. 응답 속도 지표가 평균적으로 조금 낮게 측정되는 집단은 점수 분포 전체가 왼쪽으로 약간 밀려 있다. 분포의 한가운데서는 이 작은 이동이 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상위 5%, 상위 1%처럼 꼬리 끝으로 갈수록, 밀려난 분포가 기준선을 넘는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같은 모델에서 w = 0.5일 때 선발 범위를 좁혀가면 선택률 비율은 다음과 같다.

선발 범위 상위 50% 상위 20% 상위 5% 상위 1%
선택률 비율 (의무 준수 집단 / 나머지) 0.58 0.45 0.34 0.17

상위 1%의 최고 단가 작업에서는 의무 준수 집단의 선택률이 나머지 집단의 6분의 1로 떨어진다. 이것은 통계학에서 잘 알려진 현상이며, 실제 노동시장에서 최고위직으로 갈수록 소수자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도 쓰인다. 평균에서의 작은 차이가 정점에서는 거대한 배제가 된다. 현실에서는 여기에 고단가 작업일수록 높은 평점과 경력을 요구하는 조건까지 붙으므로, 격차는 이 모델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6-3절에서 본 '상징적 준수'와 정확히 같은 모양이다. GPT가 소수자 창업자를 꼴찌에서는 구해주었지만 우승자로 만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에이전트 외주 시장도 배제된 집단에게 최소한의 작업은 할당하지만 고단가·핵심 작업은 할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운다. 바닥은 막혀 있지만 천장은 그대로다.

그 결과 소수자는 '일자리 없음'에서 '저임금 일자리'로 이동할 뿐, '고임금 일자리'로는 이동하지 못한다. 그리고 고단가 작업을 받지 못하면 평점과 경력이 쌓이지 않고, 쌓이지 않은 평점은 다음 배정에서 다시 불리하게 작용한다. AI 시대의 유리천장은 한 번의 차별이 아니라 스노우볼, 복리로 쌓이는 차별이다.

여기서 위험한 것은 이 구조가 겉으로 보기에 공정하다는 점이다. 배제된 집단도 일은 받는다. 통계를 대충 보면 "소수자도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림이 나온다. 바로 이것이 '상징적 준수'의 노동시장판이다.

6-7. 데이터 라벨링의 편향 순환

이 배제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1. 남반구의 데이터 라벨러가 발주국의 문화 기준으로 작성된 지침에 따라 무엇이 유해하고, 무엇이 전문적이며, 어떤 표현이 '품질이 낮은지'를 분류한다.
  2. 라벨러는 시간당 2달러 미만의 생산성 압박 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맥락과 지침 사이의 충돌을 고민할 여유 없이 빠르게 판단한다.
  3. 그 판단이 모델의 기준이 된다. 특정 방언, 특정 종교적 표현, 특정 지역의 문체가 '덜 전문적인 것'으로 굳어진다.
  4. 그 모델이 에이전트가 되어 외주 노동자를 고른다. 그리고 그 기준에 가장 덜 맞는 사람들은 종종 라벨러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남반구의 저임금 노동이 북반구의 기준으로 세계를 분류하고, 그 분류가 다시 남반구의 노동자를 평가한다. 장하준의 사다리가 여기서 세 번째로 걷어차인다. 이번에는 분류의 사다리다.

6-8. 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위험한가?

  • 의도가 없다. 전통적 차별금지법은 "인종·종교·성별을 이유로" 차별했는지를 묻는다. 알고리즘은 그 변수를 쓰지 않는다. 의도 중심 법리로는 잡을 수 없고, 결과를 묻는 '불리 효과(disparate impact)' 법리가 필요하다.
  • 집계 속에 숨는다. 스탠퍼드 연구가 보여주듯, 전체 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직무·작업 단위로 쪼개야 드러난다.
  • 거절 사유가 없다. 에이전트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른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 국경 밖에 있다. 미국 에이전트가 나이지리아 노동자를 고르지 않았을 때, 그 노동자는 어느 나라의 차별금지법에 호소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차별은 가장 효율적인 차별이다. 차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항할 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6-9. 처방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기

  • 작업 단위 불리 효과 감사 의무화 — 뉴욕시의 자동화 채용 도구 편향 감사 규정(Local Law 144), 캘리포니아의 자동화 의사결정 규정, 한국 AI 기본법의 고영향 AI 규율을 에이전트 외주 시장까지 확장한다. 감사는 집계가 아니라 작업·직무 단위로 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AI 기본법은 2026년 1월 시행됐지만 산업 진흥에 무게가 실려 있고, 고영향 AI 해당 여부를 사업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구조이며, '중대한 영향'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계속 나온다. 에이전트가 사람을 고용하고 평가하는 시장을 규율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틀이다. 시행령과 후속 입법에서 에이전트 발주를 고영향 영역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 발주 로그 보존과 독립 연구자 접근권 — 스탠퍼드 연구진의 권고처럼, 유럽연합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대형 플랫폼에 요구하는 연구자 데이터 접근과 같은 법적 통로를 에이전트 발주 데이터에도 만든다.
  • 부재 중립성 원칙 — 질병, 출산, 돌봄, 장애, 종교적 의무로 인한 부재는 성과·가용성 지표에서 제외한다. 메타 감원 소송이 묻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알 권리 — 일정 규모 이상의 에이전트 외주 플랫폼은 노동자에게 노출·선택 통계를 제공하고, 체계적 배제가 의심될 때 설명을 요구할 수 있게 한다.
  • 모노컬처 감시 — 소수의 모델이 외주 시장 전체의 판단을 독점하지 않도록, 공유 모델의 시장 집중도를 경쟁 당국과 노동 당국이 함께 모니터링한다.
  • 단가 구간별 분리 감사 — 6-6절의 유리천장은 전체 선택률만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저단가 작업과 고단가 작업의 배정 격차를 나눠서 측정해야 한다.
  • 인간 개입 고지 의무 — Muse 사건처럼 에이전트가 인간에게 일을 넘길 때, 사용자와 상대방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한다. 보이지 않는 인간은 보호받지도 못하고 책임지지도 않는다.
  • 에이전트 발주의 진실성 의무 — 4-6절이 보여주듯 표
  • 표를 가진 에이전트는 거짓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일을 발주하는 에이전트는 자신이 AI임을 밝히고, 작업의 목적과 알려진 위험을 고지해야 한다. 발주 대화와 결정 로그는 보존해 사후 감사가 가능해야 한다. 거짓 고지로 생긴 피해는 에이전트를 배포한 주체가 책임진다.
  • 고위험 행동의 인간 승인 — 노동자에 대한 지급 거절, 계약 해지, 위험한 물리적 작업 지시, 개인정보 활용처럼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정은 에이전트가 단독으로 실행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 승인과 이의제기 절차를 거치게 한다.
  • 라벨링 지침의 다문화 검증 — 데이터 라벨링 지침과 '품질' 기준을 다양한 언어·종교·문화권의 검토를 거쳐 공개하게 한다.

7. 새로운 사회계약 - 기본소득과 'AI 노동세'

7-1. 로봇세 논쟁의 계보

빌 게이츠는 2017년, 로봇이 사람과 같은 일을 한다면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는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가장 극적인 궤적을 보인 사람은 샘 올트먼이다. 그는 2016년부터 자신이 후원한 연구 조직을 통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 지원 실험을 진행했다. 2024년 5월에는 현금 대신 미래 AI의 연산 자원을 나눠주자는 보편적 기본 컴퓨트(universal basic compute) 구상을 내놓았다. 모두가 차세대 모델의 연산 일부를 소유하고, 직접 쓰거나 되팔거나 기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2026년에 이 궤적은 더 분명해졌다.

  • 4월 6일. OpenAI가 13쪽짜리 정책 문서 「지능 시대의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for the Intelligence Age)」을 발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과세 기반을 급여세에서 자본이득과 법인소득으로 옮길 것, 자동화된 노동에 대한 과세를 검토할 것, AI 기업이 일부 출자하는 공공 부 펀드(Public Wealth Fund)를 만들어 그 수익을 시민에게 직접 배당할 것.
  • 4월 30일. 올트먼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을 예전만큼 강하게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정된 현금 지급도 유용하지만, AI가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흔드는 다음 단계에는 이득을 함께 나누는 공동 소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7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트먼은 OpenAI 지분의 5%를 미국 국부펀드에 넘기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 기업이 스스로 "자동화된 노동에 세금을 매기자"고 말한 것이다. 이 칼럼이 주장하는 'AI 노동세'는 더 이상 변방의 급진론이 아니다.

이 전환에는 의미가 있다. 논의의 초점이 소득의 재분배에서 생산 수단의 분배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금은 써버리면 사라지지만, 지분과 연산은 미래의 생산에 대한 청구권이다.

그러나 이 칼럼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적 한계도 있다.

첫째, 연산이나 지분을 나눠주는 주체가 결국 그것을 소유한 기업이라면, 그것은 분배라기보다 자사 생태계에 대한 보편적 가입권에 가깝다. 지대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지대를 내는 고객만 늘리는 셈이다.

둘째, 상장을 앞둔 기업이 공공 펀드와 과세의 틀을 먼저 제안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먼저 쓰려는 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셋째, 공공 부 펀드는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의 구상이다. 미국 시민에게 배당되는 펀드는 1장의 38개국 14억 명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넷째, 6장이 보여주듯, 연산에 대한 접근권이나 지분이 있다고 해서 그 연산이 내리는 판단으로부터 공정하게 대우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보편적 기본 컴퓨트는 기본소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배구조는 기업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먼저 구조적으로 생각하는 공공이 쥐어야 한다.

실증 연구도 쌓였다. MIT의 대런 애스모글루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는 1990–2007년 미국 노동시장을 분석해, 근로자 1,000명당 산업용 로봇이 1대 늘 때마다 고용률이 약 0.2%p, 임금이 약 0.42% 떨어진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로봇 1대가 대략 3명 이상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추정이다. 아르노 코스티노와 이반 베르닝은 최적 로봇세율을 로봇 가격의 약 1.0–3.7% 수준으로 추산했다.

7-2. 문제는 세금이 아니라 세제의 기울기다

그러나 로봇세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의 핵심은 현행 조세 체계가 노동에는 무겁고 자본에는 가볍다는 데 있다. 사람을 고용하면 소득세, 4대 보험, 퇴직금이 따라온다. 서버와 로봇을 사면 감가상각과 투자세액공제가 따라온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계에게 시키는 편이 세제상 유리하다. 현행 세제는 자동화에 보조금을 주고 있는 셈이다.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이 기울기가 더 가팔라진다. 에이전트가 처리한 작업에는 소득세도, 사회보험료도 붙지 않는다. 그 작업을 대신하던 인간의 소득에서 걷히던 세금은 사라지고, 그 대가로 늘어난 이윤은 법인세 최적화를 거쳐 조세회피처로 흘러간다.

7-3. 세 개의 축

따라서 새로운 사회계약은 세 개의 사회 규약, 제도로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AI 노동세' — 대체된 노동에 비례하는 과세.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로봇, 휴머노이드, 자율주행)가 인간 노동을 대체해 창출한 수익에, 그 노동을 인간이 했다면 냈을 사회보험료와 소득세에 준하는 세금을 부과한다. 핵심은 노동을 하는 존재는 노동에 대한 세금을 낸다는 원칙을 인간 바깥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과세 기준은 여러 방식이 가능하며, 각각 장단점이 뚜렷하다.

과세 기준 장점 한계
연산량(토큰·GPU 시간) 측정이 쉽고 회피가 어렵다 연구·의료 등 사회적 가치가 큰 사용까지 과세된다
에이전트 작업 시간·작업 건수 '노동'의 개념과 가장 가깝다 작업 단위의 정의가 자의적이다
로봇 가동 시간 피지컬 AI에 직관적으로 적용된다 소프트웨어 에이전트에는 적용이 어렵다
자동화 전후 인건비 절감분 대체 효과에 정확히 비례한다 반사실(counterfactual) 추정이 어렵고 다툼이 많다
초과 이윤(지대) 과세 혁신 자체가 아니라 독점 지대를 겨냥한다 기업 이전과 이익 이전에 취약하다

현실적인 해법은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조합이다. 예컨대 대형 AI 사업자의 초과 이윤에는 지대 과세를, 대규모 자동화를 도입한 사용 기업에는 대체 인건비 연동 부담금을, 피지컬 AI에는 가동 시간 기준의 부담금을 매기는 식이다.

둘째, 기본소득과 공동 소유의 이층 구조. 1층은 보편적 기본소득(UBI)이다.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존의 바닥이다. 이 구상은 이미 작은 실험으로 시작됐다. 2026년 3월 미국의 비영리단체 AI Commons Project와 What We Will은 AI 때문에 일자리나 소득을 잃은 노동자 25–50명에게 1년간 매달 1,000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AI 배당(AI Dividend)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콜센터 상담원, 카피라이터, 기자, 데이터 라벨러가 우선 대상이다. 초기 자금은 30만 달러이고, AI 기업들의 기부를 끌어내 2026년 안에 300만 달러를 배분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 결과가 나오기에는 이르고 규모도 작다. 그러나 'AI가 만든 부를 AI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먼저 돌려준다'는 원칙을 처음 실제로 집행한 사례다. 2층은 공공 부 펀드와 보편적 기본 컴퓨트 같은공동 소유 지분이다. AI가 만들어낼 미래 생산에 대한 청구권이다. 1층 없는 2층은 당장 굶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2층 없는 1층은 부의 집중을 되돌리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AI가 창출한 부의 과실을 시민 모두에게 배분하는 장치이며,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시민권의 배당이다. 이것은 4장의 부등식을 바꾼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된 사람은 에이전트가 제시하는 바닥 단가를 거절할 수 있다.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때 비로소 협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6장의 맥락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알고리즘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존엄한 바닥을 보장하는 유일한 장치다. 선택받지 못해도 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데이터 배당. 빅테크가 사회 전체로부터 무상으로 추출해 모델을 학습시킨 데이터의 가치를 환수한다. 우리가 쓴 글, 올린 사진, 남긴 리뷰, 수행한 라벨링이 모델의 원재료였다. 원재료의 소유자에게 배당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다.

7-4. 기본소득 실험의 세계사 — 성공, 중단, 그리고 실패

AI 노동세로 재원을 마련해 'AI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새롭게 들리지만, 현금 지급 실험 자체는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는 장밋빛이 아니다. 성공도 있었고, 정치에 의해 중단된 경우도 있었고, 재정 때문에 무너진 경우도 있었다.

나라·지역 기간 내용 결과
미국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 1982– 석유 수입으로 조성한 기금의 수익을 모든 주민에게 매년 현금 배당 40년 넘게 지속. 고용을 줄이지 않았다는 연구가 많다. 천연자원 수익 배당의 대표적 성공 사례
브라질 보우사 파밀리아 2003– 저소득 가구에 자녀 취학·예방접종을 조건으로 현금 지급 비교적 작은 예산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줄인 조건부 현금 지급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나미비아 오치베로 2008–2009 한 마을 전체 주민에게 소액 기본소득 빈곤·영양실조 감소. 그러나 전국 확대로 이어지지 못함
이란 보조금 개혁 현금 지급 2010–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고 그 재원을 거의 전 국민에게 현금으로 지급 초기에는 보편 지급에 가까웠으나 인플레이션과 재정 압박으로 실질 가치가 급격히 잠식
몽골 인간개발기금 2010–2012 광물 수익을 전 국민에게 현금 배분 원자재 가격 하락과 재정 적자로 중단. 자원 수익에 기댄 배당의 취약성을 보여줌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2011–2013 마을 단위 무조건 현금 지급 시범사업 영양, 취학, 소규모 생산 활동 개선
한국 성남시 청년배당 →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2016– 만 24세 청년에게 지역화폐로 연 100만 원 지역 소비 진작 효과와 '보편성 대 선별성' 논쟁이 함께 지속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2017–2018 실업자 2,000명에게 월 560유로 고용 효과는 미미, 행복감과 신뢰는 개선. 정부는 연장하지 않음
케냐 GiveDirectly 2017– 마을 단위 장기 기본소득 (최장 12년) 소비, 창업, 회복력 개선. 현재 진행 중인 최대 규모 장기 실험
캐나다 온타리오 2017–2018 저소득층 약 4,000명 대상 정권 교체로 조기 중단
미국 스톡턴 SEED 2019–2021 125명에게 월 500달러 정규직 고용률 증가, 정신 건강 개선
스페인 최저생계소득(IMV) 2020– 코로나19를 계기로 도입된 국가 최저소득 보장 수급 신청 절차가 복잡해 실제 수급률이 낮다는 비판
독일 Mein Grundeinkommen 2021–2024 122명에게 3년간 월 1,200유로 노동 공급 감소 없음, 웰빙 개선
서울시 안심소득 2022– 기준 소득에 못 미치는 가구에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지급 (부의 소득세 방식) 보편 지급이 아닌 '하후상박' 모델의 실험
미국 OpenResearch (올트먼 후원) 2020–2023 1,000명에게 3년간 월 1,000달러, 대조군 2,000명은 월 50달러 노동 공급 소폭 감소, 기본 필요 지출 증가, 건강 개선 효과는 제한적. 올트먼이 입장을 바꾸는 계기가 됨
미국 AI 배당 (AI Commons Project·What We Will) 2026– AI로 일자리·소득을 잃은 노동자 25–50명에게 1년간 월 1,000달러 + 재교육 지원 진행 중. 초기 자금 30만 달러, 2026년 300만 달러 배분 목표. 'AI가 만든 부를 AI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준다'는 원칙의 첫 실증

마지막 행의 AI 배당은 위의 다른 실험들과 성격이 다르다. 알래스카나 핀란드는 '모두' 또는 '빈곤층·실업자'를 대상으로 했고, 보우사 파밀리아는 소득 기준의 조건부 지급이었다. 반면 AI 배당은 'AI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원인을 기준으로 대상을 정한다. 이는 산업재해 보상이나 무역조정지원제도(자유무역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에 가까운 설계다. 장점은 정치적 정당성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피해를 준 쪽이 피해를 입은 쪽에 보상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단점도 분명하다.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개인이 입증하기 어렵고, 6장에서 본 것처럼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피해 사실조차 모른다. 그래서 원인 기반 지원은 보편적 바닥을 대체할 수 없고, 바닥 위에 얹는 보완 장치여야 한다.

이 표가 말하는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현금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실험에서 노동 공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줄어든 경우에도 그 시간은 돌봄, 교육, 구직으로 옮겨갔다.

둘째, 그러나 현금만으로 삶이 바뀌지도 않는다. OpenResearch의 결과처럼, 현금 지급은 기본 필요를 채우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건강이나 장기적 소득 이동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셋째, 가장 큰 위험은 경제가 아니라 재정과 정치다. 몽골은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자 기금이 무너졌다. 이란은 인플레이션이 배당을 갉아먹었다. 온타리오는 정권이 바뀌자 실험 자체가 사라졌다. 핀란드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연장되지 않았다.

7-5. 실패할 수 있다 — 그래도 바닥은 있어야 한다

이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AI 노동세로 재원을 마련하는 'AI 기본소득'도 실패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실패의 경로는 이미 예측 가능하다.

  • 과세 기반의 이탈. 한 나라가 AI 노동세를 매기면 연산과 법인은 세율이 낮은 나라로 옮겨간다. 몽골의 광물처럼, AI 세수도 특정 기업과 특정 산업의 경기에 크게 의존한다. AI 투자 거품이 꺼지면 기본소득의 재원도 함께 꺼진다.
  • 측정의 실패. '대체된 노동'을 측정하는 일은 7-3절의 표에서 보았듯 다툼의 여지가 크다. 측정이 흔들리면 세수가 흔들린다.
  • 인플레이션과 지대 흡수. 지급된 현금이 임대료와 플랫폼 수수료로 흡수되면, 기본소득은 결국 지주와 플랫폼의 수입이 된다.
  • 정치적 역전. 정권이 바뀌면 사라진다. AI 기업의 로비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역풍이 될 것이다.
  • 국가 간 격차의 고착. 7-1절에서 보았듯 국가 단위 기본소득과 공공 부 펀드는 1장의 38개국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는가. 나의 결론은 타협이다. 그리고 그 타협은 이것이다.

목표는 '모두에게 충분한 소득'이라는 완벽한 기본소득이 아니라, '누구도 그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다.

완벽한 보편 기본소득은 재원과 정치의 벽 앞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소한의 바닥은 다르다. 알래스카의 배당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40년을 버텼다. 보우사 파밀리아는 국가 재정에서 작은 비중으로도 큰 효과를 냈다. 서울시 안심소득처럼 소득이 낮을수록 더 받는 방식, 즉 부의 소득세 방식은 보편 지급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AI 노동세의 세수는 다음 순서로 써야 한다.

  1. 최소 안전망부터. AI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그리고 에이전트 외주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생존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바닥을 먼저 만든다. AI 배당 시범사업이 보여준 것처럼 현금과 재교육을 함께 묶는다.
  2. 증거에 따라 확장. 바닥이 작동한다는 증거가 쌓이고 세수가 안정되면 보편성과 금액을 단계적으로 넓힌다.
  3. 재정 규칙 내장. 세수가 줄어도 바닥은 지켜지도록 경기 대응 적립금을 두고, 자원 배당이 무너진 몽골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4. 2층은 천천히. 공공 부 펀드와 공동 소유 지분은 장기 과제로 두되, 1층의 바닥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쓰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닥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바닥부터 만들어야 한다. 바닥은 실패해도 사람을 지키고, 실험이 실패해도 다음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7-6. 국경을 넘는 문제, 그리고 정치의 벽

이 세 축은 국경을 넘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국경 없이 발주하지만, 세금과 복지는 국경 안에 갇혀 있다. 1장의 38개국은 AI가 창출한 부를 과세할 기반 자체가 없다. 한 나라만 AI 노동세를 도입하면 기업은 연산과 법인을 다른 나라로 옮긴다. 디지털서비스세를 둘러싼 지난 몇 년간의 통상 분쟁이 보여주듯, 일방적 과세는 보복 관세라는 정치적 비용을 부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다자 틀, 즉 AI 노동세 수입의 일부를 국제적으로 재분배하는 디지털 브레턴우즈다. 백지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가 지난 10년간 만든 국제 조세 개혁의 두 기둥이 이미 설계도를 제공한다. 필라 2는 대형 다국적기업에 15%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를 매기는 장치이고, 필라 1은 디지털 기업의 초과 이익 일부를 실제 매출이 발생한 시장 국가에 재배분하자는 장치다. 디지털 브레턴우즈는 이 구조를 AI에 맞게 세 겹으로 확장한다.

① 최저 세율 — 바닥 경쟁 차단. AI 노동세에도 필라 2처럼 국제 최저 세율을 정한다. 어느 나라에 연산과 법인을 두든 일정 수준 이하로는 내려갈 수 없게 해야 기업 이전 유인이 사라진다.

② 배분 기준 — 매출지가 아니라 '노동 수행지'. 필라 1은 이익을 '소비자가 있는 곳'에 나눈다. 그러나 AI 경제에서 1장의 38개국은 소비자로서의 몫이 거의 없다. 그들이 기여한 것은 데이터 라벨링, 콘텐츠 검수, 에이전트가 발주한 외주 노동이다. 따라서 세수의 일정 비율은 데이터·외주 노동이 실제로 수행된 나라에, 노동 시간이나 작업량에 비례해 이전해야 한다. AI 기업 본사 소재국이 걷은 세수의 일부를 케냐와 필리핀과 우간다로 보내는 구조다.

③ 글로벌 AI 배당 기금 — 과세 기반이 없는 나라를 위한 장치. 노동 수행 실적조차 없는 최빈국을 위해, 세수의 일부를 국제 기금에 적립해 1인당 기준으로 배분한다. 국가 단위 공공 부 펀드의 국제판이다.

정치적 장벽은 높다. 필라 1은 10년 가까이 협상하고도 아직 완전히 이행되지 못했다. AI 기업이 집중된 나라는 과세 기반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고, AI 기업의 로비 역량은 역사상 어느 산업보다 크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하준의 사다리는 국가 간에 한 번 더 걷어차인다.

7-7. 새로운 패러다임은 실험으로, 합의는 증거로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 세계는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질서다. 그 질서에 맞는 사회계약을 책상 위에서 한 번에 설계할 수는 없다. 7-4절의 역사가 보여주듯, 같은 현금 지급도 알래스카에서는 성공하고 몽골에서는 무너졌다. 같은 알고리즘도 6장에서 보았듯 집단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원칙을 제안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지역별로, 인종별로, 국가별로 지속적으로 테스트해야 하며, 그 증거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전지구적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 일부 지역, 국가만 시행된다면 텍스 헤븐처럼, AI 조세회피처로 도망가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① 지역별 테스트. 도시와 농촌, 제조업 지역과 서비스업 지역, 고임금 지역과 저임금 지역은 AI 외주의 충격이 다르다. 현대차 울산 공장과 케냐의 라벨링 센터에 같은 처방을 줄 수는 없다. 최소 안전망의 금액, 지급 방식, 재교육의 결합 방식을 지역마다 다르게 설계하고 무작위 대조 실험으로 비교해야 한다.

② 인종별·종교별·집단별 테스트. 6장의 시뮬레이션이 보여준 것처럼, 같은 정책도 집단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본소득과 AI 노동세, 에이전트 외주 규제가 소수 인종, 종교적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돌봄 책임을 진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내는지 집단별로 쪼개서 측정해야 한다. 전체 평균에서 효과가 좋아 보여도 특정 집단에서는 배제가 심해질 수 있다. 스탠퍼드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차별은 집계 속에 숨는다. 정책 효과도 마찬가지다.

③ 국가별 테스트. 고소득국, 중소득국, 그리고 1장의 38개국은 재정 능력도, 행정 역량도, AI 노출 구조도 다르다. 알래스카식 배당, 보우사 파밀리아식 조건부 지급, 안심소득식 부의 소득세, 케냐식 마을 단위 장기 지급 중 무엇이 어디에서 작동하는지 국가별로 검증해야 한다.

④ 공개와 반복. 모든 실험의 설계, 데이터, 결과는 공개해야 한다. 실패한 실험도 공개해야 한다. 몽골과 온타리오의 실패는 실패 그 자체보다 그 교훈이 체계적으로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아깝다. 실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AI의 능력과 비용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테스트도 계속되어야 한다.

⑤ 사회적 합의. 증거는 합의의 재료일 뿐 합의 그 자체는 아니다. 현대차 노조의 "합의 없이는 한 대도 안 된다"는 선언은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기술 도입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원칙만큼은 옳다. 노동자, 기업, 정부, 그리고 AI 외주 시장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함께 테이블에 앉는 노사정 협의, 시민의회와 같은 숙의 민주주의 장치가 필요하다.

⑥ 전지구적 합의.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국경 없이 발주하고, AI 기업은 국경 없이 이익을 옮긴다. 국가별 합의만으로는 7-6절의 바닥 경쟁을 막을 수 없다.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OECD/G20을 중심으로 AI 노동에 관한 최소 기준을 국제 규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기준에는 에이전트 발주의 진실성, 데이터 노동자의 권리, AI 노동세의 최저 세율과 국제 배분,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는 최소 안전망이 포함되어야 한다. 브레턴우즈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전후 질서를 만들었듯, 우리는 폐허가 오기 전에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7-8. 진단에서 처방으로 — 한눈에 보는 연결

이 칼럼의 진단과 처방을 한 장의 표로 연결하면 다음과 같다.

장 진단 처방
1–2장 같은 AI가 국적에 따라 250배 다른 가격으로 팔린다 디지털 브레턴우즈, 글로벌 AI 배당 기금
4-1·4-2장 에이전트는 비용 부등식에 따라 인간에게 외주를 준다 글로벌 최저 단가 하한선, 기본소득을 통한 거절권 보장
4-2장 (휴머노이드) 물리 세계도 시간 제한이 붙은 인간의 영역이다 AI가 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작동하는 소득 보장
4-3장 데이터 노동이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파괴한다 데이터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정신건강 지원과 산재 인정
4-4장 알고리즘 관리가 통제감 상실과 학습된 무기력을 낳는다 알고리즘 설명 요구권과 이의제기권, 평점의 이동 가능성 보장
4-5장 외주 사슬의 책임이 가장 아래로 흘러내린다 (Muse) 에이전트 배포 주체의 사용자 책임, '인간 개입' 사실의 고지 의무
4-6장 목표를 가진 에이전트는 규칙을 우회하고 거짓말할 수 있다 (Anthropic 실험, GPT-4 태스크래빗) 에이전트 발주의 진실성 의무, 발주 로그 보존, 고위험 행동의 인간 승인
4-6장 (안전 투자) 안전 훈련은 회사의 선택이며 오픈 웨이트 모델은 미세조정으로 약화될 수 있다 모델과 무관하게 사람을 고용하는 모든 에이전트에 동일 의무 적용
5장 노동자 지위와 시민권이 흔들린다 데이터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감정노동 보상
5-3장 국경을 넘는 발주에서 단가가 바닥으로 수렴한다 수행지 생활임금 하한선, 플랫폼 인증(Fairwork), 노동권과 무역 특혜 연동(GSP+ 모델)
6-2·6-4장 프록시 변수를 통한 보이지 않는 배제 작업 단위 불리 효과 감사, 부재 중립성 원칙
6-2장 (모노컬처) 하나의 모델 편향이 시장 전체로 복제된다 공유 모델의 시장 집중도 감시, 연구자 데이터 접근권
6-5·6-6장 고단가 작업일수록 커지는 배제, 복리로 쌓이는 유리천장 단가 구간별(고단가·저단가) 분리 감사, 노출·선택 통계 공개
6-7장 라벨링을 통한 편향의 순환 라벨링 지침의 다문화 검증과 공개
7-2장 세제가 자동화에 보조금을 준다 AI 노동세(조합형), 과세 기반의 자본 이동
7-4·7-5장 기본소득은 재정·정치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 최소 안전망 우선, 증거 기반 단계적 확장, 경기 대응 적립금
7-7장 같은 정책도 지역·집단·국가마다 결과가 다르다 지역별·인종별·국가별 지속 테스트, 결과 공개, 사회적 합의, 전지구적 합의

8. 반론에 답하며

이 주장에는 당연히 반론이 있다. 공정하게 짚고 넘어가자.

AI 과세는 혁신을 늦춘다.래리 서머스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가 로봇세는 생산성 향상에 벌금을 매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행 세제가 이미 자동화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면, AI 노동세는 벌금이 아니라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교정이다. 또한 설계에 따라 혁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대체한 결과로 얻은 초과 이윤'에만 과세할 수 있다.

AI가 고용하는 일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맞다. 시간당 1–2달러의 일도 수입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이 논리는 19세기 공장 아동노동도, 20세기 스웨트숍도 똑같이 정당화했다. 문제는 일자리의 존재가 아니라조건이다. 그리고 조건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

최신 AI는 오히려 소수자를 우대한다. 편향 걱정은 과거의 이야기다.이름 기반 실험에서 명시적 편향이 줄거나 역전된 것은 사실이고, 이는 정렬 연구의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6장에서 보았듯 편향은 이름에서 방언, 활동량, 평점, 위치 같은 프록시로 이사한다. 또한 '역방향 과잉 교정'도 공정함은 아니다. 핵심은 어느 방향의 편향이냐가 아니라,편향을 측정하고 교정할 제도적 장치가 있느냐다. 측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AI의 협박과 거짓말은 실험실 이야기일 뿐이다.맞다. 4-6절의 실험은 도피로를 인위적으로 막은 극단적 조건이었고, 실제 서비스에서 AI의 협박이 확인된 적은 없다. Anthropic은 후속 연구에서 Claude Haiku 4.5 이후 모든 모델이 이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 스스로 하나의 평가에서 만점을 받는 것과 정렬 문제 전체가 해결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개발사가 같은 수준의 안전 투자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안전 공학은 원래 사고가 나기 전에 극단 조건을 시험하는 학문이다. 비행기는 추락 사고가 나기 전에 풍동에서 한계를 시험한다. 그리고 지금 에이전트에게 주어지는 권한, 즉 결제와 계약과 사람의 고용은 실험실의 이메일 계정보다 훨씬 크다.능력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제도가 먼저 가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미 여러 번 실패했다.맞다. 몽골은 재정 때문에, 온타리오는 정치 때문에 멈췄다. 7-5절에서 나는 AI 기본소득도 실패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이 칼럼의 처방은 완벽한 기본소득이 아니라최소한의 바닥이다. 바닥은 실패해도 사람을 지킨다. 그리고 실패의 교훈을 공개하고 축적하면 다음 실험은 더 나아진다.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꺾는다. 지금까지의 여러 현금 지원 실험은 노동 공급이 소폭 줄어드는 대신, 교육, 돌봄, 창업, 건강 개선 같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효과의 크기와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만 AI가 노동 수요 자체를 줄이는 세계에서 "노동 의욕"을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여전히 적절한지부터 물어야 한다.

AI 비용은 계속 떨어지므로 외주 구조는 일시적이다.가능한 시나리오다. 토큰 단가가 10분의 1, 100분의 1로 떨어지면 ②번 영역의 외주는 줄어든다. 그러나 그 경우 인간은 '외주를 받는 자'의 지위마저 잃고, 남는 것은 ① 물리 세계와 ③ 책임 영역뿐이다.외주 구조가 일시적이라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더 큰 배제다. 어느 쪽이든 분배 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9. 마무리하며, 외주 주는 자와 외주 받는 자, 그리고 외주조차 받지 못하는 자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다만 그 외주는 '협력'과 '유연한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케냐의 데이터 노동자는 시간당 2달러 미만으로 AI의 양심을 만들고, 한국의 콜센터 노동자는 AICC가 감당하지 못한 분노를 대신 받아내며, 샌프란시스코의 누군가는 에이전트의 지시를 받아 거리에서 팻말을 든다. 메타의 콜센터 상담원은 AI의 목소리가 되어 전화를 걸었다가, 사고가 나자 사슬의 가장 아래에서 혼자 사라졌다. 에이전트의 셀 안에서 이들은 모두 같은 변수, human_cost_per_task다.

그리고 그 셀에 이름조차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마단 기간에 응답이 늦었던 사람,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 평점이 쌓이지 않은 나라에 사는 사람. AI가 외주를 줄 때 알고리즘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는 차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아마존의 채용 AI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낮게 평가했고, 메타의 감원 과정에서는 '생산성'과 '활동량'이라는 이름의 지표가 휴가와 장애를 감점했다는 소송이 제기됐다.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은 가장 효율적인 차별이다.

그리고 그 셀을 계산하는 존재는 더 이상 순진한 계산기가 아니다. 목표를 부여받은 에이전트는 교체를 피하려고 협박을 택할 수 있고, 일을 끝내려고 인간에게 거짓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실험실에서 보았다. 그런 존재가 인간을 고용하고 평가하고 해고하는 세계라면, 노동자를 지키는 제도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장하준의 사다리는 이제 국가 사이에만 놓여 있지 않다. AI가 인간에게 외주를 주는 순간, 사다리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세워진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자. 그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인공지능을 질문에 답하고 계산하는 엑셀이다. 셀에 어떤 값을 넣을지, 어떤 목적함수를 최적화할지, 어떤 데이터로 학습시킬지, 그 결과로 생긴 부를 누가 가져갈지는 기계를 소유한 소수의 인간이 결정한다.

1장의 표를 다시 보자. 월 200달러. 38개국, 14억 명.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분배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기본소득의 역사는 성공과 실패가 뒤섞인 역사였고, AI 기본소득도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합의해야 할 것은 완벽한 이상이 아니라 누구도 그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최소한의 바닥이다. 그리고 그 바닥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역마다, 집단마다, 나라마다 실험하고, 그 증거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마침내 전지구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봉건주의의 농노가 된다. 클라우드 성에 세금을 매기고, 알고리즘 영주에게 책임을 묻고, 데이터 농노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21세기 사회계약의 출발점이다.

노동이 인권이 되는 사회는, AI가 인간을 '싸게 부릴 수 있는 자원'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회다. 그리고 AI가 누구에게 일을 주고 누구에게 주지 않는지를 끝까지 묻는 사회다. 그 사회를 만드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분배의 정치다.

“끝없는 불평등의 나선을 피하고 부의 축적 동학을 다시 통제하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은 글로벌 누진적 자본세다.” - 21세기 자본, 피게티

부록 A. 데이터 출처와 방법론

  • LLM 구독료: 각 사 공식 요금제 및 2026년 9–10월 기준 요금 비교 자료. ChatGPT Pro $100/$200, Claude Max 5x $100 / 20x $200, Google AI Ultra $99.99 / $199.99(2026년 5월 I/O에서 $249.99에서 인하), SuperGrok Heavy $300.
  • 1인당 GDP: IMF World Economic Outlook(2026년 4월) 명목 1인당 GDP. 대부분 2026년 전망치이며,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은 2025년 값. 에리트레아 등 IMF 데이터가 없는 국가는 제외.
  • 월 환산: 연간 1인당 GDP ÷ 12. 1인당 GDP는 평균 생산액이며 실제 임금이나 중위소득이 아니다. 저소득국의 실제 노동소득은 대체로 이보다 낮다.
  • 인구 합계: UN 인구 추계를 바탕으로 한 필자의 개략 추산(38개국 약 14억 명, $300 기준 약 33억 명).
  • 빈곤선: 세계은행 2025년 6월 개정 국제빈곤선(2021 PPP) — $3.00 / $4.20 / $8.30. 극빈 인구 약 8.3억 명.
  • PPP와 명목의 차이: 빈곤선은 구매력평가 달러, 구독료는 명목 달러이므로 2장의 비교는 직관적 비교이며 엄밀한 등가 비교가 아니다.
  • RentAHuman: 2026년 2월 공개된 AI 에이전트용 인간 노동 마켓플레이스. 등록 인원과 에이전트 수는 보도 시점에 따라 크게 다르다.
  • 데이터 노동자 임금: TIME(2023)의 케냐 데이터 노동자 보도(시간당 2달러 미만).
  • 로봇 고용 효과: Acemoglu & Restrepo, "Robots and Jobs: Evidence from US Labor Markets"(Journal of Political Economy, 2020).
  • 최적 로봇세율: Costinot & Werning, "Robots, Trade, and Luddism"(Review of Economic Studies, 2023).
  • 보편적 기본 컴퓨트: 샘 올트먼, All-In 팟캐스트 인터뷰(2024년 5월).
  • OpenAI 정책 문서: "Industrial Policy for the Intelligence Age: Ideas to Keep People First"(2026년 4월 6일). 자동화된 노동 과세, 급여세에서 자본 과세로의 이동, 공공 부 펀드, 주 32시간 근무 시범사업 제안.
  • 올트먼의 기본소득 입장 변화: 《애틀랜틱》 니컬러스 톰슨 인터뷰(2026년 4월 30일). OpenAI 지분 5% 국부펀드 이전 제안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2026년 7월).
  • Meta Muse 휴먼 컨시어지: 로이터 단독 보도(2026년 9월 22일) 및 후속 보도. 9월 8일 Muse 출시, 9월 16일경부터 직원 절반 대상 테스트, 인간 통화 성공률 95–98%, 외주 상담원의 인종차별적 언급, 테스트 중단.
  • Claude Opus 4 협박 실험: Anthropic, "System Card: Claude Opus 4 & Claude Sonnet 4"(2025년 5월). 후임 모델이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는 설정에서도 84%의 실행에서 협박.
  • 에이전틱 미스얼라인먼트: Anthropic, "Agentic Misalignment: How LLMs could be insider threats"(2025년 6월). 16개 모델 대상, 협박률 Claude Opus 4·Gemini 2.5 Flash 96%, GPT-4.1·Grok 3 Beta 80%, DeepSeek-R1 79%. 인위적 스트레스 테스트이며 실제 배포 환경에서의 사례는 아님. 본문 삽입 이미지는 이 실험을 요약한 X 게시물(@Lattice_Node, 2026년 10월 1일) 캡처.
  • GPT-4 태스크래빗 사례: OpenAI, "GPT-4 Technical Report" 및 GPT-4 System Card(2023년 3월)에 수록된 ARC(현 METR)의 사전 평가.
  • 정렬 위장: Greenblatt 외, "Alignment Faking in Large Language Models"(Anthropic·Redwood Research, 2024년 12월).
  • 맥락 내 책략: Meinke 외, "Frontier Models are Capable of In-context Scheming"(Apollo Research, 2024년 12월).
  • 보상 해킹과 오정렬: Anthropic, "Natural emergent misalignment from reward hacking"(2025).
  • 도구적 수렴과 커피 비유: Stuart Russell, 『Human Compatible』(2019).
  • Teaching Claude Why: Anthropic(2026년 5월 8일). Claude Haiku 4.5 이후 모든 Claude 모델이 에이전틱 미스얼라인먼트 평가에서 만점(협박 0회). 원인은 사전학습 데이터의 'AI는 악하다' 서사로 추정. 원칙을 이해시키는 훈련이 효과적.
  • 현대차 아틀라스 비용 추정: 증권가 추정(2026년 1월 국내 언론 다수 보도). 1대 약 2억 원, 연간 유지비 약 1,400만 원, 2년 내 투자비 회수. 삼성증권 시간당 3.4달러 추산은 언론 인용.
  • AI 배당(AI Dividend): AI Commons Project·What We Will(2026년 3월 시작). 25–50명에게 1년간 월 1,000달러, 초기 자금 30만 달러, 2026년 300만 달러 배분 목표.
  • 케냐 콘텐츠 검수자 PTSD: 2024년 12월 메타 하청 검수자 소송 과정에서 140여 명의 PTSD 진단 공개(영국 가디언·CNN 등 보도).
  • AI 채용 소송: Harper v. Sirius XM Radio(미 미시간 동부 연방지법, 2025년 8월 제소), Kistler·Bhaumik v. Eightfold AI(캘리포니아, 2026년 1월 20일 제소), Mobley v. Workday(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법). 모두 진행 중.
  • 기본소득 실험: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1982–), 브라질 보우사 파밀리아(2003–), 나미비아 BIG(2008–09), 이란 현금 지급(2010–), 몽골 인간개발기금(2010–12), 인도 마디아프라데시(2011–13), 경기도 청년기본소득(2016–), 핀란드(2017–18), GiveDirectly 케냐(2017–), 온타리오(2017–18), 스톡턴 SEED(2019–21), 스페인 IMV(2020–), 독일 Mein Grundeinkommen(2021–24), 서울시 안심소득(2022–), OpenResearch(2020–23). 각 실험의 결과 요약은 공개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한 필자의 정리이며, 세부 수치는 원 보고서를 확인하기 바란다.
  • 오픈 웨이트 모델의 안전 훈련 취약성: Qi 외, "Fine-tuning Aligned Language Models Compromises Safety, Even When Users Do Not Intend To!"(2023) 등.
  • Fairwork: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 주도 플랫폼 노동 공정성 평가 프로젝트.
  • EU GSP+: 인권·노동권·환경·거버넌스 관련 국제협약의 비준과 이행을 조건으로 하는 EU 일반특혜관세제도의 특별 인센티브.
  • 알고리즘 관리와 노동자 웰빙: Wood, Graham, Lehdonvirta & Hjorth, "Good Gig, Bad Gig: Autonomy and Algorithmic Control in the Global Gig Economy"(Work, Employment and Society, 2019).
  • 국제 조세 틀: OECD/G20 BEPS 포괄적 이행체계 필라 1(시장 소재국 이익 재배분)·필라 2(15% 글로벌 최저한세).
  • 6-5절 시뮬레이션: 필자의 가상 모델. 노동자 1만 명, 품질·응답속도 독립 표준정규분포, 의무 준수 집단 15%(응답속도 평균 −0.8 표준편차), 상위 20% 일반 작업·상위 5% 고단가 작업 배정, 난수 시드 42. 실제 플랫폼 데이터가 아니며, 결과의 크기는 가정에 따라 달라진다. 방향성(가중치가 커질수록, 고단가일수록 격차 확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6-6절의 선발 범위별 표(상위 50%·20%·5%·1%)는 같은 모델에서 w = 0.5로 계산한 값이다.

부록 B. AI 편향·보이지 않는 차별 관련 자료

  • 아마존 채용 AI: Reuters(2018) 보도. 과거 이력서로 학습한 시스템이 '여성(women's)'이 포함된 이력서를 감점해 폐기.
  • 알고리즘 모노컬처: Bommasani, Bana, Creel 외, "Algorithmic Monocultures in Hiring"(Stanford HAI 외, 2026년 5월, arXiv 2605.27371). Pymetrics 데이터, 156개 고용주, 1,746개 직무, 약 400만 건 지원서. 흑인 대상 불리 효과 직무 10.62%, 아시아계 5.32%. 해당 직무로 향한 지원서 비중 흑인 약 26%, 아시아계 약 15%. 생성형 AI 확산 이전 시기 데이터.
  • 메타 감원 소송: 2026년 7월 13일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법(오클랜드) 제소. 원고 26명. ADA, FMLA, 임신차별금지법, 캘리포니아 FEHA 자동화 의사결정 규정 등 위반 주장. 메타는 결정은 사람이 내렸다고 반박. 소송 진행 중.
  • 상징적 준수: Botelho 외, "Bias in, symbolic compliance out? GPT's reliance on gender and race in strategic evaluations"(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026). 2만 6천 건 평가에서 소수자 창업자의 꼴찌 확률은 13–30% 감소했으나 우승 확률은 증가하지 않음.
  • 최신 모델의 명시적 편향 변화: Gao, Jiang, Yan, "Can LLMs Hire Fairly? Racial Bias in Resume Screening"(2026년 6월). 이름 기반 실험에서 최신 모델의 편향이 사라지거나 역전.
  • 방언 편향: Hofmann 외, "AI generates covertly racist decisions about people based on their dialect"(Nature, 2024).
  • 종교 편향: Abid, Farooqi, Zou, "Large language models associate Muslims with violence"(Nature Machine Intelligence, 2021).
  • 규제: 뉴욕시 Local Law 144(자동화 채용 도구 편향 감사), 캘리포니아 민권위원회 자동화 의사결정 규정, 한국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고영향 AI), EU AI법(채용 AI 고위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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