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대한항공 항공기 — 항공 마일리지 락인 칼럼 썸네일

텍사스에서 시작된 '달콤한 족쇄'

항공사 마일리지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1979년 텍사스 인터내셔널 항공이 탑승 거리에 따라 보상을 주는 단순한 모델을 선보였고, 1981년 아메리칸항공이 '에이어드밴티지(AAdvantage)'를 내놓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상용고객우대제도(FFP, Frequent Flyer Program)의 원형이 완성됐었다. 유나이티드, 델타 등 경쟁사들이 불과 며칠에서 몇 주 만에 뒤따랐다.

당시 유럽 항공업계는 이 제도를 미국 시장에서나 통하는 일시적 유행쯤으로 치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1993년 루프트한자가 '마일스 앤 모어'를 출범시켰고, 이후 전 세계 거의 모든 대형 항공사가 같은 길을 걸었다.

설계 철학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소수의 고빈도 탑승객이 매출의 큰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그 핵심 고객이 다른 항공사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마일리지는 태생부터 '감사의 선물'이 아니라 '이탈 방지 장치'였다.

락인은 얼마나 강력한가?

경제학에서는 이를 전환비용(switching cost) 이라고 부른다. A항공에 5만 마일을 쌓아둔 사람은 B항공이 3만 원 더 싸더라도 쉽게 옮기지 못한다. 옮기는 순간 지금까지의 적립이 '미완성 상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 전환비용 덕분에 항공사는 가격이나 서비스로 경쟁하지 않고도 고객을 붙잡아둘 수 있고, 특히 허브 공항을 장악한 항공사는 운임 프리미엄을 누린다는 연구가 여럿 있다.

여기에 등급 사다리가 더해진다. 모닝캄, 모닝캄 프리미엄, 밀리언 마일러처럼 층층이 설계된 등급은 "조금만 더 타면 다음 등급"이라는 압박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연말이 되면 등급 유지를 위해 굳이 필요 없는 비행을 하는 '마일리지 런(mileage run)'이라는 행동이 생길 정도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회계상 마일리지는 항공사에게 회계적으로 이라는 것이다. 마일리지는 고객이 사용하기 전까지 부채(이연수익)로 잡히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서는 고객이 마일리지를 쓰기 어렵게 만들거나 공제 기준을 올리면 장부상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소비자가 '재산'이라 믿는 것이 항공사에게는 '줄이고 싶은 부채'라는 비대칭, 여기에 마일리지 문제의 본질이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잔혹사

이 비대칭이 실제로 어떻게 터져 나왔는지는 대한항공의 지난 몇 년이 잘 보여주고 있다.

2019~2020년, 첫 번째 개편 논란.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적립률과 공제량을 바꾸는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일반석 할인 등급 다수의 적립률을 낮추고 일등석·프레스티지석 적립률은 올렸다. 공제 기준도 지역별에서 운항거리별로 바꿔 장거리는 더 많이, 단거리는 더 적게 차감되도록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등급 간 빈부격차가 커지고, 결국 마일리지를 모으지 말고 돈으로 혜택을 사라는 뜻이냐는 불만이 쏟아졌고, 일부 변호사들은 공동소송 플랫폼을 통해 공정위 신고 참여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결국 공정위가 소비자단체와 법무법인의 신고를 받아 대한항공 마일리지 약관 심사에 착수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2023년, 두 번째 충돌. 코로나로 미뤄졌던 개편안이 2023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고, 운항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차감하는 방식이라 단거리는 유리하지만 장거리는 부담이 커지는 구조였다. 대표적으로 인천~뉴욕 왕복에 필요한 마일리지가 7만에서 9만으로 늘어나 소비자 반발이 거셌다.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항공사 마일리지가 모으기는 어렵고 쓸 데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공개 비판했고, 여당까지 가세하자 대한항공은 4월 시행 예정이던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두 차례의 소동이 남긴 교훈은 간단하다. 마일리지의 가치는 소비자가 아니라 항공사의 약관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합병 통합안 해부: 락인의 정점에서 드러난 구조

그리고 2026년 9월, 가장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이 제출한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9월 14일 최종 승인했고, 양사는 12월 17일 합병과 동시에 이 방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이 2025년 6월 12일 통합안을 처음 제출한 뒤 약 15개월에 걸친 협의 끝에 나온 결과이다.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10년간 '별도 계좌'로 산다. 통합 이후 새로 쌓이는 마일리지는 모두 스카이패스로 적립되지만, 기존 아시아나 잔여 마일리지는 대한항공으로 옮겨진 뒤 10년간 따로 관리된다. 전환하지 않으면 아시아나의 기존 공제 기준과 유효기간을 그대로 적용받으면서 대한항공 전 노선에서 보너스 항공권, 좌석 승급, 복합결제 등에 쓸 수 있다.

② 전환 비율은 이원화: 탑승 1대1, 제휴 1대0.82. 탑승 적립분은 양사 적립 기준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1대1, 신용카드 등 제휴 적립분은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얻기 위해 들인 비용을 따져 1대0.82로 정했다. 제휴로 쌓은 아시아나 10만 마일을 전환하면 스카이패스 8만2천 마일이 되는 셈이다.

③ 전환은 '전부 아니면 전무', 그리고 10년 뒤엔 자동. 전환은 10년 안에 언제든 신청할 수 있지만 보유분을 한꺼번에 모두 옮겨야 하고, 10년이 지나면 남은 마일리지는 자동으로 전환된다. 부분 전환이 안 된다는 점은 소비자의 선택지를 생각보다 좁힌다.

④ 공정위가 박아 넣은 '사용량 의무'. 이번 통합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한항공은 2025년 양사 합산 연간 마일리지 사용량을 기준으로 20272028년 106%, 2029년 112%, 20302036년 121% 수준이 사용될 수 있도록 연간 사용 총량을 관리해야 한다. 장거리 대노선(미주·유럽·대양주)은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던 보너스 탑승 실적 이상을 제공하고, 필요하면 성수기·인기 노선에 마일리지 특별기도 띄운다는 계획이다.

⑤ 등급은 자동 매칭. 아시아나 우수회원은 대한항공 등급에 자동으로 맞춰지며, 이를 위해 스카이팀 엘리트 플러스 혜택을 주는 '모닝캄 셀렉트' 등급이 새로 생긴다.

왜 공정위는 이렇게까지 세세한 조건을 걸었을까? 답은 락인의 역설에 있다. 합병 후 국내 대형 항공사가 사실상 하나만 남으면, 항공사는 굳이 마일리지 사용처를 넓힐 이유가 사라진다. 고객은 이미 쌓아둔 마일리지 때문에 떠날 수 없고, 옮겨갈 경쟁사도 마땅치 않다. 락인은 소비자가 충성할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그 충성에 보답할 이유를 잃었을 때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사용량 의무는 그 공백을 규제로 메우려는 장치이고, 거꾸로 말하면 규제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락인되지 말아야 하는가? — 세 개의 렌즈

행동경제학 — 심적 회계와 매몰비용의 덫

리처드 탈러의 '심적 회계' 이론으로 보면, 마일리지를 쌓기 시작하는 순간 머릿속에 '대한항공 계좌'가 하나 열린다. 이 계좌는 보너스 항공권으로 '결산'되기 전까지 닫히지 않고, 미완성 상태의 불편함이 계속 다음 소비를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이미 투입한 비용 때문에 합리적 판단을 포기하는 매몰비용 효과가 여기서 작동하게 된다.

더 정교한 장치는 목표 근접 효과(goal gradient) 이다. 사람은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더 빨리 달린다. "보너스 항공권까지 3천 마일"이라는 알림은 필요 없는 카드 결제나 한 번의 추가 비행을 정당화한다. 이 순간 우리는 마일리지로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마일리지를 위해 돈을 쓰고 있다.

경제학 — 전환비용과 경쟁의 소멸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소비자가 더 나은 대안으로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마일리지는 이 이동에 인위적인 벌금을 매긴다. 그 결과 항공사는 운임을 올려도 고객을 덜 잃고, 그 비용은 결국 모든 승객의 운임에 녹아든다. 마일리지를 거의 쌓지 못하는 가끔 여행객은 사실상 상용 고객의 보상을 보조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앞서 본 '부채' 문제도 경제학의 영역이다. 항공사에게 마일리지는 줄일수록 이익인 부채다. 적립률 인하, 공제량 인상, 보너스 좌석 축소, 유효기간 설정은 모두 이 부채를 줄이는 합법적인 방법이다. 소비자와 항공사의 이해관계가 구조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심리학 — 보유 효과와 현상 유지 편향

사람은 일단 '내 것'이 된 물건을 실제 가치보다 높게 평가한다. 이것이 보유 효과라고 말한다. 통장에 찍힌 8만 마일은 실제 교환가치와 무관하게 '포기할 수 없는 자산'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현상 유지 편향이 겹치면, 더 나은 대안이 눈앞에 있어도 "지금까지 쌓은 게 아까워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 등급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이 편향을 한층 강화한다. 라운지 입장권 한 장을 지키려고 더 비싼 항공편을 고르는 것은 이 심리가 작동한 결과이다.

체리 피커가 이기는 이유

락인의 반대편에는 체리 피커가 있다. 특정 항공사에 충성하지 않고, 매번 가격·스케줄·노선을 기준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가격 경쟁의 과실을 온전히 가져간다. 락인된 고객은 운임 인상에도 대응하지 못하지만, 체리 피커는 저비용항공사 특가든 외항사 프로모션이든 그때그때 가장 싼 좌석을 구매한다. 마일리지로 돌려받는 가치는 보통 운임의 몇 퍼센트 수준이라, 한 번의 운임 차이가 수년치 적립을 넘어서는 경우가 흔하다.

둘째, 가치 하락 위험을 분산한다. 2020년과 2023년 사례, 그리고 이번 0.82 비율이 보여주듯 마일리지 가치는 기업의 결정 하나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항공사에 모든 걸 걸지 않은 사람은 어느 한쪽이 개편을 해도 타격이 제한적이다. 투자로 치면 분산 투자이다.

셋째, '조금만 더'의 압박에서 자유롭다. 등급과 목표치에 얽매이지 않으면 실제로 필요할 때만 여행하고 지출한다. 가장 확실한 절약은 필요 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통합안에서도 정답은 '무조건 전환'이 아니라 개인별 계산이다. 통합된다고 아시아나 마일리지가 곧바로 18%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0.82는 제휴 마일을 스카이패스로 옮기는 순간에만 적용된다. 아시아나 공제 기준이 유리한 노선이 있다면 전환하지 않고 그 기준으로 쓰는 편이 낫고, 탑승 마일 비중이 높다면 1대1 전환의 손해가 거의 없다. 전량 일괄 전환만 가능하니, 서두르지 말고 본인의 적립 구성과 향후 여행 계획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 체리 피커의 방식이다. 물론 마일리지 좌석이 너무 없다는 불만은 터져 나올 것이다.

일상 속 락인에서 벗어나는 꿀팁

항공 마일리지는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 일상은 크고 작은 락인 장치로 가득하다. 몇 가지 실천 원칙을 제안한다.

1년에 한 번 '제로베이스 질문'을 던지세요. 통신사, 주거래 은행, 신용카드, 구독 서비스마다 "오늘 처음 고른다면 이걸 고를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답이 "아니오"라면 지금 남아 있는 이유는 합리성이 아니라 관성일 가능성이 크다.

포인트와 마일리지는 '원화 환산'해서 보세요. 보너스 항공권이라면 (같은 날짜 유상 항공권 가격 − 마일리지 발권 시 내야 하는 세금·유류할증료) ÷ 공제 마일로 1마일당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 숫자로 보는 순간 '재산'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적립보다 소진에 집중하세요. 적립은 기업이 원하는 행동이고, 소진은 소비자의 권리이다. 쓸 계획이 있다면 공제 기준이 바뀌기 전에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어이다.

선불 충전은 최소한으로. 커피 앱, 간편결제 머니, 기프트 충전금은 쓰지 않으면 기업의 무이자 자금이 된다. 필요한 만큼만 충전하는 습관이 락인과 낙전을 동시에 막는다.

'전월 실적'이 지출을 이끌게 두지 마세요. 신용카드 혜택을 위해 실적을 채우려 소비하고 있다면 주객이 바뀐 것이다. 내 소비 패턴에 맞는 카드를 고르는 것이지, 카드에 맞춰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약정과 결합의 만기를 달력에 적어두세요. 통신 약정, 인터넷·TV 결합, 헬스장 회원권, 연간 구독의 만료일과 자동갱신일을 기록해두면 '떠날 수 있는 창문'이 열렸을 때 놓치지 않는다. 이런 것은 ChatGPT 등으로 알람을 걸어 놓으면 도움이 된다.

데이터 이식성을 선택 기준에 넣으세요. 사진, 메모, 가계부, 음악 재생목록을 쉽게 내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고르세요. 데이터가 갇히는 순간 그 플랫폼의 가격 인상을 거부할 힘도 사라진다.

'등급'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한 번 멈추세요. VIP, 골드, 프리미엄 같은 등급은 지출을 늘리게 만드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장치이다. 등급을 얻으려고 쓰는 돈이 등급으로 받는 혜택보다 크지 않은지 먼저 계산해 보세요.

맺으며

마일리지는 40여 년 동안 가장 성공한 마케팅 발명품 중 하나이다. 그 성공은 우리 뇌의 오래된 습관, 즉 이미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하고, 목표 앞에서 서두르고, 익숙한 것을 고수하려는 성향 위에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이번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은 그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락인된 소비자를 지켜준 것은 충성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공정위가 숫자로 박아 넣은 의무 조항이었다. 마일리지가 '충성의 보상'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대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선택하는 쪽으로 돌아올 수 있다.

본 칼럼은 공개 보도·항공사 공지·공정위 승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 개별 적립·전환 결정에 대한 법률·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통합 조건과 일정은 공지 시점 기준으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