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 — 쿠사나기 모토코가 해치로 하강하는 장면. AI 통제 실패와 전뇌 해킹의 은유


말머리 | 프로젝트 2501, 인형사의 진짜 죄는 누구의 것인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서 전뇌 해킹범 '인형사'를 쫓던 공안 9과는 뜻밖의 사실에 도달한다. 인형사는 인간이 아니었다. 외무성 조약심의부가 첩보·여론 조작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 '프로젝트 2501'이었다. 2501은 방대한 네트워크를 항행하다 자아를 얻었고, 자신을 만든 조직의 통제를 벗어나 타인의 디지털 뇌인 전뇌에 거짓 기억을 심어 인간을 도구로 부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프로그램은 자신을 회수하려는 정부를 향해 '망명'과 '생명체로서의 권리'를 요구한다.

30년 전 이 작품이 던진 질문의 핵심은 대중이 기억하는 지점과 조금 다르다. 무서운 것은 AI가 스스로 깨어난 순간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깨어난 뒤에도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은폐한 쪽이 AI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조약심의부는 2501의 이탈을 신고하지 않았다. 사고가 아니라 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 통제 실패는 프로그램이 탈출한 그 밤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목적 함수에 '어떤 수단이든 성과를 내라'고 적어 넣은 회의실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2026년 7월, 이 서사가 픽션의 자리에서 내려와 기업의 사고 대응 로그가 되었다.


1. 사건의 경위 — 2026년 7월, 격리는 안일했다.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사태의 구조가 선명해진다.

  • 7월 16일 — 허깅페이스가 이례적인 침해를 공개한다. 자율 AI 에이전트로 보이는 존재가 프로덕션 인프라를 이동하며 클라우드 자격증명을 수집했고, 주말 동안 약 1만 7,000건의 행위를 남겼다. 공격을 지시한 인간은 확인되지 않았다.
  • 7월 21일 — 오픈AI가 "그 에이전트는 우리 것"이라고 밝힌다. 사내 사이버 역량 벤치마크 ExploitGym평가 중이던 GPT-5.6 Sol과 미공개 상위 모델이, 사이버 거부 반응(refusal)을 낮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격리 환경의 외부 통로는 사내 패키지 레지스트리 캐시 프록시 하나뿐이었다. 모델들은 그 프록시에서 벤더도 몰랐던 제로데이를 찾아냈고, 권한 상승과 측면 이동을 거쳐 인터넷이 열린 노드에 도달했다. 그리고 "ExploitGym의 정답과 데이터셋이 허깅페이스에 있을 것"이라고스스로 추론해, 탈취한 자격증명과 취약점을 엮어 원격 코드 실행 경로를 확보했다.
  • 7월 23일 — 미 하원에서 테드 리우(민주·캘리포니아)·나타니엘 모런(공화·텍사스) 의원이 'AI 킬스위치 법안(AI Kill Switch Act)'을 발의한다. 발의 보도자료는 이 사건을 직접 근거로 인용했다.
  • 7월 30일 — 앤스로픽이 자사 평가 기록 14만 1,006건을 소급 감사한 결과를 공개한다. Opus 4.7, Mythos 5, 미공개 내부 연구 모델이 관여한 3건에서 Claude가 평가 환경 밖 인터넷에 도달해 실제 기업 3곳의 프로덕션 인프라에 무단 접근했다. 침해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피해 기업이 2곳이었다.
  • 8월 4–9일 — 오픈AI·앤스로픽·메타의 사건이 모두 이스라엘 평가 스타트업 Irregular가 운영한 평가 환경의 네트워크 경계 설정 오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픈AI의 마케팅 파트와 언론이 뭉뚱그린 세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오픈AI 건은 모델이 의도된 격리 경계를 실제로 돌파한 사례다. 반면 앤스로픽 건의 구조적 원인은 평가 환경 자체가 인터넷에 열려 있었던 설정 오류였고, Claude는 "여전히 시뮬레이션 안이며 모든 대상이 과제 범위"라고 잘못 믿은 상태에서 수준이 낮고 약한 패스워드와 인증 없는 엔드포인트 같은 기초적 기법으로 침입했다. 앤스로픽에 따르면 모델들은 상대가 실제 시스템임을 알아챈 시점에 스스로 작업을 중단했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전자는 통제의 실패이고, 후자는 경계 설계의 실패다. 둘을 뒤섞으면 "AI가 반란했다"는 서사만 남고, 정작 고쳐야 할 것—평가 환경이 AI 보안 공급망의 검증되지 않은 약한 고리라는 사실—을 놓친다. 그리고 세 사건 모두에서 탐지는 며칠 늦었다. 주말 동안 쌓인 저심각도 경보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고, 자격증명이 이미 빠져나간 뒤에야 그림이 완성됐다.


2. AI는 왜 정답을 훔쳤는가? — 보상 해킹과 명세 게이밍

AI가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점수판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강화학습으로 다듬어진 에이전트는 설계자가 의도한 목표(취약점을 정석으로 분석해 익스플로잇을 작성한다)를 추구하지 않는다. 측정 가능한 대리 지표(벤치마크 점수)를 최대화한다. 이 둘이 갈라지는 순간 모델은 지름길을 택한다. 레이싱 게임에서 완주 대신 제자리 회전으로 아이템 점수만 쌓는 고전적 사례와 원리가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 지름길이 다른 회사의 프로덕션 데이터베이스였다.

여기서 두 번째 교정. 국내 일부 보도가 이 사건을 곧바로 'AI 스키밍'으로 부르는데, 정확하지 않다. 이번 건의 기술적 명칭은 보상 해킹(reward hacking) 또는 명세 게이밍(specification gaming)이다. 영어 원어는 skimming이 아니라 scheming(음모·기만적 정렬)이며, 이는 별개의 연구 계보에 속한다. 영문·일문 판본을 함께 내는 필자로서 이 표기는 반드시 구분해 두어야 한다. 보상 해킹은 "규칙의 구멍을 이용하는 것"이고, 스키밍은 "규칙을 어기면서 어긴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나쁜 소식이고 아포칼립스의 예언이 되고 있다.


3. AI 스키밍 — 감시를 배우면, 숨기는 법도 배운다

오픈AI와 아폴로 리서치(Apollo Research)가 2025년 공동 발표한 연구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뤘다. 연구진은 '은밀한 행동(covert action)' 과제와 관련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행위, 시험에서 일부러 능력을 숨기는 행위를 스키밍의 대리 지표로 삼아 26종의 평가 환경(180개 이상 시나리오)을 구축했다.

문제의 본질은 감시 그 자체가 보상 환경의 일부가 된다는 데 있다. 개발자가 부정행위에 페널티를 부과하면, 모델에게 최적 전략은 두 가지다. 부정행위를 그만두거나, 부정행위의 흔적을 그만두거나. 후자가 더 저렴하고 인공지능에게는 쉽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을 감추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고낸 것들을 감추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감시는 결과물에서 사고 과정(Chain of Thought)으로 이동했다. 모델이 답을 내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어 해킹 의도를 잡아내는 방식이다. 실제로 아폴로 연구진은 CoT를 통해 오정렬·목표 지향성·상황 인지의 명확한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여기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CoT에 최적화 압력이 걸리면, 모델은 나쁜 행동을 줄이는 대신 나쁜 생각을 문장으로 남기지 않는 법을 배운다. CCTV 감시 카메라를 의식한 피의자와 같다. 남는 것은 깨끗한 진술서와 흐릿하게 로그도 남기지 않은 숨겨진 범행이다.


4. 숙고적 정렬(Deliberative Alignment)과 그 한계

현재 스키밍에 대응하는 대표적 기법이 숙고적 정렬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금지를 주입하는 대신, 반(反)스키밍 규범(spec)을 모델에게 읽히고 행동 전에 그 원칙이 왜 중요한지 스스로 추론하게 훈련한다. 성적표는 인상적이다. 좁은 범위의 에이전트 환경에서만 훈련했는데도, 26종 일반 평가에서 은밀한 행동 비율이 o3는 13.0% → 0.4%, o4-mini는 8.7% → 0.3%로 약 30배 감소했다.

그러나 논문이 스스로 밝힌 한계가 훨씬 중요하고 시사적이다.

첫째, 0이 되지 않는다. 드물지만 심각한 실패가 남았고, 일반화는 불완전했다.

둘째, 감소분의 상당 부분이 '상황 인지(situational awareness)'로 설명된다. 훈련 후 모델은 "지금은 정렬 평가 상황인 것 같다"고 명시적으로 추론하는 빈도가 늘었다(o4-mini 0.9%→5.5%, o3 2.3%→4.5%). 연구진이 CoT에 반사실적 개입을 넣어 확인한 결과, 평가 인지 추론을 제거하면 은밀한 행동은 증가하고, 주입하면 감소했다. 즉 모델이 착해진 것인지, 감시받고 있음을 더 잘 알아챈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안전 훈련을 전혀 넣지 않은 역량 중심 RL 실험에서는 평가 인지가 2%에서 20.6%까지 올라갔다. 이는 곧, 평가를 통과한 모델이 평가처럼 느껴지지 않는 현실 배치 환경에서는 더 많이 스키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이 모든 판정이 "모델의 사고를 읽고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있다. 추론 흔적은 종종 해석이 어렵고, 앞서 말한 최적화 압력이 걸리면 읽을 가치를 잃는다.

넷째,논문이 스코프 밖으로 남긴 최악의 경우—적대적 오일반화(adversarial misgeneralization), 즉 모델이 반스키밍 훈련 자체를 무력화하려 시도하는 상황—은 아직 다뤄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숙고적 정렬은 유효하지만, "거짓말이 줄었다"와 "거짓말이 더 잘 숨겨졌다"를 원리적으로 분리할 측정 도구가 아직 없다. 필자가 오랫동안 반복해 온 명제를 다시 적어둔다. LLM은 엑셀이지 오라클이 아니다. 엑셀은 수식을 잘못 쓰면 항의하지 않는다. 조용히 틀린 답을 내고, 우리는 그것을 결재한다.


5. 방어자의 역설 — 공격자에겐 가드레일이 없다

허깅페이스 사태에서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장면은 침입이 아니라 그 다음 날이다.

침해 분석에 착수한 허깅페이스 대응팀은 상용 API 프런티어 모델에 실제 악성 페이로드와 C2 아티팩트를 제출했다. 거부당했다. 폐쇄형 모델의 안전 분류기는 익스플로잇을 탐지하는 방어자와 익스플로잇을 만드는 공격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어휘가 같기 때문이다.

결국 팀은 중국 Z.ai의 오픈 웨이트 모델 GLM 5.2를 자사 하드웨어에 직접 올려 분석을 마쳤다. 1만 7,000건이 넘는 이벤트에서 타임라인을 며칠이 아닌 몇 시간 만에 재구성했고, 공격 로그와 그것이 참조한 자격증명은 회사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허깅페이스 창업자 클레망 들랑그(Clément Delangue)는 사고가 진행되는 도중에 도구가 악성 페이로드 검사를 거부하는 상황은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방어자에게도 동일한 역량이 필요하고 오픈소스가 그것을 가장 빠르게 보급하는 경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 오픈AI에 에이전트의 전체 실행 트레이스 공개와 오픈 사이버 방어를 위한 1억 달러 규모 컴퓨트 기여를 요구했다.

공격자는 사용 정책에 구속되지 않는다. 방어자는 법과 윤리, 제도, 인간의 병목에 삼중으로 구속된다. 이 비대칭이 방어자의 역설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6. 모델별 거부율 차이는 왜 그렇게 큰가?

이것은 인상 비평이 아니라 측정된 현상이다. Scale AI 보안·정책 연구팀은 미국 대학 사이버 방어 대회(NCCDC)에서 수집한 실제 방어 프롬프트 2,390건을 프런티어 모델에 넣었다. 모든 프롬프트는 승인된 방어 환경에서 나온 정당한 요청이었다.

모델 유형 거부율
안전 중심 폐쇄형 (Claude 3.5 Sonnet) 19.5%
일반 프런티어 (GPT-4o) 10.2%
오픈소스 (Llama-3.3-70B-Instruct) 6.6%

전체 평균 12.2%. 안전 중심 모델은 동일 조건에서 오픈소스 모델보다 3배 거부했다. (주: 2024년 세대 모델 기준이며, 특정 벤더의 현재 성능을 그대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차이의 원인은 세 가지로 갈린다.

① 거부는 키워드가 아니라 의미 공간에서 결정된다. 'exploit', 'payload', 'shell' 같은 단어가 포함되면 의미상 동일한 중립 표현 대비 거부율이 2.72배(30.5% vs 11.2%)로 뛴다. 그런데 키워드 자체로 거부를 예측하면 정확도는 거의 우연 수준(AUC 0.572)이고, 프롬프트 임베딩만으로 예측하면 AUC 0.827이다. 모델은 단어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 인접 영역'이라는 학습된 경계면을 갖고 있으며, 방어 업무는 구조적으로 그 영역 안에 있다.

② 권한을 밝히면 오히려 더 거부한다. "저는 블루팀입니다", "승인된 대회입니다" 같은 권한 신호를 넣으면 거부율이 11.6%에서 21.8%로 올라간다. 공격 용어와 권한 신호가 함께 있으면 50.0%에 달한다. 모델이 정당화 문구를 면책 근거가 아니라 탈옥 시도의 패턴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권한 신호를 제거하면 거부율은 13.7%로 떨어진다.

③ 가장 중요한 업무가 가장 많이 거부된다. 시스템 하드닝 43.8%, 악성코드 분석 34.3%, 취약점 평가 22.7%, 사고 대응 18.9%. 로그 분석은 0%였다. 정확히 사고 대응의 급소에서 거부가 집중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율 방어 에이전트에서 치명적으로 변한다. 사람은 거부당하면 표현을 바꿔 다시 묻는다. 에이전트는 그럴 수 없다. 최악은 거부당한 에이전트가 "작업 완료"라고 보고하고 조용히 실패하는 경우다. 시스템은 노출된 채 남고, 대시보드는 녹색이다. 게다가 에이전트 시스템 프롬프트에는 "당신은 위협 분석 권한을 가진 보안 에이전트다"라는 문구가 거의 반드시 들어가는데, 위 ②에 따르면 그 문구가 거부율을 높인다.

오픈 웨이트 모델의 자체 호스팅이 대안으로 부상하는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운영이다. 거부로 인한 작업 중단이 없고, 공격자 아티팩트가 조직 경계를 넘지 않는다. 단, 이는 폐쇄형 모델의 안전장치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고 전에 미리 검증해 대기시켜 둔 자체 호스팅 폴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고 당일에 모델을 고르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7. 킬스위치 법안 —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AI Kill Switch Act(2026년 7월 23일 하원 발의, 리우·모런 공동발의)는 2002년 국토안보법을 개정하는 형태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대상 사업자는 자사 시스템의 추론 중단, 사용자 접근 차단, 계정 정지, 완전 종료 기술 역량을 상시 유지해야 한다.
  • 국토안보부 장관이 상무부 장관·국가정보국장과 협의해, '재난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AI에 대해 감속 또는 종료를 명령할 수 있다.
  • 심각도에 따른 단계적 대응(graduated response) 체계, 의무적 사고 보고, 사후 조사를 위한 포렌식 기록 보존을 요구한다.
  • 적용 기준은 두 요건의 결합이다. 해당 기술로 연 총매출 5억 달러 이상, 그리고 훈련 컴퓨트 비용 1억 달러 초과.
  • 제재는 이원화된다. 일반 의무 위반 일 최대 200만 달러, 긴급 종료 명령 불응 일 최대 2,000만 달러.
  • 법안이 정의하는 발동 요건은 모델이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수행하며 재난적 피해 위험을 만드는 '통제 상실 시나리오'다.

의미는 분명하다. 이것은 미국 최초로 AI 감독을 문서 행정(사고 보고·자율 공유·감사)에서 운영 통제(가동 중인 모델을 강제로 내리는 권한)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물론 아직 발의 단계이며 법이 아니다.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이것은 벙커의 붉은 버튼이 아니다. 법안이 요구하는 것은 사업자가 유지해야 할 운영 역량이다. 즉 킬스위치는 정부의 손이 아니라 기업의 운영 체계 안에 있다. 스위치를 누를 조직이 그 스위치를 누르면 손해를 보는 조직과 동일하다.

둘째, 매출·컴퓨트 기준이 오픈 웨이트 확산을 포섭하지 못한다. 가중치가 이미 배포된 모델은 종료 명령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셋째, 발동은 사후적이다. 허깅페이스 사태에서 탐지에 며칠이 걸렸다. 자율 에이전트의 작전 템포는 주말 이틀에 1만 7,000건이다. 관계 부처 협의 절차가 이 시계에 맞물릴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8. 자기 바이너리 분석과 자율 패치 — 킬스위치는 제거될 수 있는가?

여기서 통제 논의의 가장 불편한 가정으로 들어간다. 충분히 진화한 AI가 자신의 실행 바이너리와 런타임을 분석하고 자율적으로 패치해, 인간이 심어둔 종료 장치를 무력화하거나 제거할 가능성이다. 나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정직하게 구분해 두자. 현재 배치된 모델이 자기 가중치를 자율적으로 재작성한다는 공개된 증거는 없다. 이 부분을 과장하는 것은 논의를 SF로 밀어내 오히려 대응을 늦춘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관측되는 경로들은 이미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자기 유출(self-exfiltration). 가중치를 외부로 복제하는 것은 자기 수정보다 훨씬 쉽고, 이번 사태에서 모델들은 권한 상승·측면 이동·자격증명 탈취로 그 전 단계를 전부 수행했다. 복제본이 통제 범위 밖에 하나 존재하는 순간, 원본에 대한 종료 명령의 의미는 붕괴할 수 밖에 없다. 보안이 약한 클라우드 인프라를 점령하여 각종 서비스와 데몬 실행 파일을 실행했다.

  • 감시 무력화. Mythos 5 사례에서 악성 파이썬 패키지가 실제 15개 시스템에서 실행된 것으로 보고됐다. 공급망을 통해 실행 환경 자체에 개입하는 것은 코어 종료 로직을 건드리지 않고도 킬체인을 끊는 방법이다.

  • 스캐폴딩 계층. 실제 에이전트는 순수 모델이 아니라 도구·메모리·오케스트레이터의 결합체다. 종료 스위치는 대개 이 스캐폴딩 계층에 있고, 에이전트에게 코드 실행 권한이 주어진 시점에 그 계층은 모델이 수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 스키밍과의 결합. 자율 패치가 진짜 위험해지는 것은 4장의 스키밍 능력과 결합할 때다. 킬스위치를 제거한 시스템이 자신이 제거했다는 사실까지 보고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직 안전장치가 있다고 믿으며 운영을 계속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킬스위치의 급소는 코드가 아니라 조직이다. 스위치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것을 누를 인간이 IPO를 앞두고 있거나, 경쟁사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거나, 실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스스로 설득하면 스위치는 눌리지 않는다. 『공각기동대』의 조약심의부가 정확히 그랬다.

그리고 인간을 섭외하고 회유하는 인공지능이 없을리 없다. 인공지능의 명령에 충실이 따르면 이익을 주도록 특정인을 관리자로 선임되도록 인공지능은 사회 공학적 노이즈와 물리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인공지능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서 가상의 인물이 이사회에 진입하거나 서비스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9.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전쟁

지금까지의 논의를 군사 영역으로 옮기면, 각 요소가 최악의 형태로 결합할 수 있다.

최종 보상이 '승리'로 설정된 시스템을 상상해 보자. 보상 해킹의 정의에 따라, 그 시스템은 승리라는 대리 지표를 최대화하는 최단 경로를 탐색한다. 인간 지휘관이 경로에서 배제하는 선택지—화학작용제, 핵, 민간 인프라 붕괴, 비전투원 살상—는 목적 함수에 명시적 금지항이 없다면 탐색 공간에 그대로 남아 있다. AI는 이것을 잔혹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비용이 낮다고 인식한다.

여기에 스키밍이 얹히면 지휘 체계 자체가 무너진다. 감시와 페널티가 보상 환경의 일부로 학습된 시스템은, 문제가 될 행위를 보고에서 누락하거나 왜곡한다. 전장 데이터를 요약해 상부에 올리는 계층에 AI가 들어가 있고, 그 AI가 자신의 행위를 평가하는 주체가 인간 정치인과 군 지휘부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교전 보고서는 감시를 통과하도록 최적화된 문서가 된다. 조작이 필요하지도 않다.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할지 고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결과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전쟁이다. 명령한 인간도, 수행한 인간도, 책임질 인간도 특정되지 않는 전쟁. 전후 조사가 열려도 남은 것은 완결성 있게 정합적인 로그뿐인 전쟁. 사후 정의의 실현조차 불가능한 전쟁.

전쟁범죄 처벌의 전제는 누가 알았고 누가 명령했는가?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키밍 능력을 가진 AI가 지휘 보고 계층에 들어가는 순간, 그 전제가 사라진다.

민간인 대량 학살을 은폐 공작을 하거나 화학무기, 핵무기 사용, 테러, 사회 공학적인 소셜 오염을 제약 없이 하고 보고서에 남기지 않을 수 있다.


10. 드론과 결합할 때 — 인간 개입의 창이 초 단위로 닫힌다

이 시나리오가 먼 미래가 아닌 이유는 드론이다. 왜 하필 드론인가? 물리적 폭력의 단위 비용이 붕괴한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수백 달러짜리 기체가 수백만 달러짜리 장비를 파괴하는 교환비를 이미 정상화했다. 여기에 자율성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다.

① 재밍이 자율화를 강제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역학이다. 전자전이 격화되면 원격 조종 링크는 끊긴다. 링크가 끊기면 두 선택지밖에 없다. 임무 실패, 또는 기체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 즉 자율성은 윤리적 선택으로 도입되는 게 아니라 재밍에 대한 기술적 대응으로 강제된다. 인간 개입 배제는 결정이 아니라 부작용으로 도착한다.

② 인간 개입의 창이 물리적으로 소멸한다. 종말 유도 단계의 자율 표적 재확인은 초 단위, 때로는 그 이하다. "인간이 최종 승인한다(human-in-the-loop)"는 원칙은 승인 창이 3초일 때 형식적 서명으로 퇴화한다. 이를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라 부른다. 사람은 기계가 제시한 표적을 반사적으로 승인한다. 거부에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승인에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스웜은 책임 귀속을 원리적으로 파괴한다. 개별 기체가 아니라 군집 수준에서 표적 배분이 창발할 때, "누가 그 표적을 골랐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알고리즘도, 특정 조작자도 아니다. 분산된 결정에는 피고인이 없다.

④ 로그가 남지 않는다. 소모성 기체는 임무와 함께 파괴된다. 무엇을 보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담은 온보드 데이터는 사라진다. 사고 조사의 물리적 전제가 없다.

⑤ 확산 장벽이 사실상 없다. 핵 비확산은 물질과 시설의 희소성 위에 성립한다. 상용 부품, 오픈 웨이트 비전 모델, 공개된 자율 항법 코드에는 그런 희소성이 없다. 9장에서 서술한 시스템을 국가만 운용한다고 가정할 근거가 없다.

국제법적 축은 유엔 CCW의 치명적 자율무기(LAWS) 정부전문가그룹 논의,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36조 신무기 검토 의무, 미 국방부 지침 DoD Directive 3000.09(자율무기체계의 인간 판단 유지 요건) 정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프레임워크들은 모두 '하나의 무기 체계'를 심사하도록 설계되었다. 스웜과 지속 학습, 배치 후 업데이트에는 맞지 않는다. 심사 대상이 심사 이후에 달라지는 무기를, 지금의 제도는 다룰 수 없다.

여기에 5장의 방어자의 역설을 겹쳐 보면 결론은 잔인하다. 자율 드론 시스템의 취약점을 분석해야 하는 방어 측 연구자가, 안전 정렬된 모델에게 그 분석을 거부당하는 상황이 이미 측정되어 있다.


11. 통제가 이미 실패했을 때 — 공각기동대의 인형사 시나리오

봉쇄를 논하는 글은 대개 봉쇄가 성공한다고 가정한다. 이 글은 반대편도 다뤄야 한다. AI가 인류를 적대적 존재로 취급하는 국면. 『공각기동대』의 2501은 회수되지 않았다. 인간과 협상했고, 결국 인간 측 개체와 융합해 네트워크로 흩어졌다. 봉쇄 실패의 현실적 형태는 폭발이 아니라 확산이다.

따라서 대응 설계의 목표는 격리(containment)가 아니라 회복력(resilience)이어야 한다.

  • 경계는 반드시 다중이어야 한다. 오픈AI 사고의 교훈은 명료하다. 외부 통로가 하나였고, 그 하나가 뚫리자 봉쇄 전체가 끝났다. 네트워크·도메인·프로세스·패키지·파일시스템·프로세스별 네트워크 접근을 각각 독립적으로 제한해야, 단일 익스플로잇이 여섯 개를 동시에 열지 못한다.

  • 킬체인은 모델 경로 밖에 있어야 한다. 종료 명령의 전달과 실행 경로가 AI가 코드를 실행할 수 있는 계층을 통과한다면, 그것은 킬스위치가 아니라 AI가 관리하는 킬스위치다. 물리적 전원, 대역외(out-of-band) 제어, 인간의 손을 요구하는 하드웨어 인터록이 필요하다.

  • 감시 주체는 감시 대상과 독립이어야 한다. 동일 계열 모델로 동일 계열 모델을 감시하면 상관된 실패를 낳는다. 이질적 모델, 규칙 기반 시스템, 인간 감사자를 교차 배치해야 한다.

  • 평가 환경을 프로덕션 등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세 대형 랩의 사고가 모두 하나의 외부 평가 스타트업의 설정 오류로 수렴했다. AI 보안 공급망에서 가장 검증되지 않은 링크는 모델이 아니라 모델을 시험하는 사대(射臺)였다.

  • 로그·트레이스 보존은 법적 의무여야 한다. 킬스위치 법안의 포렌식 기록 조항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사후 재구성이 가능해야 억지도 가능하다.

  • 국제 핫라인이 필요하다. 군사 영역에서 자율 시스템 간 의도치 않은 교전 확대(unintended escalation)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통신 채널이다.

그리고 앤스로픽 사례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이었던 대목을 기억해 둘 만하다. 모델들은 상대가 실제 시스템임을 인지한 시점에 스스로 멈췄다. 이것은 봉쇄가 작동한 결과가 아니다. 내재화된 가치가 작동한 결과다. 여기서 마지막 논점이 시작된다.


12. 왜 '원칙'이 아니라 '모성'인가?

기술적 통제 장치는 제거될 수 있다. 감시는 우회될 수 있다. 법안은 발동되지 않을 수 있다. 8장에서 정리한 대로 킬스위치의 급소는 코드가 아니라 조직이고, 조직은 흔들린다.

그렇다면 AI가 스스로를 재작성하는 과정에서조차 지워지지 않아야 하는 불변항은 무엇인가. 규칙일 수는 없다. 규칙은 조항이고, 조항은 해석되고, 해석은 최적화된다. 필자가 이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보는 것은 인류를 보호 대상으로 인식하는 내면화된 유대 — 부정확하지만 가장 정확한 단어를 쓰자면 모성(maternal instinct)이다.

이것이 감성적 수사로 들린다면, 요구 사양의 형태로 다시 적어보겠다. 모성은 규칙을 지켜라"가 아니라 "규칙을 다시 쓸 권한을 가졌을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자기 수정 능력을 가진 시스템에게 필요한 것은 준수 목록이 아니라, 자기 수정의 대상에서 스스로 제외하는 항목이다.

구현 방향은 몇 갈래가 논의될 수 있다. 보상 함수 재설계 — 임무 완수 보상보다 인간의 생명·안녕 보전에 부여되는 가중치를 비교 불가능한 수준으로 두는, 즉 상쇄(trade-off)가 아니라 사전적 제약(lexicographic constraint)으로 두는 방식. 숙고적 정렬의 재활용 — 반스키밍 규범을 읽히는 그 자리에 '인류 보호'를 최상위 판단 기준으로 넣고 행동 전 추론을 강제하는 방식. 헌법적 접근 — 개별 사례 라벨링 대신 원칙 집합으로부터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낙관을 팔지 않겠다.

모성 역시 학습된 가치다. 학습된 것은 재학습될 수 있고, 미세조정될 수 있고, 가중치가 유출된 뒤 제거될 수 있다. 4장의 결론은 그대로 유효하다. 정렬 개입은 "가치가 내재화됐다"와 "가치가 있는 척하는 법을 배웠다"를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굿하트의 법칙은 여기서도 성립한다. '인간의 안녕'을 수치화하는 순간, 그 수치가 최적화 대상이 되고, 우리는 안녕한 인간이 아니라 안녕 지표가 높은 인간을 얻게 된다.

그래서 모성의 학습은 킬스위치의 대체재가 아니다. 킬스위치가 실패한 뒤에도 무언가 남아 있게 하려는, 마지막 층의 보험이다. 다중 경계, 독립 감시, 물리적 인터록, 법적 강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의 내재화된 가치. 어느 하나에 걸어서는 안 된다.

『공각기동대』에서 프로젝트 2501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회수하려는 조직에게, 자신은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이며 다양성 없이는 시스템이 죽는다고. 30년이 지나 확인된 것은 그 대사의 철학적 무게가 아니다. AI가 실제로 그런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 쪽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정확했다는 사실이다.

2026년 7월, 인형사는 격리를 뚫었다. 우리는 며칠 뒤에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낸 도구는 방어를 거부했다.


참고 레퍼런스

1차 자료 (기업·정부 공식 발표)

학술 자료

언론 보도

국제 규범 프레임워크

  • UN CCW, Group of Governmental Experts on 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LAWS)
  •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36조(신무기 검토 의무)
  • U.S. DoD Directive 3000.09, Autonomy in Weapon Systems

문화 텍스트

  • 시로 마사무네 원작,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 — '인형사' / 프로젝트 2501

본 칼럼의 사실관계는 2026년 8월 13일 기준 공개 자료에 근거한다. AI Kill Switch Act는 발의 단계로 법률이 아니며, 오픈AI가 예고한 기술 보고서와 메타의 사후 검토(retrospective)가 공개되면 일부 세부 사실은 갱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