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번엔 다르다

반도체 사이클은 전통적으로 3 ~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시장은 AI 수요가 견인하는 '슈퍼사이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기준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9,7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약 25% 성장이 전망되며,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번 호황이 2028~2029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 다른 점은 분명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그동안 전형적인 '천수답' 산업이었다. 수요가 늘면 기업들이 일제히 증산하고,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 재고가 쌓이며 가격이 급락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하지만 AI 인프라 확산은 이 공식에 균열을 내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본지출(CAPEX)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하이퍼스케일러 5개사의 합산 자본지출은 2021년 1,271억 달러에서 2024년 2,241억 달러, 2025년 3,787억 달러로 늘어났고, 2026년에는 약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구글과 메타 등 대규모 AI 인프라 서비스 제공자들은 '투자 부족'을 가장 큰 리스크로 인식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투자 주체의 다변화다. 하이퍼스케일러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중동 등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소버린 AI'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 국가 단위 투자자는 가격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기존 AI 투자 사이클을 장기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 성수기와 비수기의 소멸, 그리고 '실적'이라는 벽

그런데 시장은 지금 미묘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실적은 나오기 시작했지만, 시장은 과도하게 올랐다고 생각한다.

샌디스크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웨스턴디지털에서 분사된 이후 샌디스크의 주가는 5,200% 이상 급등했고, 2026년에만 720% 이상 상승했다.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데이터센터의 SSD 업그레이드를 촉발했고, 이는 글로벌 NAND 메모리 칩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샌디스크는 AI 데이터레이크용 세계 최초 256TB 엔터프라이즈 SSD를 출시하며 이 호황에 편승했다.

문제는 이 미친 수요를 투자자들이 열광하면서 발생한 '반작용'이다. 실적 자체는 좋았지만, 시장은 더 큰 것을 바랐다. 실적 서프라이즈가 나와도 주가는 오히려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빅테크들은 고정된 수익처가 있음에도 적자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기대치가 현실을 앞서가도 너무 앞서 갔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현재 AI 주도 반도체 사이클을 전통적 업황 사이클 위에 구조적 성장 추세가 더해진 흐름으로 평가하면서도, AI 서비스가 실제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할 경우 현재의 투자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 닷컴 버블의 그림자

이 모든 상황이 2000년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은 최근 보고서에서 S&P 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시점에 지수 편입 종목 중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기업이 20곳에 불과했다며, 이는 2000년 3월 닷컴 버블 정점 당시와 기묘하게 닮은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증시 랠리는 마이크론과 AMD 등 AI 반도체 종목이 집중적으로 이끌었는데, 마이크론은 한 달 만에 88% 급등했고 AMD도 46% 상승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는 4~5월 25% 급등하며 최근 20년 사이 두 달 기준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닷컴 버블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수익화'에 대한 의문이었다. 인터넷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실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제기됐고, 그 충격으로 나스닥이 반등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지금도 비슷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가 과연 충분한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반도체 섹터의 변동성은 닷컴 버블 때보다 더 크다. 반도체주의 하루 변동폭은 미국 증시 전체 대비 거의 5배에 달하며, 이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후 기록한 4.2배보다도 높은 수치다.

4. 달러의 역설 - 달러는 약해지는데 달러로 도망가는 이유

시장은 지금 전쟁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6년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은 또 다른 불안정에 빠졌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졌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의 힘은 약해졌다. 달러 인덱스는 2025년 1월 초 109선에서 2026년 4월 98.44 수준으로 약 10% 하락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글로벌 탈달러화 가속화, 37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 부채 부담이 달러의 신용도를 약화시켰다.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대신 금 매수로 돌아서고 있으며, 2025년 상반기에만 23개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확대했다.

그런데도 시장은 달러 표시 자산으로 도망가고 있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달러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달러라는 '바스켓'에 담긴 자산은 여전히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인식되고 있다. 엔화는 39년 반 만에 달러당 162엔대까지 하락했고, 원화 역시 큰 변동성을 겪고 있다. 일본과 한국 모두 환율 안정을 바라는 상황이다.

달러 표시 자산이 최근 급격히 가치를 잃으면서 방향성은 분명해졌다. 급등한 달러 가치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이 연준의 의도대로 강제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트럼프의 '타코 패턴'은 미국의 적대 국가들에게 읽혔지만, 주식회사 USA는 믿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로마는 왜 몰락했는가? - 통화의 함량과 정치의 사유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는 군비 증강과 상시 지역 불안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는 로마가 서서히 몰락하던 시기의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5-1. 은화의 함량이 줄어들 때

로마 데나리우스 은화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네로 황제가 전쟁 비용과 과잉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주화의 은 함량을 낮추기 시작하면서 제국의 통화 신뢰가 무너졌다. 초기에는 은 함량이 100%에 가까웠으나, 3세기 중반에는 초기 은화의 5,00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통화 가치의 붕괴는 로마 경제의 근간을 흔들었고, 제국은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오늘날 달러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정 적자 확대, 통화량 증가, 기축통화로서의 신뢰도 하락. 미국 달러의 '순도'가 줄어들고 있다.

5-2. 정치인이 재벌이 되고, 재벌이 정치를 산다

그러나 통화 문제는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로마 몰락의 더 깊은 병소는 정치와 자본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었다.

공화정 말기 로마의 원로원 계급은 정치인이자 동시에 당대 최대의 자산가였다. 제1차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그 전형이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300탈렌트에서 7,100탈렌트까지 불어났다. 그가 부를 축적한 방식은 오늘날 기준으로도 노골적이다. 사설 소방대를 조직해 화재가 난 건물 앞에서 헐값 매각을 흥정한 뒤 불을 껐고, 술라의 공포정치 시기에는 정적의 몰수 재산을 경매에서 사들였다. 정치권력은 자산 획득의 수단이었고, 자산은 다시 정치권력을 사는 자금이 됐다. 그는 그 돈으로 카이사르의 정치 부채를 떠안았고, 삼두정치의 한 자리를 샀다.

세금 징수도 민영화됐다. 속주의 조세 징수권은 '푸블리카니(publicani)'라 불리는 징세 청부업자 컨소시엄에 경매로 넘어갔다. 이들은 국가에 납부할 정액을 선지급하고, 속주민에게서 그 이상을 뜯어냈다. 차액이 곧 이익이었다. 국가의 재정 기능이 사실상 정치 권력에 기생한 재벌과 사모펀드의 수익 사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원로원 귀족들은 라티푼디움(대농장)을 통해 자영농의 토지를 흡수했고, 몰락한 자영농은 로마로 흘러들어 '빵과 서커스'를 요구하는 도시 빈민이 됐다. 로마 군단의 인적 기반이 붕괴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누구나 자유민이 되고 권리를 이행하면 자유민이 되고 정치에 참여하고 계층 이동이 되는 로마라는 이상을 더 이상 다수가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5-3. 제국이 경매에 부쳐지던 날

이 구조가 도달한 종착점은 서기 193년에 드러났다. 근위대(프라이토리아니)가 개혁을 시도하던 황제 페르티낙스를 살해한 뒤, 진영 성벽 위에서 제위를 공개 경매에 부쳤다. 부유한 원로원 의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근위병 1인당 2만 5천 세스테르티우스를 제시해 낙찰받았고, 66일 만에 살해됐다. 에드워드 기번이 훗날 '제국의 경매(Auction of the Empire)'라 부른 사건이다.

제위가 상품이 되자 제국은 곧바로 3세기의 위기로 진입했다. 235년부터 284년까지 약 50년 동안 20명이 넘는 황제가 명멸했고, 대부분 자기를 지키던 근위병들에게 살해됐다. 통화 함량 붕괴, 조세 민영화, 정치의 매물화는 각각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였다. 국가가 스스로를 상업화된 자산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그 국가를 자산 가격으로 평가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원로원 귀족들은 정치를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이들 역시 무역의 쇠퇴와 함께 몰락했다. 제국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아무리 권력을 쥔 자들이라도 그 위에 설 수 없었다.

6. 대영제국 - 두 번의 전쟁이 태워버린 국부

로마가 수백 년에 걸쳐 겪은 일을 대영제국은 짧게는 40년 만에 압축해서 겪었다. 그리고 이 사례가 우리에게 더 유용하다. 로마에는 대체 통화가 없었지만, 파운드에는 달러라는 후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가 어떻게 교체되는지를 실제로 보여준 유일한 사례가 파운드다.

6-1. 승전국이 파산하는 방식

1914년 이전 영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었다. 1차 대전은 이 지위를 반대로 뒤집었다.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영국은 해외 투자 자산의 상당 부분을 청산했고, 미국에 대한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2차 대전은 여기에 결정타를 놓았다. 렌드리스(무기대여법)로 전쟁은 이겼지만, 종전 시점의 영국은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였다.

1946년 7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얻어낸 것은 원조가 아니라 차관이었다. 미국 37억 5천만 달러, 캐나다 11억 9천만 달러, 금리 2%. 케인스는 이 협상 직후 세상을 떠났다. 조건에는 파운드의 달러 태환 의무가 붙어 있었다. 1947년 7월 태환이 시행되자 한 달 만에 약 10억 파운드가 빠져나갔고, 영국은 태환을 중단했다. 기초 체력이 없는 전승국의 통화가 시장에 노출되자마자 한 달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 차관의 마지막 상환은 언제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2006년 12월 29일에 이루어졌다. 8,300만 달러. 원래 상환 일정보다 6년 늦은 것이었고, 이자를 포함한 총 상환액은 원금의 두 배가 넘었다. 2차 대전의 청구서를 21세기까지 갚은 셈이다.

파운드의 공식 절하는 그 사이에 두 차례 있었다. 1949년 4.03달러에서 2.80달러로, 1967년 다시 2.40달러로. 해럴드 윌슨 총리가 "여러분 주머니 속의 파운드는 절하되지 않았다"고 방송한 것이 1967년이다. 런던 시티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지나가던 강아지조차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6-2. 식민지는 사라지는데 식민지청은 커진다

국부가 소진되는 동안 관료 조직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현상을 실증한 사람이 해군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다.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발표한 풍자 에세이에서 그는 두 개의 수치를 제시했다.

  • 1914~1928년, 영국 해군의 현역 함정은 62척에서 20척으로 줄었으나 해군성 사무직원은 78% 증가했다.
  • 1935~1954년, 식민지청 직원은 372명에서 1,661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관리할 식민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파킨슨은 식민지청이 관리할 식민지가 거의 남지 않아 외무부로 흡수되던 시점에 사상 최대 인원을 보유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도출한 결론이 '파킨슨의 법칙'이다. 일은 주어진 시간을 채우도록 팽창하고, 관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부하를 늘리며, 부처는 서로에게 일을 만들어준다. 실질 업무량과 무관하게 조직은 연 5~7% 성장한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제국의 실체가 사라진 뒤에도 제국의 관리 비용은 남는다는 구조적 진단이라는 것이다. 식민지가 없어져도 식민지청은 남고, 남은 조직은 스스로의 존재를 정당화할 업무를 생산한다. 생산 기반이 사라진 자리에 관리 비용만 남는 상태 — 이후 '영국병'이라 불리게 될 것의 초기 증상이 여기에 있었다.

6-3. 영국병의 완성

1970년대에 증상은 병으로 굳어졌다. 1975년 물가상승률은 27%까지 치솟았고, 재정적자는 GDP의 10% 수준이었으며,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맞물렸다. 파운드는 1976년 3월 2달러에서 9월 1.65달러까지 밀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굿바이,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제목으로 파운드 자산 탈출을 권고했다.

1976년 12월 15일, 데니스 힐리 재무장관은 IMF에 39억 달러 구제금융 신청서에 서명했다. 당시 IMF 역사상 최대 규모였고, 선진국이 IMF에 손을 벌린 첫 사례였다. 조건은 대규모 재정 지출 삭감이었다. 3년 뒤인 1978~79년 겨울, 파업으로 런던 거리에 쓰레기가 쌓이는 '불만의 겨울'이 왔다.

7. 파운드의 마지막 자존심- 국가가 개인에게 지는 법

여기서 대영제국 이야기의 핵심, 국가가 헤게모니를 잃는 순간을 이야기할 것이다. 통화 패권의 상실은 두 번의 사건으로 확정됐다. 하나는 국가에게, 다른 하나는 개인에게 당한 것이다.

7-1. 1956년 수에즈 — 미국이 파운드에 총구를 겨눴다

1956년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군사 개입했을 때, 군사작전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세 발의 금융 공격으로 영국을 무릎 꿇렸다.

  1. IMF의 5억 6,100만 달러 스탠바이 크레디트 승인 차단
  2. 미국 수출입은행의 6억 달러 신용공여 차단
  3. 미국 정부 보유 파운드 표시 채권을 시장에 던지겠다는 위협

파운드는 투기적 공격을 받았고 영란은행의 달러 준비금은 급속히 소진됐다. 워싱턴의 조건은 단순했다. 휴전하기 전에는 한 푼도 없다. 영국은 철수했다. 역사가들이 수에즈를 두고 "영국이 세계 강대국의 하나로서 갖던 역할의 종말"이라고 평가하는 순간이다. 미국은 포탄 하나 쏘지 않고 자국이 가진 금융의 힘, 기축 통화의 힘으로 전쟁을 멈췄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군사력이 아니라 결제 통화의 위계였다. 영국은 여전히 항모와 핵무기를 가진 나라였지만, 석유를 사고 식량을 사고 원자재를 사는 돈의 단위가 파운드에서 달러로 바뀌어 있었고 자국 통화의 방어를 위해 달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유동성의 수도꼭지는 워싱턴이 쥐고 있었다. 이 순간 파운드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었다. 준비금 통계상으로는 그 후로도 한동안 세계 준비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실질적인 사망 선고는 1956년 11월에 내려졌다.

7-2. 1992년 블랙 웬즈데이 — 한 사람이 중앙은행을 이겼다

그리고 36년 뒤, 파운드는 국가가 아닌 한 명의 펀드매니저에게 무너진다.

영국은 EU를 출범하고 금융을 통합하기 위해 1990년 유럽 환율조정장치(ERM)에 가입했다. 마르크에 대해 좁은 변동폭을 유지해야 하는 체제였고, 문제는 가입 환율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 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했고, 경기침체에 빠진 영국은 금리를 내려야 했다. 두 요구는 양립 불가능했다. 파운드를 지탱한 것은 오직 정부가 지키겠다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였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는 이 구조를 읽고 약 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 숏 포지션을 구축했다. 파운드화 하락에 배팅한 것이다.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영란은행은 사상 최대 규모로 파운드를 사들였고, 금리를 10%에서 12%로, 다시 1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하루에 두 번의 금리 인상. 아무 효과가 없었다. 기대했던 분데스방크의 지원 개입은 오지 않았다.

저녁 7시 30분, 노먼 라몬트 재무장관은 재무부 안뜰에서 ERM 탈퇴를 발표했다. 파운드는 마르크 대비 약 15%, 달러 대비 약 25% 하락했다.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은 다음 날 모두 취소됐다. 재무부가 추산한 손실은 33억 파운드. 소로스가 하루에 벌어들인 금액은 약 10억 달러였다.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손익 규모가 아니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의 중앙은행이, 한 명의 사인(私人)이 운용하는 헤지펀드에게 공개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소로스는 군대도 국가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은 레버리지와, 영국 정부가 스스로도 믿지 않는 약속을 지키려 한다는 판단뿐이었다.

경제학자들 다수는 ERM 페그가 근본적 불균형 때문에 이미 지속 불가능했고 투기 세력은 불가피한 조정을 앞당겼을 뿐이라고 본다. 이 해석이 오히려 더 무섭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통화 방어는 시장에 무료 옵션을 제공하는 행위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방어선이 명시되어 있고, 방어할 실탄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를 시장이 계산할 수 있다면 — 그 통화는 이미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 역시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고, 고성장을 바탕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등 대외 경제 규모를 키웠으나, 당시 과도한 환율 방어 및 무리한 경제 운영 지표로 지적 받았다. 그 시대 우리는 환율 방어를 무식하게 하다가 외환 투기 세력에 털리고, 일본의 단기 차관 연장 거부를 비롯해 한보철강 사태 등을 맞으며 결국 국가 부도, IMF를 맞았다. 당시 한국은 ATM 기기와 같은 처지였고, 국민소득 2만 달러는 2006년에 들어서며 국가적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로마의 제위가 근위대에 의해 경매에 부쳐졌듯, 파운드의 환율은 헤지펀드에 의해 가격이 매겨졌다. 형태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국가의 신용이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되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그 가격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8. 다음 주도주는 무엇인가?

이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다음 주도주는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다음 주도주'를 찾기보다 주식회사 USA, 즉 미국 ETF와 현금성 자산 보유에 주목해야 한다. 나스닥 톱 100 ETF와 같은 고성장 자산에 매년 20%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금리보다 조금 높은 중성장에 자산을 분배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중국의 AI 굴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실패했다는 점은 앞으로의 불안 요소다. 중국은 2026년까지 AI 칩 생산량을 세 배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미국과의 AI 격차를 1년 이상에서 약 3개월 수준으로 좁혔다. 중국 창신메모리는 상하이 증시에서 중국 최대 기업 자리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대안은 없다. 달러 체제를 대체할 시스템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파운드가 무너질 때는 달러라는 후계자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위안화는 자본 통제 아래 있고, 유로는 재정 통합 없는 통화 통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금은 결제 인프라가 없고, 스테이블코인은 그 대부분이 달러 표시 자산이다. 탈달러화는 진행 중이지만, 그 도착지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회사 USA는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라는 점 역시 사실이다.

다만 세 제국의 사례가 공통으로 남기는 경고는 분명하다.

  • 로마는 통화의 함량이 줄고, 국가 기능이 민영화되고, 권력이 매물이 되면서 무너졌다.
  • 영국은 국부를 소진한 뒤에도 제국의 관리 비용을 유지하려 했고, 결국 통화 방어라는 자존심 싸움에서 국가에게 한 번, 개인에게 한 번 패배했다.
  • 미국은 아직 둘 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정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동안에도 로마의 법과 제도, 상업 네트워크는 오래도록 존속했다. 영국이 기축통화를 잃은 뒤에도 런던은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패권의 상실은 소멸이 아니라 함량의 조정이다.

투자자에게 실무적인 관점은 이것이다. 시스템에 베팅하되, 그 시스템이 지키겠다고 선언한 가격선을 믿지는 말라. 1992년 9월 영국 정부는 ERM을 지키겠다고 말했고, 그 말을 믿은 사람들이 가장 큰 손실을 봤다. 정책 당국의 선언은 방어선이 아니라 시장이 계산하는 변수다.

주식회사 USA를 믿어라. 그러나 과거의 수익률을 미래의 보장으로 착각하지는 말라. 그것이 지금의 시장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냉철한 교훈이다.


참고 자료 (References)

로마 — 정치의 사유화와 제국의 경매

대영제국 — 국부 소진과 관료 비대화

영국병과 파운드 위기

수에즈 1956 — 금융이 무기가 될 때

블랙 웬즈데이 1992 — 개인이 중앙은행을 이긴 날


본 칼럼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